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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Experiencing the Trinity) Summer School 제3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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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3,632 회
작성일 09-07-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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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적 배경에서 살펴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

들어가는 말

동일한 사건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건이 실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기독교의 복음도 마찮가지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그 사건을 가장 자세히 기록된 문서가 나오기 50년 전에 일어났으며 또 기록들마저 모두 정확하지 않은 사건을, 그 사건이 없으면 복음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복음에 대한 서로의 기록이 다를지라도 부활의 사건이 실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사건이며 우리는 부활에 대해 어떻게, 왜 믿어야 하는가?

이 장에서는 서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일어난 한 사건이 그 당시 기독교 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고대의 관점에서 볼때 어느 지점에 서게 되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고대 이교주의와 유대교에서 바라본 부활과 죽음 이후의 삶

고대의 이교 세계가 아는 한 지하 세계로 가는 길은 죽음으로만 가능했으며, 죽음은 전능한 것이었다. 그 무엇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꺾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고대 세계에서는 ‘부활’이라는 단어를 ‘죽음 이후의 삶’을 의미하는 단어로 쓴적이 없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건 간에 그것이 있고 난 이후에 오는 새로운 육체적 삶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고대인들은 부활을 두 단계로 보았으며 육체적 죽음이라는 단계가 먼저 오고 이후에 새로운 육체적 삶을 의미하는 부활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귀신, 유령 등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부활은 육체를 의미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없었다.

유대인들의 부활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육체를 다시 얻게 되는 미래의 삶을 부인하는 이교도들과 생각을 같이 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육체없는 상태로 미래를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교도의 견해에 동의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궁극적인 부활을 믿었다. 사람이 죽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돌보시다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재창조하실 때 자기 백성에게 새로운 몸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과의 부활 논쟁에서 당시의 통념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꽤 전통적인 방식으로, ‘부활’을 모든 의인들이 부활하게 될 미래에 완성되는 사건으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를 통해서 부활이 우선은 전적으로 예수님 자신의 힘에 의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부활에 대해 다시 정의 하신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희망의 놀라운 특징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대해 가졌던 희망은 확고히 부활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는 그 ‘천국의’ 삶을 궁극적인 육체의 부활로 가는 단계로 보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미래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는 신앙을 가졌고 첫 번째는 죽음과 그 직후의 상태로 머무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새롭게 재창조된 세상에서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사는 단계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교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유대교적 신앙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생각도 초대교회 안에서 일곱가지의 수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 끝에 그리스도인들은 다음의 7가지와 같은 매우 새로운 신앙을 표방하게 된다.

다음은 유대교 안에서 일어난 부활신앙의 일곱가지 변형이다. 부활에 대한 초기 기독교 인들의 신앙은 유대교의 지형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유대교의 ‘부활’을 다음과 같이 변형 시켰다.

(1) 초기 기독교에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믿음의 편차가 없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인과 이교도들로 구성되었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결국엔 하나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2) 제2성전기 때에는 부활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나 초기 기독교에서는 부활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옮겨왔으며 바울과 요한의 사상은 부활 없이 생각할 수 없다.

(3) 유대교에서는 부활한 자들이 어떠한 육체를 지니게 될것인가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에서는 새로운 육체란 비록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물리적인 객체라는 의미에서 확실히 육체이기는 하겠지만 변형된 육체, 즉 이전의 재료들이긴 하지만 새로운 속성을 가진 재료들로 만들어진 육체일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4) 하나의 사건으로서 ‘부활’이 두 개로 나누어졌다. 오직 초대 기독교인들만이 부활이 마지막 때에 위대하게 일어나기 전에 역사 도중에 한 사람에게 먼저 일어남으로써,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이 최종적으로 부활할 것을 믿었다.

(5)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이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었고 마지막 날 최종적 부활에서 완성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도록 부르셨다 믿었다. 그냥 하나님이 ‘종말’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만약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인격으로 친히 임한 종말이고 하나님의 미래가 현재에 임한 그 분이시라면, 예수님께 속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입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변화시키는 책임을 맡고 있다고 믿었다.

(6) 유대교에서는 ‘부활’을 유배로 부터의 귀환을 의미하는 은유와 환유로 사용하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을 은유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세례를 의미하는 부활이요, 성령께서 가능하게 하시는 윤리적 순종에 힘쓰는 새로운 삶, 신자가 헌신한 새로운 삶을 의미했다. ‘부활’이 육체적 실존을 일컫는 의미를 가지면서 유대인들이 지닌 회복의 은유를 버리고 전반적인 인간 존재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7) ‘부활’은 메시아 신앙의 변형으로 이어진다. 그 누구도 메시아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 못했으며,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활이 없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사실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부활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유대교 지형 안에서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유일신, 선택, 종말론이라는 유대교의 신학 안에서 기독교는 역사, 희망, 그리고 해석학을 바라보는 전적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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