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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성령 5장 일,인간,자연 요약(feat.홍정환) 및 소감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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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2,045 회
작성일 20-05-1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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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3일

참가자: 지성근, 조민주, 이하정, 박주현, 홍정환, 차재상, 정한신, 김종수, 박태선

범위: pp. 197~


5장 일, 인간, 자연


“첫째로,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의 중심성의 문제와 일의 인간론적 중요성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둘째로, 나는 여가의 문제(특히 그 중심 측면인 예배의 문제), 그리고 일의 세계와 여가 사이의 관계를 논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일의 대상 또는 환경인 위험에 처한 자연 세계와 일의 관계를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일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만족시키고자 하는, 역동적이며 확장하는 인간의 필요의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197-198)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의 중심성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이 성령의 영감 아래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에 따라오는 한 가지 결론은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다양한 임무 사이에 위계적 가치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99)


일에 대한 과도한 가치 부여는 “단지 일에 열광하는 현대의 현상에 대한 기독교적 미러링이 아닌가?”(199)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들 - 일은 필요악(201)

아리스토텔레스 “전쟁의 유일한 목적이 평화인 것처럼, 일의 유일한 목적은 여가”. 노동은 노예적 활동. 여가를 빼앗음


현대에 급격히 변화된 일에 대한 태도

칼라일 - 일을 열광적으로 찬양. “일상적인 일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대체했고, 세속적 구원의 수단”이 되었음(202)


“구약은 일을 인간의 삶에 본질적인 것으로 본다.”(203)

“그러나 구약은 인간의 일이 갖는 어두운 이면에도 눈을 감지 않는다.”(204)


“현대의 일중독에 역사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일 윤리가 기여한 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은 프로테스탄트 일 윤리라는 사다리를 타고 쉼없이 일하는 것을 그 주요 특징 중 하나로 만드는 지점까지 올라간 뒤에 이 사다리를 옆으로 밀어내 버렸지만, 그 후에 오히려 더 미친 듯 일을 계속했다. 오늘날 일은 프로테스탄트 일 윤리보다는 자기실현을 향한 지철 줄 모르는 허기 위에서 더 번성하고 있다.”(206)


“이 시대의 종교가 된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요구하시는 바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그것은 자아 ‘숭배’와 자아에 대한 인간의 요구와 상관이 있다. 그런 그런 까닭에 성령론적 일 이해가 현대의 일중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질문은 (부분적으로) 다른 질문, 즉 이러한 일 이해는 이 시대의 사회가 일에 부여한 인간학적 중요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206)


“따라서 성령론적 일 이해에서, 일을 통한 인간의 발전은 자아실현을 위한 개인주의적 탐구의 영역을 벗어나, 하나님의 새 창조에 관심을 두는 맥락 안에 놓인다.”(209)


마르크스는 헤겔, 니체와 유사하게 “인간을 그들의 행위를 통해 규정했다.”(210)

“인간은 정태적 존재가 아니다. 즉, 그들의 본성은 그들이 하는 일의 성격과 함께 변한다.”(211)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에게 인간성을 부여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 그렇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인간 됨의 열쇠다. “인간 정체성의 열쇠는 성령의 임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212)


“(...) 여가란 일차적으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따라서 (하나의 활동으로서) 행하는 사람의 필요를 만족시키지만, 동시에 행하는 개인 자신의 필요나 동료 피조물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필수적이지는 않은 혹은 그러한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을 일차 목적으로 하지 않는 활동이다.”(213)


“좋은 ‘여가자’(ieisurer)란 자연, 자기 능력의 자유로운 활용, 다른 이들과의 교제를 즐기는 법을 알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즐거워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히 말하겠다.”(216-217)


“그리스도인이 일을 포함한 그들의 전 존재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롬 12:1-2을 보라).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길 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단순히 종이 되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친구가 되도록 창조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 만큼,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즐거워해야 한다. 진정한 그들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들의 임무가 의식의 전면에서 사라지고 그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거기 계시고 그들 역시 하나님을 위해 거기 있는, 즉 사랑 많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거룩한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217-218)


“그리스와 전통적 기독교의 일 경시와 현대의 여가 폄하 양쪽 모두에 반대하여, 성경 자료에 충실한 기독교 신학은 일을 전적으로 여가에 종속시키는 것도, 여가를 완전히 일에 종속시키는 것도 모두 거부할 것이다. 대신, 일과 여가는 교차되는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220)


“(...) 예배에서 성령과 교제한 것을 단순히, 말하자면 외부에서 일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배경적 경험으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략) 성령의 임재는 그 사람의 일 경험을 관통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일한다.”(224)


창세기 1장을 기술 발전의 승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오용이다.(226)


“모든 일은 생산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보호적인 측면이 있다. 따라서 경제 체제는 생태적 상호 의존이라는 생물학적 체계 안으로 통합되어야 한다.”(231)


“자연환경과의 역동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는 성령론적 일 이해에 함축되어 있다, 성령은 일의 대상인 인간 이외 창조세계 안에 임재하시고 그 안에서 자유를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키신다. 같은 성령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시고 그들을 이끄신다. 인간만이 갖는 성령의 특별한 경험(구원의 첫 열매이신 성령)은 인간을 인간 이외 환경과 분리하는 역할이 아니라 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구원의 첫 열매이신 성령을 소유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 이외의 창조세계와의 연대로 이끌기 때문이다. 성령의 영감 아래 일할 때, 인간은 자연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자연과 협력한다(롬 8:21).”(232)


“인간의 필요가 갖는 역동적 성격과 필요 충족의 자유를 존중하고자 한다면, 제품에 대한 필요를 제한하기 위한 가장 분별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물질 생산을 통해 충족시킬 필요가 없는 다른 종류의 근본적인 필요를(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240)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241-243)

  1.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필요

  2. 자연과의 연대에 대한 필요

  3. 인간이 서로의 안녕을 돌보는 것에 대한 필요

  4. 인간의 발전에 대한 필요

* 이상의 “네 가지 근본적인 필요 모두는 단일한 보편적 필요, 곧 자유의 왕국인 새 창조의 필요에 근거한다.”


실업문제를 다루는데, 성령론적 일 이해가 가진 두 가지 자원

  • 취업을 한 사람이 세상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각각 비슷한 가치를 갖는 여러 방식 중 하나로 봄으로써 그것을 상대화함

  • 취업을 개인의 교회 활동과 같은 토대에 놓음으로써 그것을 상대화함


* 토론


한신: 첫 번째 기억나는 것은, 소명에 입각에서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의무감에 입각해서 일을 하게 되는 것. 대비해서 성령론적 일의 신학은 성령에 의한 동기, 은사에 따른 일을 하는 것. 이렇게 구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식의 정리가 되는 것 같아 좋았다. 항상 이 부분 생각하면, 소명에 입각해 일을 한다고 할 때, 개념적으로 정리는 되는데 일의 동기에 대한 부분이… 마치 하나님이 명하시고 그것을 수행한다는 개념 같아서 일의 즐거움, 기쁨과의 연결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 부분이 통합되어 정리되는 것 같아 좋았다. 또 한 가지. 은사에 대한 것. 위로부터 오는 은사라는 부분도 있지만, 세상 속에서 일하는 것도 은사에 의한 것. 통합되는 것이 좋았다. 마지막 실업 부분에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한 점이 좋았음. 그리고 구조적 해법은 못내놓고 주관적 정리만 해놓은 것… 나름대로 의미있고 정직한 태도였다.


성근: 낫옛 크리스천에게 일의 신학/사상을 이야기할 때 “소명”으로써의 일은 오히려 말하기 쉽겠다. 문화사적 맥락이 있으니까.


한신: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이야기는 일반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거의 동일. 소명에 입각한 일 철학은 서상 사상에서 기본이라 전달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음. 성령이 주시는 은사의 차원을 넌 크리스찬에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겠다. 하지만 각 사람의 재능, 역량에 대한 발견, 그리고 그것을 발현하고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보통은 취업과 연계해 역량을 말하는데, 좀 더 폭넓게 취업이 아니더라도 인간과 일, 다양한 활동을 역량/재능과 연결하는 이야기는 가능하겠다. 아무튼 앞부분 보다는 오늘 부분 보며 정리가 많이 된다.


한신: 일과 예배에서 예배를 여가의 맥락 속에 위치시킨 것이 약간 불편했다.


성근: 여가라는 말에 대한 선이해 때문. 안식이라고 하면 오히려 잘 받아들여졌겠지만, 현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일부러 그 용어를 선택한 듯.
필요에 대한 이야기가 좀 어려웠다. 핸드폰 등 신상 전자제품에 대한 나의 욕구/필요를 어찌해야 할까? 이 필요는 새 창조에 대한 궁극적 필요와 어떻게 연결 될 수 있을까?


하정: 좋았던 점. 주어진 내 삶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돈으로 계산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새 창조에 일조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위로를 받았다. 뒷부분 읽으며 좋은 말이고, 알겠는데… 일이 절박한 청년, 경력단절 여성에게 막연한 위로를 던져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령 안에서 나름 일하고 있다고 자부하면, 옆에서 “니만 그렇게 느끼는 거지”라고 말하면 어쩌지? 위로는 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은사”라는 말을 들으면 “잘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사가 없으면 공동체에서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인가? 은사에 대한 엘리트적인 시각이 교회 안에도 많은 것 같고.


태선: 성령과 일의 연결이 의미심장하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이 성령이라고 하면서도, 성령의 역할을 교회 안에만 국한. 성령의 보편적 일하심. 성령과 새창조의 문제를 어떻게 잘 소화하고 전달할지 고민해야겠다. 주위에 잠재적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 있는데, 성령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명확히 이야기 못해주니 내부적 문제만 다루게 됨. 생각할 여지가 많고 조금 더 잘 정리해야 할 지점이다.


주현: 지엽적이지만 재미있었던 것. 오직 올곧은 인간만에 자연에 대한 진정한 지배를 행사할 수 있다… 예수님이 들짐승과 함께 있었던 장면. 그 본문에서 들짐승 장면을 볼 때마다 궁금했는데, 볼프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지성근: 어이쿠~ 볼프 급이시네).
온 세계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받아들이고 공부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
사람들이 요즘 니 뭐하노, 라고 물으면 일로 이야기.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 순으로 이야기한다. 주부 일을 제일 많이하고, 어코너 일을 그 다음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맑은물교회 부목사. 사람들이 주부 일 이야기 들으면 표정이 변함. 낮춰보는 느낌. 다 의미있는 일인데… 그걸 통합시키는 관점을 제공해주는 책이 아닌가.


하정: 


* 개인적 소회 - 이 아래에 적어주시면 됩니다.


지성근

일의 신학에서 다루어야 할 구체적인 주제들을 다루어 줘서 실제적이라 느끼게 만드는 장이었다. 일과 여가, 일과 예배의 문제, 일과 자연, 생태의 문제, 일과 욕망과 인간의 필요의 문제, 일과 실업의 문제를 성령론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큰 도움이 되었다. 소명으로서의 일 이해를 넘어 성령의 은사로 일을 이해한다는 것이 갖는 함축을 더 깊이 묵상해야 겠다.


조민주

지난합독때 졸음으로제대로읽지못해 다시한번읽었습니다. 결론적으로일과성령의관계를여러방면에서깊이있게이야기하고있음을알수있었습니다 특히“그리스도인의삶을산다는것은그리스도께서성령을통해그사람안에서사신다는의미다(갈2:20,5:22)그리스도인은과거에속한성령의경험에기인하여일하지않는다그리스도인은바로지금그사람안에활동하시는성령의능력을통해일한다.성령의임재는그사람의일경험을관통한다.그리스도인은성령안에서일한다”(224쪽)라는 구절이 많이 와 닿았고 좀더 깊이 묵상해봐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자연과의 협력 파트에서 인간의 일과 자연의 관계, 성령,일,인간의필요 파트에서 근본적인 필요네가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일과 성령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봐라보고 생각해야 하는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하정

“그리스도인 삶 전체가 성령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과 협력하는 삶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증언한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일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일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나를 통해 일하신다.”(184쪽) 


“요점은 단순히 일을 하나님과 협력으로 종교적으로 해석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새 창조의 ‘기획’을 위해 하나님과 은사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186쪽)


일단 세상에서 그럴 듯한 일을 하지 않으면 대체로 스스로 자신감도 없고 교회에서도 은사를 발휘하며 일을 하기가 어렵다. 공동체가 같이 기도하며 은사를 발견하도록 격려하며 세상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도록 해야하는 것일까.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하는 걸까... 


나는 주부로서 위의 말씀이 위로가 되고 힘이 난다. 아이들을 돌볼 때 성령의 임재를 기억하며 화를 덜 낸다. 실제로. 하지만 난 치열한 직장인이나 절박한 취준생만큼 힘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고 말하기가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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