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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톡톡크리스찬 #79 탐욕(2010년7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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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7,546 회
작성일 10-08-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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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방송준비(100719)<?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주제: 일곱가지 죄악 中 탐욕

정리: 홍정환

참고: 신원하, “탐욕(貪慾; Avarice)” (기독교사상 2010 2월호)

                    탐욕, 텅 빈 우물” (그말씀 2004 2월호)

 

 

탐욕이란

 

탐욕(avarice)의 라틴어 어원아바라티아(avaratia)’는 재물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라는 뜻이다. 즉 탐욕이란 돈, 재물, 명예를 더 소유하려는 욕심이다. 단테는자신이 필요한 것보다 더 소유하려는 욕구를 탐욕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조금 더이다. 권력, 재화 그리고 명예에 대한 욕구는 절제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탐욕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들을 사랑하고 이것을 소유하려는 욕구라고 간주했다. 또 제러드 리드는 탐욕을지배력에 대한 욕구라고도 표현했다.

탐욕의 문제는 신자라 해서 크게 자유롭지 않다. 신자들은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 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가 된다는 바울의 가르침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재물의 유혹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래서 대게는 하나님도 섬기지만 재물도 함께 소유하고 싶어한다.

 

 

두 종류의 탐욕

 

단테는 탐욕을 두 종류로 나누어 설명했다. 한 종류는 자기가 지닌 것을 쌓아놓고 다른 사람과 나누려하지 않는 욕심인 축재(avarice)이다. 다른 종류는 물질과 재화를 스스로 끝도 없이 계속 흥정망청 소비하는 탕진(prodigality)이다. 단테의 작품 신곡을 보면 연옥에서 탐욕의 벌을 받고 있는 두 유형의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는데 한 쪽은 재물을 탕진한 자들이고, 다른 한 쪽은 재물을 손에 쥐고 남에게 베풀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은 서로 반대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쪽 모두 이 땅의 재물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집착으로 살아간 자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탐욕에 대한 세 가지 생각

 

첫째,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만족할 줄 모른다.

에바그리우스는 전도서 1 7절을 인용하며 탐욕은 마치 바다와 같아서, 여러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만 결코 그것이 바다를 채우지 못하듯이, 소유는 아무리 많아도 사람의 탐욕을 만족할만큼 가득 채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전도서 기자는 탐욕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잘 묘사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다.( 5:10-11)" 즉 사람은 늘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조금 더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둘째,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결코 부요한 삶을 보장할 수 없다.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는 곳간을 지으면서 많은 소유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고 안전을 도모하려 했다. “또 내가 네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19v). 그는 많은 곡식이 있으면 그것으로 배불리 먹고 염려할 것이 없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생각이 착각임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는 부자를어리석은 자”(20v)라고 부르셨다.

 

셋째, 탐욕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막아버린다.

물질이 많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물질의 힘을 의지하며 살기 쉽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돈을 의지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재물과 권력을 소유하게 되면 그것들로 말미암은 능률, 편안함, 신속함에 익숙해지고 그것들을 즐기게 된다. 재물과 권력의 위력은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에 급박한 일을 만나게 되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돈과 권력에 의존해 문제를 처리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마태복음 19장의 부자청년은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좇을 것이니라”(21v)는 예수님의 말씀에재물이 많은이유로 근심하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즉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다(23-24v). 이 부자 청년은 그가 가진 재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삶을 살 수 없었다.

 

 

탐욕을 물리치기 위해

 

첫째, 먼저 구할 것은 그의 나라와 의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시고 난 뒤에 제자들에게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가르치셨다. 주님은 “…하지 말라이렇게 말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셨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며 살라는 것이다. 순간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탐욕을 제어하고 줄여나가는 방안이 된다.

 

둘째, 단순한 삶의 연습

삶의 규모가 커지면 점점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기가 어려워진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자족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로날드 사이더는 그의 기념비적인 책, 가난한 시대의 부요한 그리스도인에서단순한 삶의 방식”(Simple Lifestyle)을 살 것을 제안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최대한 단순하게 살고 남은 힘으로 가난한 이웃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다. 사이더는 구체적 방안으로 누진 십일조 생활을 제안했다. 꼭 필요한 생활비만을 사용하고 그 이상의 소득은 누진십일조로 헌금해야 한다는 것이다(10분의 1을 헌금하는 십일조에 머물지 않고 소득이 늘어나면 10분의 1이상의 비율로 증가시키는 헌금의 방식).

 

셋째, 나누는 삶의 실천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탐욕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으로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우물에서 물을 자꾸 길어내면 새물이 솟아나지만, 뚜껑을 덮어놓기만 하면 우물은 마르거나 썪어버린다. 아직도 도시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약 470만 명이 절대빈곤층이다. 소년소녀 가장들, 점심 굶는 어린이, 독거노인들이 많이 있다. 우리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면 나눌수록 탐욕은 사라지고 따뜻한 마음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사람에겐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에겐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라는 소설을 통해 인간 탐심의 모습과 결과를 아주 잘 묘사했다. 넓은 땅을 동경하며 사는 농부 바흠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바시키르 마을에 가면 싼 가격에 광활한 땅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인과 함께 1주일을 걸어 그곳에 도착했다. 광활하고 비옥한 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흠은 그곳 지주에게 땅을 사고 싶다고 했다. 지주는 1,000루블만 주면 아침 해뜰 때부터 질 때까지 네 곳에 경계표시를 해 놓고 출발지점까지 돌아오면 발로 밟은 하루치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바흠은 해가 돋자마자 언덕 위 출발지에서 동쪽을 향해 맹렬히 걷기 시작했다. 낮이 되었지만 점심도 대충하고 난 뒤 열심히 걸으며 최대한 큰 테두리를 확보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세 번째 경계표시를 해놓을 때 즈음 이미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아차 싶어, 급히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출발지를 향해 걸었다.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이 되자 마침내 저 멀리 출발지점과 자기를 보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진맥진했지만 바흠은 사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짐과 동시에 출발지점에 드디어 당도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나 그 환호성이 가물가물해지는 가운데 바흠은 진액이 다해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인은 주인의 주검을 거두어 땅에 묻었다. 그에게 필요한 땅은 정확히 한 평뿐이었다.

 

 

기도문

 

사랑하시는 하나님

제 눈에는 탐욕의 피막이 씌여있었습니다.

만족을 모르는 끝모를 소유욕은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로막았으며

저를 향한 하나님의 압도적 사랑을 외면했습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게 하여주십시오.

비록 두 발은 땅에 딛고 있으나

두 눈은 하늘을 향하게 하시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으로 이 땅을 살게 해주십시오.

단순한 삶의 방식을 체득하고

연약한 이웃과 소유를 나누는 삶을 실천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탐욕에서 자유로운, 진정 부요한 삶을 배우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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