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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 8. 창조적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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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291 회
작성일 09-12-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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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자료 / 요약 :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정한신 기획연구위원

폴 스티븐스,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IVP, 2009

8..

창조적이 되라

돈은 기업의 유일한 원동력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가 정신, 영적 차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장에서는 기업가 정신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한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다시 거론하고, 영성이 기업·사업·조직에서의 창의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본다.

기업가 정신과 창의성의 추구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기업 활동은 신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신앙이 충족되지 않은 인간의 욕구에서 나오는 원동력이든, 밖에서 오는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로부터 오는 소명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기업가 정신은 내다보기, 창안하기(창의성), 실행하기라는 세 요소를 갖고 있다. 기업가(entrepreneur)란 “사업이나 기업을 조직하고 경영하고 그 위험부담을 떠맡는 사람”(웹스터 사전)이란 뜻이다.

베버의 “부분적이고 복잡하며 아주 중요한” 논제

보편적으로 알려진 개신교 노동 윤리는 다음과 같은 신념들을 포함한다. 게으름은 죄 된 것, 근면함은 종교적 이상, 낭비는 악한 것, 검소는 미덕, 여가는 일로 획득하는 것이자 일에 대한 준비, 안일함과 실패는 금지된 것, 야망과 성공은 하나님의 총애의 확실한 징표, 부(wealth)는 하나님의 총애의 특별한 징표 등.

이 가운데 일부는 개신교 종교 개혁에서 직접 나온 것들이다. 루터주의는 일꾼들에게 자신의 경제활동을 하나의 소명으로 생각하라고 명했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세상에서의 소명 혹은 신분에 대한 루터교의 신념에는 그것을 열심히 섭렵하고 합리화하고 혁신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베버의 견해처럼, 신자가 기업가 정신을 갖도록 그 열정을 끌어올리려면 무언가 다른 것, 즉 종교적 비전이 필요했다. 베버는 칼뱅주의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논제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부흥하려면 격렬한 활동과 구원의 명령이 모두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정신의 발흥은 칼뱅주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베버는 칼뱅주의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명 안에서 노동의 열매로 부를 성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징표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세상적 소명 안에서 쉴 새 없이 계속해서 체계적으로 일하는 것을, 가장 고도의 금욕주의의 수단으로 여기는 동시에 중생과 참 신앙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여기는 종교적인 가치부여는, 여기서 자본주의 정신이라 부르는 삶의 태도를 확장하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베버가 연구한 칼뱅주의는 잠재적으로 유용한, ‘돈과 시간의 청지기 직분’이란 개념을 함축하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시간 사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환경을 조정하는 방법론적 접근이 내포되어 있었다. 다른 한편, 칼뱅주의는 신자들이 윤리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지도했다. 즉 세상에서 하는 집중적인 ‘실습’의 맥락에서, 세상의 내적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 안에서 노동의 열매이자 하나님의 축복의 징표로 얻는 부의 획득(취득활동)과 소비의 제한(저축)을 합치면 당연히 자본의 축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베버의 논제는 바로 경제적인 과정이 중요한 방식으로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종교 개혁적 소명을 회복하는 일

명목상 신자였던 후기 개신교도들 가운데는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 사역의 충분성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일을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용납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보게 되었다. 다른 한편, 안식의 소명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베버가 바로 본 것은, 결국 개혁교회와 그 분파들이 믿음을 통해 은혜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의한 구원 교리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루터와 칼뱅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 문헌(성경)과 복음적 경험을 상기시킨다. 참된 영성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이웃 사랑의 조합이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이런 영적 동인들은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동기는, 무한정 지속될 수 있는 동기다.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 개혁자의 시대와 베버가 연구한 후기 개신교 시대가 지난 후, 서구 세계는 수십 년 동안 세속적 휴머니즘의 시대를 경험했다.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모두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사업은 어디까지나 사업이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자기 이익이 기업 경영의 일차적 동인인 경우가 너무나 흔하다. 교회/종교와 사업간의 불행한 이혼이 사업을 저 홀로 내버려두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정신분열적 삶을 살게 되었다. 일요일에는 하나님, 월요일에는 맘몬을 섬기는 인생으로 말이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덕분에 현재 문화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일의 혼을 되찾는 일에 관심이 커지는 현상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기독교적 기업 정신의 영성을 세우기 위하여

기업 정신의 영성은 동기의 문제, 기업 정신의 근원에 관해 다뤄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과 만물을 변혁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독창성과 창의성과 진취성을 부여한다.

창조세계의 제사장

흔히들 ‘창조명령’에 대한 유대-기독교적 견해가 조작과 통제를 허락하는 면허증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는 창조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꽃을 피우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모두 기업가의 사명을 위탁받은 셈이다. 즉 공공선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세계를 개발하는 청지기가 되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소명은 청지기가 되는데 그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세계의 최초의 제사장들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먹기, 관계 맺기,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하나님과 교통하기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송축하도록 동산에 놓인 것이다.

알렉산더 슈머만은 이 중요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발전시킨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에는 사람이 ... 배고픈 존재로 ... 그리고 온 세계가 그의 양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원죄’는 일차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불순종한데 있지 않다. 그 죄는 그가 오직 그분만을 향한 배고픔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자신의 삶 전체가 온 세계-하나님과 나누는 성찬으로서의-에 달려 있음을 더 이상 보지 못한 데 있다. 죄는 인간이 자긴의 종교적 의무를 무시한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을 종교의 견지에서 생각한데 있다. 즉, 그분과 삶을 서로 대립시킨 잘못이다. 인간의 유일한 타락은 비성찬적인 세계에서 비성찬적인(감사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일과 창조성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송축하고 창조세계를 축복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기업가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노박의 말처럼 우리는 “아주 원대한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공동 창조자가 되어 창조주의 일이 본래의 의도대로 성취되도록 하는 존재다.”

타당한 이기심을 키우는 일

이윤 추구 자체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타당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사업이 생존하려면 이윤이 필요하지만, 사업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업은 인간의 경험을 지탱해 주고 증진시켜 주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존재한다.

성경은 자기 사랑은 정죄하지만 자기 긍정은 인정한다. 전자는 일종의 우상숭배로서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고, 이기적인 야망을 추구하는 등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갈5장). 또 사람의 가치를 그가 이룬 업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다. 후자는 스스로의 가치, 존엄성, 재능, 역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은 또한 수익성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인생과 투자가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물어본다(마16:26). 찰스 핸디는 이를 ‘타당한 이기심’(proper selfishness)이라 부른다.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과 영적 은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아름다운 일, 곧 창조세계와 문화, 공동체와 사람들을 변혁하는 그 일에 동참하라고 주신 것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도록 능력을 주신다. 브살렐을 주목해 보자. 그는 목수, 장인, 예술가, 선생의 직업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었다(출 31:1-11; 35:10-19; 35:30-36:5).

출애굽기 31장과 35장은 하나님이 브살렐에게 자기의 영을 채워주어 지혜와 총명과 온갖 기술을 갖추게 하셔서, 금과 은과 놋과 보석과 나무를 가지고 여러 일을 할 수 있게 했다고 소개한다. 지혜란 실질적인 지능과 안목으로서 어떤 일을 하는 법을 통찰하고 고안하고 생각해 내는 것이다. 총명이란 문제 해결책을 명석하게 파악하는 자질이다. 기술은 손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능력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터에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이다.

출애굽기 36:2절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이 브살렐과 그의 조력자인 오홀리압뿐 아니라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셨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을 하고 싶어 하도록 성령이 우리 내면에 역사하신다는 말이다.

프레드릭 뷰크너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을 아주 다양한 종류의 일로 부르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문제는 그 가운데서 사회나 초자아 혹은 이기심의 목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목소리를 분별하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을 분별하는 하나의 규칙을 소개하면 이렇다. 하나님이 당신을 불러 시키는 일은 대체로 당신이 그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끼는 일인 동시에,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는 그 곳은 당신의 기꺼운 마음과 세상의 속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장소다.

기업가 예수를 좇아서

예수님을 기업가의 모범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삼년간의 공생애가 내다보기, 창안하기, 실행하기의 세 요소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복음서가 예수님을 소규모 기업을 경영하는 인물이자 권세들과 싸우는 인물로, 잔치를 즐기는 인물이자 소외된 자의 친구로,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기업가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 바톤은 그 원리를 복음서에서 끌어낸다. 누구든 위대한 자가 되고 싶으면 가장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자는 밑바닥에서 자기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오 리를 가자고 요청받았을 때 그와 함께 십리를 가는 자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등.

새로운 사업적 영성은 기업가 정신에 불을 붙였던 여러 종교인들의 위대한 진리들과 영적인 주제들을 회복하라고 촉구한다. 창조세계의 제사장직, 타당한 이기심, 성령의 감화와 은사, 예수의 모범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현재 제3세계에서는 전통적 기독교가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비해,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우리는 종교 없는 영성을 통한 기업가 정신의 부활을 목도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을 뒷받침해 줄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토대가 없다는 뜻이다.

“기업가 계층이 없으면 자본주의의 발달이 있을 수 없고, 도덕적 강령이 없으면 기업가 계층이 있을 수 없으며, 종교적 전제가 없으면 도덕적 강령이 있을 수 없다.”(지안프랑코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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