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BiS Club 고린도후서 2장 1절 17절 > ELBiS Club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거제동원조엘비스
ELBiS Club 고린도후서 2장 1절 17절

작성일 2018-09-28 00:01 작성자 1391 
조회 2,434 회

페이지 정보

본문

ELBiS Club 고린도후서 2117180927

 

바울은 122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라는 자신의 주장을 2장에서 더 확충하여 설명합니다. 1절부터 11절까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안의 근심(pain) 과 용서(사랑)의 문제를 그 이유로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12절에서 17절까지는 복음의 확장을 두 번째 이유로 이야기합니다.

 

1절에서 11절까지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근심(9회 사용)4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고린도교회의 문제로 인한 공동체적 근심(혹은 고통)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다시 고린도교회에 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내가 다시는 근심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바울이 서로 힘든 이야기를 한 것도 그들을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4)었기 때문이었지 근심 그 자체를 드러내어 까발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문제들은 바로 고린도교회 공동체 모두의 근심이고 문제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공동체가 잘 처리하기를 바울은 바랐던 것입니다. 공동체적인 권징이야 말로 회복적 정의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6절새번역 여러분 대다수는 그러한 사람에게 이미 충분한 벌을 내렸습니다.”).

 

권징은 언제나 회복을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소하는 자인 사단에게 공동체는 속게 마련입니다. 바울의 팀은 이런 사례를 많이 보았던 모양입니다.(11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린도전서를 통한 눌림과 걱정과 눈물속에서의 바울의 근심의 드러냄은 사실 고발 자체보다 바로 이 회복을 향하여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용서(4)와 위로, 사랑(2)을 여기서 언급합니다.

 

회복적 정의! 이것을 위해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었고 그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고린도교회에 다시 가는 것을 유보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12절과 13절에서 디도를 만나기 전에 마게도냐로 가라는 복음의 문이 드로아에서 열려서 바울의 심령이 편하지 못하였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12)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가라는 하나님의 보내심(missio) 때문에 고린도에 가는 것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런 사명(mission 하나님의 보내심 as persons sent from God)의식을 14절에서 17절까지에서 냄새(fragrance)”라는 은유로 표현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그 당시 지중해권이 다 아는 그림인 로마군대의 승전 퍼레이드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퍼레이드는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다양한 향을 피웠는 데 이 향의 냄새는 승리자들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지만 끌려오는 식민지 노예들에게는 앞으로 닥칠 어두운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오스메)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4).”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aroma 유오디아)” 라는 자의식이야말로 자신의 선교팀의 진퇴를 결정하는 최고의 이유라는 생각이 바울에게 지배적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복음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17절은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은 뚜쟁이, 지식이나 말로 밥벌어 먹으려는 사람(peddler)가 아니라는 자의식이 분명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으로 보냄받은, 그분의 존전앞에 있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래서 신실한 사람으로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에 바로 가지 않고 마게도냐로 간 것 역시 이런 자의식 가운데 행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요컨대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부의 회복적 정의가 제대로 서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마게도냐로 간 것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꼬여진 관계속에서 그것을 해결하는 신실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동기와 함께 분명한 하나님의 보내심(선교,사명)의식을 갖고 판단하고 애써서 설명 설득하려는 바울을 통해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사실 개역개정판 성경의 번역은 이런 바울의 의도를 오해하거나 이해할 수 없도록 방해가 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 그리고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여 보면 이런 오해들을 훨씬 극복하기가 쉬웠습니다.

 

,,구원(3191) 지성근 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14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Copyright © 1391korea.net All rights reserved.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