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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장 1절 13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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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1,366 회
작성일 22-03-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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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장 1절 13절 요약 220318

 

 

거대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듯이 마가복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1절).” 전 세계, 전 세대에 이제는 편만해진 복음운동의 시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 지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알리는 MC 목소리(성우) 역할을 하는 세례요한이 등장하고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가 어떤 배경 속에서 어떤 일을 했으며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는지가 2절에서 8절까지 이야기됩니다. 이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예수가 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들었던 하늘에서의 소리와 그 이후 광야 사십일간의 이야기가 짧게 10절에서 13절까지 등장합니다.

 

요한의 역할은 2절과 3절이 말하는 것처럼 구약(사40:3, 말3:1)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심부름꾼으로 주인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예고처럼 요한은 광야에 나타나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닌데 거기서 소리를 내고 선포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우선 5절은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수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라고 할 만큼 사람들이 몰렸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의 메시지가 독특하였고 6절에서 묘사되는 대로 그의 라이프 스타일 역시 독특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사는 요즘 말하자면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 같은 라이프 스타일의 독특함만이 사람들을 끌어 모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당시 사람들의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갈망은 그 당시의 종교인 유대교가 채워 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죄를 용서받으려면 제사장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데 “회개와 세례”를 강조하는 광야의 세례요한을 찾아 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 당시 기존종교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혹은 정치적 혁명을 꿈꾸는 열심당원이 아닌 다른 제3의 길, 새로운 개혁운동의 길인 에세네파의 메시지와 생활방식 그리고 세례를 포함한 구체적인 실천의 노선에 세례요한이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길 역시 이런 흐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굳이 북쪽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남쪽 요단강가에 와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9절)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언자들이 예고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7절) 동시에 자신이 예고하고 소개하는 이분이야말로 이 개혁운동의 중심이라고 선언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8절)” 구약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알려져 있고 가끔 사용되었지만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선 율법의 권위에 대한 강한 강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강조가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Ivp성경사전참고). 이런 흐름에서 지금 요한의 “성령으로 세례”에 대한 강조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본문은 예수의 첫 등장의 주요한 두 사건(세례받으심과 시험받으심)이 ‘성령’의 나타남과 이끄심과 연결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율법의 시대 기존 종교의 시대가 아닌 성령의 시대,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10절에서 13절의 두 사건은 은연중 구약의 모세를 생각나게 합니다. 모세가 물에서 건짐받은 것처럼 “예수께서 물 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10절)” 그 예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다니면서 시험을 받았던 것처럼 “사십 일동안 광야에 계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율법의 수령자이자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예수님의 등장은 이 시대가 새로운 시대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원래 율법을 받았던 그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요?

 

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2절과 3절은 “길” “주님의 길” “그의 길”이라고 묘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길은 요단강에서의 세례를 통해 성부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의 선언을 경험하고 동시에 광야에서 (사탄, 들짐승)의 시험과 동시에 천사의 시중을 경험하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 내내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볼 것입니다. 이 마가복음의 처음 독자들은 이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 도반(道伴)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4번이나 사용되는 “광야”라는 단어는 당시 독자들의 상황을 반영하는 단어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종교가 주는 위안과 안정감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운동, 새로운 길을 선택한 자들로서 갖는 두려움에 오늘 본문이 어떤 위로를 가져다 주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는 복음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운동,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자인지 그리고 이 길, 이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 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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