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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토트, 제자도, 6장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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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건 조회 5,906회
작성일 11-03-2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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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자료 / 정리 : 정한신

존 스토트, 제자도

6장 균형

우리는 누구인가? 그것이 문제다. 베드로전서 2:1-17이야말로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가장 다양하고 균형 있게 설명하는 본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 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으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사도는 일련의 다양한 은유들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아기

베드로가 편지의 수신자들을 갓난 아기에 비유한 이유는 그들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벧전 1:23). 그렇다면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거듭남을 세례를 받을 때 일어나는 일로 보느 것은 옳지 않다. 세례는 거듭남으 외적으로,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예식이다.

거듭남이란 사람의 인격에 성령이 가져다주시는 깊은 내면의 근본적 변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명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여기서 요점은,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지식을 통해서 거듭난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갓난아기들같이", 약하고 미성숙하고 연약하며 무엇보다 성장이 필요한 갓난아기들처럼 다시 태어난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은 우리가 지식과 거룩과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고 쓰고 있다(2절). 이와 함께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1절) 버려야 한다고 한다. 이는 아기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일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자라는가? "갓난 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엄마의 젖이 아기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처럼, 분명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매일의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그분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 무엇도 매일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갖는 그 시간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확보하고 견고하게 지키십시오."(윌리엄 템플)

베드로가 제시하는 두 번째 이미지는 산 돌(4-8절)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교회 건물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 건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 건물을 이루는 돌들은 백성이므로, 베드로는 그것들을 '산 돌'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교회에 속하게 되는가?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가시적이고 외적인 교회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의 구성원이 되는가?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한다(4절). 그리스도야말로 이스라엘이 거부했지만 하나님이 택하셔서 보배롭게 여기신 산 돌이시다.

이 모든 것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돌이 건물에 속해 있으며 건물에서 떨어져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의 정강이를 쳐서 넘어뜨리는 걸림돌인가, 아니면 그 위에 우리 삶을 세우는 기초석인가?

우리는 공동체인 교회, 하나님의 건물이 산 돌들인 교회에 대한 비전을 되찾아야 한다.

제사장

베드로는 우리를 하나님을 예배할 의무가 있는 거룩한 제사장에 비유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5절)과 "왕 같은 제사장"(9절)으로 만드셨다고 쓴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과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일이 제사장직에만 엄격하게 제한된 두 가지 특권이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사장과 백성 사이의 이러한 구별이 폐지되었다. 이전에 제사장들에게만 제한되었던 특권을 이제 모두 공유한다. 모두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나아감을 누린다(히10:19-22).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모두 예배라는 신령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다.(만인제사장직)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베드로전서 2:5)

하나님의 백성

벧전 2:9-10을 보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사도는 교회를 한 나라 혹은 백성, 실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 혹은 하나님의 소유에 비유한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주신 담대함으로, 그 말을 이스라엘에 적용한 출애굽기로부터 그 표현을 가져와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재적용한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를 따르는 여러분은 이스라엘이 예전에 그랬듯이 '거룩한 나라'다. 그것도 지금은 국제적인 나라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택하셨는가? 그리고 왜 우리를 택하시는가?

그것은 그분의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복음을 독점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탁월하심, 전능하신 행위)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우리만 갖고 있을 수는 없다!

거류민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거류민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시민권이 없는 이들이고, 나그네는 집이 없는 이들이다.

베드로가 편지의 수신자들을 이런 단어로 묘사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더하여 이 표현은 그들의 영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다시 태어났으므로 어느 정도는 '이 땅의 거류민과 나그네'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두 나라의 시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우선적 시민권은 하늘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지만 거룩한 하늘의 '시민권'이라는 개념은 종종 오용되어 우리가 세상적인 책임에서 손을 떼는 구실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베드로는 진리에 대한 이러한 곡해를 피하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이 땅에서 시민으로 사는 의무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양심적인 하나님의 종들로(12-17절) 제시한다. 선한 삶을 살아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선한 행실을 볼 수 있도록 하라고 권한다.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복종하고, 선을 행함으로써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라고 권한다. 또 자유를 오용하지 말되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라고 권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살며, 동료 신자들, 하나님, 권세자들 등 모든 사람을 합당하게 공경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먼저 하늘에 속해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거류민이며 나그네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다.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사실은 삶의 태도에 강한 도전을 준다. 먼저 돈과 소유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 우리는 인생을 알몸이 되는 두 순간 사이의 순례 여행으로 보기 때문이다. 비극과 고통에 대해서 영원의 시각으로 보게 된다. 특별히 유혹과 죄에 대한 태도도 바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진로를 막는 모든 것을 삼가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설 준비를 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균형

베드로가 제자를 묘사하기 위해 모아 놓은 여섯 가지 은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성장해야 하는 갓난 아기

-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산 돌

- 예배드려야 하는 거룩한 제사장

- 증거해야 하는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

- 거룩해야 하는 거류민과 나그네

- 시민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종

이것이 포괄적이고 균형잡힌 그림이다. 이 여섯 가지 의무는 각각 균형을 이루는 세 쌍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우리는 개인적 제자들로 자라는 일과 공동으로 교제하는 일 둘 다로 부름받는다. 우리는 개인적 책임과 공동체적 책임 둘 다를 강조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예배와 일 둘 다를 하도록 부름받는다. 제사장들로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로서 우리는 세상에서 증인의 역할을 한다. 교회는 예배하고 증거하는 공동체이다.

셋째, 우리는 순례자와 시민 둘 다로 살아가도록 부름받는다.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제자이면서 교회의 구성원이며, 예배자이면서 증인이며, 순례자이면서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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