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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연구소 ELBiS Club 창세기 50장 1절-26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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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6,498 회
작성일 11-03-0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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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iS Club 창세기 50장 1절-26절 요약

창세기에 나타난 일상적인 삶의 주제들을 살펴 본 성경공부의 대단원의 막은 “두 번의 장례와 두 번의 울음(슬픔), 그리고 두 번의 맹세”라고 제목을 부쳐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창세기가 인간의 발달주기에 따라 새로운 탄생에서 시작되어 죽음과 장례에 도달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창세기의 끝은 닫히지 않고 열려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구조인 셈이지요.

1절에서 14절까지는 야곱의 죽음에 이은 장례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시킨 맹세대로 가나안 땅에 올라가서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고 바로에게 청하여 바로의 허락하에 온집안과 바로의 신하와 원로들이 가나안 땅으로 야곱의 시신을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합니다. 사십일간 향재료로 미이라를 만들고 칠십일간 애굽전체가 애곡한 데다가 바로의 궁의 원로들이 함께 이 장례행렬에 동참했다는 것은 애굽사람들이 요셉과 그 집안에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요셉은 “내가 다시 돌아오리이다(5절)”라고 말할 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과 양떼와 소떼를 고센 땅에 남겨둠으로서 애굽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예우를 갖춥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애굽으로 돌아옵니다(14절). 이 모든 장례의 긴 일정동안 주도적이고도 합리적인 요셉일지라도 아버지의 죽음앞에서 여러번 반복적으로 슬픔을 표현합니다. 1절에서 아버지가 죽자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었던 요셉은 아마도 3개월정도 지난 10절에서도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크게 울고 애통하며 7일동안 (충분히) 애곡합니다. 그 애통이 얼마나 컸으면 가나안 사람들이 역사속에서 기억하여 “애굽사람의 큰 애통”이라고 땅 이름(아벨 미스라임)을 지을 정도였을까 생각이 듭니다. 종종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앞에서도 슬픔을 표현하지 않도록 종용받곤 합니다만 이것은 그리 권장할 만한 태도는 아닙니다. 충분히 애곡하는 것, 소위 애가의 전통이 오히려 불행과 죽음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올바른 처신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것이 심리적으로도 건강한 처신이 될 수 있습니다.

15절에서 26절까지는 또 다른 요셉의 눈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형제들의 죄의식 때문에 생긴 눈물입니다. 형들은 아버지가 죽었으니 그동안 쌓아두었던 원한을 요셉이 이제 쏟아 놓을까봐 사람을 보내서 이야기를 하고 또 직접 요셉을 찾아와서 미리 두려움을 표합니다. 요셉은 역경을 선으로 바꾸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20절)에 대한 믿음 때문에 오히려 형들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22절 이하에 요셉은 일백십세를 향수하고 죽음에 다다릅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그 어떤 인물이라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죽음앞에서 애굽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하면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시켰던 “맹세”를 그의 형제들,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시킵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으로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돌아갈 본향에 대한 약속과 맹세는 47장부터 4장에 걸쳐 계속 반복되는 각장의 결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 광야길체서 여러번 다시 애굽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했었습니다. 그 때마다 왜 이 백성이 가나안으로 돌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이후 어쩌면 유프라데스 문명에 익숙해 졌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왜 거기에 만족하고 그 문화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라도 돌아가야 할 땅이 있다는 생각으로 안주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은 분명히 이들에게 암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의 삶에서 성실하고 온전하게 사는 것과 동시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늘 부르심에 따라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실향민(exile, resident alien) 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 그것이 창세기의 마지막에 우리가 깊이 생각하여야 할 주제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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