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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좁은 일상, 넓은 사회_김선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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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6,214 회
작성일 14-02-0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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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일상, 넓은 사회

    김선일(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본 연구소 서울지역 연구위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움직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차타고 멀리 가는 것도 싫어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도 싫어한다. 천성이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멀리 가느라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도 부담스럽다. 교회는 물론, 직장도 가깝다. 유명세를 자랑하듯 빼곡하게 채워진 다이어리 따위는 없다. 가급적 저녁시간에는 약속을 안 잡고 집에 일찍 들어간다. ‘늦은 밤까지 불 꺼지지 않는 연구실’은 내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보니 ‘저녁이 있는 삶’은 그리 요원하게 들리지 않는다. 대신 집의 식탁에 책들을 펼쳐놓고 노트북 작업하는 너저분한 광경이 왕왕 연출되니, 요즘 아내로부터 늦게라도 일은 밖에서 끝내고 집은 쉼과 여가로만 채우라고 타박을 받긴 한다.


그럼에도 좁은 일상의 보폭에서 얻는 재미와 의미가 제법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동네를 거니는 시간이 비교적 풍성하다.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에 장이 서면 천막들을 둘러보면서 꼭 필요하지도 않아도 두 서가지는 사준다. 작은 구매도 우리 동네를 찾아준 상인들에 대한 환대이자 격려일터니 말이다. 골목상권을 이용하고 동네 산책을 자주하면서 생기는 이득은 이웃과의 알음알이가 쌓인다는 점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대규모 공원과 산책로가 많이 조성된다. 그런데 이웃됨의 묘미는 ‘사이 길’(sidewalks)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관리의 목적을 갖고  모이는 대형공간보다, 집과 거리를 잇는 사이 길에서 우발적 만남이 자주 일어나야 한다. 이웃됨은 계획성 보다는 우발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저녁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다가 한 할머니와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되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를 예뻐해 주시는 할머니 옆에 잠시 앉았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들어보니 좀 심각하다. 아들은 멀리서 일하고 손자를 데리고 혼자 사시는데 힘들다고 하신다. 며느리가 집을 나간 까닭이다. 할머니는 자기 잘못이라고 가슴 아파하신다. 그러면서 “처음 본 아저씨 앞에서 내가 무슨 주책이람...”이라며 울먹이신다. 정체를 밝힐 때다. “할머니, 저는 목사에요. 목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나님께 기도해주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맘 편히 말씀하세요.” 그렇게 이 할머니와의 만남, 그리고 영혼을 위한 사역이 시작됐다. 1년째 동네 이발소를 다니면서 무뚝뚝한 동갑내기 이발사와 친분을 쌓게 됐다. 그리고 이제야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다른 손님들이 있으면 내밀한 대화가 어려울 텐데, 주중 낮 시간을 이용하니 늘 독대가 가능했다.


G. K. 체스터톤(G. K. Chesterton)은 “사람들이 작은 공동체에 살수록 그들의 사회는 더욱 커진다.”고 했다. 큰 공동체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울릴 사람을 선택하지만, 작은 공동체에서는 누구든지 어울러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만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이 작을수록, 나의 관계는 커진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요즘 대세라는  ‘관계전도’도 비롯된다. 최근에 부끄럽지만 새 책을 냈다.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SFC, 2014). 이 책의 논지는 간단하다. 불특정다수를 향해 이벤트를 통해 즉각적 결신을 요구하는 전도 방식은 지난 200년간 형성된 미국식 부흥운동의 산물일 뿐이며, 2000년 교회사에서 가장 유력한 전도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웃에 대한 환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논지의 경험은 나의 일상에서 지금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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