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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ETT 요한복음 18장 28절-40절 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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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8,204 회
작성일 11-09-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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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요한복음 1828-40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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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의 느낌이 계속되는 가운데 예수님은 이제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려 갑니다. 예수님을 끌고 간 유대인(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의 하수들)들은 빨리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새벽에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밀어 넣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림자인 종교적인 정결함(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을 의식하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최근 기독교우파 권력자들의 행태와 비교하면..). 18장 전체로 보면 1-12절의 하수들은 현대의 경찰의 역할을 지금 여기 유대인들은 검찰의 역할을 그리고 빌라도는 법원의 역할을 하면서 폭력적 상승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본문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의 대화의 기록입니다. 아마도 빌라도의 말속에는 새벽에 밀어닥친 재판건에 대한 짜증이 묻어 있지만, 생각보다 로마의 총독치고는 이리 저리 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눈치 보는 흔적(29밖으로 나가서” 39전례”)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법대로를 따지는 법리원칙주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론의 향배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그제나 이제나 법의 집행자들의 한계를 보는 것입니다. 29절에서 32, 그리고 38절 하반절부터 40절에서 이런 빌라도와 유대인(다수의 일반적 유대인들이라기 보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의 사주를 받은 소수의 유대인일 가능성이 더 있어 보인다)의 관계를 엿보게 됩니다. 빌라도의 일관된 총독으로서의 관심은 아마도 로마식민지배에 반역하는 나라에게 있었기 때문에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라고 이야기했고 그 관점에서 예수님에게서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38절에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라고 선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범죄가 아니면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라는 빌라도의 짜증(?)에 얼른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31)”라고 말하므로 로마법에 근거하여 사형에 해당되는 행악을 저지른 자라는 암시를 줍니다.

 

33절에서 38절 상반절에 걸친 빌라도의 예수님에 대한 심문중의 대화는 총독이라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충실한 빌라도와 한치도 양보없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예수님의 동문서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인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빌라도의 질문은 유대인들과의 대화에서 추론한 빌라도의 재판을 할 가치가 있는 전제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종종 있었고 그것을 막고 차단하는 역할이 총독으로서 제일 중요한 임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소과정에 다 참여하여 듣고 있었을 예수님은 이 느닷없는 질문에 당신이 스스로 하는 말이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당신에게 그렇게 말을 했소?”라고 되묻습니다. 이런 반응에 역시 빌라도는 약간 짜증이 난 듯 합니다. “내가 유대인이냐?”라고 묻고 나서 도대체 당신이 무슨 일을 하였기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기게 되었는가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니라고 한 것도 아닌 미묘한 것입니다만 풀려 날 것을 기대하는 사람의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권력을 조롱하는 듯 느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빌라도에게 뭔가 중요한 것을 소통하시려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대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지금까지 요한복음에서 일관되게 유대인들에게 분명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소통하려 하셨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한 바로 그 내용을 지금 빌라도(비유대인)에게도 하고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0하반절)”라는 요한복음의 일관된 주장이 여기서도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관심인 나라이야기를 했지만 유대나라와 유대인의 왕이 아닌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의 왕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나라는 진리의 나라이며 자신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예수님의 주장은 일관되고 명확한 주장이지만 합리적 법치주의자이며 동시에 여론의 추이에 관심있는 생활인으로서의 빌라도로서는 이런 주장이 황당무개하고 별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을 것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빌라도의 반응인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반응은 진리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진리고 나발이고...” 혹은 진리는 무슨 개뿔?”과 같은 반응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말을 하고그가 한 일은 진리를 추구하는 어떤 후속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그에게서 자기가 찾는 죄를 발견할 수 없으니 전례에 비춰 이 사람을 풀어줄까하고 묻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주 빌라도는 성경을 대하는 자들에게 긍휼(?)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명백한 진리가 증언되어도 자신의 관심과 생활인으로서의 자기일관성으로 인해 진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못한 모습은 유대인이나 로마인이나 진배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조차 너무 동떨어진 동문서답처럼 느껴지는 것은 현실의 문제, 땅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진리의 증언에 노출되어도 그것으로 내 삶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는 현실이 곧 하늘과 맞닿아 있으며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오늘을 사는 빌라도와 같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진리의 증언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때 거기에는 역사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는 무의미한 조롱과 유희가 있을 뿐입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 사람이 아니라 바나바라

 

,,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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