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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ELBiS Club 전도서 6장 1절 12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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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1,025 회
작성일 21-11-1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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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estling with God: Lessons in Trust – Words of Refuge

ELBiS Club 전도서 6장 1절 12절 요약 211112

 

인생의 부조리...하나님 탓? 자기 탓?

 

전도서 6장은 5장의 흐름 속에서 보는 것이 여러 가지 점에서 맞아 보입니다. “나는 세상에서...을 보다”라는 문장이 5장 13절과 16절에서 있었는 데 6장 1절에서 같은 유형의 문장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 5장 마지막절 20절에서 “덧없는 인생살이”라고 표현한 5장 10절에서 17절까지의 묘사와 6장의 전체적인 묘사가 유사하다는 점, 5장 1절에서 6절까지 말에 대한 경계로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6장의 거의 마지막 부분인 11절에서 말의 무용함에 대해 이야기하므로 5장과 6장의 전체구조가 봉투형(inclusio)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들이 그런 이유입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두 장 가운데 있는 5장 18절에서 20절의 말씀, 사람의 몫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누리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강화하려는 것 같습니다.

 

1절과 2절의 전도자의 말처럼 보이는 문제제기가 매우 도전적으로 느껴집니다. 과연 이런 세상의 부조리가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전도자가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렇게 접근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전도자가 매우 영리한 소통가라는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서 말하려는 논지를 더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아마 당시에 “재산, 부, 명예(2절)” 그리고 자식의 복, 장수의 복(3절)등이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피상적인 이해 속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5장 초두에 언급한 어리석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너희들의 피상적 신학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한다면 삶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 이 부조리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래?”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피상적 신학의 세계관으로 이 부조리를 보면 “잘못되었다고 억울하다고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통탄할 일이라고” 말하고 자칫 그 부조리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기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고 돌려 되기 십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매우 주도면밀하게 그 부조리의 원인을 찾아 나갑니다. 우선 전도자는 극명한 대조를 통하여 그 일을 합니다. “태어날 때에 죽어서 나온 아이”와 “부와 재산과 명예, 백명의 자녀, 오랫동안 장수한 사람”을 대조하면서 그 아이가 그 사람보다 나은 이유 역시 극명하게 대조시켜 놓습니다. 그 아이는 “더 편하게 안식을 누리지(5절)”만 그 사람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2,3,6절)”는 현실입니다. 이것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현실이 아닙니다. 7절에서 9절을 보면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욕구(7절 식욕, 9절 욕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슬기롭다는 것,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안다는 것도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전도자는 헤벨선언을 합니다. “이것 또한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9절과 10절에서 밝혀집니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욕심에 사로잡혀서 헤매는 것보다 낫다(9절).” 부자든 가난한 자든, 슬기로운 자든 어리석은 자든 만족하지 못함, 욕심에 사로잡혀 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태어날 때에 죽어서 나온 아이도 “편하게 안식을 누리(5절)”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면 “지금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오래 전에 생긴 것이”며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도 이미 알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12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4회)” 못하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결국인 안식을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다(10절)”는 말의 의미 해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야곱의 경험이나 욥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그리고 5장 마지막 부분과 2절의 하나님 언급을 고려해 볼 때 “강한 이”를 하나님으로 보는 해석이 가능할 듯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생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즐거움을 누리는 것, 안식을 누리는 것인데 이것을 거스려 사는 삶을 사는 것이 부조리한 삶의 이유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더 부조리한 것은 인생을,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11-12절). 그렇게 해 보았자 사람은 죽고(12절) 같은 곳으로 갑니다(6절). 그러므로 아는 척 많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부조리의 원인이 자신임을,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에 사로잡혀서 헤매는 인간 자신임을 깨닫고 강한 이이신 하나님과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재력, 명예, 장수, 자식자랑, 맛있는 것에 대한 끝없는 식욕의 추구와 그와 관련된 수많은 말들(코치, 멘토, 강연, 책, 유투브등)의 난무는 코헬렛의 시대뿐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 이면에 인생의 부조리함에 대한 억울함과 통탄해 함, 어처구니없어 함이 역시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부조리 앞에서 억울하고 통탄해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그 원인을 돌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5:20)”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안식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고 의도하시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전도자는 우리에게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12절)” 그 대답은 이것입니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욕심에 사로잡혀서 헤매는 것보다 낫다.(9절)” 결국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습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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