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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 10. 거룩함을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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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937 회
작성일 10-06-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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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부산대 앞 모임] 폴 스티븐스의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제10장 거룩함을 추구하라

‘거룩하다’는 단어는 어떤 냄새와 종소리, 성직자용 칼라, 성스러운 건물, 엄격한 수도원, 길고 긴 교회 예배, 무법천지 같은 사업계와 아주 동떨어진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거룩함이란 아주 단순한 개념이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과 목적을 지향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벗어난다든가, 종교적이 된다든가, 욥의 친구들처럼 경건한 소리를 나불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룩함은 그보다 더 깊고 훨씬 더 멋진 것이다.

직업적 성결은 세 가지 차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일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와 셋째는 일꾼과 관련된 것이다. 각 차원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멋진 열매를 내포한다.

하나님이 보낸 일

요셉은 온갖 종류의 요인과 사건들에 이끌려 애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를 성찰해 보니, 자기가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 곧 ‘선교’의 일을 하도록 보낸 자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보내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단어가 ‘mission'이므로, 요셉은 “나를 여기에 선교하라고 파송한 자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신 삼중적 약속도 선교와 관련된 축복이었다. 첫째는 가정을 세우라는 것.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님의 백성을 이룬 만큼 이 약속은 멋지게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땅을 소유하라는 것. 이는 경제적․사회적 청지기직과 창조세계의 청지기 직분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대체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이다. 셋째는, 열방을 축복하라는 것. 이는 세계적․초인종적․피조물적․우주적 차원의 복음 전도를 통해 이미 성취되고 있는 사명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선한 일이라면(죄 및 파괴 세력과 뒤섞여 있지만), 그것은 지구를 인간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피조물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삶을 향상시키고, 열방을 축복하는 일 같은 하나님의 선교적 의도에 포함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다.

직업 선택의 문제는 평생 계속되는 사안이다. 진로를 정할 때 고려할 요인은 다양하다. 개인적 열정, 동기, 재능과 은사, 환경, 강박 충독과 역기능적 요소,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등. 성경이 ‘안내’(guidance)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그것은 본래 이교적 아이디어다. 성경은 안내자를 제시하고 있지, 신의 뜻을 확정할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을 보여 주지 않는다.

직업 선택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역삼각형으로 그릴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 빚어 놓으신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핵심 동기’라 부른다.

먼저 ‘동기유발과 열정’이란 사항부터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님은 주로 우리의 마음을 통해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흔히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 분명해“라고들 말하는데, 이는 기독교 신앙을 아주 왜곡하는 태도다. 사실은 그 반대가 옳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성령에 깊이 잠겨 있다면, 보통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동기유발과 열정에 관해 알고 싶다면, ’내가 무슨 활동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가?‘하고 물어보면 된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즐겨 왔던 일은 무엇이고,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

다음으로 우리는 ‘은사와 재능’을 고려해야 한다. 이 둘은 서로 중첩되기도 하는데, 은사는 어떤 일을 위해 성령이 한시적으로 주시는 능력을 가리키고, 재능은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능력을 의미한다.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은사 및 재능과 더불어 고려할 사항은 ‘성격’이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은 나에게 무슨 일이 적합한지 그리고 내가 감당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다.

‘섭리’에 따른 ‘환경적 요인’도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출생 배경, 집안의 내력, 교육의 기회 등.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우리의 방향 감각을 크게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물’도 있을 수 있다.

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말씀’을 주시거나, 예언적 메시지를 가진 누군가에게 우리를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초자연적 말씀을 접할 때 우리는, 모세가 부름 받았을 때 했던 것처럼 진정한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직업 선택에 필요한 분별력을 얻으려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과의 교통을 계속하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열정, 당신의 관심사와 핵심 동기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독서와 적성 및 특기 조사, 인터뷰, 묵상, 일기 등을 통해 가능한 직업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또 당신을 잘 알고 있는 신자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당신이 소명이라고 느끼는 것-일반 소명과 특별 소명-을 포괄적으로 생각해 보고, ‘이게 바로 나한테 맞는 일이야’라든가 ‘이걸 꼭 하고 싶어’라는 심정이 드는 게 있는지 성찰할 필요도 있다. 또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비교해 보고, 당신의 결정으로 영향을 받을 사람들과 제약 요소들(가족에 대한 책임, 재정, 건강) 등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결정에 대해 시간을 두고 생각하라. 당신이 기혼자라면, 배우자와 의견이 일치될 때까지 함께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의논하고,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이 기대하는 바는 ‘될수록 문제를 빨리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됨을 이룩하는 것이다. 한 쪽 배우자가 아무리 하나님의 인도라고 확신하더라도, 그것이 둘 다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직업 선택과 관련하여 또 하나 고려할 차원은 장기적인 측면에 입각해서 보는 것이다.

직업 선택과 관련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그릇된 관념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다. 혹은 한 개의 계획이 아니라 전반부와 후반부에 하나씩 두 가지 계획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계획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전․후반에 대한 놀라운 계획 이상의 것을 갖고 계신다. 오히려 그분은 놀라운 목적을 갖고 계시며 거기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놀라운 목적이란 사람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만드는 일과, 이 세계를 새롭게, 완전히, 변모시키는 것이다.

계획과 목적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계획은, 집의 청사진처럼 조심스럽게 좇아야 하고, 만일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든가 ‘차선책’에 해당하는 제2의 계획으로 수습해야 한다. 보통은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하나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따라 어떤 목표점을 향해 카누를 저어가는 일과 같다. 우리는 계속 움직이는 중이다. 내가 실수하든 다른 사람이 실수하든, 요셉이 발견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것을 구속할 수 있는 분이다. 우리 인생에 차선의 반쪽이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차선의 목적이라는 것도 없다. 그리고 직업적 성결을 발견하는 문제도 인생의 전반부는 성공의 추구에, 후반부는 거룩함과 의미의 추구에 주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계속 발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직업 선택에는 실험 정신과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다. 왜 믿음이 필요할까? 그것은 우리가 행동이나 동기 면에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거듭해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의 신분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칼 바르트)

하나님을 지향하는 일꾼

어떤 일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그 일의 종교적 성격이 아니다. 그것은 첫째, 그 일 자체의 특성(하나님이 보낸 일)과 둘째, 일꾼의 특질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이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거듭 말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덕스러운 일에 관해 논할 수 있다.

사업상 거래를 할 때 사랑으로 할 수 있을까? 혹은 새 호텔을 설계할 때 믿음으로 할 수 있을까? 자동차를 팔 때, 공부를 할 때 소망으로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단연코 긍정적인 응답을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 일을 거룩하게, 하나님을 지향하도록,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믿음 -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

이 비유는 한 사업가가 먼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재산(달란트)을 여러 직원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25:15) 맡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중에 주인이 돌아와 보니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을 벌었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둘을 더 벌었다. 그들은 결국 두 가지 결과를 얻었다. 첫째, 그들은 더 큰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25:21,23).

둘째, 주인은 그들을 초대해 자기의 기쁨에 동참하게 했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5:21,23)

이는 일의 영성이 지닌 가장 깊은 차원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 곧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이 개발되고 땅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고 이웃의 필요가 채워지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그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악하고 게으르다는 악평이 내려졌다. 그 사람은 받은 달란트를 그냥 보관만 하고 있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책망을 듣게 되었는가?

먼저 그는 하나님에 대해 그릇된 개념을 갖고 있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25:24-25)

하나님을 가혹하게 거두는 분으로 여겨 무서워하게 되면 위험 감수를 할 수 없게 되고, 창의성과 사랑과 용서가 많은 선한 하나님을 믿게 되면 위험 감수를 즐겨하게 된다. 이런 하나님이라면 실패가 일종의 성공이 될 소지가 있다. 고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면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그 사람은 청지기직에 대해서도 그릇된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창조세계를 개발하고 활용하고 창조세계에 가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먼훗날 일어날 일로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의 막강한 통치가 임하기를 마냥 기다리면 되는 것으로 여겼다. 치열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현재 그 나라가 뚫고 들어오는 과정에 합류하는 게 아니라, 팔짱을 낀 채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의 믿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은, 그 위대하고 멋진 하나님이 실수를 용서하실뿐더러 실수를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투자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은 하늘에서 우리 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과 일을 거룩한 것으로,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 신분과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순종과 일의 근원이 되는 말씀과 믿음 때문입니다. - 루터

소망 - 열 처녀의 비유(마254:1-3)

열 처녀의 비유에서 지혜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혜로운 자들은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긴 기다림에 필요한 기름을 갖고 있었던 반면에, 어리석은 자들은 금방 주님이 찾아올 것으로만 생각했다. 북미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종말의 언어를 빌자면, 금세 현실에서 벗어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소망이 없이는 지체되는 것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이끌어 뜻 깊은 목표에 이르게 하실 것을 바라보며, 또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영구히 남을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바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여기에는 복음 사역은 물론이거니와 작은 부품과 식탁, 음식과 거래관계를 만드는 일도 포함된다.

사랑 -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

최후 심판 날 예수께서 돌아와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놓고 의인들을 향해, 자기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해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칭찬하신다. 그러고는 창세 때로부터 그들을 위해 준비된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모든 피조세계와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애로운 통치 아래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 예수께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은 악인들을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게 하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우리가 하는 일과 행동의 수혜자’라는 굉장한 사실이다. 그 날이 되면 그분이, “네가 나의 하수구를 고쳤고, 나의 기저귀를 갈았고, 나에게 차를 팔았고, 내 사무실을 설계했고, 내 회사를 경영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른바 일곱 가지 신체적 구제행위(우리의 신체 생활과 관련된 것으로서 몸으로 남을 돌보는 일)와 일곱 가지 영적 구제 행위를 열거했다. 이 행위들이 산업과 사업의 어떤 측면을 각각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 굶주린 자를 먹이는 일(식품 산업)

-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일(음료 산업)

-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는 일(의류업, 디자인)

- 묵을 곳이 없는 자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일(숙박업)

- 병든 자를 돌아보는 일(의료, 상담)

- 갇힌 자를 되찾는 일(경찰, 군대)

- 죽은 자를 묻는 일(장례업)

이러한 행위들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정점은 의인과 악인들이 놀라는 장면에 있다. 악인들은 “만일 우리가 먹이는 대상이 주 예수님인 줄 알았더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하고 말한다. 의인들도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고, 헐벗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았습니까?”하고 말한다. 이로 보건대, 그들은 예수의 유익을 위해 또 그분의 칭찬을 받으려고 알면서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무상으로 사랑을 베푼 것이었다. 단지 이웃이라는 이유로 베푼 것이지 어떤 ‘보상’을 기대한 게 아니란 말이다. 그것은 종교적 유익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얼굴 뒤에 예수님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도 아니다. 사랑은 그저 이웃을 보고 베풀 뿐이다. 바로 이것이 어떤 직업이든 거룩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하나님을 닮은 성품

직업적 성결은 동기와 관련이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이 그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성품과도 관계가 있다. 교부들은 하나님이 인간이 된 것은 우리를 작은 신들로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더욱 ‘자기 아들 예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이다(고후 3:18). 이제 거룩함이 지닌 이와 같은 측면을 살펴보자.

바울은 갈라디아에 보낸 편지에서 육체의 행실들과 성령의 열매(단수명사)를 대조한다. 사업(일상)의 영역에서도 육체의 행실들이 우리 주위에 그리고 우리 안에 엄연히 현존하고 있다(갈 5:19-21).

- 음행, 더러움, 호색 : 성적인 착취, 희롱, 차별

- 우상 숭배 : 일에 쫓김, 일중독, 탐욕, 물질주의

- 마술(술수) : 권력, 영향력 조종

- 원수맺음, 다툼, 시기, 분냄 : 물고 뜯는 경쟁, 질투와 욕심을 부추기는 것

- 술 취함, 방탕 : 술을 이용해서 사람을 조종하거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 섹스를 이용해서 물건을 팔거나 고객을 유치하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삶에 등을 돌리고 성령과 동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와 비슷한 성품-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을 조성하신다. 이런 성령의 열매는 순간순간 하나님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자랄 수 있다.

그러므로, 직업적 성결은 하나님이 보낸 일, 하나님을 지향하는 일꾼, 하나님을 닮은 성품으로부터 온다. 여기서 하나의 아이러니는, 우리가 거룩하다면 혹은 점점 더 거룩해지고 있다면, 정작 우리는 그걸 모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설사 그것을 안다 해도 적어도 자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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