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T 요한복음 6장 22절-40절 요약 > ETT 3191 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ETT 요한복음 6장 22절-40절 요약 > ETT 3191 자료실

ETT 요한복음 6장 22절-40절 요약

페이지 정보

작성자 1391
댓글 0 건 조회 5,623 회
작성일 09-06-23 11:20

본문

ETT 요한복음 6장 22절-40절 요약

 

여기(22절-25절) 허겁지겁 예수님을 찾아 다니는 무리가 있습니다. 갈망을 가진 민중들입니다. 이들의 갈망은 먹고 사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라는 질문에는 찾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왜 자신들을 버리고 가셨는지 하는 원망이 동시에 서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갈릴리 민중의 갈망의 본질을 정확히 보신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절)”라고 갈파하십니다. 모든 종교심은 자기 갈망을 신에 투사하므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적과 표적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이적을 갈구하는 것, 그 이적을 통해 자신의 병이 낫고 먹고 사는 문제가 좀 나아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중적 종교의 모습이라면, 표적을 이야기하는 기독교는 그 이적이 가르키는 바에 초점을 맞추도록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겉으로 어떻게 드러나든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자신의 갈망을 채우려는 것을 들킨 것 같은 상황에서 이들 무리는 “일”에 다시 집중합니다. (26절-29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는 말씀의 핵심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나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같은 말인데 유대인 무리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동문서답을 합니다. 율법에 익숙한 이들로서는 자신이 있는 것이 일을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자주 자기갈망중심의 신앙은 일중심의 신앙과 연결됩니다. 일중심의 신앙이 자기갈망중심의 신앙보다 좀 더 나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 어느것도 진정한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29절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보내시는 성부 하나님, 보냄받은 성자 그리스도, 보냄이신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믿는 것이 참된 믿음,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들의 사고체계와 신학으로 이들은 점점 처음 가졌던 갈망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만족하지 못하는 근거를 대기 시작합니다. 하루 한끼정도 충분히 먹였다고 그것으로 믿도록 하는 표적이라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인 30절과 31절의 말입니다. 그들은 만약 예수님 자신이 신명기 18장 15절, 18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면 모세처럼 하루가 아니라 40년 이상 “항상 이 떡을 우리에게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가 그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떡을 내려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떡이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4절)”라는 말은 4장의 수가성 여인의 갈망과 연결됩니다. 아직도 이들은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35-36절)” 왜 이 무리가 믿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여 보면 우선은 이 본문 다음 구절인 41절과 42절에서 말하는 대로 자신들이 예수를 인간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들이 아직까지는 모세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의 단일신론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 즉 삼위일체신론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7절에서 40절까지에서는 “뜻”이라는 말의 반복(4회)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지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은 뜻을 갖고 계십니다. 그 뜻은 “마지막날에 아들에게 주신자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그리스도는 그 뜻을 행하십니다. 이 뜻, 이 의지가 성령이십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영생이 무엇인지는 차츰 밝혀질 것입니다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의 방향은 살림이요 영생입니다. 영생은 갈망하며 예수님을 찾았던 갈릴리 민중들의 삶의 정황으로 이야기한다면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상태”일 것입니다.

 

“항상 우리로 주리지 않게 하소서”라고 주문하는 갈릴리 민중들의 갈망은 모세로 대변되는 유대교적 단일신론속에서는 다만 ‘마술적’ 신앙이나 혹은 행위중심의 신앙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일한 대안은 세상으로 영원히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영생을 주려 하시는 뜻을 가지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 뜻을 수행하기에 여념이 없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있습니다. 마술적이 아닌 인격적인 하나님, 일중심이 아닌 관계중심의 하나님, 죽이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끌어 들이시는 하나님(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영생이고 이것만이 민중의 갈망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16건 1 페이지
ETT 3191 자료실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16 합독 관리자 2183 06-17
115 합독 관리자 1615 06-09
114 합독 관리자 1465 06-03
113 일과성령 관리자 2045 05-19
112 일과성령 관리자 2251 05-06
111 일과성령 관리자 1979 04-28
110 혁명이 시작된 날 관리자 2275 04-22
109 혁명이 시작된 날 정한신 3248 02-10
108 청년,오늘을읽다 관리자 4434 04-04
107 합독 관리자 1733 12-21
106 합독 상선약수 1762 11-09
105 제일신학 관리자 2613 04-20
104 성삼위일체공동체 관리자 2396 04-13
103 성삼위일체공동체 관리자 2496 04-06
102 성삼위일체공동체 관리자 2344 03-27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최신글

연구소후원

접속자집계

오늘
718
어제
2,027
최대
3,489
전체
1,655,587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일상생활사역연구소 Institute for Everyday Life as Ministry
주소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샘로 15(장전동, 해인골든빌라) 402호 (46240)
협업공간 레인트리: 부산시 금정구 중앙대로 2066, 4층 (46214) 남산역과 범어사역 중간지점
☎전화 : 051-963-1391
Copyright © 1391korea.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