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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 2.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작성일 2018-03-21 15:21 작성자 정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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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두란노, 2013)

Part 1. 일, 하나님의 황홀한 설계

정리 : TGIM 울산점 권은선/정한신
 
Chapter2 –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곳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6-27)

  신들이 일을 시키려고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동을 축복으로 보지 않았다. 일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 인간은 활동적인 생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사색과 명상에 충실하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노동은 최상의 삶을 사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일은 세상에 매인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 신들이 지배하는 철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걸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스인들은 이 땅에 사는 한 노동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모든 일이 동등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몸이 아니라 정신에 유익한 일이 더 고상하며 덜 동물적이라고 믿었다. 
  리 하디(Lee Hardy)를 비롯한 여러 크리스천 철학자들은 “노동과 일이 차지하는 위치를 바라보는 그리스인들의 자세는 기독교회의 사상과 행위규범 양면에 걸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우리 시대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물려받은 건 이런 사조가 듬뿍 배어든 노동관이다.
  일은 필연적으로 악하다는 인식부터가 그렇다. 그 관점에 따르자면,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살리며 다른 이들에게 임금을 주어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는 것만이 선한 일이다. 둘째로, 지위가 낮거나 수입이 적은 일은 인간의 존엄을 해친다고 믿는다. 이런 관념이 가져오는 폐단 가운데 하나는 너나없이 자신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은사와는 맞지 않더라도 더 높은 봉급과 특혜를 주기만 하면 얼른 그 직장에 들어간다.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천하게 보는 노동을 하기보다는 일을 놓는 쪽을 택하고 있으며 대다수 서비스 직종과 육체노동이 이 범주에 속한다는 점도 큰 문제다. 이른바 식자층에 드는 이들이 경비원, 가사도우미를 비롯해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업신여기는 듯 처신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일은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고귀하다

  성경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손으로 하든, 머리로 하든 일이란 일은 죄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증표로 인식한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식물과 짐승들은 그저 ‘충만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따름인데 유독 인간은 명확하게 일을 부여받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할 일을 구체적으로 받았다. 창세기 1장 26절이 ‘다스리라’는 명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런 통치 행위가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규정해 준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며 일종의 부섭정(vice-regent)으로서 나머지 창조 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았다. 주님이 창조 과정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혼돈스러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며, 인간 본성을 사용하여 창의적으로 문명을 세우고, 친히 지으신 만물을 보살피는 일들을 나눠 맡게 된 것이다. 창조주가 인간을 지으시며 기대하신 가장 큰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일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셨고 인간이 주님을 대신해서 하는 행위이기에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일 자체가 존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이 고귀하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정원사였으며 신약에서는 목수였다. 주님이 일에 부여하신 엄청난 존엄을 담아내지 못할 만큼 하찮은 일은 없다. 몸으로 하는 단순한 노동도 신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활동과 조금도 다름없이 ‘하나님의 일’이다.

  일은 사람을 존엄하게 만든다

  어떤 일이든 존엄성을 갖는다. 우리 가운데 있는 창조주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살피도록 맡기신 세계가 주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세상은 ‘만물이 부활하여 새롭게 되는 날’(마 19:28, 롬 8:19-25) 순결해지고 회복되고 비할 데 없이 향상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전조다. 물질과 영혼이 영원토록 통합된 상태로 함께 사는 꿈을 제시하는 종교는 오로지 기독교뿐이다. 
  크리스천들은 본질적으로 노동을 가벼이 생각할 수 없으며 물질세계에 깊이 개입해야 마땅하다. ‘세상적인’ 일들도 목회를 비롯한 이른바 ‘거룩한’ 일들과 똑같은 존엄성과 고귀함을 갖는다.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지음받았으며 지위나 급여와 상관없이 일은 인류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이 원리를 제대로 깨닫고 나면 은사와 열정을 따라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어도 더 많은 기회에 대해 긍정적일 수 있다. 체면과 우월감이 사라지게 된다. 질투나 상대적 박탈감도 사라지게 된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와 개척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확신과 만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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