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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요한복음 5장 19절-47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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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7,088 회
작성일 09-06-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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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요한복음 5장 19절-47절 요약


베데스다에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로 하여금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게 한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은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시작하는 쉐마를 암송하는 단일신론자들인 유대인들로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안식일에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표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시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그 증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답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9절에서 3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똑 같이 행하시는 분, 즉 “심판”(7회)과 “생명”을 주는 분으로 묘사하면서도, (보지 않고, 혹은 듣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후일 삼위일체라는 단어로 표현될)를 정확히 진술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아들에게 다 보이시고 그 뜻을 다 들려 주시며 심판하는 권한을 주시므로 공경을 받게 하십니다.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보고 듣는,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는 순종으로 아버지와 관계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신앙을 넘어서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로 관계하시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반대는 양태론), 그러나 삼위로 사랑과 순종의 관계속에서 존재하시는 분(반대는 삼신론), 그러면서도 그 본질과 속성에서 같으시므로(반대는 종속론) 삼위가 다 공경을 받아야 하시는 분으로 자기 주장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1절에서 47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자신에 대한 주장에 대해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증언뿐 아니라 세례 요한의 증언, 자신이 이룬 역사(works)의 증언,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시는 증언, 그리고 구약(성경)의 증언에 대해 조목조목(점입가경에 청산유수로) 말씀하십니다. 이런 명백한 증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몇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그들이 “믿지”아니하기 때문에 “듣지 못하”고(그-하나님이 친히 증언하시는- 음성을) “보지 못하”고(그 형상을) “거하지 아니하”는(그 말씀이) 것이라고 진단하십니다. 삼위하나님은 이해함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신비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고 보아도 단일신론을 넘어서는 관계의 신론, 삼위일체신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38절, 46-47절) 두 번째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더 명확히 밝히십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44절)” 영광 즉 쉐키나(shekinah)는 하나님께서 임재를 보여 주실 때 경험하는 것인데 유대교는 정작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임)을 구하기 보다는 인위적이며 인간적인 영광을 취하려 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단일신론이 주는 위엄과 유익(통제가능하며, 정치한 율법체계가 주는 만족감)속에서 안주하여 관계의 신앙,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을 드러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의 삼위일체적 신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헤롯성전종교 시스템이 주는 영광을 구할 뿐 하나님과의 관계를 구하지 않는 유대교의 실상을 예수님은 신랄하게 드러내고 계십니다.


단일신론은 율법주의적 편의주의와 군주론적 사고가 주는 위엄, 통제가능성, 종교적 카리스마등 매우 편리한 종교적 시스템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이 보여주는 영향력이란 것이 바로 여기에 기초한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도 은근히 이런 경향을 추구하는 거짓가르침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양태론적 거짓 가르침속에서 삼위중 한 위격만을 강조하게 될 경우 교회는 인격적이 되기 보다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내세우기 쉽고, 율법주의적 규율과 특정한 행동을 강조하기 쉽고, 그리하여 자기 영광, 서로의 영광을 구하기 쉽상입니다. 이에 반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의 신비를 믿는 삼위일체신앙은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에 열려있으며, 규율과 율법주의가 아닌 사랑과 순종의 관계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카리스마적 지도력보다는 관계속에서 인격적인 종됨의 지도력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회의(렘23장)에 늘 참여하여 참된 예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 그 영광을 추구하고 보게 됩니다. 삼위일체신앙이 참 기독교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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