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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연정(常戀亭)에서… - 폭력 충만한 일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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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댓글 0 건 조회 6,176 회
작성일 12-06-13 22:08

본문

상연정(常戀亭)에서… - 폭력 충만한 일상 (1)
<소리> 2012년 4, 5월호.

배경 및 등장인물 소개

● 상연정(常戀亭) : 일상생활을 사랑하는 정자[常戀亭]. 동방의 작은 나라에 위치한 곳으로 지자(知子)라는 지혜로운 노인이 머물러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 인터넷 홈페이지
www.1391korea.net
● 지자(知子) : 호는 적신(赤身). 3M 정신(맨몸·맨주먹·맨땅)을 몸소 실천하기에 그리 부른다. 맨주먹으로 상연정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이 얼마나 가치롭고 고귀한 것인지를 연구·전파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혹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가득 지으면서도 맘에 안드는 일은 반드시 지목해서 말한다고 해서 그를 '지적신(指摘神)'이라고도 일컫는다.
● 종자(從子) : 상연정의 제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지자를 따랐던 제자[從子]. 스승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메모광이며(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업그레이드), 스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서 바닥청소를 시키면 화장실청소까지 자청해서 하는 인물이라 혹자는 그가 지자의 '종'이라서 '종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 식자(識子) :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 아는 것이 많아서 식자(識子)라 불리우지만, 유달리 식욕을 절제할 줄 몰라 식자(食子)로도 불리우는 제자. 이성적이며 합리적 지식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막내 제자인 적자(嫡子)와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다.
● 적자(嫡子) : 상연정의 막내 제자. 먼저 입문한 선배들을 무시한 채 '스승의 지혜를 배울 뿐만 아니라 패션과 걸음걸이, 심지어 다이어트 경력까지 본받고 있는 나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적자(嫡子)올시다'라며 설레발치는 당돌한 제자. 그때마다 식자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잊어먹으니 너야말로 진정한 적자(赤字) 지성이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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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상연정에 들어선 종자는 우산을 털며 툴툴거렸다.

"거참, 날씨도 마음에 안드는구나."
"왜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먼저 도착해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있던 식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종자는 손사레를 쳤다.

"별일 아닐쎄.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아서 그랬네."

식자는 청소기의 전원을 끄고 종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제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사형께서 '날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신 것 같았습니다만……."
"어허 이 사람…… 막내 덕분에 눈치가 많이 늘었구만. 늘 눈치 없다고 타박을 받더니……."

식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 친구 이야기는 왜 꺼내십니까. 사형, 무슨 일이 있긴 있으신게지요?"
"휴…… 그래, 자네한테까지 감춰서 뭐하겠나? 어제 밤에 딸내미를 몇 대 때렸더니 마음이 영 편치않네 그려."

식자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올해로 세 살이지요? 어린 것을 때려서 마음이 상하신 거로군요?"
"에휴… 그런 것도 있네만… 고것이 어제 몇 대 맞았다고 오늘 아침에 아빠 나가는 길에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단 말이네. 다른 날은 배꼽에 손을 얹고 꾸벅 인사를 했는데 말이야."

종자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보기엔 내가 유치하게 여겨질게야.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되고…… 한데 말이네, 어린 딸한테 무시당하니 기분이 아주 고약하네 그려."
"어쩌겠습니까.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아버지의 매가 사랑의 매였음을 깨닫는 날이 오겠지요. 성경에도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종자는 더욱 깊이 한숨 쉬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려니 참 부끄럽네만…… 그게 말이네, 내 딴에는 사랑의 매라고 때렸는데 돌아보니 참지 못하는 나의 다급한 성품이 매를 들게 만들었다네. 자녀를 노엽게 말라던 성경 말씀(엡 6:4)이 딱 나를 두고 기록된 게 아닌가 싶어."
"……."

식자는 조용히 종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가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라 하나 자녀를 기르는 일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종자는 침울한 얼굴을 하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어제 밤에 말일쎄, 잘 시간이 넘었는데도 아이가 주전자를 가져와서 주둥이를 쭉쭉 빨아대더라구. 그래서 내가 제 자리에 가져다 놓으라고 말했지. 그런데 평소에는 시킨데로 곧잘 하던 녀석이 그 날 따라 못들은체하며 계속 주전자 주둥이를 빨더란 말이지. 내 그래서 효자손을 들고 바닥을 한 번 철썩 치고는 '한 대 맞을래, 주전자 갖다 놓을래?'라고 했지."
"아, 하지만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때리셨던 거군요?"

"그렇지! 그런데 이 놈이 때려도 주전자를 꼭 끌어않고 놓질 않더란 말이야. 그때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혹시 목이 마르냐고 물어봤더니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야.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아이고, 나는 아비 자격이 없구나. 주전자 주둥이를 빨기 시작했을 때 물 먹고 싶냐고 한 마디만 물어봤으면 모두가 행복했을텐데……' 이런 생각이 어제 저녁부터 아직도 내 가슴을 떠나지 않고 있다네."
"부모, 자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로군요. 듣고 보니 사형의 말씀은, 상대방의 필요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기준에 맞춰 행동을 교정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인 듯 합니다."

종자는 담담하게 웃었다.

"역시 자네를 한 번 거치니 변변찮은 내 경험에서도 훌륭한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되는구만."
"과찮이십니다. 다 사형께서……."
"늦었습니다!"

적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말허리를 잘린 식자의 양쪽 눈썹이 치켜져 올라갔다. 식자는 눈썹을 브이자로 하고는 뭐라 말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적자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아, 고약합니다, 고약해요!"
"늦게 와놓고 대뜸 하는 소리가 그게 뭔가? 대체 뭐가 고약하단 말인가?"
"사형 표정이 고약합니다. 농담입니다, 사형. 인상 좀 푸십시오. 자꾸 그러시니 진짜 고약해지지 않습니까!"

종자는 헛기침을 하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곧 스승님이 오실테니 그쯤해두게!"
"예, 사형."

적자는 허리를 조아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사형(二師兄) 오해 마십시오. 아침에 버스 안에서 댓글로 한 바탕 싸움을 했더니 기분이 꿀꿀해서 괜히 그래보았습니다."
"이제는 댓글로도 시비를 거는가?"

식자는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적자도 정색하며 말했다.

"시비는 제가 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걸었지요. 사형들, 제 말씀 좀 들어보십시오. 아침에 제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읽는데 별 쓰레기 같은 기사가 있질 않겠습니까? 학생들의 인권만 강조하는 풍조 때문에 학생 지도가 갈수록 어려워져 퇴직을 신청하는 교사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말이지요. 애둘러 말하긴 했으나 '학생들 두들겨패지 못하니 선생 노릇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뭡니까? 그래서 제가 제 블로그에 그 기사를 링크하면서 몇 글자 적었습니다. '두들겨 패는 것 아니면 학생 지도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빨리 학교 퇴갤(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유래한 인터넷 용어로, 디시인사이드의 게시판 역할을 하는 ‘갤러리’에서 나간다는 말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곳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사용됨)하길 바람'이라고요. 아이고 사형들…… 그때부터 댓글이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요, 이 맛에 노이즈 마케팅을 하나 싶었습니다. 블로그 개설하고 이렇게 많은 방문자가 찾아온 것도 처음입니다. 아니 어째 우리나라에는 자기가 두들겨 맞아서 바르게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도 많답니까? 그래서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새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체벌이 그렇게 좋은 거면 학교 졸업하고도 전사회적으로 계속 실시하자. 운전 중 과속으로 잡히면 현장에서 빳다 스무 대 맞고, 회사에서 보고서 뺀찌 먹으면 부장님한테 종아리 맞자. 결혼기념일 까먹은 남편은 밥주걱으로 뺨 맞으면 어떻겠냐?' 그랬더니 이번에는 논리도 뭐도 없는 악성 댓글이 마구 달리는데…… 아, 정말 심약한 사람은 이러다가 자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적자의 열변에 식자와 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종자는 더욱 공감하는듯했다.

"방금 둘째와도 이야기를 좀 했네만, 나 역시 그 문제로 고민을 조금 하고 있다네. 교육적 동기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건지, 또한 설사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의도를 달성할 수 있는지 고민이네."
"그렇습니다, 사형. 이 문제는 스승님과 좀 더 심도 있게 이야기를 해보아야할 듯합니다. 그런데 스승님이 오늘 늦으십니다."

식자의 말에 종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가 결혼기념일이셨다네. 아마도 늦게까지 이벤트라도 하시고 피곤해서 좀 늦으시는가보네."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스승님에 대한 충성스러움은 사형을 따를 수 없습니다. 생일은 물론이고 결혼기념일까지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부끄럽게 왜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알림 설정을 해두면 된다네."

종자와 식자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적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스승님은 어제 저녁 내내 SNS에 접속해있다고 메시지가 떠 있던데…… 언제 이벤트를 하실 여가가 있었단 말인가?"
"다들 와 있었느냐?"

지자의 목소리에 세 제자는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스승의 뺨에 아로새겨진 밥주걱 자국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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