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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톡톡크리스찬 #58 헌금(2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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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6,074 회
작성일 10-02-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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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10년 2월 8일 방송분 준비

일상생활사역연구소 홍정환

주제 : 헌금의 영성

* 참고 자료

송인규,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______,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

로날드 사이더,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많은 사람이 헌금 강요(?) 때문에 상처 입고 실족하여 교회를 떠난다. 교회와 목회자를 비난하는 사람, 혹은 집단이 가장 빈번히 들먹이는 것도 바로 헌금 문제다. 목표와 동기가 건전해 보이지 않는 헌금 강조 설교, 목회자 본인이 말하기 곤란하다고 느낄 때 부흥사나 강사를 초청하여 헌금하기를 권하는 행위,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적 복 개념을 우발적 ․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일, 직분의 수여와 헌금액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상관관계,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의 고답적이고 공로주의적인 자세, 때로 목회자 편에서 그런 사람들을 특권층으로 모시는 비굴한 모습 등등 많은 안타까운 일이 헌금과 연관하여 교회를 누르고 있다. 대체 헌금을 왜 하는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1. 헌금의 목적: 헌금, 누구에게 드리는 것인가?

“헌금은 누구에게 드리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일반적 대답은 “그야 물론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이지만, 성경의 답변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고린도전서 16장 1-2절은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하며 연보, 곧 헌금 가운데 ‘성도를 위한’ 것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헌금의 실상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헌금의 대상이 하나님이냐 어려운 이웃이냐는 것은 양자택일의 사안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지만, 실제 사용은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점과 관련해서 “……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헌금을 전단했을 때, 일차적으로 그것은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었다. 이것은 빌립보 성도들이 헌금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헌금의 실제적 수혜자는 인간 바울이었다. 이 헌금은 바울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서 바울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한”(빌 4:14)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헌금의 이유 혹은 목적을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헌금의 목적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압축된다.

1) 헌금의 일차적 목적: 하나님 사랑

우리는 헌금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헌금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물을 비롯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헌금을 하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게 되고, 따라서 이런 행위로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것이다. 다윗은 헌물에 대한 감사 기도를 시작하면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대상 29:11)라고 인정했다. 헌금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을 인정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 향유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억하여 우리가 누리는 재물을 헌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헌금이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헌금이나 헌물을 통해 유익을 얻으신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취하시지 않으신다. 구약에서 아삽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시 50:9-13)

2) 헌금의 부차적 목적: 이웃 사랑

이웃 사랑은 -다른 모든 대상을 향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마음의 문제이지만, 재물·시간·은사를 나눔으로써 구체화될 수 있다. 요한일서 3:17-18은 말로만 하는 이웃 사랑은 진실하지 않으니 구체적인 실천으로 사랑을 드러내자, 라고 권면한다(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특히, 스스로 충만하신 하나님과 대조적으로 인간은 상호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때문에 헌금의 실제적 용도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필요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구약 시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여기에 속했다. 한 부류는 사회적 이유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로서 고아, 과부, 나그네가 대표적이다. 또 한 부류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공동체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레위인)이다. 레위인들은 종교적 직무 수행을 위해 하나님께서 구별한 지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의 사람들과 달리 생계를 유지할 만한 토지 등의 재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3) 헌금의 왜곡된 목적: 자기 사랑

헌금에 대한 보상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적 복 개념을 왜곡하는 일.

직분의 수여와 헌금액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상관 관계.

많은 헌금을 바친 이들의 고답적, 공로주의적 자세.

2. 두 가지 질문

1) 교회에 바치는 것만이 헌금인가?

2) 교회에 바치면 무조건 헌금인가?

목적의 재점검이 필요.

상기한 자기 사랑이 헌금의 이유가 된다면, 교회에 바친다고 해서 결코 헌금이 될 수는 없음.

3. 헌금, 어떻게 해야 하나?

1) 바울의 모범

바울은 고린도전서 16장 2절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를 통해 헌금에 대한 자기 나름의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헌금은 ‘수입에 따라’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말은 직접 일을 해서 발생한 이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발생한 경제적 소득 전부를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직업인들의 월급이나 각종 상여금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장학금 및 아르바이트 수입,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은 용돈까지도 ‘수입을 얻은’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둘째, 헌금은 계획성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주 첫날에 미리 모아 두어서 전달해야지, 자신이 방문했을 때 부랴부랴 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면은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헌금은 즉흥, 변덕, 무계획에 기초할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 결단, 헌신, 계획성에 기초해야 한다. 또 헌금은 삶에 기초를 두고 삶 가운데서 준비해야 하며 개인의 재정 방침과 예산을 좇아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내가 정기적으로 드리는 헌금 - 십일조 헌금(수입의 1/10). 월정헌금(수입의 1/20). MS(수입의 1/20).

2) 누진 십일조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헌금액의 퍼센테이지를 수입액의 증가와 더불어 누진적으로 올리는 방식의 헌금생활을 실천해왔다. 그는 친구인 존 뉴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내가 돌보는 모든 이들에게 충고하는데, 가능한 많은 헌금을 목적하여, 지나치게 결벽적이 되지 않는 한 음식, 의복 여타 모든 항목에 있어서 최대로 절약하기를 부탁합니다”라고 밝혔으며 자신이 설교한데로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을 보통 누진적 십일조(graduated tithing)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매월 50만원까지의 수입자는 헌금으로 10%를 내고, 50만원 이상 70만원 미만의 월 수입자는 11%의 헌금을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존 웨슬리는 연간의 책 판매 수입이 1,400파운드에 달했을 때에도 그 중 30파운드만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

이러한 헌금 방식의 목표는 고액소득자일 수록 이웃에 대한 책임의 정도를 더욱 늘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이나 명령은 아니다. 누진적 십일조는 어디까지나 자발적 정신에서 나와야 하며, 금욕주의와 율법주의에 사로잡한다거나 자기 의를 세우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헌금의 영성을 위한 기도문

세상 모두를 만드셨으며 모두의 주인되신 우리 아버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그래서 이것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버지의 주 되심을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주 되심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아버지께 헌금 드리게 해주시고

연약한 이웃을 사랑하며 돕는 마음으로 헌금 드리게 해주십시오.

사랑하는 아버지,

결코 헌금 드림이 저 자신을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더 많은 것을 받기 위한 동기로 헌금하지 않게 하여주시고

헌금 액수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헌금 바구니 돌아올 때 부랴부랴 지갑 꺼내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쓸 것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어떻게 아버지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하시고

미리 준비하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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