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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018년 11월 일상사연 - 또 하나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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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3,136 회
작성일 18-11-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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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사춘기 


산책씨를 만난 곳은 OO공업고등학교였습니다. 현직 교사인 산책씨는 “저한테 뭐 들을만한 이야기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하나 같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가진 힘을 아직 잘 모르는 탓일까요? 하지만 많은 분들을 만나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글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오면서, 저는 스스로 평범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이야 말로 의미의 보물창고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보물을 만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저는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공업계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66년 생이니까, 올해 만으로 52세, 53세? 그 정도 되었습니다.”

나이를 말씀하시며 산책씨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저는 그 동작에서 산책씨가 평소에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일을 하시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음…….”

산책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진로’라는 것이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진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요. 그나마 가르치는 일이 제일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교직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과목은…… 고등학교에서 비교적 좋아했던 과목이 영어라서 영어교육과를 선택했습니다.”
“아, 대학가기 전부터 영어를 좋아하셨네요?”
“학교 다닐 때는 좋아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는 좋아했다’라는 산책씨의 이야기가 왠지 와닿았습니다.

“저도 영어영문과를 나와서 무슨 말씀이신지 알거 같아요.”
“조금만 더 공부하면 통달할 줄 알았습니다.”

저는 산책씨와 함께 웃으며 질문했습니다.

“지금은요?”
“착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영어 자체보다 영어의 논리와 구조를 좋아했습니다. 문학적인 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문학보다는 영어학 쪽이 적성에 맞으셨나보네요?”
“그런데 영어학도 학교에서 공부해보니 따분했습니다.”

산책씨는 다시 웃으며 계속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교사를 한 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언어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산책씨의 말투는 부드러우면서도 말끝이 “……습니다”로 마무리 되어서 묘하게 들렸습니다.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유연한 느낌이랄까요? 저는 이어서 평균적인 하루 일과를 물었습니다.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8시 10분 경에 출근합니다. 8시 20~50분 사이에 회의가 있는데, 회의 마친 후에는 50분부터 수업을 시작합니다. 보통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 수업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는 준비시간을 갖고, 방과 후에는 주로 운동을 합니다. 5시 반에서 6시 정도에 시작해서 8시까지 운동을 합니다. 일주일에 네 번 정도……. 그리고는 집에 와서 집안 일을 좀 한 후, 한 두 시간 정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습니다. 그 다음에는 티비도 한 두 시간 정도…… 더 볼 때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기도를 조금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산책씨의 하루를 듣던 중 수업과 수업 사이에 갖는 ‘준비시간’이 귀에 퍼뜩 들어왔습니다. ‘선생님들은 수업 없는 시간에는 뭘하실까?’ 고등학생 때 늘 궁금했습니다.

#열매에 대한 생각……

“업무 처리를 많이 합니다. 시간의 반 정도를 업무 처리에 사용합니다. 저는 지금 담임을 맡고 있지 않습니다만, 담임이 되면 거기에 학생관리가 추가됩니다. 학생들이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수업 준비를 합니다. 우리 학교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라 그 시간에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야기할 틈 조차 없는 학교도 있나보네요?”

산책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 학교가 꽤 많습니다. 방과 후에는 ‘협동학습 연구회’, ‘수업코칭 연구회’, 그리고 기독 교사 모임 등에 소속되어 활동을 합니다. 학교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만나서 나누는 모임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동시에 여러 모임에서 활동을 하시나보네요.”
“지금은 많이 줄여서 이렇습니다. 수, 금요일에는 교회 모임도 있고…….”

줄인 것이이 이 정도라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방과 후 다양한 모임에 참석하시는 이유가 있을거 같아요.”
“사실 학교에서는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참석하는 방과 후 모임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기독 교사 모임이 아니라도). 그러다보니 조금 더 마음을 터놓고 일상의 고민, 학교에서의 고민 등을 나누게 됩니다. 만남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면이 있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에너지를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이 무엇인지 집중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나누기 힘든…… 모임에 참석해서 나누는 고민의 내용을 여쭤봐도 될까요?”

산책씨는 씨익 웃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힘든 건 없습니다. 지금 학교 상황은 그다지 압박적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학교에서나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잘 하고 있나?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나? 그런 고민이 좀 있습니다.”

문득 제 은사 목사님이 교사 출신의 은퇴 권사님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권사님은 진로를 고민하는 교회 청년들에게 한결 같이 “얘들아, 선생 해라. 전도하기에 선생 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니 산책씨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저도 수업시간에나 개인적으로 만나서 전도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만나서 공개적으로 전도하지 못합니다. 그런(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도 ‘그런 이야야기 하면 안되는거 아녜요?’라고 반응합니다. 대신 학교에서 기독교 동아리를 맡아서 인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선교단체인 OOO 모임인데, 작년에는 OOO 이름을 공식적으로 걸고 활동했고, 올해는 그게 안되어서 ‘수화반’ 이름을 걸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산책씨의 눈이 깊어졌습니다.

“OOO 이름을 걸고 할 때도, 사실 동아리 안에 기독교인은 1, 2명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친분에 따라…… 저 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면 편하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외부에서 사람을 모셔서 SQ(영성지수; Spiritual Quotient) 검사도 해봤는데, 영성에 전혀 관심 없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직접 전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전도할 수 있을까…… 그게 고민입니다. 2학기에는 시간이 더 빨리 가는 느낌인데, 가을이 되니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실, 열매에 대한 생각이 더 듭니다.”

산책씨는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비교적 만족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반면 산책씨가 고민하는 것의 주된 내용은 복음 전도였습니다. 저는 정말로 만족스럽기만한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무식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하시면서, 혹시 여성이라서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겪을 때는 없으신가요?”

#이제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다

산책씨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는 아주 어려운 학교는 아닙니다. 우리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중학교 때 성적으로 보면 80~85% 구간의 학생들인데, 특별히 사악한 아이는 없습니다.”

‘사악한 아이는 없다’는 말을 하며 잠시 웃던 산책씨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사악한 아이는 없지만 나태한 아이는 있습니다. 그런 쪽의 어려움은 다들 비슷합니다. 가끔 여자 교사라서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긴 하지만, 여자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까, 나름대로 잘 맞는 지점도 있습니다. 딱히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안습니다. 오히려 해보니까 남학교가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남자 고등학생들과 지내는게 괜찮은걸 보니, 남학생들의 성향이 저와 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시죠?”
“물론 중간에 아이들과 싸운 적도 있습니다. 아이가 밉거나 그런건 아니고…… 제가 미숙해서 그랬을 때가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괜찮습니다. 음…… 오히려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들은 다양한 생각을 해서 맞추기 힘든 면이 있었습니다.”

여학생 이야기를 하며 산책씨는 교직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초창기에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대학교에서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적용하려 했는데, 처음에는 여중생을 가르쳤습니다. 중학교 여학생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게 어렵습니다. 설득도 잘 안되고……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소통이 잘 안되고…… 손바닥을 때리기도 했는데, 그게 관계를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교직이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없었고, 아이들도 사랑스럽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셨나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잘 안맞으니 노력을 해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상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란노에서 하는 상담프로그램도 공부하고, MBTI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설득 안되는 건 당연한 거구나. 특히 중학생은 더 그렇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범대학교 교육과정에서 그런 내용을 다루지 않나요?”
“대학에서도 배우긴 했을텐데, 그 당시에는 생각이 안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선 기독 교사 모임에서 그런 것들을 나누면서 내면의 갈등과 긴장감을 해소했습니다. 그 외에 딱히 어려운 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와도 상황을 다루고 해결하는 능력이 커져갔습니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서, 선생님들은 수업 외에도 처리해야할 업무가 과중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어요. 혹시 선생님은 그런 일 없으셨어요?”

산책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인문계에 있을 때도 일이 많았고, 그 전에 중학교 때도 많았습니다. 중학교에 있을 때 성적 처리 업무를 했는데, 6년 동안 계속 똑같은 업무를 맡았습니다. 자잘한 일이 상당히 많은 업무였는데, 그래도 6년을 할 수 있었던 건 같이 하는 선생님들이 응원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같은 업무를 맡았을 때는 다른 선생님들이 그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료 선생님들의 인정이나 응원이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거기서 3년을 더 있어야 했는데, 도저히 3년 더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로 전보 신청을 했습니다(한 학교에서 일정기간을 채우지 않고 다른 학교로 갈 수 있는 방법이 고등학교로 이동하는 것이었기 때문). 그 해에는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실 시간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습니다.

“학생지도에서나 업무에서나 크든 작든 스트레스를 받으셨네요. 그런 상황에서 신앙이란 건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요?”
“음…… 중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 중 한 명이 학교를 계속 안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애 집에 계속 찾아갔습니다. 가보면 자고 있고…… ‘학교 안갈거냐?’라고 물으면 ‘안갈건데요, 공장갈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중학교도 졸업 안한 애가…… 그 애는 결국 출석일수 미달로 제적되었습니다. 그 애 말고도 집안을 건사해야 해서 그만 둔 아이도 있었습니다.”

산책씨의 눈시울이 촉촉해졌습니다.

“여러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아이들이 밉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던게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용납 받았으니,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용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책씨는 당시의 활동을 회상했습니다.

“OO교사 운동이 막 생겨났을 때, 저도 초창기에 그 모임을 같이 했습니다. 거기서는 가정방문 운동 같은 걸 많이 했습니다(전에는 평소에는 가정방문을 안하고, 문제 있을 때나 했습니다). 가정방문을 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진짜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이를 알게 되고 부모님과 연결되었습니다.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이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부모님들은 교사가 가정에 찾아온다는 것을 약간 부담스럽게 여기긴 했지만 싫어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한 군데 갔는데 집이 너무 좋은 곳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만 집을 여는 건가요?”
“글쎄요…… 아무튼 그때 ‘이거 이제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도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기 삶이 너무 세세하게 노출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주로 하고, 꼭 필요한 때는 학교로 오시라고 해서 대화합니다.”

#산책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고 산책씨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듣기 위해서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방과 후에 운동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주로 어떤 운동을 하세요?”
“댄스(라인 댄스)도 하고, 헬스장에서 PT(Personal Training)도 받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보니 운동을 안하면 건강이 안좋아진다는 느낌이 확 들어서 시간 맞춰 합니다.”
“댄스, 운동 많이 되죠? 저도 음악에 맞춰 춤추는 거 좋아해서 동네 복지관에서 에어로빅 했던 적이 있어요. 아이가 어릴 때라, 얼마 못하고 그만두긴 했지만요.”
“저는 싱글이라서 바깥 생활이 많습니다.”

산책씨의 고백(?)에 저는 당황한 나머지 너무도 전형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혹시 가족들이 결혼 때문에 스트레스 주지는 않으셨나요?”
“부모님이 스트레스를 안주시는 편이라 그게 좀 후회스럽네요.”

산책씨는 환하게 웃으며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님이 목회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별로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으셔서 그랬을까요?(웃음)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있냐?’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압박감은 전혀 없었죠. 누가 결혼하라고 등떠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혼자 지내는 것이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젊을 때는 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자유로워서 좋았습니다만, 나이가 드니 ‘남은 인생을 혼자 지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쉽진 않습니다. 새롭게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동생이 있으니 동생 가족이랑 한 번씩 보고 같이 교제합니다. 돌이켜보면, ‘싱글라이프를 잘 살았다’라는 생각보다 미리 가정을 꾸리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후회가 남습니다.”

산책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와 어린 딸이 주고받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엄마, 결혼은 꼭 해야 되는거야?”라는 딸의 말에 아내는 “아니, 니가 너무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지만, 엄마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라고 대답했습니다. 혹시 아내도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걸까요?
저는 고개를 흔들어 엉뚱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교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교회 구조에서는 ‘가정’ 단위로 모임을 꾸리고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혹시 교회에서 독신이라 불편하거나 힘드셨던 적은 없으신가요?”
“우리 교회는 작아서 별로…… 오시는 분들도 (많지는 않으나) 싱글이거나 혼자만 교회에 오는 여성도들이 좀 있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친해서 큰 교회보다 지내기 좋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제가 재정 집사로 섬기고 있어서 일이 좀 많습니다. 교회에서 소외된다는 기분은 별로 들지 않고, 오히려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웃음). 주위에서도 ‘니가 전도사냐?’라고 해서 지금은 일을 좀 줄였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며, 저는 마무리 질문을 던졌습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요, 그렇게 보면 이제 절반 조금 넘는 지점까지 오셨어요. 앞으로의 절반은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사실 진로가 고민이긴 합니다. 평교사는 초임이나 퇴직 직전이나 업무 내용이나 강도가 똑같습니다. 관리자도 요즘엔 민원이 많아서 힘들고……. 요즘 들어 점점 에너지가 떨어지는게 느껴지면서 ‘이 일을 정년까지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그래도 크게 어렵지 않은데,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면 거기서 영어가르치며 업무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60대 영어 여교사가 드뭅니다. 50대까지 하고 퇴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집안 사정 때문에 정년까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것을 해볼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영어과목 말고 상담교사나 진로지도교사로 바꿀 기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좀 있을 거 같고…… 그래서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그쪽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직 생활이 10년 정도 남았는데, 그 후의 삶을 위해 상담이나 진로 쪽을 공부하려 합니다.”

진로에 대한 이야기에 덧붙여 산책씨는 사람됨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습ㄴ다. 항상 솔직하고 거짓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환대하고, 환대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것을 위해 상담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기 위해……. 그런데 요즘 상담가들을 만나면서 깨닫게 된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제가 가진 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들을 배제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부분…… 그런 경계가 없이 여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는 그런 틀을 만드시진 않았을텐데…….”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하시고픈 말씀이 있냐고 묻자, 산책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이가 참……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또 하나의 사춘기 같습니다. 여러가지 부분에서 ‘내가 잘 살아왔나? 내가 믿고 행해온 것이 틀리지 않았나?’라고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그런 것들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가 고민하는 분야를 점점 더 열어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통해 응답해주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사실 최근에 좀 우울했습니다. 얼마전부터 게슈탈트 상담을 배우고 있는데, 공부도 하고 시연상담도 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내 이야기를 하고 피드백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제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대화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산책씨는 이 별명을 4, 5년 전부터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 너무 인생을 달려온 것 같아서, 걸으면서 묵상하는 삶, 거닐고 머무는 삶을 기대하며 선택한 별명이라고 합니다. 또 한 번의 사춘기를 맞은 산책씨가, 자신을 편히 드러내고 피드백 받는 투명한 삶을 사실 수 있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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