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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iS Club 출애굽기 33장 1절 23절

작성일 2014-11-28 01:46 작성자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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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iS Club 출애굽기 33123141127

 

32장에서 죄에 대해 단호함으로 반응하시던 하나님은 33장에서 모세와의 대화를 통해 점점 단호함에서 물러서시는 듯 합니다. 일견 이것은 모세의 대단한 노력 혹은 지혜로 이루어 진 일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한 단계 더 하나님의 백성이 성숙하도록 하시는 통 넓으신 하나님의 배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1절에서 6절까지 하나님은 모세에게 원래 약속대로 가나안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시면서도 그 도중에 진멸할까봐 목이 곧은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과는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십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준엄하신 말씀에 슬퍼하며 몸을 단장하지 않습니다. 단장하는 장신구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새기거나 혹은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것과 관련된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을 것을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도 장신구를 떼어 내라고 명령하시면서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이지 정하겠노라고 약간 여지를 남겨두시는 반응을 보입니다. 6절은 이 장신구를 떼어 내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7절부터 11절까지는 이런 대화의 끝에 혹은 이런 대화의 와중에 하나님의 마음의 변화의 계기, 혹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계기가 어디 있는 지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 본문의 하나님의 백성이 뭔가를 떼어낸 소극적인 변화와 함께 적극적인 변화 조치를 보여 줍니다. 그 핵심에는 모세가 진 밖에 쳐 둔 회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은 모세와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가 나아가는 곳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서고 그 때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되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하나님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는 곳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비록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의 동선을 바라보다가 구름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면 각기 자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모세를 가장 가까이에서 수종들던, 그리고 회막을 떠나지 않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증언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12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이런 친구가 이야기하는 것 같은 살가운 대화의 기록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달래고 설득하여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바꾸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모세의 화법과 그 대화를 이끌고 가는 기조는 처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던 출애굽기 3장의 내용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너와 함께 가겠다고 하시면서 은총(헤세드)”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면서 다시 그 은총을 자신과 백성에게 입혀 달라고 요청합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이 마치 그래 그렇다면 내가 너와는 친히 함께 가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니 15절과 16절에서는 보다 강력하고 본격적으로 자신만 아니라 자신의 백성, 우리와 함께 행하시고 친히 함께 가셔야 한다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17절에서 모세 때문에 (모세가 은총을 입었고 하나님이 이름으로도 모세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사실상 얻을 것을 다 얻은 모세는 18절에서 너무도 뜬금없는 요청을 하는 듯 합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런데 이것은 출애굽기 3장에서 확실한 보증을 요청하던 모세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요청이며, 실상은 창세기 9장이나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보증할 하나님의 특별한 일하심의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요청까지 다 들어주시려는 하나님은 영광을 보여 주시되 모세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얼굴은 보지 못하되 등을 보여 주시는 방식으로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지점까지 오면 단순히 하나님이 모세에게 설득당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품 넓은 어른이 정말 사랑하는 어린 아이의 똘똘한 요구를 들으면서 너무나 흡족하여서 조금 더 조금 더 담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면서도 선을 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그런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전체적으로 후일 이 내러티브를 통으로 대하는 독자들로서 바벨론포로기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총(헤세드-언약적인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으름장을 놓으시는 것도 고치시려는 것이요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도 사실은 더 인격적으로 가까이 오시고 대화하시며 관계를 맺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 약속하셨던 그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간격을 좁혀서 인격적으로 더 가까이 오시면서도 오히려 그게 연약하고 어리석은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배려하시는 분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면서도 모세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 보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하나님과 누렸던 친밀감보다도 더 한 친밀감을, 모세가 자기의 백성을 위해 했던 것 보다 더 큰 책임의식을 우리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책임의식과 중보는 언약의 갱신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의지할 대상인 장신구들을 떼어 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예배의 회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은 지루하리만큼, 반복적이며 끈질깁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사람의 설복으로 얻어지는 듯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자신의 설복(persuasion)인 셈입니다.

 

,,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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