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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5월 일상사연_ 안산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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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5,164 회
작성일 14-05-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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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다녀와서



이상용(일상생활사역연구소 서울지역 실행위원)



굳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날씨는 어찌 이리도 쾌청한지 괜한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길을 못 찾아 헤매면 어쩌나 하는 기우를 멀리하고 근처에 도착하자 여기저기 안내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고 근조(謹弔)라고 써 붙인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장례식장인 것 같았다. 안산단원고 앞에는 학생들이 써놓은 수많은 위로의 글들이 바람에 조용히 나부끼고 있었다. 합동분향소 앞에 이르자 자원봉사자들이 검은 리본을 하나씩 건네준다. 입구에는 대형화면으로 아이들 사진이 하나씩 하나씩 바뀌고 있었다.

주변에 장례식이 있을 때면 영정사진엔 의례히 나이든 할아버지나 할머니 사진이 있었는데 오늘은 좀 특별하다. 영정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리다. 사진들은 하나같이 장난기가 가득하고 꼭 무슨 학예회나 연극콘서트용으로 찍은 듯하다. 금방이라도 사진 뒤에서 “아저씨 장난인데 속았죠!”라고 하며 깔깔깔 웃고 나올 것만 같은 모습이다. 정말이지 너무 앳되고 어려서 죽은 아이들이라고는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다.


안산제일교회 성도님들이 모여서 요나의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신문을 통해 보았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실종자가 100명이 넘는다. 안그래도 적은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럴 땐 그냥 보란 듯이 기도가 응답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뉴스에는 계속 사망자들의 숫자만 늘고 있다. 집사람은 이곳에 오는 차안에서 내내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계속 나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퉁명스럽게 그걸 알면 내가 목사를 하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고 괜스레 툴툴거렸다.


하나님께 ‘사람들이 그렇게 애타게 기도하면 좀 들어주시지’하는 서운한 생각마저 든다. 어느 교회 관련 글에는 하나님도 그들과 같이 우신다는 내용의 글도 있었다. 아무튼 나로서는 도저히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내용들이어서 딱히 뭐라고 결론 내릴 순 없고 왜 돌아올 수 없는지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유가족들에게는 우리가 너무도 평범하게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울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늦은 밤 통닭을 사와서 가족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먹는 이 평범한 일상이 이들에겐 허락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세상엔 어떤 법칙들이 존재하고 왜 그럴 수 없는지 나의 상식으론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듯이 -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 시간이 일정기간만 허락되어진 듯하다. 어릴 때 광안리 백사장에서 목숨 걸고 야구를 했던 그때의 그 동무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소식도 모르며, 군대 있을 때 이를 박박 갈았던 고참도 지금은 태국으로 이민을 가고 없고, 헤어져 죽을 것만 같았던 첫사랑도 지금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대리 때 나를 잡아먹을 듯이 괴롭혔던 이부장도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으며 한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너무 아파 힘들었던 허리병 마저 지금은 온데간데없다. 지금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봄날의 꽃들도 작년의 꽃들은 이미 아니다.


오늘의 일상도 어제와 거의 비슷하지만 분명 어제는 아니다. 집사람이 나보고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나만 오면 “아빠, 아빠”하면서 너무 달라붙는 통에 귀찮기까지 하더니 이제는 자기들 방에 틀어박혀서 친구들끼리만 노닥거린다. 언젠가는 나도 이 아이들 곁에서 없어지겠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허락된 공간과 허락된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아닌지…….

혹자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된다고들 하지만 언제 우리에게 늘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여력이 있었는가. 우리의 일상이 흘러가는 가운데 언제든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이별이 중간 중간 섞여 있어서 가슴이 아프고 저미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금 희망이라는 가느다란 줄을 붙잡고 가보자. 갈 수 있는데 까지만 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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