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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2장 23절 3장 6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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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1,363 회
작성일 22-04-2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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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2장 23절 3장 6절 요약 220422

종교개혁과 변질: 끊임없는 개혁을 위하여

Way of Grace Church: Buckeye, AZ > Guided by Scripture Alone (Acts 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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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7회)과 관련한 이 두 에피소드는 공관복음인 마태복음 12장1-14절과 누가복음 6장 1절-11절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아마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에피소드였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2장 23절에서 28절까지는 안식일 길에서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르는 것 때문에 바리새파 사람이 제기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라는 문제제기에 예수님께서 다윗의 예를 들어 안식일의 목적과 주인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3장 1절에서 6절까지 본문은 또 다른 때(NIV Another time he went into..) 안식일 회당에서 일어난 일의 기록입니다.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회당에서 안식일에 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 지 지켜보고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 예수님이 이례적으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5절)”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복시켜 주시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없앨 도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여기서 “안식일”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갈등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수의 대응을 보면 매우 강하고 단호한 느낌인데다 이례적인 감정인 분노와 탄식이 기록되고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십계명(출20:8-11,신5:12-15)에 안식일에 대한 명령이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신구약 중간기에 이 안식일 계명을 준수하는 것과 관련하여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발전되었고 지금 이 시기 바리새파 유대인들의 경우 이런 정서를 이어 받아 당시 민중들에게 걸림돌이 될 만큼 복잡한 안식일 규정들로 꼬투리를 잡고 사람들을 컨트롤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실패한 유대민족의 체질개선과 개혁을 의도했던 이 안식일 규정이 원래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 계명의 정신과 의미를 잃어 버렸다고 판단하셨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서 매우 강하게 반응하시고 심지어 감정적인 반응을 하셨던 것입니다.

 

23절에서 28절까지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예수님은 사무엘상 21장 1절에서 6절에 기록되어 있는 도망자 시절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 대제사장 아비아달(삼상에서는 그 아버지 아히멜렉)을 찾아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을 수 없는 제단 빵을 먹었던 일을 예로 드십니다. 이것은 두가지 의도를 가집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자신을 다윗과 연결시키십니다. 이것은 삼하 7장 12절과 13절에 예언한 다윗의 자손 메시야 주장과 연결됩니다. 결국 28절에서는 단 7장 13절의 “인자(그 ‘사람의 아들’)”메시야 주장을 직접 하시면서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자기 주장하십니다. 두 번째는 금기된 제단빵을 먹은 것도 “사람을 위하여”인 것처럼 안식일 계명에 입각하여 안식일 규정도 “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27절). 실제로 신명기 5장에서 안식일 계명을 준수해야 할 이유를 이야기할 때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때를 생각하여 이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다는 것은 안식일 계명이 법 자체의 준수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어졌다는 것을 잘 드러냅니다.

 

3장 1절에서 6절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이들의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왜 하필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문제의 중앙에 있게 되었을까요?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의 기준으로 안식일에 병을 고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위급한 경우일 때만입니다. 그 기준에 의하면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경우는 위급하지 않기 때문에 안식일에 고쳐 주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바리새파사람을 비롯한)은 회당의 잘 드러나지 않는 구석에 아마 존재했을 이 “사람”의 감정과 필요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이 사람을 통해 예수의 위법행위를 지켜보다가 고발하려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라고 모든 것의 중심에 두십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이용하려 하지 않으시고 이 사람 자신의 회복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이것이 5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례적으로 노하신 이유입니다. 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위급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손이 오그라들어서 일을 할 수 없고 경제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무너진 사회관계와 삶의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굳어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오그라든 손은 “악한 일”이요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분노와 탄식은 손 마른 사람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는 분노요 탄식이었고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계명의 본질인 회복, 즉 엿새는 일을 하고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셨던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로의 회복(cf.출20:11)을 이 손 마른 사람의 손이 회복되는 것을 통해 허락하셨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과 극단적으로 로마(권력)와 결탁하여 있는 헤롯당원들과 이례적으로 만나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게 됩니다.

 

바리새파는 신구약중간기 유대교의 개혁의 선봉에 있었고 좋은 의도로 여러 가지 개혁의 시도들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2백년이 지나면서 원래 개혁의 좋은 의도는 사라지고 규정과 규례만 남고 원래 상위법의 의도마저 이 규정과 규례로 뒤집어 버리는 패착에 빠졌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뭔가 좋은 의도로 개혁을 꿈꾸는 일들이 있습니다만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원래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의 의도를 항상 되돌아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개혁의 주도자인 자신들과 자신들의 아젠다가 최우선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맹목으로 만들고 맙니다. 두 번째 모든 개혁의 아젠다는 “사람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며 무엇보다 총체적인 회복과 살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무엇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안식일” 규정일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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