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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2. 사역의 사업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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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940 회
작성일 09-04-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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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자료 / 정리 : 정한신

폴 스티븐스,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IVP, 2009

2..

사역의 사업적 측면

사업은 하나의 사역인가? 혹은 하나의 사역이 될 수 있는가? 역사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비즈니스에 대한 부정적 태도의 역사

그리스 세계에는 소명 개념이 없었고 일은 저주였으며 시민들은 일하는 것이 금지될 정도였다! 초대교회는 이런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 세계와 중세

헬레니즘 세계는 신체 노동을 낮은 위치에 두었고, 상업은 이 세상의 짜임새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나 서기관과 철학자가 더 나은 길이라고 보았다.

대다수 초대교회 교부들은 삶에 대한 이런 '계층적' 접근을 수용했다. 윗자리에는 수도사, 수녀, 사제, 목사와 같이 세상에서의 일상적 일을 거부하는 자가 있고(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삶, 마리아), 아랫자리에는 세상에서 일하는 자(이등급 정도의 경건성 부여, 마르다)가 위치한다. 15세기까지 소명을 가진 자는 수도사와 수녀와 사제에 국한되었고,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은 소명이 없었다. 세속적 일은 후원적 역할에 불과했다.

마르틴 루터

루터는 소명 개념을 수도사를 제외한 모든 인간 직업에 급진적으로 확대시켰다. 그 근거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부름을 받는다'는 성경 진리였다.

우리의 신분이 어떠하든 그것은 하나님이나 사람으로부터 아무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사역 혹은 섬김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기 일이나 직분을 통해 다른 이에게 유익을 주고 그들을 섬겨야 마땅한 이유는, 몸의 모든 지체들이 서로를 섬기듯 여러 종류의 일들이 공동체의 신체적‧영적 건강을 위해 수행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분에서 벗어나려 애쓰기 보다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이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라."(고린도전서 7:17)

루터는 "만일 당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이나 그분의 성도 혹은 당신 자신은 섬기되 당신의 이웃을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선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라"고 한다.

* 루터의 한계

- 직분의 계층 구조(중요도에 따른 차이) 인정 : 최상위에 목사-설교자 존재, 그 다음이 교사, 그 다음은 세상의 통치자, 그 아래로 의사, 작가, 비서, 교양과목 담당 학자 순

- 상거래 제도에 대한 부정적 태도(그리스도인이 상거래 회사에 관여하는 것을 반대)

장 칼뱅

칼뱅은 소명이 예정과 관련되며,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소명을 통해 확증된다고 했다.

칼뱅과 루터는 모든 사람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모든 신분이 신의 재가를 받고 있다는 것, 누구든 자기 소명을 가볍게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에 서로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소명의 목적에 대해 루터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라고 소명을 주신다고 한 반면에, 칼뱅은 세상의 혼란을 방지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칼뱅은 상업 세계를 그리스도인이 활동해도 좋은 정당한 장으로 인식했고, 이는 개혁주의 개신교의 소명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칼뱅은 달란트의 비유(마25:14-30)를 경제적 청지기 직분으로 해석했다.

* 막스 베버의 분석

- 칼뱅의 하나님의 초월성 및 예정론이 신자들의 불안심리를 심화시켜 신자들이 자신의 구원을 증명하기 위해 이 세상의 활동, 특히 사업에 뛰어들어 거기서 거룩한 열정으로 헌신하게 되었다고 함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과 청교도

칼뱅의 보편적 소명관은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에도 이어졌다.

조셉 홀 : "아무리 소박한 일이라도 우리가 소명으로 여겨 하나님의 명령을 의식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면 풍성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 아무리 훌륭한 일(설교, 기도 등)이라도 하나님의 명령과 영광과 상관없이 하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되리라."

청교도는 소명을 둘로 나누었다.

- 일반 소명 :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제자가 되라는, 모든 자에게 동일한 소명

- 특별 소명 : 행정관, 가정주부, 복사, 사업가 등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각기 독특하게 기여하는 소명

일반 소명과 특별 소명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각 사람은 이 둘을 모두 갖고 있으며, 이 둘은 모두 거룩하다.

윌리엄 퍼킨스 : "우리가 일 자체를 서로 비교하면 설거지와 하나님의 말씀 증거 사이에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면에서는 그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잉글랜드 내전 후 청교도 공화국이 무너지자 (섬김을 목적으로 삼는) 특별소명이 (구원과 제자의 삶을 지향하는) 일반 소명과 분리되어 세속화되었다. 소명은 자기가 택한 직업, 곧 제자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전반적 헌신 없이 그저 자기가 수행하는 직업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후기 칼뱅주의가 부지중에 소명의 세속화에 기여)

리처드 히긴슨은 세속화 단계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받아들이는게 어려워서 자기 노력으로 구원의 확신에 도달하려는 유혹이 몰려왔다.

- 열심히 일하는 극단적 성향과 게으름을 두려워하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 남을 위해 일한다는 동기는 강력한 자기중심적 이데올로기로 대치되었다.

- 청지기 직분이란 개념은 남아 있었으나 그것이 이행되지 않을 때는 이기심의 가면이 되었다.

- 종교적 신앙과 관행이 약화되면서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지 않게 되었다. 소명은 일이나 직업 개념으로 대치되었다.

- 소명(vocation)이란 단어의 적용 범위가 갈수록 좁아졌다. 중세식의 구별이 부활했다.

램버트 : "루터와 칼뱅은 소명을 수도원에서 해방시켜 세속적인 것을 거룩하게 만들었는데, 그들의 후예는 거룩한 것을 세속화시켰다. '소명'(vocation)이란 용어는 현재 종교적 의미의 흔적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고, 그 동의어인 '부르심'(calling)은 교회의 게토 속으로 망명당한 처지에 있다."

서구 세계의 현 상황은 '소명'이라는 말이 소위 '전임 사역'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실정이다. 소명이 세상에서는 세속화되었고 교회에서는 성직화된 셈이다. 사역은 교회 내에서 하는 종교적 활동을 일컫는 말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사역에도 사업적 측면이 존재한다.

사역의 시작과 끝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사역을 주고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님 안에 사역이 있다는 말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서로 교제를 나누고, 완전하고 자족하고, 무한한 기쁨과 사랑을 누리는 하나님이시다(창1:26-27; 요17장; 요일1:3). 하나님 안에서 각 위격은 다른 위격을 섬기고 모두가 하나를 지향한다. 성부 하나님이 그 생명의 근원이지만, 세 지체가 모두 사랑과 조화와 하나 됨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행한다(하나됨과 사랑의 사역). 삼위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사역은 회복과 치유의 성질 뿐 아니라 통일성과 창조성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상처 받은 자와 잃어버린 자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치거나 깨어진 것을 고칠 때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고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고안하는 것, 혹은 일터에서 공동체를 세울 때에도 사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은 가장 탁월한 사역자시다. 그리스도는 섬기는 지도자(servant-leader)로서, 지도하는 일과 좇는 일의 모범이 되신다. 로버트 뱅크스와 버니스 레드베터에 따르면 삼위 하나님의 패턴을 좇는 리더십은 권위를 공유한다고 한다. 이는 관계중심적이며, 상호간의 존경과 의존성을 기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역이란 사람들이나 조직을 섬기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섬기는 일이다. 사역자는 하나님이 섬기고 사역하시는데 있어 통로 역할을 하는 자다.

대럴 존슨은 사역에 대한 삼위일체적 접근의 합의를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 사역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이다(마치 삼위 하나님 안에 사역과 섬김이 존재하는 것같이).

- 사역에의 부르심은, 하나님을 위한 사역자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는 자가 되라는 부르심이다.

- 그것은 창조주의 창조 사역과 구원 사역, 즉 하나님이 주도하고 능력을 부여하고 완성한 사역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이다.

삼위일체적 사역을 특히 잘 조명하는 곳은,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그 종을 '나의 종', 그리고 사역자를 '주님의 종'이라 부르는 대목이다(사42:1-9; 49:1-6; 50:4-9; 52:12-53:12). 처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 자기 종이 되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이 실패하자 하나님이 친히 자기 종이 되셨다(메시아 예수, 빌 2:6-11).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온 백성이 사역으로 부름 받았다.

옛 언약 아래서 기름 부음을 통해 소수에게만 특별히 주어졌던 사역들-선지자, 제사장, 왕-이 이제는 하나님의 온 백성 안에서 성취되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아래서 모든 신자의 제사장 직분, 선지자 직분 및 하나님 나라에서의 왕적 통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역은 예배당에 모여 있는 교회 뿐 아니라 흩어진 교회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선지자들, 제사장들, 왕들

선지자는 말씀을 직접 전하는 자다. 사물의 의미를 설명하고, 앞을 내다보며, 사태의 향방을 지적하고, 큰 그림을 보며,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고, 불의와 죄를 폭로한다. 사업 분야에서는 일의 올바른 진행을 감찰하고, 정의와 공평의 문제(보상, 봉급, 환경 착취 등)를 규명하고, 경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선지자의 역할 중 하나는 물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이다(질문에 대한 응답과 온전하고 탁월하게 일하는 것을 통한 증거 등). 선지자는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두적 증언 없이도 할 수 있는 사역적 측면들이 있다. 책임 있는 봉사의 사역(정당한 필요와 욕구를 채우는 일), 유능한 봉사의 사역(탁월한 실력과 훌륭한 성품으로 일하는 것), 행위의 사역(사랑, 정직, 정의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일하는 것) 등이다. 구두적 사역에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언어 사용,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일, 복음을 증거하는 일, 시의적절할 때 의와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 믿음에 관한 물음에 응답하는 일 등이다.

제사장은 다리를 만드는 자다. 그는 기관, 회사, 사람, 문제, 기회 등을 하나님께 가져와서 중보와 기도로 그분께 올려드린다. 또한 하나님의 관점과 은혜를 사람과 장소로 가져오기도 한다. 제사장은 사람과 장소를 대신해 하나님에게 나아오고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과 장소로 나아가는 자다.

제사장의 사역은 세 종류의 움직임으로 묘사될 수 있다.

첫째, 이 사역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적대감을 버리고 환대감을 품게 만든다.

헨리 나웬 : "환대란... 일차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낯은 자가 거기로 들어와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되도록 하는 일을 의미한다. 환대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남을 환대하는 일은 일터에서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 제사장직은 공간(space)에서 장소(place)로의 움직임이다. 대다수의 일터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지만 그런 공간에서 장소가 창조될 수 있다. 성소와 같은 장소, 사랑스럽고 풍성한 장소를 창조함으로써 에덴의 정원을 세계로 확대하는 것이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의 후손에게 주어진 제사장 직분이다.

셋째, 제사장은 정보로부터 신비로 움직임을 창조한다. 데이터가 말과 사람을 대치하는 정보사회의 일터는 신비의 경계선상에 사는 제사장을 필요로 한다. 말이란 데이터가 아니다. 말은 능동적으로 내면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제사장은 말과 그 말을 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왕과 왕비는 통치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조정하고 조직하며 문제를 풀고 자원을 공급하며 아이디어를 하나로 묶는다. 규칙이란 조직의 구조가 정의를 시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규칙은 피조질서 위에 청지기직을 행사한다.

일터에서의 사역에 종사하는 하나님의 온 백성은 교회와 세상에서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섬긴다고 할 수 있다. 사업(일)은 이런 면에서 전임 사역의 현장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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