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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연구소 창세기 17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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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6,105 회
작성일 09-03-2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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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iS Club 창세기 17장 1절 - 27절 요약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은 86세로부터 13년의 세월이 지나 아브람의 나이가 99세, 이스마엘이 13세가 되던 해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은 아브람과의 사이에서 언약을 세워 아브람을 크게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실 아브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번성의 약속을 처음 받은 것은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였고(창세기 12장 1-3절), 그 이후 롯이 아브람을 떠나 소돔으로 간 직후에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기업의 땅과 자손 번성에 대한 약속을 주셨으며(창세기 13장 14-17절),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을 치고 조카 롯을 구출한 이후에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식이 있을 것과 그를 통하여 자손이 번성할 것,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재차 약속하시며 이 언약을 굳게 확신시켜 주십니다(창세기 15장). 그러나 이러한 거듭되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가나안 거주 10년만에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음으로써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이스마엘에 대하여도 하나님은 돌아보아 주셨고 이를 통하여도 큰 민족이 일어나겠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게 진행이 되고 있었고 아브람은 여전히 그 약속을 신뢰하며 그 약속의 성취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출생으로부터 다시 13년이나 지나고 약속의 성취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던 때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지칭하십니다. 이는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 있을 수 없는 일도 능히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강하게 선언함으로써 오랜 시간동안 약속의 성취가 참으로 더디게 보여 신뢰를 잃어가는 아브람에게 신뢰의 근거를 새롭게 해 주는 선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아브람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명하신 것은 수차례 거듭된 언약의 확인에도 불과하고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제한적인 생각으로 언약을 무력하게 하려 하고 포기하려 하는 아브람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언약에 대한 준수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세우십니다. 이 언약은 아브람을 처음 부르실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말씀하신 언약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면서 언약을 구체화하시고, 언약의 표징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환기하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언약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언약을 구체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아가 아브람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사래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어 아브람과 사래로부터 민족들이 나고 왕들이 나올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고 불리게 되고, 사래는 사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가나안 온 땅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라는 구체적인 직계 혈통의 한 아들로부터 성취될 것입니다. 이 이삭은 일년 후에 사라에게서 태어날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신뢰하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을 아시고 '이삭'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알려주시고, 일년 후라는 구체적인 시간도 알려 주시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 대한 영원한 언약을 구체화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스스로를 맞춰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준으로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는 은혜와 섬세하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세밀하신 인도와 섭리로 인해 연약한 가운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는 은혜를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됩니다.

한편 하나님은 그 언약의 범위를 확장시키시며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보다 더 큰 그림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확장된 모습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오늘날 믿는 우리 신자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들로서의 정체성을 고백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고 하시며, 왕들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나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들, 언약의 백성들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서고 아브라함의 육신의 혈통을 넘어선 믿음의 자손들까지도 포함하는 진술이라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는 12절과 23절, 27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대대로 태어나는 모든 남자는 이방사람이라도 할례를 받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할례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후손간의 영원한 언약이며,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신 진술 이후에 이러한 명령이 있다는 사실이 언약의 범위를 이스라엘을 넘어 확장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보다 큰 그림을 엿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는 우리 신자들의 정체성에 새로운 조명을 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언약의 시간적 범위도 확장시키십니다.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그 후손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이 언약의 영원성도 언약의 대상에 대한 확장과 관련하여 유사한 묵상의 내용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언약과 관련하여 오늘 말씀에서 또 하나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징을 세우셔서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기억매체로 삼으셨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비하여 언약을 망각하기 쉬운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교육과 배려로 읽혀집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낮추시면서 언약의 표징을 구체화하여 제시하신 것입니다. 먼저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할례는 포피를 베고 안 베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상징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제시되었고, 그런 이유에서 할례를 받지 않는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된다고 강력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름의 변화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변경시키시며 그 이름에 언약의 내용을 포함시키신 하나님은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반복적으로 불리우는 이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언약을 상기하시고 매순간 새롭게 하시고 계십니다. 일상을 언약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편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내 언약'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언약체결의 장면에서 하나님이야말로 언약체결의 주도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을 강하게 지키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시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사실 처음부터 언약 체결의 당사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이 대등하게 설정될 수 있는가부터가 의문인 상황에서 하나님 스스로가 인간 아브람(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려고 하셨고 이를 스스로가 준수하려고 하신 것 자체가 은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언약은 그 체결로 인하여 당사자가 의무를 져야 하는 계약과 비교해 볼 때 우리 인간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내용으로 체결되어 있고 언약의 당사자되신 하나님이 그 자신의 신실하심과 사랑하심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이 언약의 내용에 계속적으로 구속시키고 계신 것을 볼 때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치러야 할 의무만을 많이 생각하고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를 따져보는데 익숙하지만 우리가 져야 할 의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이 지시고자 하는 의무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묵상해 볼 때 오히려 하나님께 찬양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재차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언약의 거듭되는 체결과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웃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 원한다고 말하며 명시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을 표현합니다. 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구체적인 이삭의 이름을 들어 약속을 확증해 주실 뿐 아니라 이스마엘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보여 주십니다. 거듭되는 불신과 실패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고, 그 거듭되는 불신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다시 한번 우리의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결국 장대한 언약의 확증, 그리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신실하심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할례라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집안이 할례를 통하여 언약의 표징을 세웠습니다.

말씀의 공동체는 이 말씀을 가운데 두고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일방적인 하나님의 언약 체결과 준수의 의지를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 약속을 망각하고 약속의 성취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누리는 것이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할례를 주신 하나님을 통하여 다시 한번 인간에게 맞춰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언약의 표징을 통해 그분의 언약의 확실함을 알리시는 세심한 섭리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언약이 면면히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고, 언약을 맺는 방식을 우리 수준에 맞춰 변화시켜가시는 하나님에 비해 순종하는 모습이 부족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순종의 모습으로 언약에 반응해야 할 것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붙들고 순종하며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살아내기 위해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언약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늘 마음이 힘들지만 그러한 괴리 가운데에서도 늘 위로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으며, 큰 그림에서 언약을 이뤄가고 계시지만 여전히 작은 부분까지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일상적인 것을 통하여 언약을 상기하게 하시고 언약을 새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자신이 일상의 반복되는 삶을 언약의 표징으로 삼아 일상을 새롭게 해야 할 필요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한다는 묵상도 있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 그 신실하심 안에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인 것을 고백하면서 신뢰가 자라가는 일상이 되기를 기도하고 소망하면서 말씀 공동체는 다음 시간을 기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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