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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연정(常戀亭)에서… - 일상, 하나님의 나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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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댓글 0 건 조회 6,717 회
작성일 12-10-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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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정(常戀亭)에서… - 일상, 하나님의 나라 (2)
 
배경 및 등장인물 소개

● 상연정(常戀亭) : 일상생활을 사랑하는 정자[常戀亭]. 동방의 작은 나라에 위치한 곳으로 지자(知子)라는 지혜로운 노인이 머물러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 인터넷 홈페이지 www.1391korea.net
● 지자(知子) : 호는 적신(赤身). 3M 정신(맨몸·맨주먹·맨땅)을 몸소 실천하기에 그리 부른다. 맨주먹으로 상연정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이 얼마나 가치롭고 고귀한 것인지를 연구·전파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혹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가득 지으면서도 맘에 안드는 일은 반드시 지목해서 말한다고 해서 그를 '지적신(指摘神)'이라고도 일컫는다.
● 종자(從子) : 상연정의 제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지자를 따랐던 제자[從子]. 스승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메모광이며(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업그레이드), 스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서 바닥청소를 시키면 화장실청소까지 자청해서 하는 인물이라 혹자는 그가 지자의 '종'이라서 '종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 식자(識子) :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 아는 것이 많아서 식자(識子)라 불리우지만, 유달리 식욕을 절제할 줄 몰라 식자(食子)로도 불리우는 제자. 이성적이며 합리적 지식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막내 제자인 적자(嫡子)와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다.
● 적자(嫡子) : 상연정의 막내 제자. 먼저 입문한 선배들을 무시한 채 '스승의 지혜를 배울 뿐만 아니라 패션과 걸음걸이, 심지어 다이어트 경력까지 본받고 있는 나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적자(嫡子)올시다'라며 설레발치는 당돌한 제자. 그때마다 식자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잊어먹으니 너야말로 진정한 적자(赤字) 지성이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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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물었다.

“클래식이 좋으세요, 가요가 좋으세요?”
“네?”

적자는 잠시 고민했다. 이 상황에서 왜 음악 취향을 묻는 것일까? 적자는 “걸그룹이 부른 댄스음악을 좋아합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녀의 얼굴을 흘낏 바라본 후 “클래식이요. 특히 슈베르트를 좋아하지요”라며 허세를 부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슈베르트, 슈베르트”라고 중얼거리길 반복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네? 네.”

십오 분 쯤 지났을까? 그녀는 적자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MP3 플레이어와 헤드폰이었다.

“이게 뭔가요?”
“슈베르트예요.”
“아……  감사합니다.”

적자는 얼떨떨한 상태로 헤드폰을 착용했다. 아직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헤드폰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악 듣고 계세요. 금방 끝날 겁니다. 자, 약 들어갑니다.”
“헉!”

적자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꼬리뼈 주변에 예리한 바늘이 꽂혔기 때문이었다. 바늘이 꽂힐 때도 무지막지하게 아팠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약이 척추로 주입될 때의 느낌이었다. 불쾌한 통증! 적자는 연신 헛바람을 들이켰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적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중얼거렸다고 생각했다. 질문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뇌리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시작된 음악이 귀로 스며들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Die Forelle)였다.

‘댄스음악을 달라고 할껄.’

적자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밝고 가벼운 음악은 그의 정신을 한없이 맑게 했다. 그래서 적자는 지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지금 수술대에 누워…… 아니 엎드려 있다. 치질로 고생하다가 결국 과다출혈로 임종하신 죽자(竹子) 사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지난 호 보기)

그는 음악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수술 시간은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잠시 후 적자는 입원실 침대에 누웠…… 아니 엎드렸다. 입원실은 2인실이었다. 돈이 적게 드는 다인실에 머물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서 별 수 없이 2인실로 와야 했다. 그런데 옆의 침대가 깨끗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환자가 오늘 아침에 퇴원했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니게 독방을 쓰게 되었다.

적자는 엎드린 자세로 멍하게 있다가 눈을 빛냈다. 침대 옆 서랍장에 올려진 TV 리모콘이 보였다. 몸을 똑바로 할 수 없어서 TV 화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특별히 보고 싶은게 있어서가 아니라, 적막감을 없애는게 목적이었으니까. 적자는 리모콘을 사용해 라디오처럼 TV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잠이 들었다. TV 소리는 마치 꿈처럼 계속해서 적자의 의식을 자극했다.

문득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렸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야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야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적자의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적자는 꿈속에서 생각했다.

‘아, 이 노래에도 <하나님 나라>가 나오는군. 어릴 때부터 불렀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는걸. 음…… 그런데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한 걸까? ‘가다’는 말이 가사에서 반복되는 걸 보니 죽음 후에 가는 낙원을 하나님 나라로 생각한 것이겠지? 그래,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배웠던 거야. 재미있군.’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건가?”
“…… 사…형?”

시비조의 목소리에 적자는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지자와 종자, 식자가 모두 와 있었다. 갑자기 적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응? 우리가 온 게 그리도 싫은가? 미안하이. 괜히 왔구만, 그려.”
“사형, 그게 아니라…… 마취가 풀려서…….”

적자는 입술을 삐죽 내민 식자에게 혼신의 힘으로 변명했다. 적자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툭 불거졌다. 진통제를 투여할 때 까지.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응? 책이 나왔군요?”
“자네 쓰러져있는 동안에 나왔지. 둘째가 고생이 많았어. 나중에 밥 한 끼 사게.”

종자는 웃으며 책 한 권을 적자에게 건냈다. 책의 제목은 Seize Life! 일 년에 두 번, 일상의 다양한 주제 가운데 하나를 정해 상연정의 친구들이 힘을 모아 펴내는 책이었다. 적자는 이번 호의 표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일상, 하나님의 나라…….”
“좋은 제목이지? 하나님 나라가 교육, 정치, 경제, 영성 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여러모로 궁리할 수 있도록 구성해보았네.”

식자는 잇몸이 보이도록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적자도 마주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책을 기다리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일상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고심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겠지요. 사형, 그분들에게 어디서 책을 구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까요?”
“자네도 알면서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1391korea@gmail.com로 이메일을 보내면 되는 것을…….”
“자자, 홍보는 그 정도만 해두거라.”
“…….”

스승의 개입에 식자와 적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종자가 말했다.

“그런데 자네, 우리가 들어올 때 잠꼬대를 하고 있더군. ‘재미있군’이라는 것 같던데, 뭐 재미있는 꿈이라도 꾸었는가?”
“그것 말씀이십니까? 잠결에 어린이들이 부르는 복음성가를 들었는데 그 가사가 담고 있는 생각이 재미있어서요.”

적자는 <돈으로도 못가요>를 들으며 떠올린 생각을 종자에게 말해주었다. 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가야하는 장소’로 이해하고 있었구만.”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가야하는 곳’이라는 생각은 다시 ‘우리가 세우고 쟁취하는 어떤 것’이라는 오해도 함께 불러왔지요.”

식자가 한 마디 거들자 종자는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하나님 나라의 이름으로 포장해왔지. 중세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고, 또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모습이야. 교회가 덩치를 불리고 힘을 갖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구현한다는 그 말이 얼마나 허망하던가?”
“도시의 유력자들 모두가 크리스천이 되면 그곳이 ‘거룩한 도시’가 된다는 운동도 비슷한 맥락에 있겠지요?”
“그렇지. 그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 하나님 나라의 가치, 하나님 나라의 방법을 쓸 생각을 하지 못한채 세상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야.”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불편한 자세로 듣고 있던 적자가 한 마디 덧붙였다.

“브라이언 왈쉬 선생과 실비아 키이즈마트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의 상상력에 지배된 것이로군요.”

적자의 말이 끝나자 지자는 형형한 안광을 발출했다.

“네가 <제국과 천국>을 읽은 것이로구나. 잘하였다. 좋은 책이니 종자와 식자도 꼭 읽거라, 두 번 읽거라! 바울 사도는 로마 제국이 제공하는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코 황제의 통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상상력이 있어야만 제국의 통치를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느니라.”
“스승님의 말씀이 정녕 옳습니다. 하지만 스승님, 그러한 상상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듯 하옵니다.”

적자의 반문에 지자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물론이다. 그러니 홀로 분투할 것이 아니라 더불어 상상력을 나누는 공동체가 중요하니라. 아무 자각 없이 살고 있는 현실이, 실은 제국의 상상력에 지배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공동체…… 그리고 각자가 깨달은 하나님 나라의 상상력을 풍성히 나누는 공동체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지. 바로 우리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지자는 가볍게 웃으며, 마치 실수로 그런 것처럼 적자의 엉덩이를 툭 건드렸다.
“허억!”

진통제 기운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는 다시 한 번 헛바람을 삼켰다. 그리고 아픔을 참으며 생각했다.

‘아,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닌가? 고통을 견디기 힘드니 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지금 여기 있는 하나님 나라도 좋지만, 고통 없는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구나. 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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