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 4. 장터 선교 > TGIM 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 4. 장터 선교 > TGIM 자료실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 4. 장터 선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한신
댓글 2 건 조회 6,003 회
작성일 09-06-11 17:57

본문

TGIM 자료 / 정리 : 정한신

폴 스티븐스,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IVP, 2009

4..

장터 선교

장터야말로 선교해야 할 최후의 개척지다. - 에드 실보소

기업이 몸담은 장터를 21세기의 일차적 선교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 찰스 반 엥엔

이 장에서 우리가 제기하는 물음은, 장터가 선교 사역이 행해지는 장소일 뿐 아니라 장터에서의 활동 그 자체가 ‘세상에서 하는 하나님의 선교 중 일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장터는 탐욕, 경쟁, 빈부 격차, 착취, 회사를 우상처럼 떠받들게 하는 관행이 팽배한 참으로 어려운 선교지임에는 틀림없다.

교회는 오랜 세월 사업에 대해 반감을 가져왔다. 단, 사업가가 십일조를 바치고 당회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을 제외하고 말이다.

사업과 선교, 그 둘의 관계는 무엇인가?

방선기 목사는 사업과 선교를 다양하게 접목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 사업과 선교 : 두 가지 별개의 활동

- 선교를 위한 사업 : 사업을 선교에 대한 재정 후원책으로 활용함

- 선교를 위한 디딤돌로서의 사업 : 일과 전문직을 세계선교의 통로로 사용함(‘비저너리’)

- 사업체 내 선교 : 불신자들을 고용해 사목제도로써 예수님께 인도함

- 선교로서의 사업 : 사업을 세상에서 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일부로 여김

장터에서의 총체적 선교 신학 정립을 위하여

선교는 하나님과 함께 시작된다

한 가지 오해는 선교를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인간의 활동으로 혹은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을 성취하는 의무로 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선교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파송과 함께 시작된다. ‘선교’(mission)이란 단어는 ‘보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missio에서 온 말이다.

삼위 하나님은 보내는 자, 보냄 받은 자, 보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보냄을 받은 자’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교사명을 맡긴다’

선교란, 하나님이 스스로를 타자화하는(othering)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missio Dei, 즉 하나님의 선교다.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다

선교에 대한 또다른 오해는 대위임령(마28:18-20)과 문화명령(창1:26-28)을 분리하는 잘못을 낳는다. 이 두 명령의 비극적 분리는 무엇이 가장 거룩한 일인지에 대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의견불일치를 낳았고, 유감스럽게도 서구 기독교에 복음전도와 사회정의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왔다.

이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접근은 요한복음 17:18과 20장에 나오는 ‘최대의 명령(Greatest Commission)에 주목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21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삼위 하나님의 모든 자원을 주시면서 성육신적 선교를 하라고 보내시는데, 이는 사실상 삼위 하나님의 선교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 하나님의 선교 사역의 확장

- 창조시 말씀과 영을 통한 선교→ 첫 번째 피조물에게 “땅에 충만할 것” 명령→아브라함 통한 선교(충만하라는 명령)→이스라엘을 통한 선교(이방의 빛이 되라)→그리스도를 보내심을 통한 선교→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심을 통한 선교

죄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인간 활동을 오염시켰다

아담과 하와의 죄의 뿌리는 자율성에 대한 욕망, 즉 하나님과의 교통 없이 독자적으로 살려는 욕망이다. 그 결과 저주가 초래되었다.

사업 분야에서는 죄가 자기 과시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리처드 히긴슨은 이를 ‘바벨탑 증후군’이라 불렀다.(성적 소외와 착취, 책임전가, 도덕적 모호성, 탐욕 등)

한편, 인간의 타락은 사회와 창조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환경 파괴, 인간 존재 가치 저하, 노동자의 인간 이하로 전락, 경쟁이 약탈로 전략, 개발도상국에 대한 착취 등)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다. 오리겐은 예수를 “그 나라를 한 몸에 구현한 인물”이라 불렀다. 하나님 나라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실질적 통치와 그 백성의 반응을 의미한다. 이는 역동적 지배행위와 구원을 가져오는 다스림이다.

예수님이 선포한 그 나라는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 총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 개인적, 사회적, 내면적, 구조적, 정치적, 창조세계적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차원을 모두 망라하는 것이다. 그 나라에는 다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그 나라는 죄 사함을 가져온다(마3:1-8, 눅3:3-18).

2. 그 나라는 치유와 온전한 삶의 회복을 가져온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11:5, 눅7:22).

3. 그 나라는 죄인들, 가난한 자, 부자와 더불어 음식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공동체를 회복시킨다(막2:15).

* 아리아스 : “사회에서 죄인 취급받는 자와 소외된 자들과 공공연하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그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는 예수의 가장 도발적인 행위였다.”

4. 예수님은 집합적이고 제도적이며 구조적인 죄를 비난했으며, 특히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못살게 구는 잘못을 크게 지적했다.

5. 그 나라는 은혜요 선물이다.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는 말이다.

6. 그 나라는 이 세상에 뚫고 들어오는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참여를 요구한다.

* 데이비드 보쉬 : “선교란 모든 실재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선포하고 그에

순복하도록 초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 참여의 행위 : 선포(“하나님 나라가 여기에 있다”), 예고(“그것이 오고 있다”), 고발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르는 것을 불의하다고 선언하는 일), 구현(그 왕의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 연민과 위로, 계속되는 회심, 권세에 대한 도전 등

⇒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창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직, 경제정의, 공동체 건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공동체 회복, 이웃을 돌아보는 일 등을 모두 포함한다. 사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일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데, 이를 가리켜 ‘삼중적인 최종선’-이윤, 사람, 환경-이라 부른다.

* 르네 빠디야

“인간의 일 가운데 그 나라의 가치관을 구현하고 그 나라의 목표를 섬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복음 사역과 소위 ‘세속적인 일’은 사실상 상호의존적이다.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가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창조세계의 청지기직의 우선순위를 따지기 보다는 단 하나의 선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의 온 백성이 하나님의 선교에 관여하고 있다

선교란 선교사들이 하는 일이라는 오해가 있다. 그러나 부름받은 자는 하나님의 온 백성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모인 교회(예클레시아)를 통해서뿐 아니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상에 흩어져 있는 교회(디아스포라)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선교는 끝나지 않았다

구원은 여러 단계를 갖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선포했듯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것은 지금 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나라는 장래에 완전히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사업 안에서 그리고 사업으로 이뤄지는 모든 선교는 불완전하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안식의 샬롬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대 완전히 얻게 될 하나님, 창조세계, 인간 사이의 삼중적 조화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중간기에 우리가 할 일은 확실한 종말, 곧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히 실현될 하나님 나라를 내다보면서, 이 땅에서 애쓰는 우리의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노력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날을 향해 진력하는 것이다. 이를 사업에 적용하면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사업은 개인적 복음증거의 장이다

장터는 신자가 자기의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선교지이다. 우리는 장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나라의 복음을 증언하도록 부름받았다.

일터에서의 근로자, 즉 제사장들을 구비시키는 여러 방법이 있다. 일하는 교인들을 위한 중보기도, 평신도 설교자의 초빙,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소명을 분명히 받은 교인들을 파송하는 것, 일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하며 관련 이슈를 공부하는 전교인 대상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것 등등이 그것이다.

일터를 주요 선교지로 생각할 만한 이유들은 분명하다.

- 접근 가능성 : 일터는 전문 성직자 등 외부인에게는 닫혀 있으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늘 열려 있다.

- 관계적 측면 : 회사는 삶과 기업 활동을 공유하는 공동체라서 종종 지역교회나 이웃보다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이는 사역의 기회가 된다.

- 시간상의 이점 :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낸다.

- 자체의 이슈와 가치 : 일터 자체가 제기하는 여러 이슈가 복음 전도와 목회적 보살핌의 기회가 될 수 있다.(예: 정체성, 인간관계, 우선순위, 신뢰성, 인생의 목적, 성공과 실패 등)

- 현장성 : 일터는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현장이므로 관계 중심 전도가 이뤄지기 좋은 곳이다.(고전 4:17, 딤후 3:10)

- 곤궁과 위기에 처한 자에 대한 근접성 : 직원이 곤궁에 처하면 직장동료에게 이를 나누고 싶어한다. 일터는 전인(몸, 마음, 영혼)을 대상으로 목회적 보살핌을 베풀 기회를 매우 많이 제공한다.

* 몇 가지 제안

- 신학생들은 ‘한 학기를 일터에서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신자들을 전임사역자로 세울 수 있을지’ 배워야 한다.

- 목사는 한 주에 하루는 교인이 일하는 현장으로 찾아가 그의 말을 듣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

- 신학교수는 매년 두 주간 정도는 회사나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 신학교는 세상에서 전임 혹은 시간제 사역의 좋은 모범이 되는 사람들을 영입해야 한다.

- 지역교회는 해외 출장 교인을 선교사로 파송한다.

- 평신도를 강단에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업은 교회 개척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국제무역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접촉하고, 예수님의 좋은 소식을 나눌 수 있는 전례없는 기회’를 제공한다.(윌리엄 캐리 등의 예)

사업가는 닫힌 나라에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회사’를 통한 사역

런들과 스테판은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회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회사는 하나님 나라의 전문인들이 운영하는,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으며 일정한 소득을 창출하는 기업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복음화되지 않고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서 지역교회의 성장과 배가를 증진하는 회사다.”

이 정의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들을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인도하는 일이 그 사업의 핵심 목적이다. 둘째, 사업 계획과 선교의 목적 사이에 분명한 연계성이 있다. 셋째, 그 사업은 세계적 관점을 갖고 있다.

이런 회사들은 세계화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온 몸을 하나님의 세계적 계획(선교)에 통합하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환으로 이해한다.

주의할 것은 오늘날 자비량 선교가 접근 제한국에 대한 진입 수단으로 수행하는 그 일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즉, 사역이 중요하고 사업 등 일 자체는 내재적 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마는 것이다. 가치가 있다면 단지 부수적 가치인 접근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사회봉사 수단으로서의 기업

이것은 봉사의 역할을 일컫는다. 우리가 재능을 발휘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물건과 서비스로 이웃을 섬기는 것은, 사실 장터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업은 또한 사회적 책임과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도 갖고 있다.(바디 숍, 존슨 앤 존슨, GE의 예)

공동체 건설 수단으로서의 기업

이는 교제와 동반자의 역할이다. 우리는 일터의 이웃을 돌보고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회사 문화를 조성함으로 공동체를 건설한다. 인간의 가치를 긍정하고, 그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재능을 발휘하게 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상호 의존적 공동체로서 일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공동체란, 다양한 배경(사회적, 영적, 교육적, 인종적, 경제적, 정치적)을 가졌음에도 서로의 차이를 용납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두 명 이상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그래서 그들은 실질적이고 공공연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공동선으로 규정된 목표를 향하여 다함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현대 사회와 포스트모던 사회에는 이런 공동체를 방해하는 요소가 많다. 도시화, 유동성, 불안전한 거리, 전문화 현상, 시간 부족, 개인주의 등.

우리는 (공동체 건설을 위한 기업 컨설턴트로 소개된 피터 모간과 같이) 기업체에서 공동체를 쌓아 올리는 벽돌 역할을 하는 것이 핵심 이데올로기(목적과 가치관), 촉매제 역할을 하는 자들, 이야기들, 의례, 다 함께 보내는 시간 및 갈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벽돌’을 가지고 우리는 회사를 공동체로 형성할 수 있다. 이것이 장터 선교이다.

권세와 씨름하는 수단으로서의 기업

이것은 선지자적(분별) 역할이다. 우리는 장터에서 횡행하는 불의, 물고 뜯는 경쟁, 근로자에게 회사를 우상처럼 숭배하도록 요구하는 관행, 불의하고 불공평한 보수제도, 세계적 불공정거래 참여 등이 불식되도록 요구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개별적 악뿐 아니라 계통적인 악, 곧 바울이 ‘정사와 권세들’이라 부른 것에도 관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역사의 완성과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며 이 세상에서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어떤 회사는 자신들이 더 큰 그림의 일부임을 인식하여 지역사회와 예술, 교육과 공동체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총체적 선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장터가 선교지냐 선교냐’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그 둘을 모두 아루르는 것이다. 장터를 ‘선교지’로 보게 되면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도모하게 되고, 장터를 ‘선교’로 보면 인간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도모하게 된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똥혀니이동현님의 댓글

똥혀니이동현 작성일

책 열심히 읽고 있는데요 한번 읽으니 이해가 안가서 퍼갑니다.
요약본 읽으면 조금은 정리가 될려나 ㅎㅎ
첫판부터 많이 어렵네요 ㅎㅎㅎ

정한신님의 댓글

정한신 작성일

동현아^^ 좀 어렵지?^^ 함께 나누며 풀어갈 이야기를 기대한다.^^

Total 192건 2 페이지
TGIM 자료실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77 정한신 6335 02-28
176 정한신 6329 10-17
175 정한신 6301 11-16
174 다윗 6191 01-20
173 웹지기 6144 10-12
172 정한신 6134 02-28
열람중 정한신 6004 06-11
170 정한신 5993 02-28
169 정한신 5971 08-29
168 정한신 5939 04-30
167 정한신 5933 06-15
166 정한신 5933 04-19
165 정한신 5878 11-14
164 정한신 5866 05-03
163 웹지기 5821 05-14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최신글

연구소후원

접속자집계

오늘
1,042
어제
2,027
최대
3,489
전체
1,655,911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일상생활사역연구소 Institute for Everyday Life as Ministry
주소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샘로 15(장전동, 해인골든빌라) 402호 (46240)
협업공간 레인트리: 부산시 금정구 중앙대로 2066, 4층 (46214) 남산역과 범어사역 중간지점
☎전화 : 051-963-1391
Copyright © 1391korea.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