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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연정(常戀亭)에서… - 점복(占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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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댓글 0 건 조회 5,605 회
작성일 13-02-26 15:48

본문

상연정(常戀亭)에서… - 점복(占卜)

<소리> 2013년 1-2월호.


 
배경 및 등장인물 소개

●상연정(常戀亭) : 일상생활을 사랑하는 정자[常戀亭]. 동방의 작은 나라에 위치한 곳으로 지자(知子)라는 지혜로운 노인이 머물러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 인터넷 홈페이지 www.1391korea.net
●지자(知子) : 호는 적신(赤身). 3M 정신(맨몸·맨주먹·맨땅)을 몸소 실천하기에 그리 부른다. 맨주먹으로 상연정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이 얼마나 가치롭고 고귀한 것인지를 연구·전파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혹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가득 지으면서도 맘에 안드는 일은 반드시 지목해서 말한다고 해서 그를 '지적신(指摘神)'이라고도 일컫는다.
●종자(從子) : 상연정의 제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지자를 따랐던 제자[從子]. 스승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메모광이며(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업그레이드), 스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서 바닥청소를 시키면 화장실청소까지 자청해서 하는 인물이라 혹자는 그가 지자의 '종'이라서 '종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식자(識子) :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 아는 것이 많아서 식자(識子)라 불리우지만, 유달리 식욕을 절제할 줄 몰라 식자(食子)로도 불리우는 제자. 이성적이며 합리적 지식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막내 제자인 적자(嫡子)와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다.
●적자(嫡子) : 상연정의 막내 제자. 먼저 입문한 선배들을 무시한 채 '스승의 지혜를 배울 뿐만 아니라 패션과 걸음걸이, 심지어 다이어트 경력까지 본받고 있는 나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적자(嫡子)올시다'라며 설레발치는 당돌한 제자. 그때마다 식자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잊어먹으니 너야말로 진정한 적자(赤字) 지성이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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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힉, 늦었다!"

적자는 옷깃을 추스리며 허둥지둥 집에서 뛰쳐나왔다. 따듯한 전기장판에 잠시 엎드려있는다는 게 그만 깊은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고, 오늘도 식자 사형께 잔소리를 듣겠구만."

적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적자를 향해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학생!"

적자는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걸음을 재개했다.

"거기, 서두르는 학생!"

이번에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 적자는 몸을 휙 돌렸다. 5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적자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학생 아닌데요."
"……."

남자가 할 말을 못 찾고 있는 것을 본 적자는 다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남자는 이번에도 적자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학생은 장가 못가!"
"예에?"

적자는 깜짝 놀라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가 펴놓은 좌판에는 토정비결(土亭秘訣)과 주역(周易) 등의 책이 늘어져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장가를 못간다니!"

남자는 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 뜸을 들였다.
 
"관상을 보니 학생은 딱 스님 팔자야."
"뭐욧!!!"

*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내가 크리스찬인데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한 마디 쏘아 붙였지요."
"오, 그러니 순순히 물러나던가?"
"그럴리가요. '어디 스님이 절에만 있는가? 학생은 종교계나 철학계에 투신해서 독신으로 살 관상을 가지고 있어'라고 하던 걸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자네를 불러 세웠던 거야?"
"말도 마십시오, 사형. 팔자 고쳐서 장가가려면 자기가 써주는 부적을 사야 된다는 둥, 아예 확실히 새 삶(?)을 시작하고 싶거든 굿을 해야 한다는 둥…… 떼놓고 오느라 정말 애먹었습니다."
"음…… 그래서 오늘 지각했던 게로구만?"
"그렇지요, 사형……."

적자는 식자의 눈을 슬쩍 피하여 고개를 끄덕거렸다. 식자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자네는 스님 팔자가 아니라 지각생 팔자인가 보네. 어째 자네한테만 매번 이상한 일이 생겨서 지각을 하게 만드는가? 오늘은 스승님과 사형께서 다른데 들렀다 늦게 오시기에 망정이지……."
"아, 저기 오시네요."

적자는 황급히 말허리를 잘랐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식자와 적자는 지자에게 허리를 숙였다. 지자는 겉옷을 종자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오냐. 너희들은 별일 없었고?"
"스승님, 막내가 예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형!"
"예언? 자세히 말해 보거라."

지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고, 식자는 싱글벙글하며 적자가 아침에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종자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것 참 묘하구만. 스승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예? 스승님도요?"
"어험…… 아니다!"

지자는 헛기침을 하면서 종자를 흘겨보았다. 그는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복(占卜)을 행하는 사람들은 모호한 표현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데 능하지. 네게 한 말도 그런 것이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아, 그러고 보니 신문에 매일 실리던 띠별 운세 중 아무 것이나 읽어보면 모두 자기 이야기처럼 다가온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그게 다 모호한 표현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었군요."

종자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늘어놓자, 적자는 볼 맨 소리를 했다.

"하지만 스승님, 저도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찝찝하고 불쾌한 것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그렇지. 그 점에 있어선 점집에 가서 비싼 복채를 내고 들은 이야기건, 오늘의 운세 몇 마디건 대동소이할 것이야. 점복()이 문제인 것은, 그게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려 든다는 것이지."

종자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맞습니다, 스승님. 단지 재미로 접했다할지라도 그 내용이 뇌리에 깊이 남아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옵니다."
"사형, 어째 이 주제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은가 봅니다."

식자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식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실은 아내가 요즘 타로카드점에 재미를 붙였다네. 자기 말로는 친구 때문에 억지로 한 번 가본게 다라는데, 아 글쎄, 얼마 전에 택배 박스를 열어보니 타로 세트가 집으로 왔지 뭔가."
"세상에……."
"캐물어도, 그냥 재미로 하는 거라고 딱 잘라 말하니 어찌할지 모르겠네."

사람들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그때 지자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종자야, 일단은 재미로 한다는 말을 좀 그대로 믿어 주거라."
"스승님,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승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재미로 했더라도 그것이 마음을 주장하려드니……."
"그래 종자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충분히 알겠구나. 하지만 나는 말이다…… 일방적으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몰아붙이기 전에, 그런데 빠지는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뭔가 위로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 현실 속에서 영적이고 신비한 경험을 원하는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대화를 통해 점복이 우리의 이목을 미혹케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일상의 결핍과 갈망을 접촉점 삼아 참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종자는 지자의 고개를 숙인채 지자의 말을 곱씹었다. 하지만 적자의 질문에 종자는 생각을 멈추어야 했다.

"저, 사형…… 그런데 스승님께서 저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별거 아니네. 게으른데다 행색도 후줄근하니 장가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이셨지. 뭐, 새삼스러울거 없는 이야기 아닌가."
"예? 스승님, 너무하십니다."
"어흠…… 흠……."

지자는 목에 뭐라도 걸린듯 연신 헛기침을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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