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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Experiencing the Trinity) Summer School 제9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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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4,669 회
작성일 09-09-0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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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Experiencing the Trinity)2009 Summer School

<일상, 종말, 삼위일체>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Suprised by hope 강독 20090812

9.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

들어가는 말

아주 초기 일부 전통에서 기독교가 시작된 초기부터 마지막 때에 나타나실 예수님이 심판관의 역할을 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다른 것과 격리된 별도의 신앙이 아니고 유대교 맥락에서 볼 때 ‘파루시아’보다 오히려 더 잘 설명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의미를 초기 기독교 안에서 살펴보고, 현재와 미래에 그것이 가지는 의의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오시는 심판관이라는 예수님의 그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특징이다. 그러나 ‘심판’이라는 단어는 자유주의 그리고 후기 자유주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특히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좋은 일이며 축하하고 기다리고 갈망할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9세기의 자유주의적 낙관주의가 20세기의 거대한 체계적 악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으나 최근의 신학은 악에 대한 성경의 분석이 실재에 더 밀접하게 상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판의 주제로 다시 돌아왔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에 심판과 정의를 가져오고 이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구약의 희망은 이스라엘의 열망과 더불어 후기 성경시대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 모든 내용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시나리오는 다니엘 7장(이방민족은 힘센 짐승으로 묘사되고 반면 이스라엘의 의로운 자들은 무력한 인간 존재, ‘인자 같은 이’로 묘사된다.)이고 이 시나리오가 신약성경으로 옮겨지고 나면 예수님 자신이 ‘인자’의 역할을 취하셔서 고난 받으시고 그 후에 인정받으시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메시아, 즉 이스라엘을 직접 대표하시는 분이 심판의 임무를 받게 된다는 수많은 성경 속 그리고 성경 후기의 본문들과 일치한다. 따라서 부활절을 통해 예수님이 정말로 메시아라는 결론을 내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그 예수님을 이 세상을 바로잡을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여겼다.

바울시대에는 예수가 최후의 심판관으로 오실것이라는 신앙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었다. 바울은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가르치며 ‘행위에 따른’미래의 심판이 없을것이라는 오해를 샀지만 그는 행위에 따른 미래의 심판에 대해 로마서 14:9-10, 고린도후서5:10그리고 그 외의 본문들에 분명히 나타내었다. 이것은 바울의 생각과 설교에 온전히 견고하게 통합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게 될 미래의 판결을 예견하면서 현재에 일어나는 일이다.

현재에 내려진 판결이 개인이 살아온 인생 전체에 대한 미래의 판결을 정확하게 예견하리라고 어떻게 그토록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련해 분명 더 많은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바울은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 질문들을 다루는데 특히 성령의 사역에 대한 설명에서 그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현재 시점의 믿음에 의한 칭의와 미래시점의 행위에 따른 심판 사이에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

모든 미래의 심판이 기본적으로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으로 강조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우선 하나님의 정의로 이 세상을 휩쓰실 분이, 무자비하고 오만하고 복수심에 찬 폭군이 아니라 슬픔을 아셨던 비탄에 젖은 예수님,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이 세상이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셨던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과 그 이후의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 심판이 특정 상황 하에서 예견되고 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성만찬의 경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모든이의 구세주이실 뿐 아니라 심판자이신 그분을 지금 여기에서 대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성령 사역도 마찬가지이으로 최후의 심판은 성령이 인도하시는 일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의 세상에서 예견된다는 뜻이다.

재림과 심판

복음의 메시지는 재림이 없이는 완전히 서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것이 망가진다. 이 장에서는 이 복음의 요소들이 갖는 상관성을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몇 가지 끌어내고자 한다.

1. 예수님의 오심은 문자주의적 근본주의자들과 5장에서 제시한‘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답변을 제공한다. 그분이 나타나신다는 것은 현재의 세계를 거절하는 이원론도 아니고 마치 우주인처럼 이 세상으로 그분이 그냥 들어오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포함한 현 세상의 변화이며, 그것을 통해 드디어 이 세상이 바로잡히고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

2.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에 올바른 형태와 균형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과 나타남 사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즉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했지만 아직은 그분의 최종적 오심과 현존을 기다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제대로 겸손하면서 동시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3.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기는 한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면 현재에 하는 모든 일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향상될 것이고 변화될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전서3:10-17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심판의 어조도 가지고 있다.

특히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현재 통치하신다는 사실과 마지막 때에 나타나셔서 심판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우리는 현실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오늘날의 정치적 담론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을 승천하신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면 우리의 정치적 임무는 이 프로그램이나 저 프로그램 혹은 이 지도자나 저 지도자가 유토피아를 여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척 해야 할 필요성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나타남은 계몽주의의 사고 구조 전체에 근본적인 도전을 던진다. 그리고 현재 서구의 정치가 상당 부분 계몽주의의 산물인 만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 도전이 반드시 먹힐 수 있는 방법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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