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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생활 영성 - 제7부 안식일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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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6,097 회
작성일 08-02-2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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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생활 영성 (Disciplines of the Hungry Heart), 폴스티븐스,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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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부: 안식일의 영성

19장. 레저에 미친 현대인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전문직 종사자들은 단순히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활 전체를 하나의 길고 연속적인 근무 시간으로 삼아, 똑두새벽부터 피나게 일하고 여가시간도 모조리 짜내어 쓴다.”

 

휴식의 구입

여가는 흔히 소극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단절되고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난 시간을 가리키고, 적극적으로는 창조성, 사교활동, 자아실현, 공상과 놀이를 위해 내는 시간을 가리킨다.

휴식이 또 다른 노동이 되고 있다.(일을 들고 가거나, 흥청망청 과소비하는 휴식-죽도록 일을 하든가 죽도록 소비하라고 권하는 사회)

 

유해한 결합

여가를 광적으로 추구하여도 그것이 무의미한 까닭은 우리가 여가시간을 가질 때도 일에 대한 강박증을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 있다.-무엇에 쫓겨다니는 것이 생활방식이 되어 있는 환경

쫓겨 다니는 사람에게는 휴식의 날이 없는 반면, 부름 받은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휴식의 날이다.

 

그리스도인의 거짓된 안식일

안식일-교회는 무의식중에 강박적인 사역과 공리주의적 영성의 유해한 결함을 조장. 훌륭함과 일벌레. 행동이 존재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는 교회, 선교단체, 사회상황

그래서 주일은 일주일중에서 가장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날이며, 가장 쉬지 못하는 날일 경우가 많다.

 

여가와 안식일

여가가 아닌 안식개념을 성경이 제시, 안식은 단순히 노동 대신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로운 시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을 포용한다.

안식과 여가의 공통점: 사람을 회복시키고, 즐거운 것이며, 활력을 준다

차이점: 여가는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안식은 거룩한 율법이다.(출20:8). 여가는 소명과 무관하지만 안식은 우리의 소명에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전인격적인 반응이다). 여가는 주로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지만 안식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여가는 의미보다 쾌락을 중시하는 반면, 안식은 의미를 더 중시한다.

 

20장. 천국놀이

거대화된 여가산업은 거짓안식을 주어 우리로 놀면서도 일하고, 놀아도 즐겁게 놀지 못하도록 함

 

안식일의 여가(신학)

①휴식에 대한 창조의 규례 (출20:8-22, 출31:13-17, 신5:12-15, 사58:13-14): 매년, 매칠년, 매50년 희년(레25:8-55) 마다 휴식할 것을 정함-하나님과 인간과 피조물의 3중조화의 목적을 가짐

② 하나님의 창조에 내재된 ‘유희성’‘낭비성’: 하나님의 피조물가운데 실용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즐기시기 때문이다.

③ 구약의 축제의 전통: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여호와 앞에서 함께 먹고 즐거워 하는 축제의 전통(신14:24-26)

④ 경건한 쾌락의 승인 (전도서, 아가서)

 

거룩한 놀이

놀이는 단순히 ‘활력을 주기 위한 활동중지기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의미가 있다-하나님도 세상을 만드셨을 때 노셨다.(잠8:23,30-31)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인간은 실용적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창조되었다.

우리가 이 유희(遊戱)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은 어린아이는 놀이와 일을 하나로 경험하는데 어른은 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이로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부모와 아이는 자기들이 서로의 존재를 기뻐하며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같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이런 분리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노동은 그것이 언제나 즐겁고 자발적이고 완전히 자유롭다는 점에서 언제나 놀이이다.” 월터 옹

유희하는 인간 (homo ludens), 영어에서 play의 용법 (일과 관련: 연주, 일처리 등)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안식일

윌리엄 딜의 지적-주일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월요일부터의 삶에서는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를 오로지 그가 무슨일을 하며 그일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성취에 대한, 일에 대한, 하나님을 위해 업적을 쌓는 데 대한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놀때도 일하고, 심지어 (안식일이 우리를 지키도록 하지 않고)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려고 애쓴다.

위르겐 몰트만-외적인 자유의 상징인 출애굽과 내적인 자유의 상징인 안식일은 하나이다. 안식일의 무용성이 출애굽과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에 있어 ‘공로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핵심임을 보여준다. 안식일은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즐거운 하루가 되기 위해 생긴것이다.

 

에덴동산에서의 안식

안식은 한 주의 정점-아담과 하와는 아침에 깨어나서 노동을 한 것이 아니라 안식을 누렸다. 안식이 이 세상에서 그들이 처음 한 일이었다.

하나님 역시 일하시고 휴식하시기에 (창2:2)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자 왕권의 대표자로서 일과 휴식에서 하나님을 모방한다. 따라서 우리는 일과 놀이, 이 두가지 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기쁨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며, 우리가 벅찬 기쁨을 누린다는 사실이야말로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신다는 틀림없는 표시이다. 그 같은 기쁨이 안식일에 뚜렷이 나타나야 한다.

 

천국놀이

예수님안에서 경험한 안식일은 신약에서 천상의 낙원을 예표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안식일 체험은 ‘천국놀이’를 하는 것과 같다.(소꿉놀이처럼)

안식일을 우리가 하나님과 ‘즐겁게 노는’ 방식의 하나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과 언약의 상대자인 우리가 상대의 존재 자체와 함께 사역하는 것을 기뻐하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도 하나님과 인간에게 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통해 휴식하고, 그것을 기쁘게 여기는 일이다.” 로렌 윌킨슨

우리가 우리 생애를 통해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아니 날마다 ‘천국놀이’를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더욱 잘 돌보게 될 것이다.

 

21장. 안식일의 재발견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킨다:안식일은 우리가 지상의 삶의 원천과 목표를 여유있게, 그러나 곰곰이 되새겨 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게 하고 천국을 지향하게 한다.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기 위해(히4:11)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특별한 날로 정한 안식일 체험

하루를 정해 나머지 엿새의 의미를 성찰해 보는 날로 지키는 것이 필요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방식이 있을 것

특정한 날의 안식은 많은 영적훈련가운데 하나를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성경묵상, 고백, 기다림의 기도, 중보기도등...리차드포스터의 [영적훈련과 성장]을 보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둘이 함께 있는 한, 함께 무엇을 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훈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훈련은 우리를 찾으시는 아버지께 우리 자신을 더 내어 드릴 수 있도록 방해물을 제거하는 방편이 될 뿐이다.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법을 배워야만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의 생활이 가능하다. 이것이 전제되고나면 ‘교회로서의 안식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안식일이 생산성과 업적 주의의 전횡에서 풀려나 사랑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게 해준다면, 예배야말로 안식일을 지키는 분명한 방법이다. 우리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에 실용주의적 노동윤리를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예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이다.

예배는 ‘천국을 모방한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더 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거대한 예행연습과 같은 것.

 

날마다 거룩한 날

안식일은 하루가 될 수도 있고 ‘모든’ 날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그 둘 다’가 될 수도 있다. (롬14:5-7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예수님 당시의 종교인들-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를 짜내려 하였음.

예수님은 안식일이 일을 안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맛보는 날이며, 자신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날임을 분명히 하고 자 하심

날마다 안식일을 갖는 것:묵상의 시간을 날마다 갖기(맥체인성경읽기등)-그렇다고 이것이 성화를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끊임없이 발견하실 때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훈련임(씨앗을 자라게 할 수는 없어도 힘써 땅을 가는 원리)

하루 하루를 안식일로 삼고자 결심한 사람은 사회에서 받는 자극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듣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정신적 영역의 진리

 

세상은 일과 여가를 제시하지만 성경은 일과 안식을 제시한다. 안식에는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물의 3중의 조화가 있다. 기도와 성경읽기는 이것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정원을 돌보는 일이나 장난감 배를 조립하는 것이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역시 도움이 될 수 잇다. 안식일을 충만히 체험하기 위해서는 창조와 구속과 천상에서 이루어질 완성에 대해 명상해 보아야 하낟.

 

모든 날을 안식일로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가능한 한 ‘매일’밤 잘 자는 것이다. (시4:8, 127:1-2) 잠을 잠으로서 새힘을 얻고,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성경과 기도의 능력을 맛봄으로 다시 기운을 차려 힘든 노동을 감당해 낼 수 있게 된다.

 

안식일을 생활방식으로 살면 노동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로렌스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려면])

안식일을 재발견하는 것은 ‘행동’보다 ‘존재’를 앞세우며 진정한 영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공리주의의 오염에서, 실용주의적 열정에서 우리의 영적생활을 구해준다. 안식은 시간낭비다. 하지만 이 낭비는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속될 거룩한 낭비다.

 

결어: 창조의 제8일

2세기 바나바 서신에 나타난 구절 “제8일” -“현재의 안식일은 내가 받을 만하지 않지만, 내가 만물에 휴식을 주고 제8일의 시작으로 만드는 그 날은 지금과 다른 세상의 시작이 될것이다.”

러시아 신학자 베르디예프가 부활의 사건을 창조의 제 8일로 이야기함-처음에 창조된 것, 곧 우리의 모든 존재와 소유, 일주일의 모든 날이 부활절에 영광스럽게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

하나님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나 하루에 한 시간을 따로 정해 지키는 목적은 우리 삶의 모든 시간, 곧 일주일에 이레 모두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이레는 모두 창조의 제8일을 향한 순례이다. 이 날에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변화를 겪는다. 노동, 가정, 성, 형제자매, 홀로있음, 이웃, 휴식등 세상적이고 즐겁고 흥분을 주는 이 모든 실재안에서 현생의 삶은 예수님의 부활생명에 조명받아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일주일의 이레가 모두 거룩한 까닭은 여드렛날이 동터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여드렛날은 이미 예수안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동시에 다가오는 세상을 위해 산다.

 

생활영성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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