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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요한복음 6장 41절-71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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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07-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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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요한복음 6장 41절-71절 요약

 

예수님의 스캔들(걸림)에 가까운 자기주장과 사람들과 제자들의 “수근거림(41,43,61절)”이 본문전체를 휘감고 있습니다. 바로 앞 문맥에서 예수님을 그렇게 갈망하던 무리들이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근본으로부터 의심하기 시작하고 끝내 제자중 많은 사람들마저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떤 주장이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떠나게 한 것일까요?

 

우선 예수님은 43절에서 47절에서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출신을 사람들은 요셉의 아들, 혹은 그 부모에게서 찾지만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인 자신만이 아버지를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자신에게 아버지께서 이끄는 사람들, 즉 자신에게 오는 자를 자신이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주장합니다.

48절에서 51절에서 다시금 예수님은 출신에 대한 의구심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십니다.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라고 자신을 밝히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51절).”

52절에서 59절까지에서 “살”에 대한 이야기에서 마음이 꽂혀 서로 논쟁하는 유대인들에게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은 그야말로 이교적이요, 회당(59절)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의 스캔들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충격요법을 사용하심으로 자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밝히시기 원하시고 계십니다. “살”과 “피”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난 후 성찬에 참여하는 후일의 우리들로서는 충분히 공감이 되는 메타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이야기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이것이 메타포라면 유대인 회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셨을까가 궁금합니다. 한가지 착안점은 무엇을 먹고 마시는 메타포는 이미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40년간 살았던 유대인의 조상들이 경험하던 것에서 가져온 것임에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49절과 50절, 그리고 58절이 그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은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결국 하나님과 모세를 따르지 않고 계속 불순종하였던 유대백성들을 가나안을 앞에 두고 다 죽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하나님이 주시는 음료를 마셨으나 그들의 불순종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생명의 떡은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보고 믿으면(40절), 혹은 아버지께서 이끄셔서 예수님께 오는 그를(44절),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를(54절)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57절 말씀은 관계의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안의 역동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는지 명쾌하게 밝힙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말미암아 살리라.” 보냄을 받은 존재는 보내신 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보내시는 성부, 보냄받은 성자, 보냄이신 성령 삼위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우리,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보내신 분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세적 단일신론속에서 예수의 출신을 자신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주장(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고사하더라도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도 예수님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60절에서 6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수근거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사실 예수님의 자기이해와 그에 따른 주장은 당시로서는 당연히 걸림이요 스캔들입니다. 다니엘서 7장 13절이하의 종말론적 그림인 인자에 대한 주장에 대한 태도에 따라 결국 육이냐 영과 생명이냐가 갈리는 것입니다. 이 인자는 단순히 다스릴 뿐 아니라 53절에서 살과 피를 주어 먹고 마시게 하는 인자라는 사실이 더욱 걸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6절에서 71절까지는 두가지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이것이 육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영과 생명의 선택은 그가 완전히 의식하였든 아니하였든 간에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 제자들의 선택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You are the Holy One of God"이라는 고백속에 삼위일체적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복잡한 신학적 진술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던 유대인 제자들이 비로소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을 드러내시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삼위일체 신앙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단일신론으로는 도대체 예수님의 주장은 걸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와 그 보내신 자 아들 예수를 믿는 자만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믿지 아니하는 자, 심지어 예수를 팔아 버리는 자들은 육에 속한 자요, 단일신론이 주는 명쾌함, 단순함을 추구하다가 삼위일체신론이 주는 어려움에 걸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수근 거리다가 떠나는 사람들과 믿고 남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 갈림길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 하나님의 아들, 생명을 주는 자로 믿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장 22-24절)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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