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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예배 : 제7장 위대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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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119 회
작성일 08-02-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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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위대한 드라마

요약 : 정한신

 

(1) 예식적인 드라마

 

1) 예식(禮式) : 일정하게 고정된 형식의 말과 행동과 상징

2) 예식적 드라마

   ① 개념 : 고정된 형식의 말과 행위와 상징을 사용하여

             이야기하는 것

   ② 목적 : 이야기를 듣는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관과

             확신을 긍정해주고 확증해주는 것

 

 

(2) 예식적 드라마로서의 예배

 

1) 성경의 예 - 하늘에서의 예배(요한계시록 5장)

 

   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일곱 도장으로 인봉한 책을

      개봉하실 유일한 분 예수님에 대한 묘사와 찬양

      (유대 지파의 사자 혹은 어린 양으로 묘사됨)

   ② 예식적 드라마로서의 예배 -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

      하고 감사하며 경배하는 것

 

  성경적 예배의 전형은... 하나님이 행하셨으며 지금도 행하고 계시며 앞으로 행하실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제하고 여러 모양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구술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2) 성경적 예배에서의 올바른 역할 인식

   - 누가 공연자이며 누가 관객인가?

 

   ① 기독교의 예배에서 하나님은 관객이며 회중은 공연자가 된다. 그리고 앞에서 인도하는 자들(설교자나 성경 봉독자나 찬양대)은 격려하는 자들이다. - 죄렌 키에르케고르

 

   ② 올바른 기독교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시다.

 

 

(3) 예식적 드라마로서의 예배 회복을 위하여

 

1) 역할 전도의 극복

 

  전형적인 주일 예배에서 전형적인 교인들은 그들 자신이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배를 인도하는 설교자와 성가대 등의 사람들이 예배를 공연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이런 구조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어디인가?

  자신들을 청중으로 삼음으로써 그들은 예배에서 오직 하나님을 위해 마련된 자리를 감히 차지하려고 한다. 성경은 이런 역할 전도를 신성모독이라고 한다. 이는 모든 죄악들 중에서 가장 심한 대역죄이다. 오늘날 기독교 회중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의 대부분은 사실상 아주 교묘하고 사악한 형태의 신성모독이다.

 

2) 공연으로서의 듣는 행위 - 설교에 대한 태도

 

  그렇다고 해도 설교의 경우는 교인들이 청중으로서 다른 사람의 공연을 정당하게 듣는 경우가 아닌가? 그러나 설교의 경우도 듣는 방식은 일종의 공연(performance)이다. 듣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듣는 것은 그 메시지와 말하는 사람에게 가담하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가 사용한 은유와 이것을 결합하여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스스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키에르케고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와서 그것을 재 보고 그 속성을 연구하기만 할 뿐 그 안을 들여다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그 말씀이 나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나에게 말하고 있다"고 계속 되뇌이는 것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따라서 설교자가 어떤 식으로 설교하는지를 보겠다는 태도로 듣는 것은 설교의 효과를 완전히 죽이는 것이다. 설교를 들은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설교자가 어떻게 설교를 공연했는가?"가 아니라 그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어떻게 듣는 것을 공연했는가?"이다

  (*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 가장 위대한 이야기)

 

3) 자신을 잊고 주님께 몰입하는 것

   - 공허한 채로 예배에 나아왔을 때의 태도

 

  세상에 짓밟혀 마음이 메마르고 하나님께 냉담하고 숱한 상처를 입은 채로 예배에 나올 때 우리는 "제가 텅 빈 채로 나왔으니 나를 채우소서"라는 식의 태도에 빠지기 쉽다.

  공허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채워 주기 원하신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채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정당하다. 그러나 바른 기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주님,  제가 주님께 저의 갈한 마음을 채워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성령으로 저를 해방시키사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주님께 대한 경배와 감사에 몰입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의 치유의 역설은 그 분을 위해 자신을 잃을 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이 날 위해 무엇을 해주실 것인가?"를 묻지 않고,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묻는 자들에게, 복을 받겠다는 갈급함을 버리고 예배하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엄청난 복을 주신다.

 

 

(4) 예배에서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self-forgetfulness)은 참된 기독교 예배의 목표이다. C. S. 루이스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시험하는 가장 큰 테스트는 스스로를 작고 더러운 대상으로 간주하거나 온통 잊어버리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할 때 자기 인식은 강렬하게 부수어지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이 사하여졌음을 알게 됨으로 말미암는 자기 잊음으로 대체될 수 있다. 가장 먼저는 스스로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모든 참된 예배의 목표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고백서가 말하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롭게 한다는 것과 즐기는 것은 분리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부르심은 사실은 하나님을 충분히 맛보고 누리라는 초청과 다름없다.

 

 

(5) 일에서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

 

  자기 망각은 예배의 목표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의 목표이기도 하다.

  예배와 일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다. 예배는 성소의 예배 의식이며 일은 세상의 예배 의식이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예배 의식에 틀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성소의 예배 의식이다. 모든 참된 예배의 목표가 되는 바로 그 자기 잊음의 사랑과 경배와 감사가 모든 참된 기독교적인 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예배자들과 같이 좋은 일꾼들은 일하면서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인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이 일을 할 때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가?"이다.

 

 

(6) 당신의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라!

- 선한 일을 탁월하게 수행하라!

 

  도로시 세이어즈는 "잘 수행된 선한 일만이 기독교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그 일이 선한 일이라면 그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일하는 자의 최우선적인 의무는 그 일을 잘 섬기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에 만족한다면,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최선의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전적으로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복음 전파만큼이나 목수일을 탁월하게 섬긴 것도 하나님을 섬긴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예에서 잘 드러난다.

 

 

(7) 당신의 일로 하나님을 섬기라!

- 집중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

 

  시몬느 베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비추어 본 학교 공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에서 기도란, 방해받지 않고 산만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학교 공부도 똑같은 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즉 공부할 때도 방해받지 않고 산만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업이나 직장에서의 일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집중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삶이 거룩하다. 크건 작건, 중요하건 시시하건 간에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대한 섬김으로서 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은 오로지 이차적이고 부차적일 뿐이다.

일에 대한 이같은 생각은 일의 의미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것과 상충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일의 목적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며,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혹은 직업은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도 듣는다. 이런 생각은 일의 중심에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아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야망을 두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고용주들이 급료를 지급하면서 하라고 하는 일이 선한 일이라면 그들에게는 우리가 그 일을 할 때에 우리의 온전한 성실함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최소한이 아니라 최대한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일은 일종의 예배이다. 그 일을 통하여 우리는 일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섬긴다.

 

 

< 일상의 영성과 신학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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