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성경공부 ELBiS Club 레위기 10장 1절 20절 요약 > ELBiS Club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거제동원조엘비스
일상생활성경공부 ELBiS Club 레위기 10장 1절 20절 요약

작성일 2019-04-19 00:27 작성자 1391 
조회 4,131 회

페이지 정보

본문

일상생활성경공부 ELBiS Club 레위기 10장 1절 20절 요약 190418,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 이후 8일째의 제사가 드려지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주님앞에서부터 불이 나와 제물을 불사르는 임재의 영광을 체험하고 나자마자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아론의 첫째 둘째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 제사장을 주님 앞에서 불이 나와서 삼키고 그리하여 그들이 죽고 맙니다. 왜 이들이 죽게 되었는가에 대해 1절은 그들이 “주님께서 명하신 것과는 다른 금지된 불”을 “제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담아 향을 피웠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0장 7-9절의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왜 그랬을까 라고 질문하면 추론하여 몇 가지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우선 그들이 열정이 가득했으나 순종하지 않았거나 아직도 잘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8절에서 11절에 특별히 아론에게 직접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의 내용으로 추론해 볼 때 이들이 심지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고 취하여 이런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10절과 11절의 구별하고 가르쳐야 할 막중하고 엄중한 업무를 소명으로 받은 자들이기에 새로운 출발점에서 마치 시범케이스처럼(신학기 교사들이 본때를 보여줘서 분위기를 잡는 것처럼) 이런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엄”을(3절) 나타내는 일이 성경의 역사에 있어 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예: 가나안정복시 아이성 전투,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삽비라부부등).

4절부터 7절까지에서 모세가 이 난국을 즉시 수습하여 아론의 사촌인 웃시엘의 아들들이 이 두 제사장의 시신을 진 바깥으로 옮기게 합니다. 아론과 제사장들은 온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위해 구별된 그들의 소명 때문에 애도도 해서는 안 되고 회막문 바깥으로 나가서도 안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비록 규례를 어겨 죽었더라 하더라도 급사한 자녀 형제를 위해 애도하지 못하는 가족, “아무 말도 못하”는 아론이 여기 있습니다.

1절부터 11절까지의 하나님의 진노로 임한 엄중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내용이 12절부터 20절까지 전개됩니다. 물론 12절에서 모세가 “아론과 살아 남은 아론의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특정하여 말하는 내용이라서 모세의 입장에서는 차제에 다시 한 번 매뉴얼대로, 룰대로 할 것을 강조하는 국면같이 여겨집니다. 어쩌면 9장에서 진행되던 제사의 후반부 제물을 거룩한 곳에서 먹는 차례가 남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도하지 못하는 황망함 가운데서 먹을 것에 대한 강조, 몫에 대한 강조는 한편으로는 생뚱맞는 것 같지만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통한 관계의 회복과 은혜의 체험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16절 이하에서 백성들이 드린 속죄제물인 숫염소를 먹지 않고 불살라 버린 일에 대해 모세가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화를 내며 다그칠 때 아론의 대답과 그 대답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정말 앞 절반에서 보던 엄중함과 다른 모호함과 여백이 있어 보입니다. 분명 모세는 FM대로 평가한 것이라면 아론은 자신과 가족의 경험이 오히려 그 속죄제물을 더럽힐 위험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면목없음(새번역은 “무슨 염치로”)의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처음에 아무 말도 못하던 아론의 마음에 뭔가 항변하고 싶은 마음, 애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소명에 대한 억울함의 표현이 19절이라고 보기까지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 지점에서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개역개정은 “좋게 여겼다”)라고 아론의 반응에 대응했고 하나님은 여기서 아무런 말씀도 없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별됨과 거룩함의 소명을 가진 아론의 심정에 초반부와는 달리 여지를 주시고 여백을 남기시며 모호함에 머무르시는 하나님의 처신(?)을 봅니다. 구원의 역사속에서 당신이 직접 경험하실 아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또한 애도조차 하지 못하는 소명을 스스로 존재안에 가진 이의 마음을 거꾸러 추적하여 올라간다면 이 본문 맨 처음부분에서 받은 충격에 비해 본문 맨 마지막 부분에서 느끼는 생경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고난주간, 그리고 세월호 5주기를 보내는 시점에서 만나게 된 애도하지 못하는 아론의 페이소스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한편으로 저 황망한 죽음, 저주를 우리가 지고 죽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시므로 애도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슬픔의 깊이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엿보게 합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Copyright © 1391korea.net All rights reserved.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