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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장 29절 45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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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871 회
작성일 22-04-0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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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 Get Wrong About Authenticity In Leadership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장 29절 45절 요약 220401

Authenticity

 

오늘 본문은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서 장모의 열병을 낳게 하시고 그로 인해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을 병과 알지 못하는 능력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귀신에 예속된 데서 자유케 하는 사건(29-34)과 귀신들의 예수님에 대한 진술을 막으시는 사건, 그리고 다음 날 외딴 곳에서 기도하실 때 시몬 일행의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압력에 오히려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분명한 의지를 밝히시고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다니시며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는 이야기(35-39), 그 와중 만난 나병환자를 고치시며 조용힌 제사장에게 가서 정결예식을 통해 사회로 복귀하라는 권면을 하시나 오히려 이야기를 참지 못해 퍼뜨려서 예수님은 드러나게 다니시지 못하고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모여드는 장면으로 연결됩니다(40-45).

 

이미 전절인 28절에서 밝혔듯이 예수의 소문이 두루 퍼지는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봅니다. “모여들었다(33,45절)”나 “찾고 있습니다(37절)”라는 동사 앞에 “모든”“온”“모두”“사방에서”라는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이 엄청나게 퍼져가고 있다는 것을 마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의 이유는 “병(열병,나병,모든병 6회))”을 낫게 하시고 “귀신(4회)”을 내어 쫓으시므로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힘, 권세, 능력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가운데 예수님은 두루 퍼지는 소문과는 달리 “외딴 곳”을 찾고 선택하시는 것과 같은 뭔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마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는 상황과는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주인공인 예수님의 모습과 본문에서 갈등관계에 있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과 같은 설화체(narrative) 서사문학은 인물, 사건, 배경을 중심으로 보면서 특히 등장인물간의 갈등관계에 주목해서 관찰 해석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첫 번째 예수님과 갈등관계에 있는 존재는 “귀신(33-34)”입니다. Fear/Power세계관의 전형인 고대 사회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은 수많은 종류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과 두려움을 먹이로 삼아 인격을 사로잡고 예속시키는 힘이 다름 아닌 “귀신”들입니다. 32절의 시간적 배경 묘사인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라는 말에 이 모든 것들이 다 포함 묘사되고 있습니다. 병과 귀신들림은 사회와 문화에서 떳떳하지 못하고 대낮에 나 다니기 껄끄러워 그 시간을 이용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혹은 고대의 문학적 장치로 볼 때 그 표현 자체가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두움을 드러내고 있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어두움, 두려움을 숙주로 삼아 인격을 지배하는 존재들을 내 쫓으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존재들이 계속하여 그들의 억압하는 힘을 행세하려고 “예수가 누구인지”를 그들의 입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왜곡하려는 그릇된 권위를 막으신 것입니다. 여전히 두려움을 조장하면서도 예수의 존재는 알게 하는 일종의 혼합주의적 물타기, 오염을 미연에 방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과 갈등관계는 아주 이른 새벽에 외딴 곳에서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시몬과 그의 일행(36)”입니다. 이들은 아마 29절의 야고보, 요한, 안드레를 포함하는 자였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보면 예수님을 압박하면서 실은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마을과 집이라는 한계속에 제한하고 독점하려는 마음이 비칩니다. 지난 밤의 어두움과 대조를 이루는 시간적 배경 묘사에 주목하면서 여기서 “아주 이른 새벽”이 시사하는 것처럼 명료하고 또렷하게 예수님은 자신의 의도 목적,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일을 하러 왔다(38).” 운동의 초기 단계부터 특권화의 가능성을 통한 오염의 가능성을 알고 계셨고 분명한 목적의식, 방향감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35절에 보는 것처럼 지속적인 기도(하나님과의 관계)와 연관되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40-45절에 보는 바 “나병환자”와의 갈등관계는 좀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병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령한 것을 바쳐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여라(44).” 이렇게 하신 이유는 나병이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 문화 종교적 차원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병자의 온전한 치유는 단순히 깨끗해 진 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인내하고 기다리는 과정과 절차(cf.레14장)를 통하여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받아 들여질 때 완성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병자들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려는 목적을 가지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치유를 받는 그 존재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은 본문에서 병자를 고치실 때 그들에게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행동들을 자세히 보면 더 분명해 집니다. 31절에서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41절에서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치유를 받는 사람들의 정서와 상황, 상태에 맞는 온전하고 전인적인 치유를 하시기 원하셨지 그저 소문이 많이 나기를 원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 입니다. 거짓된 힘을 두려워하여 예속된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을 교묘하게 물타기로 왜곡시키는 일,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칫 특권화 권력화하는 일,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지만 전인적이고 온전한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과정을 중요시하기 보다 프로그램을 돌리고 결과를 얻기 위해 사람과 과정을 도외시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복음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 볼 일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방향의식, 사명의식(“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을 가지셨기에 소문, 평판, 인기에 휘둘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본받는 자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권위, 능력, 힘은 사명에의 진정성에서 나옵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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