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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일상사연 _ 몸에 밴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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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5,568 회
작성일 13-10-0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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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밴 경건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전주지역 실행위원)



   우리 교회에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 권사님이 한 분 계신데, 집보다 예배당에 계시는 것을 더 좋아 하시는 분입니다. 지난여름 날이 뜨거울 때 할머니 권사님이 몇 주간 멀리 사는 따님 댁으로 다니러 가셨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사시는 며느리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 일부러 따님 댁에 가서 지내다 오신 것입니다). 할머니 권사님이 계실 때와 계시지 않을 때 예배당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군데군데 권사님의 손이 닿지 않으니 예배당이 지저분해 지는 것입니다. 할머니 권사님은 예배당 어느 한 구석에 잡풀이라도 돋아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시기 때문에 권사님이 한 바퀴 돌고 나면 예배당이 깨끗해졌습니다. 할머니 권사님이 떠나고 난 며칠 뒤, 예배당 주방 앞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길 래, 모인 사람들이 모두들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면서 냄새의 원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찾고 보니 음식쓰레기 통이었습니다. 할머니 권사님이 계셨을 때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면 매일 커다란 음식쓰레기 통을 깨끗하게 씻어 두시기 때문에 냄새가 나는 줄도 몰랐는데, 권사님이 자리를 비우시니, 다 비워진 음식쓰레기 통이지만 뜨거운 여름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집보다 예배당을 좋아 하시고 매사에 나설 자리와 나서지 말아야 할 자리,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시면서 묵묵히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권사님은 그야말로 경건이 몸에 밴 분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끔씩 우리 성도들이 목사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마다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저는 새벽마다 설교해야 하는 목사지만, 새벽에 일어날 때면 마치 방바닥이 저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이 그만큼 피곤한 일입니다. 그런데 목사보다 더 부지런히, 더 뜨겁게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새벽에 기도하는 일이 몸에 배인 분들입니다. 교회 안에 참 이상한 일 중에하나는 반드시 기도해야 할 사람은 기도할 줄 모르고, 굳이 아쉬울 것 없는 분들이 열심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특히 목회자와 연약한 성도, 교회, 나라와 민족, 온 세상 모든 열방을 위해 기도합니다. 남의 문제를 짊어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일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지만, 이 분들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새벽을 깨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목사는 겨우 시간 맞추어 새벽기도시간을 지키지만, 모든 성도들보다 더 일찍 나와 문을 열고 방송장비와 불을 켜서, 목사가 나오면 그저 모임을 인도만 하면 되도록 다 준비해 주시는 장로님이 계십니다(참고로 우리 교회는 관리집사님이 따로 없습니다).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목사는 가끔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나갈 때도 있는데, 언제나 변함없이 새벽 예배당의 기도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도들은 정말 목사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설교하는 목사보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더 주님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목사보다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이 더 진실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경건이란 책 몇 권 더 읽고, 이런 소리 저런 주장을 늘어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잠잠하게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요, 그 사명이라는 것도 실상 요란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몸에 배이게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요란하게 설교한들, 외친 말은 잊혀질 수 있겠지만, 제 몸에 배어든 주님을 향한 사랑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지워지지 않겠지요. 내공(?) 심후한 성도들을 본받아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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