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BiS Club 야고보서 2장 14절 26절 > ELBiS Club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ELBiS Club 야고보서 2장 14절 26절 > ELBiS Club

거제동원조엘비스 ELBiS Club 야고보서 2장 14절 26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 1391
댓글 0 건 조회 3,346 회
작성일 18-04-05 01:00

본문

ELBiS Club 야고보서 2장 14절 26절 180404

부와 가난, 그리고 차별의 문제를 다루던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 이것을 연결시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는 결론적 진술을 17절과 26절에서 반복하여 사용하면서 14-20절까지는 헐벗고 양식이 없는 형제들에 대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질타한 후 21절에서 26절까지에서는 구약의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경우를 들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논증합니다.

우선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14절)고 고백한다고, 이런 저런 근사한 말을 할 줄 안다고(26절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제대로 된 신학적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고(19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정통 유대인의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구체적이고(16절) 눈으로 볼 수 있는(18절) 행동이 없는 것은 사실은 죽은 것(17절)이고 헛것(20절)이라고 선언합니다. 믿음을 정신의 문제, 관념의 문제, 신념의 문제로 접근하는 플라톤주의가 교회의 역사에 너무 뿌리 깊고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친 강조를 계속 들어 왔기 때문에 야고보의 이런 지적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믿음을 구체적 행동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 믿음이란 몸을 통해 감각을 통해 경험을 통해 체득(體得)할 수 있다는 대안적 관점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감각을 중시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몸의 현상학을 강조한 메를로 퐁티 참조) 어떤 의미에서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경우 방향을 달리하여 몸을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을 통하여 믿음을 체득하는 것이 오히려 바른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감각과 몸으로 표현되고 보여지지 않는 믿음은 허탄한 것(20절 senseless)입니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당시 바울이 로마서에서 믿음을 강조하고 행함은 필요없다고 이야기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야고보는 여기서 일부러 바울의 로마서 4장의 아브라함을 통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논증에 비견하는 논증,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친 사건을 통해 사실은 “행함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행위를 할 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야다-경험으로 알다)라는 선언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그래서 이사야 41장 8절에서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 친밀함의 표현을 하시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25절의 기생 라합의 경우도 사자들을 환대하고 숨겨 다른 길로 보내는 모험을 무릅쓴 행동을 통해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정당하다 여김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도 라합도 목숨을 걸었던,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을 치루며 행동했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이렇게 처절하리만큼 행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겠지요. 26절의 대구법은 특이합니다. 대개 믿음을 정신의 문제, 관념과 신념의 문제로 이해하는 경우 믿음은 영혼의 문제, 행함은 몸의 문제라고 여기겠지만, 여기서 야고보는 영혼과 행함을 몸과 믿음을 댓구로 연결시킵니다. 결국 여기서 야고보의 강조가 드러납니다. 믿음은 몸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행함이야말로 영혼의 바로미터인 셈입니다.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죽은 것과 같은 원리로 믿음에서 행함이 없어지면 끝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독하게 오랜 이단적 강조인 정신과 몸,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 정신과 영혼을 믿음의 정점에 두는 플라톤주의는 값싼 은혜와 잘못된 이신칭의 교리와 함께 한국교회를 철저하게 병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어느 시절보다 오늘이 야고보의 믿음과 행함의 균형적 강조(22절)에 근거한 교정이 철저하게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도리어 온전하게 되고 활성화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몸으로 믿음은 더 깊이 더 넓게 체득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할 시점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18건 4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최신글

연구소후원

접속자집계

오늘
2,223
어제
2,027
최대
3,489
전체
1,657,092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일상생활사역연구소 Institute for Everyday Life as Ministry
주소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샘로 15(장전동, 해인골든빌라) 402호 (46240)
협업공간 레인트리: 부산시 금정구 중앙대로 2066, 4층 (46214) 남산역과 범어사역 중간지점
☎전화 : 051-963-1391
Copyright © 1391korea.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