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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하나님의 세계 - 제1장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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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095 회
작성일 08-02-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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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부산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세 번째 모임(2006.5.11.목 부산대 법학연구소)

 

현실, 하나님의 세계

1장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1)

 

▲ 창조의 동네 탐험하기

  ○ 창조에 대한 우리의 순전한 반응 - 경이로움으로 인한 감사!

     "Thank you, God!"의 영성 → 창조의 참 영성으로 가는 발판

 

  우리는 아침마다 자신이 만들어 내지 않은 세상을 맞이하며 눈을 뜬다. 하지만 우리 삶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삶으로 축소되어 우리는 마치 몽유병자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계기를 통해 정신을 차리고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굳이 무슨 일이 생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수 있는데, 왜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 모든 것, 즉 삶에 대한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감사다. 삶에 대해서, 창조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는 순전한 경이는 그것에 대한 반응, 즉 감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그 존재의 본질은 서로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기에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 기적과 그에 대한 경이로 탄성을 지르게 된다.

  경이로움이야말로,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언제나 능가하는 삶, 우리의 계산을 언제나 초월하는 삶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언제나 넘어서는 삶에 대해 기대감으로 눈을 크게 뜨고 창조의 영성을 탐험하러 들어가는데 유일하게 적합한 발판이다.

 

▲ 케리그마 : 예수님의 탄생

  ○ 비인격적 창조와 인격으로서의 창조 - 케리그마로서의 “예수님의 탄생”

  창조 자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를 받아들이되, 종종 그저 ‘자연’이라고만 이름을 붙이고, 마치 그 의미가, 그 ‘영성’이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양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는 인격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다.

  기독교의 성경은 하나님이 이름을 가진 한 인격, 즉 예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완전하게 계시하셨다고 한다. 예수님의 탄생 안에서 인간의 창조와 모든 창조는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 되며, 창조는 삶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우리 삶에 필요한 조건이 된다. 이것은 참으로 복된 소식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복된 소식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공적으로 선포되는 어떤 내용이 역사적 실재 안으로 선포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창조를 받아들이고, 창조 안으로 들어가고, 창조에 참여하는데 그리고 단지 창조를 사용하기만 하거나 창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창조를 살아내는 데 케리그마의 초점을 맞추게 해 준다.

  ○ 예수 그리스도, 창조의 비밀을 여는 열쇠, 우리의 출발점

  창조를 믿는 행위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 즉 하나님이 만드신 것과 만드시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의 구경꾼이 아니라 창조의 참여자다. 무엇보다 우리는 단지 태어나는 것만으로 참여자가 된다. 모든 탄생이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독교적 삶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고 계신 일 속에서 사는 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시다. 또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다. 임마누엘이시다. 칼 바르트는 “우리는 모든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비밀을 여는 열쇠임을 입증했다”고 한다.

  ○ 모든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다가서는 우리의 최우선 통로

  탄생, 모든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다가서는 우리의 최우선 통로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 자신이 창조의 현장에 몸소 계시고 완전히 동참하신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그 초점을 유지시킨다. 이것은 참으로 복음이다. 창조 그 자체가 케리그마적이다. 그리고 모든 탄생은 선물로 주어지는 삶 그 자체의 계시이자, 우리와 함께하는 그리고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의 생명인 예수님의 탄생이 가지는 경이를 다시 경험하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창조의 참여자로서 살아간다.

 

▲ 위협 : 영지주의

  ○ 영지주의의 내용

     - 지극히 인간적인, 날 것의 이야기인 복음 보다 ‘더 영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위협

 

  우리 영혼은 태생적으로 기저귀와 은행빚과 세금과 하찮은 집안일을 경멸하고 다른 무언가를 깊이 동경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좀더 고상한 것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계발해야 하는 난해한 사상과 섬세한 감정과 세련된 희열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대교회부터 예수님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묵시적 이야기가 남발되었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는 성육신이라는 견고한 역사적 사실, 하나님의 완전한 자기 계시로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 사실은 천박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려진다. 좀 더 세련된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즉, 예수님의 몸은 진짜 살과 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잠시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그 몸에서 빠져나가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잠시 동안만 살과 피를 가진 그리스도의 역할을 했던 것이고, 그 후에는 순전히 영적인 영역으로 돌아가신 것이라는 것이다.

  ○ 영지주의의 악영향

  영지주의의 해석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필요한 기간만큼만 우리의 물질성과 지역성과 가족 등을 참아내면 되고, 더 이상 사물이나 사람에 대하여 진지하게, 영원성이나 하나님과 연관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이원론) 즉, 모든 종류의 물질성과 일상성을 우리 삶의 가장자리, 기독교적 삶의 가장자리로 밀쳐놓아 버려도 좋다는 것이 된다.

  또한 영지주의적 삶은 우리가 영적 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 영지주의의 바이러스를 지니고 기독교 복음의 건강을 위협하는 5가지 요소(필립 리)

1. 우주는 거대한 오류이며, 창조세계란 우리의 진정한 영혼에는 낯선 것이며, 참 하나님은 창조세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셨고 현재도 무관하시다는 식의 발상

2. 비밀스런 영적 지식은 공개된 것이 아니며 조직 내의 전수와 직관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태도. 즉 특정한 영적 적성을 계발하고 키워야 한다는 것.

3. 도피주의로의 귀결. 즉 창조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 안으로 도피

4. 영적 엘리트주의. 즉 비밀스런 지식을 전수받아 도피주의적 삶을 사는 그룹들

5. 각 사람은 이런 삶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사상이나 이야기나 기술도 짜맞출 자유가 있으며, 어떤 기관이나 권위도 ‘영지자’(깨달음을 얻은 자)에게 간섭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

  ※ 기독교는 선한 창조를 말하지만 영지자는 나쁜 창조를 주장한다. 영지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항해서 인간의 평범함과 추함으로부터 자아를 해방하는 신비로운 지식을 제시하며 자기 구원을 도모한다. 영지자는 믿음의 선배들과 순례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도피를 계획한다. 영지자는 공동체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항하여 자신에게 매몰된다. 영지자는 평범한 삶을 받아들이고, 가난한 자들을 돕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에 대항하여 엘리트들 사이에서 특별한 지위를 주장한다. 영지자는 육신이 되신 말씀인 예수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에 대항하며 특히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다. 영지주의는 우리에게 창조의 불편함이 없고, 죄나 도덕의 불편함이 없으며, 비호감이나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주는 불편함이 없는 영성을 제안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없는, 적어도 자기 자신이 감지하는 신성을 제외하고는 어떤 신도 없는 영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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