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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온라인 ELBiS Club 전도서 3장 1절 22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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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1,749 회
작성일 21-10-1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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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스토리텔러 이야기꾼 전기수를 그린 그림을 가져 왔습니다.

 

온라인 ELBiS Club 전도서 3장 1절 22절 요약 211015

전도서는 처음 보기에 “헛되다”를 외치는 인생에 대한 허무주의 예찬론같이 보이기도 하고, 또 좀 읽다 보면 인생을 잘 즐긴 호사가의 꼰대스러운 발언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딱 떨어지는 논리나 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곤혹스러울 만큼 명확한 답이 없이 뭔가를 흔들고 누락시켜서 파악하기가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 본문이 전도서입니다. 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나 본문을 함께 읽고 나누면서 전도자는 회중(ecclesia)의 이야기꾼(ecclesiastes storyteller)으로 매우 훌륭한 설득가, communicator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3장에서 전도자(코헬렛)은 “때”라는 화두를 꺼내어 사람들로 이 주제에 주목하도록 합니다. 인생, 일상다반사를 살아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보편적인 진술이 1절에서 8절까지 싯구처럼 댓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장에서 2장까지 이야기한 자신의 주장(cf.1:15..)을 9절에서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라고 정리하면서 10절 이하에서 15절까지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등장시키는 것을 보면 앞의 이야기를 “때”라는 시간적 범주로 살짝 변환하여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사 일어나는 모든 일과 “때”를 연결시키고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현재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신 분(11절)”이라고 시간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만듭니다. 마치 시간이 순환하는 것처럼 “지금 있는 것 이미 있던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며 “하나님은 하신 일을 되풀이하”시는 것처럼 전도자가 이야기하고 있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전도자는 1장과 2장의 논리, 여정에서 한 걸음 훌쩍 더 뛰어 넘어 마치 시간의 수평선을 확장시키는 것처럼 “때”를 확장시켜 버립니다.

16절과 17절에서 전도자는 악의 문제, 정의의 문제를 통하여 현재 삶의 “때”를, 알지 못하는 죽음 이후의 미래의 “때”와 연결시키고 사람들의 시선을 그리로 향하도록 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모든 행위는 심판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17절하반절).” 이미 2장에서 “슬기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2장 16절 하반절)”라고 전도자가 말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방식으로 사람과 짐승의 닥치는 운명이 똑같다는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죽음을 이야기하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보여 주겠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한편으로 보기에 악의 문제 혹은 정의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죽을 것이니 허무함속에서 우울하게 운명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만 전도자의 의도는 정반대입니다. 22절 상반절에서 16절에서 21절의 논리전개의 결론으로 “그리하여(So)”라고 접두사를 쓰면서 이미 12절과 13절의 내용(cf.2장 24-26절 carpe diem)을 반복 요약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 전도자의 회중 속에는 악의 문제, 정의의 딜레마 때문에 현재를 누릴(carpe diem)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심지어 악의 문제, 정의의 딜레마의 전위에 서서 오히려 현재를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전도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 “심판받을 때가 있”다는 이야기하려는 의도를 갖고 “때”라는 화두를 꺼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전 세대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의 세대에게는 협박용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는 방식만이 우리가 이해하는 복음에 대한 유일한 이해라면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한결같은 은혜와는 다른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분명하고 더 누리게 만드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전도자는 13절과 14절에서 은총과 두려움을 동시에 말합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전도자가 말하는 은총이나 심판을 오늘날 우리가 아는 교리적 언어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전도자는 굉장히 능숙한 이야기꾼이 되어 회중들의 생각을 현재의 삶을 넘어 인간의 미래의 운명, 죽음과 심판을 보게 합니다. 이것을 통해 현재의 삶을 괴롭게 하고 회의하게 하는 인간사의 악의 문제 정의의 딜레마를 극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거꾸로 그것을 통해 다시 현재의 삶을 하나님이 지우신 짐(10절)이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총(선물 13절)으로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도서는 생에 대한 비관과 허무주의를 장려하는 본문이 아니며, 알 수 없는 논리로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책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아는 것처럼 꼰대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은근히 부아가 나게 만드는 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전도서는 잘 따라가면 훌륭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책입니다. 전도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현재를, 그리고 악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알고 깨달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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