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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하이벨스 등, 크고자 하면 내려가야 합니다, 섬김(6-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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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윗
댓글 0 건 조회 4,945 회
작성일 08-02-1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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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부산대 앞 모임] 2008년 2월 19일 화요일 / 정리 : 정한신


빌 하이벨스 등, 크고자 하면 내려가야 합니다, IVP, 2007


섬김


6. 끝없이 놀라운 사랑


  인간은 말할 수 없이 다양하며 취미와 기질과 관점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 모든 다양성의 한복판에 우리를 하나로 묶는 이상하게 낯익은 특징이 하나 있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관심사가 하나 있다. 바로 이기심이다. 즉 ‘나 먼저’의 사고 방식이다. 이 뿌리 깊은 인생관은 행복을 자기 탐닉과 동등하게 여긴다. 그것은 권력, 명성, 돈, 스릴이라는 도구로 성공을 측정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타락의 표출인 이러한 이기심을 예찬한다. 탐욕이 급기야 주목할 만한 우상으로 승격되면서, 가치, 도덕, 정의감에 기초하여 내려지는 결정은 갈수록 적어졌다. 대신 대답은 욕구에 싸여 있다. 이것이 나의 필요를 채워 줄 것인가? 나의 성욕을 만족시켜 줄 것인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나의 갈증을 씻어 줄 것인가? 나의 권력욕을 채워 줄 것인가? 핵심 단어는 ‘나’이다. 마음껏 쾌락을 탐하고 물리도록 채우고 좇으라는 것, 내가 더 많이 가질수록 나한테 더 좋다는 교훈을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웠다.

  ‘나 먼저’의 사고 방식은 우리 사회를 내부 붕괴 직전까지 몰아갔다. 현실 도피, 성도착, 에이즈, 혼외 임신, 폭력, 정치 스캔들, 가정 붕괴는 모두 우리 현대의 광기인 나밖에 모르는 병의 증상들이다.


잃어버린 개념


  ‘종’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라. 과거에는 누군가를 섬기는 일은 명예로 통했다.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보다 더 높은 대의는 없었다. 그러나 자기 표현과 개인주의에 영합하는 사회에서 ‘종’은 사실상 우리의 어휘에서 사라졌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이제는 기이한 현상으로, 별종 인간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삶을 중요하게 하는 것들-우리의 가치관, 공동체 의식, 온전함-이 곧 우리가 파괴해 온 것들임을 우리는 서서히 깨닫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렇게 발견되는 자신이 비참한 모습이어서 상당히 놀란다. 순전한 이기심은 결국 자멸의 길임을 우리는 깨닫는다.


하나님의 논리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느리게만 가능하다. 몸에 깊이 밴 ‘나 먼저’의 방식들은 하룻밤 사이에 깨질 수 없다.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치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실로 역설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진리를 가르치셨다. 인간의 이해력과 하나님의 지혜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마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고난당하고 죽어야 할 것을 방금 막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런데 베드로는 화를 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꾸짖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원수 사탄이라고 부르시며 물러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수년간 제자들에게 ‘나 먼저’의 태도는 생명의 길이 아님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그분은 그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셨다. “나는 섬기러 왔다. 나는 권력의 줄을 조종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대의의 꼭두각시로 전락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내주러 왔다.” 그분의 전 생애는 섬김과 이타심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분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최후의 본보기가 될 것이었고, 그분은 제자들과 특히 그분의 오른팔인 베드로가 그것을 알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여전히 권력, 출세, 특권이라는 세상의 가치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사욕이었다.

  ‘나 먼저’의 사고 방식에 대해 예수님은 그것이 지옥에서 온 병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한 그것은 우리 삶에서 만족을 고갈시키고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잃게 할 것이다.

  그런데 충분히 근본적이고 유일한 대책은 죽음이다. 즉 자아에 대한 죽음이다. ‘나 먼저’의 사고 방식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분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잃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런 죽음은 무엇을 뜻할까?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우리 삶을 자원하여 내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또 다른 역설이 있다. 이렇게 자아에 대해 죽을 때-이렇게 베풀고 섬길 때-우리는 자신이 가장 원하던 깊고 개인적인 만족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만족이란 절대로 자기 만족을 통해서 오지 않는다.”

  “정말 살고 싶거든 너 자신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 신실하고 겸손한 섬김에 자신을 드리라. 그러면 기쁨을 얻을 것이다.”


눈을 떠라, 베드로야!


  예수님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최고의 현장 교육을 해 주셨다. 제자들이 발을 씻지 않은 채로 식탁에 앉았을 때 저녁 식사가 나오자 그들 중 누가 가장 큰가를 두고 토론이 벌어진다. 예수님은 마음이 무너지신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하나씩 씻기고 닦아 주심으로써 참된 섬김의 자세를 교육하신다.

  베드로는 처음엔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거부하다가 예수님의 발 씻기심이 없으면 그분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씀에 자신의 온 몸을 씻겨 달라고 한다.

  예수님이 실로 이런 베드로의 어깨를 잡고 흔드시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분은 이렇게 말하고 계신 것이다.

  “눈을 떠라,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알려주려는 이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한 너는 나를 따르는 자가 될 수 없다. 내 구속 계획에서 너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된다. 베드로야, 너는 종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제 빵을 들어서 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기에 이른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쏟는 내 피다.” 그분은 최고의 섬김의 행위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다. 그분은 제자들이 섬김의 참뜻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다.


7. 앤지 가버 : 80세에 나바호 보호 구역에서


“상대를 사랑하면 내가 그의 종이 되고 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 앤지 가버


  앤지 가버는 뉴멕시코 주 ‘형제 나바호 선교회’라는 척박한 곳에서 상처와 질곡이 많은 나바호 부족을 매일매일 한 사람씩 섬겨왔다.

  그녀는 삶의 초점을 소유물에 둔 적이 없다. “나는 소유물만 갖는 것은 원치 않아요. 소유물을 사랑하면 사람들을 이용하게 되죠. 나는 집에 살림살이를 들여놓는 데 관심이 없어요. 이미 충분함 이상입니다. 성경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했지요.”

  나바호 부족 보호 구역에서 수십 년을 보내면서 앤지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자라가며 삶이 변화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진정한 회심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환경이 이렇다보니 앤지는 자신의 가치와 목적이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나와야 함을 배웠다. “시선을 주님께 두어야 합니다. 자신의 기쁨이 주님에게서 와야 하지요. 문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되느냐 여부가 아닙니다. 관건은 이것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위하고 있는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일하거나 섬길 수 없겠지요.”

  앤지가 깨달은 바 자신의 삶을 바칠 가치가 있는 것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오직 사랑 뿐이다.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큰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에게 축복이 되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하면 내가 그의 종이 되고 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죠. 그들에게 신경을 써 주는 것 그리고 내가 신경을 쓰고 있음을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내 말에 귀를 열지요. 내 말을 듣게 됩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사랑을 하는 우리를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다. 그리고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내 스스로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랑을 받고 있는 그들이 바로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놀라움으로 가득찬 사랑이다.


< 일상생활의 영성에 관한 기도문을 만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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