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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Experiencing the Trinity) Summer School 제10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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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요한이아범
댓글 0 건 조회 5,313 회
작성일 09-09-02 17:18

본문

10. 우리 몸의 구속

 

들어가는 말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오늘날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합의점은 없다. 비기독교 세계가 죽은 자의 운명에 대해 혼란스러워 할 뿐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 지도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공식적으로 교리의 최고 근원으로 꼽는 신약성경이 이 주제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혼란을 더욱 기이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바울의 ‘우리 몸의 속량’(롬 8:23)을 이야기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형태의 육체적 존재, 즉 현재 우리의 육체적 삶의 완성과 구속을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거나 ‘지옥으로 간다’는 단일 단계의 사후 운명을 말하는 전통적인 그림은 기독교적 희망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축소시킨다. 육체의 부활은 기독교적 희망의 사소한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이야기에 의미와 형태를 부여해주는 요소다. ‘천국’에 대해 모호하게 이야기하면서 부활의 언어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는 부활에 대해 성경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며 천국에 대한 우리의 언어를 그 내용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부활: ‘죽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놀랍도록 일치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 증거로,

첫째,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말한 ‘하늘의 시민’이 되는 것의 의미가 이곳에서의 일을 끝내고 그곳으로 은퇴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며(톰 라이트 의견), 예수님이 현재 우리의 낮은 몸을 그분과 같은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고, 모든 것을 복종시키시는 그분의 권능으로 그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가질 몸의 모델일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골로새서 3:1~4에서 우리의 생명이신 메시아가 나타날 때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이 새로운 생명이 온전하게 육체로 현실화되어 눈에 보이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한다.

로마서 8:9~11에서, 하나님의 성령, 메시아 예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메시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죽을 육체에도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육체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영적인 몸’에 생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 죽을 몸’에 생명을 주신다.

둘째,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그분의 참 모습을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된다고 선언한다.

셋째, 예수님은 요한복음 5:25~29를 통해 유대교 안에 널리 퍼져 있던 부활에 대한 기대를 재차 확인하시면서 그것이 일어날 때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특히 사별의 상황에서 사용될 때, 그냥 ‘천국’으로 가서 영구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러나 고대 헬라어에서 ‘거할 곳’이라는 뜻의 ‘모나이’(monai)는 최종적인 안식처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긴 여정에서 일시적으로 멈추는 장소를 뜻하는 단어로 대개 사용되었다.

이러한 해석은 누가복음에서 죽어가는 강도에게 하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잘 들어맞는다. 낙원은 죽은 자들이 새로운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원기를 회복하게 되는 복된 동산, 쉼과 평온의 공원을 의미한다. 이 구절의 요점은 그 강도의 요청과 예수님의 답변 사이에 명백한 대조에 있다. 그는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함으로서 그 일이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이 미래의 희망을 현재로 가져온다.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암시하면서 말이다. 이 구절은 부활이전에 있게 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부활은 ‘복음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 아니었고 죽음 직후에 어떤 상태로 들어가든지 그 이후에 오는 새로운 육체적 삶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쓰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복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현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영혼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베드로 전서 1장 같은 본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나는(톰 라이트) 서구 기독교의 자동적인 전제-‘구원’이 곧 ‘사후 천국행’으로 생각하는 것-가 우리를 심각하게 오도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는 왜곡된 성경해석 틀을 제공하게 된다.

사실 ‘천국’은 하나님에 대해 공손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하늘의 보화’란 그저 ‘하나님의 현존의 풍성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차적인 의미에서 파생된 ‘천국’은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저장된 장소다. 천국은 그 목적이 땅에서 실현되는 날이 올 때가지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장소다. 하나님이 미래에 주실 유산, 부패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와 그 세계에서 살 새로운 육체는 이미 안전하게 보관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서 새로운 육체를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러니까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회복된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태어나기 위해 천국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영혼(프시케psyche)’이라는 단어 역시 지금 같은 의미로 초기 기독교에서 쓰이지 않았다. 신약성경은 이 단어를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우리의 특정부분’을 일컫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육체가 없는 인간의 내적 부분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격’ 혹은 ‘인성’이라고 부를 법한 것을 일컫는 단어였다. 베드로전서 1장의 요점은 이 ‘인격’ 즉 ‘참 자기’가 이미 구원을 받았고, 언젠가는 그 구원을 온전히 육체적인 형태로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고린도서에서 말하는 부활

고린도후서 5장에서 바울은 우리를 기다리는 새로운 ‘천막’ 혹은 ‘장막’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영역(즉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집, 새로운 처소, 새로운 육체가 있는데 우리를 위해 준비된 그것을 현재의 몸 위에 덧입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에 의해 삼켜져 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 유대교의 창조신학은 바울이 확립한 새로운 창조신학의 모판이 되었다. 바울이 우리에게 상상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 육체가 마치 육체 없는 혼령과 대비되는 것 같이 새로운 형태의 육체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육체는 우리의 현재 육체가 육체 없는 영혼보다 더 실질적이고 더 확실하게 만져지는 대상인 것처럼 지금보다 더 실질적이고, 더 견고하고, 더 육체적일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의 요점은 우리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반드시 서야만 하고(고후5:10), 그러려면 우리에게 반드시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의로운 자의 부호라 뿐만 아니라 약한 자의 부활까지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핵심은 현재의 육체와 미래의 육체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에서의 대조는 부패하기 쉽고 썩게 될,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육체와, 부패하지 않고 썩지 않는, 다시는 죽지 않는 미래의 육체다. 바울은 통상적인 인간의 ‘프시케’(지금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으로서, 우리가 현재의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질병, 사고, 부패 그리고 죽음 앞에서 무력한 힘)가 동력이 되는 현재의 육체와 하나님의 ‘프뉴마(pneuma)’, 새로운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일으키는 힘이 동력이 되는 미래의 육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라는 구절에서 ‘혈과 육’은 부패하는 것, 변화무쌍한 것,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을 일컫는 전문적인 용어다. 여기서의 대조도 부패할 육체성과 부패하지 않을 육체성 사이의 대조다.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의 부활은 “우리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하나님의 종국적 미래에서 영광스럽게 재확인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확고하게 동요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주님의 일에 충성해야 해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우리의 노동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게 한다.

 

부활: 후대 논쟁들

초대교부들(안디옥의 이그나이우스, 순교자 저스틴, 아테나고라스, 이레나이우스, 터툴리안 등) 대부분은 육체의 부활을 강조했다. 육체의 부활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교부시대와 중세 시대의 많은 탁월한 신학자들은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꽤 분명하게 이야기했다.(그레고리 대제, 안셀무스, 성 빅토르의 휴 등) 이들은 부활한 육체는 현세의 육체와 동일할 것이지만 아름답게 변화된 육체일 것이라고 가르쳤다.

토마스나 버나드 같은 주류 중세 신학자들도 육체의 부활을 강조했다.

부활을 다시 생각하다 : 누가, 어디서, 무엇을, 왜, 언제 그리고 어떻게

누가? 모든 사람

어디서? 새 하늘과 결합해 있을 새 땅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시므로 그분의 새로운 세상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런 세상일 것이다.

부활한 육체는 정확하게 어떤 모습일까?(무엇을?) 우리의 현재 육체보다 더 견고하고, 더 실재적이고, 더 실질적인 육체. “영광의 중한 것”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는 것을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알게 될 그러한 육체. → 현재의 우리 성품 중에서 그리고 현재의 결함 중에서 어떤 것들이 변화된 육체에서 유지될까? 예수님의 부활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의 상처가 고통과 죽음의 근원으로서가 아니라 그 분의 승리의 표시로서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부활한 육체도 하나님의 특저한 부르심에 대한 자신의 충성의 표시를 적절하게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새로운 육체는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가지는 ‘불멸성’을 그분의 은혜로운 선물로 자신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지게 된다.

왜 우리에게 새로운 육체가 주어지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육체의 목적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스리는 것’을 몇 차례 약속하고 있고, 이것은 결코 빈말일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성경적 관점이 우주전체의 회복이라면 할 일은 많을 것이고 완전히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육체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선물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보상의 의미, 임의로 등 한 번 두드려주는 것 외에는 우리가 복음을 위해 열심히 하는 일이 낭비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미래에 그 일은 완성될 것이며 성취될 것이다.

언제 부활이 일어날 것인가? “그분이 오실 때”(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계시록은 죽은 자들이 인내하면서 자신들이 드디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성령(단순히 미래에 있을 삶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최종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죽은 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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