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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예배 : 제1장 일, 복인가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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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495 회
작성일 08-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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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패터슨 <일과 예배><?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장 일, 복인가 저주인가

요약 : 이창용

 

당신은 왜 일하는가? 당신에게 일이 의미하는 것은 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사람됨에 필수적인 것

이 물음에 대한 성경의 한결같은 대답은, 일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요, 선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하라고 명령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일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창세기1:28에서 먼저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첫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에게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창2:15) 하셨다. 이처럼, 일은 하나님의 낙원에서까지도 중요한 위치 곧 중심부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성경이 일을 하나님의 저주로 즉 죄에 대한 형벌로 가르친다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일하라는 명령은 타락 이전에 선물과 복으로 주어졌다. 죄와 형벌이 들어오기 이전이지 결코 그 후가 아니다.

 

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복이다. 더 나아가서 일은 우리의 사람됨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성경은 감히, 일은 거룩한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오랫동안 매우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에 있다.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과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는 이 두 말씀은 반드시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이 둘은 서로를 수식한다. 하나님을 닮는 것은 하나님처럼 땅을 다스리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땅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창세기1장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은 하늘과 땅, 산과 호수, 숲과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을 만드시는 일꾼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일꾼으로 만드셨다! 바로 이구절에 감동을 받은 종교개혁자 울리히 쯔빙글리(1484-1531)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꾼만큼이나 하나님을 닮은 것은 이 우주에 없다."

 

 

피조물의 청지기들

청지기는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한 말이다.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요즘말이 없기 때문에 쓸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다. 청지기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나 재산을 위탁받아서 소유주가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그 재산을 관리하는 책임을 진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가 관리 경영하도록 위탁받은 재산은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계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과 맺는 관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자에게 고유한 재능과 은사를 주셨으며, 시간과 공간의 일부도 나누어 주셨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소유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들을 경영할 책임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은행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은행을 경영하며, 농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농사를 짓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격 전체로 그 분의 선하심을 드러내야 한다.

 

 

진정한 존엄성

사람의 존엄성은 소유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이다. 시편24:1의 말씀대로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다. 그 '충만한 것'에는 우리의 시간과 물질, 능력과 경력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의 소유가 우리 자신의 것이며 남는 것이 있어야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하나님이 그 분의 것을 우리에게서 찾으신다면 우리가 다 써 버리기 전에 찾으시지 어찌 써 버린 후에 찾으시겠는가!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6:7)라고 말했다. 우리는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다시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엄성은 우리가 소유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가지고 우리가 행한 일로부터 온다. 다시 말해 우리의 존엄성은 피조물의 청지기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일과 결혼

결혼과 같이 우리의 사람됨에 본질적인 것에서도, 하나님의 청지기로 일하라는 부르심에 비추어서 그 의미의 일부를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하게 하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 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판단하셨다. 사람에게는 돕는 자가 필요했다. 동물들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으나 그러한 가능성은 곧 기각되었다. 성경의 표현대로 "적당한 돕는 자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창2:20,표준새번역).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셨다. 아담이 일할 때 돕는 이가 필요했으므로 하와를 지으시고 혼인 제도를 만드셨다.

 

성경을 보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는 대신 서로의 어깨를 대고 같은 짐을 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을 말해 준다. 창세기 2장을 보면 이를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이 나오는데, 그것은 매일의 일상을 넘어 영원에까지 미친다. 그리스도인에게 혼인의 깊은 의미는, 결혼을 제자됨의 한 행위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과 섬김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어떤 젊은 커플의 결혼식에서 바로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권면했다. "여러분은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행복의 천국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결혼함으로써 세상과 인류를 향한 책임을 맡는 부서에 임명받게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결혼에는 개인적인 성취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부부 관계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고 다시 그들을 통하여 밖으로 퍼져나가 다른 사람들에까지 미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오히려 감사하게도 개인적인 성취는 좀더 넓은 활동의 부산물로서 주어지게 될 것이다.

 

 

사람됨의 신비

우리의 사람됨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거기에서 한걸음 물러나 계시면서 자신을 낮추사 우리를 당신의 파트너로, 당신의 동업자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물을 주시고 그것을 개발할 책임을 맡기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주시고, 문화를 창출하라고 부탁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원자재들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것은 장인의 기술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떤 것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완전한 우리의 것은 없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그를 의지할 때만이 우리의 것이다. 마틴 루터는 "암소의 젖을 짤 때도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일하신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생각을 그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일이다! 밖에는 세계가 펼쳐져 있고 거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접시 닦기, 엔진 오일 교환, 은행 잔고 맞추기, 기저귀 갈기, 원자 분리, 우주 비행선 발사 등 우리는 그 일을 생각해 내고, 손과 연장을 사용하여 그 일을 할 수 있다.

 

단순한 잡일부터 아주 힘들고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은 경이이며, 기적이다. 그 일들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처럼 일하도록 즉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 땅을 다스리라고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복이다. 일하는 것은 우리의 사람됨에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일하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일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일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일은 원래, 우리가 살기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도로시 세이어즈는 쓰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일하는 자로 만드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일을 복이 아닌 저주로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 그 자체가 저주는 아니다. 오히려 죄 때문에 일이 저주의 피해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본래 의도는 우리를 일하는 자로 만들어서 하나님처럼 되게 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시고 있는 것처럼 일하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맛보도록 하는데 있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지음 받았다.

 

성경은 일에 귀천이나 차별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일도 천하지 않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은 가치 있는 일이다. 사울은 왕이 된 이후에도 소를 몰고 밭을 갈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가 지녀야 할 존엄성에 조금의 누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청지기라는 우리의 소명에 비추어 볼 때 보수는 대단히 많아도 그 가치는 보잘 것 없는 일들이 있다.

 

만약 참으로 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을 정립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내가 이 일로 얼마나 벌 수 있을 것인가?"를 묻지 않고 "이 일이 나의 은사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줄 것인가?"를 묻게 될 것이다.

 

세이어즈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즉 일에 쏟아 부은 노력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이익이나 대가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럿은 일을 하는 올바른 목적은 아니다. 일을 하는 올바른 목적은 하나님의 동역자와 청지기가 되어 이 땅을 다스리라는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더 좋은 일들!

일하기를 중단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그저 그런 유희보다 훨씬 유익이 있다. 실제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행하는 일들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자 영예이며, 하나님의 온갖 피조물들 중에서 다른 모든 피조물과 우리를 뚜렷이 구별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시8:3-4)

 

사람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이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 앞에서 사람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없는 것보다도 못해 보인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람을 청지기로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옷 입히신 하나님을 엄청난 경이 가운데 찬양할 수 있었다.(시8:5-9)

 

일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과 존귀이며 그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이다. 위의 시편에 따르면,하나님의 이름의 엄위와 영광이 지상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서 그분처럼 이 땅을 다스리고 돌보는 사람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위대한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생도 중 한 제자에게 했던 것과 아주 흡사하다. 다빈치는 몇 주에 걸쳐서 아주 고생하면서 화폭에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거의 완성된 그림은 탁월해 보였다. 그림의주제도 아주 세심하게 선택되었으며 레오나르도의 독특한 관점과 신중하게 선택된 색조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림 그리기를 중단한 다빈치는 한 생도를 불러 붓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자 네가 그림을 끝마치도록 해라." 학생은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시킬 자격도 없으며 그럴 능력도 없다고 항변하였다.

그러자 다빈치가 말했다. "내가 해 온 작업이 그대가 최선을 다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지 못했단 말인가?"

 

하나님이 하신 그 거장으로서의 작업이, 그의 동역자인 우리가 최선을 다하도록 우리의 영감을 일깨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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