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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2장 13절 22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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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942 회
작성일 22-04-1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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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2장 13절 22절 요약 220415

 

복음서를 통해 예수를 보면 야성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일차 읽고 나서의 느낌들을 나눌 때 “당돌, 대범, 당당함”과 같은 단어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가이사랴 자신의 집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죄를 사하는 새로운 권위, 능력을 스스로 이야기하신 예수님은 집을 나와 주변 바닷가 거리로 나가시고 역시 많은 무리가 따르고 그들을 거기서 가르치십니다(13절). 그 길에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만나시고 그를 제자의 길로 부르십니다. 레위와 그의 관계의 네트웍이 예수님과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의도를 가진(17절에 의하면) 만남이었습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는 예수가 만나 함께 식탁 교제한 사람들이 세리와 죄인들이었다는 것을 반복합니다. 15절에 의하면 이들은 레위의 식탁에 예수님을 따라왔던 많은 이들이었습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따라온 이들이라면 레위와 유사한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기피하고 혐오하는 대상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과 “음식을 먹는”것을 바리새파의 율법학자들이 문제제기하는 것을 보면 통상적인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라면 같이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인 “예수의 제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16절). 아마 어쩌면 이 시점의 “예수의 제자들(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서 함께 먹고 교제하는 것이 마뜩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조금 떨어져 있었기에 이 식탁에 참여하지 않았을 외부인인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 접근할 수 있지 않았겠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17절의 유명한 반응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겠으나 어떤 의미에서 어정쩡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실 수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주는 충격은 어떤 의미에서 문제제기한 바리새파 율법학자들보다 문제제기를 받(고 그것을 전달한 듯이 보이는)은 제자들에게 더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18절에서 22절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음식을 먹으면서 교제를 많이 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상적인 삶의 루틴이라는 배경을 깔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렇게 거의 매일 먹고 교제하고 북적거리는 삶의 분위기는 당시의 경건한 사람들인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삶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문을 예수님께 들고 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 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18)” 금식은 구약에서 대속죄일과 같은 날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레16:9)로 행해지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유대인들이 일년에 4번 금식하던 흔적(슥8:19, 7:5)이 있는 데 이 당시에 특히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cf.눅18:12) 금식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금식은 기본적으로 신앙의 정서, 분위기가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금욕하는, 우울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예수님은 19절에서 20절의 말씀을 통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이야기하십니다. 혼인잔치 분위기,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의 맥락을 말씀합니다. 스가랴 8장 19절의 예언도 이런 정서의 변화, 분위기의 변화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넷째 달의 금식일과, 다섯째 달의 금식일과, 일곱째 달의 금식일과, 열째 달의 금식일이 바뀌어서, 유다 백성에게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절기가 될 것이다. 너희는 마땅히 성실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금식 안에 내재된 종교적 정서, 분위기는 낡은 옷이며 낡은 가죽부대입니다. 이것은 신랑과 함께 하는 혼인 잔치라는 은유 속에 들어 있는 정서와 분위기를 감당할 수 없는 셈입니다. 생베로 만든 새 옷이며 새 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가 주는 새로운 정서, 새로운 분위기의 종교, 영성의 때가 온 것이라고 당차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만나는 예수님에게서 야성과 당당함을 봅니다. 사회질서에 신경 쓰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 사명(죄인을 부르러)에 집중하시는 예수님을 복음서를 보면서 대하면 우리에게도 이런 야성이 생기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새로움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들, 속칭 죄인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을 변화의 자리로 이끄시는 놀라운 방식입니다. 누구든지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면 거기에 걸 맞는 정서, 분위기가 생기고 사람들로 하여금 질문하게 합니다. 이 경이로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차별과 배제, 혐오할 대상이 없습니다. 이 새로운 질서는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금기가 가득 찬 정서가 아니라 음식과 포도주로 가득한 혼인 잔치의 분위기인 즐거움 그리고 새로운 관계의 기쁨으로 넘쳐 날 것입니다. 누구라도 차별과 배제 없는,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즐거움과 기쁨이 기본 분위기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 야생성, 그 날 것의 새로움이 복음서를 보면서 다시 회복되기를...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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