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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일상생활사역연구소 &amp;gt; 연구소는 지금 &amp;gt; 여는 사연</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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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2026년 5월 여는사연 | ‘정상 가정’너머의 가정</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83</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4/2039601463_1777476156.4234.jpg" alt="2039601463_1777476156.4234.jpg" /></p>

<p><strong>2026년 5월 여는사연</strong></p>

<p><strong>‘정상 가정’너머의 가정</strong></p>

<p> </p>

<p>5월은 보통 ‘가정의 달’이라고 특히 교회에서 많이 이야기합니다. 집에서든 교회에서든 아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고심하며, 부모님께 감사를 전하기 위해 카네이션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마음 한구석에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던 왠지 모를 불편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단란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라는 단어가 대부분에게는 따뜻한 느낌을 주겠지만, 혈연 중심의 소위 ‘정상가족’ 틀 안에 머물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결코 닿을 수 없는 높은 벽이나 아픈 상처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026년 우리 연구소의 캐치프레이즈인 “미시오데이(Missio Dei)-일상, 보냄받은 뜻으로 살다”의 관점에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가정이 깨어지는 경험을 가진 분들, 혹은 홀로 살아가야 하는 분들을 비롯하여 소위 ‘정상가족’의 틀 너머를 사시는 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비밀, 경륜은 어떤 것일까요?</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4/2039601463_1777476200.1858.png" alt="2039601463_1777476200.1858.png" /></p>

<p>베드로전서 3장에 나오는 “아내들아 순종하라”, “남편들아 귀히 여기라”는 말씀은 오랫동안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옹호하는 성경적 근거로 오해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바로 앞 문맥의 노예제속의 종들과 상전들에게 향한 권면과 같은 맥락에서, 당시 로마 사회라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빌려 입은 ‘잠정적인 겨울옷’과 같은 권면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사회를 넘어뜨리는 전복 세력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당시의 가정 규범을 무시하지 않는 자로 보여야 했지만, 그 잠정적인 옷 속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혁명적 가치를 숨겨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날 가정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복잡한 일상으로 보냄받은 이들로서 우리의 사명은 2,000년 전 당시의 사회 관습을 문자적으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베드로의 권면 안에 숨겨진 ‘뜻’을 오늘날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습니다.</p>

<p> </p>

<p>베드로가 강조한 ‘뜻’, 즉 복음의 핵심은 베드로전서 3장 1절과 7절에 반복되는 “이와 같이(<em>homoios</em>)”라는 단어에 들어있습니다. 이는 앞 문맥인 2장에서부터 강조한 것처럼 단순히 로마의 노예법이나 가정규례를 따르라는 뜻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 살라는 사명, 파송(missional)의 명령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막론하고, 서로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동등한 주체’로 여기는 순간,  로마의 가정 규례가 전제하는 가정 내의 수직적 위계는 무너지고 오히려 평등한 제자들의 사귐, 진정한 공동체가 시작됩니다. 일상 생활 선교사로 보냄받은 우리가, 어떤 형태의 가정, 관계에서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서로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투영하며 서로를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p>

<p> </p>

<p>무엇보다도 이제 우리는 ‘정상가족’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하나님의 거대한 가족이라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는 분명 여전히 아름다운 복이지만, 그 형태 자체가 영원하지도, 우리를 구원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미시오데이’, 하나님의 뜻의 성취는 어떤 형태의 관계든, 그 안에서 서로를 환대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혜를 나누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보수적인 사회 관습에 갇혀, 홀로 사는 이들, 깨어진 가정의 아픔을 가진 이들을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으로 소외시킨다면, 우리는 베드로가 전하고자 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본질을 놓치고 말게 될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4/2039601463_1777476219.2771.jpg" alt="2039601463_1777476219.2771.jpg" /></p>

<p> </p>

<p>이런 맥락에서 5월 한 달, 우리 가정의 울타리를 넓히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전통적인 가정중심의 프로그램을 통해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권장하는 일을 넘어, 세상의 모든 외로운 이들을 교회라는 하나님의 식탁으로 초대하며 환대하는 일을 도모하면 좋겠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뜻, 복음 안에서 환대받고, 혈연보다 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흐르는 ‘대안적 공동체’를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삶을 통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5월 한 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무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가족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좁은 틀거리를 넘어, 더 넓고 깊은 하나님의 식탁을, 일상 속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차릴 때,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신 주님의 뜻은 비로소 우리의 거실과 밥상 위에서, 그리고 교회의 식탁과 환대의 교제에서 온전해질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4/2039601463_1777476506.2332.jpg" alt="2039601463_1777476506.2332.jpg" /></p>

<p><strong>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strong></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hu, 30 Apr 2026 00:28:56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6년 4월 여는사연 |  전쟁의 소식 그리고 부활과 평화</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82</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3/2950088155_1774852316.6873.jpg" alt="2950088155_1774852316.6873.jpg" /></p>

<p><strong>2026년 4월 여는사연</strong></p>

<p> </p>

<p><strong>전쟁의 소식 그리고 부활과 평화</strong></p>

<p><br />
본격적으로 봄꽃이 화사해지다 못해 곧 여름이 될 것 같은 파란 4월이 되면 한편으로 봄꽃이 주는 생명력으로 마음이 화사해지다가도, 문득 세계와 인생이 마주하게 되는 비극의 소식들로 움찔하곤 하였습니다. 제주의 4.3, 세월호 4.16 등의 역사를 거치면서 생기게 된 일종의 사회, 시대적 트라우마일까요? 2026년, 4월의 출발 역시 첫 주 부활절로 인해 부활의 기쁨으로 가득하겠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끝나지 않는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미국, 이란을 둘러싼 중동의 전운, 쿠바를 향한 트럼프의 봉쇄와 협박은 여전히 온 세상이 거대한 진통 속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암울한 정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혹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고백은 자칫 공허한 구호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p>

<p></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3/2950088155_1774853194.7918.jpg" alt="2950088155_1774853194.7918.jpg" /></p>

<p> </p>

<p>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죽음의 통치’가 지배하는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서 일어난 가장 강력한 혁명이었습니다. 제국 로마의 힘의 통치가 다른 수많은 나라와 전쟁 포로들의 피와 땀, 그리고 생명을 착취하여 이루어진 법과 평화를 자랑하는 역사의 변방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자신의 생명, 피와 살을 찢기시고 죽으시는 희생적 사랑의 방식을 통과하여 마침내 부활의 생명을 나눠 주시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3/2950088155_1774852571.6686.jpg" alt="2950088155_1774852571.6686.jpg" /></p>

<p> </p>

<p>무력과 미사일, 경제 제재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세상의 통치자들과 달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방식의 통치,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식, “하나님의 뜻”의 선포는 교회 담장 안의 위로를 넘어, 전 세계의 전쟁터와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을 향한 선전포고입니다. 어떤 인간의 권력도, 어떤 파괴적인 무기도 결국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설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분쟁과 개인적인 삶의 부조리를 대면하면서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 미시오데이(Missio Dei), 부활, 생명이라는 마지막 대미를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이 거대한 역사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나는 이 혼란스러운 전쟁의 소문 앞에서도 만물의 주관자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신뢰하고 있는가?</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3/2950088155_1774853628.8442.png" alt="2950088155_1774853628.8442.png" /></p>

<p>세계적인 분쟁과 나의 작은 일상의 세계는 결코 동떨어진 곳이 아닙니다. 이기심과 탐욕, 타자를 향한 배제라는 ‘제국의 문법’ 혹은 ‘전쟁의 정신’은 국가 간의 총칼뿐 아니라 우리 사무실 내부의 경쟁과 사회 시스템 속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의 분쟁이 국제법과 인도주의적 정의를 시험하듯, 우리의 일터 또한 ‘정직한 성과’와 ‘타(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하나님의 정의가 시험받는 장소입니다. 중동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내가 속한 조직 내에서 반목을 멈추고 관계가 회복되는 ‘샬롬(Shalom)’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정의를 선택하고 동료를 환대하는 것은, 세상의 폭력적인 통치 방식에 저항하는 가장 구체적인 ‘미시오데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행위가 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3/2950088155_1774852586.0541.jpg" alt="2950088155_1774852586.0541.jpg" /></p>

<p>이제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던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요20:21)”라는 말씀을 품고 일상으로 향합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내 일터의 문화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섬김과 사랑의 통치, “평화”의 다스림을 어떻게 보냄받은 그 곳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전쟁의 소문과 구체적인 고난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우리 주님이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활의 빛 아래서 내 직무를 통해 세상의 깨어진 부분을 보수하고 정의와 사랑의 질서를 세우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를 세상과 일상으로 보내신 분으로부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뜻’입니다. 일상의 평화, 미시오데이: 일상, 보냄받은 뜻으로 살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3/2950088155_1774852618.5428.png" alt="2950088155_1774852618.5428.png" /></p>

<p>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p>

<p></p>

<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30 Mar 2026 15:37:04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6년 3월 여는 사연 | “하나님의 마음”과 미시오데이</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8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2/2041558761_1772180008.5575.jpg" alt="2041558761_1772180008.5575.jpg" /></p>

<p>2026년 3월 여는 사연</p>

<p> </p>

<p>“하나님의 마음”과 미시오데이</p>

<p> </p>

<p>봄의 기운이 올라오는 3월입니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생명이 움트는 이 계절에, 교회력은 우리를 사순절(Lent)의 깊은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흔히 사순절이라고 하면 나의 죄를 회개하고 개인적인 경건을 점검하는 시간에 머물기 쉽습니다. 하지만 2026년 우리 연구소가 주목하는 “미시오데이(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사순절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탄식’과 ‘긍휼’에 우리의 생각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2/2041558761_1772180514.2041.png" alt="2041558761_1772180514.2041.png" /></p>

<p> </p>

<p>이미 2월 여는 사연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자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은 소중하지만, 자칫 하나님을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개인적 조력자’로 축소할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뜻은 훨씬 더 웅장하고 통전적입니다. 창조하신 만물이 본래의 질서와 샬롬(Shalom)을 회복하는 것, 깨어진 관계와 뒤틀린 구조 속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흐르게 하는 것—이것이 성경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이자 ‘뜻’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2/2041558761_1772180062.1207.jpg" alt="2041558761_1772180062.1207.jpg" /></p>

<p> </p>

<p>3월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직장에서는 1분기의 성과를 내기 위해 속도를 냅니다. 이러한 분주한 일상의 뒤편에서 우리는 종종 세상의 깨어짐을 발견하게 됩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의 절망,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훼손되는 인간의 존엄, 인간의 탐욕으로 신음하는 창조세계의 비명등등...우리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는 곳곳에 ‘탄식’이 서려 있습니다. 깨어진 일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 하나님의 탄식과 관련하여 로마서 8장은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합니다(19-23). 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은 피조물의 고통 곁에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중심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아파하며 중보하시는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26절). 그러므로 우리가 보냄 받은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탄식이 머무는 현장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순절에 세상의 탄식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함께 탄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탄식하기 위해 보냄받은 “선교적 현장”입니다.</p>

<p> </p>

<p>하나님은 탄식에 머물지 않으시고 ‘긍휼’로 움직이십니다. 긍휼을 뜻하는 히브리어 ‘라함(Racham)’은 ‘어머니의 태(Womb)’를 의미합니다. 자녀의 아픔을 자신의 몸의 고통으로 느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그 긍휼의 마음이 육신이 되어 우리 일상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3월의 일상에서 ‘보냄받은 자’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바로 이 긍휼, 하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깨어진 세상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그 긍휼의 마음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올 때, 우리는 비로소 직장 동료의 슬픔에 공감하고, 불의한 시스템에 저항하며, 고통받는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2/2041558761_1772180084.4672.jpg" alt="2041558761_1772180084.4672.jpg" /></p>

<p> </p>

<p>이번 사순절 기간동안 “하나님, 당신의 마음이 머무는 곳은 어디입니까? 제가 그 곳에서 함께 탄식하며 당신의 긍휼을 드러내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깨어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에 함께 동참하며, 그분의 긍휼을 담아 보냄받은 세상, 각자의 일상속에서 작은 친절과 공감을 드러내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냄받은 뜻’ 즉,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lt;미시오데이&gt;의 모습이 아닐까요?</p>

<p> </p>

<p>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7 Feb 2026 17:22:13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6년 2월 여는사연 | "하나님의 뜻"</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80</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1/3547476248_1769755084.1818.jpg" alt="3547476248_1769755084.1818.jpg" /></p>

<p><strong>2026년 2월 여는사연</strong></p>

<p> </p>

<p><strong>“하나님의 뜻”</strong></p>

<p> </p>

<p>1월 6일부터 9일까지 울산대학교회 청년부 숙소 “한솥밥”에서 진행한 연구소 겨울 리트릿은 통상적인 평가와 계획에 아울러 연구소 사역에 있어 AI 활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결과물이라 할 시도가 2월 24일에 있을 &lt;변방의 북소리&gt;입니다. 이번 변방의 북소리는 특히 부경지역의 연구집단을 위한 고연장학재단의 지원금 혜택을 받아 진행되며 주제는 “AI 속도와 인간의 리듬”입니다. &lt;탐구공간 뜰&gt;이 주최하고 연구소와 각 리좀이 함께하는 이 모임을 통해 몸,맘,삶의 문제, 노동의 문제, AI기본법의 쟁점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a href="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calendar&amp;wr_id=361" rel="nofollow">“연구소사연”</a>을 보시기 바랍니다.</p>

<p> </p>

<p>벌써 1월이 다 지나갔기 때문에 년초라 하기엔 어색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2월에 구정이 끼여 있고 곧 학생들의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있어서 여전히 분위기는 무엇인가 계획하거나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학교에, 어떤 전공, 어떤 직장에 들어갈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 지 선택하기 앞서 소위 “하나님의 뜻”을 묻곤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개인의 소명과 직업과 연관된 문제로,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에 대한 인도와 분별의 문제로 축소되고 맙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1/3547476248_1769755290.3368.jpg" alt="3547476248_1769755290.3368.jpg" /></p>

<p> </p>

<p>“미시오데이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를 2026년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주제로 삼으면서 이 신학적인 주제를 좀 더 일상적인 언어로 바꾸기 위해 선택한 부제가 “일상, 보냄받은 뜻으로 살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냄받은 뜻”이라는 문구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어디로 보내실 때(missio-보냄의 라틴어) 분명한 “뜻(목적, 계획, 마음)”을 가지고 계시며 이런 하나님의 뜻과 그 뜻에 부응하여 보내시고 보냄받는 과정과 그 결과 세상 혹은 피조세계가 경험하게 되는 결말을 포함하는 전체의 과정(이야기 혹은 드라마)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바울은 창조 이전부터 종말까지의 “하나님의 뜻”을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엡1:5).”“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엡1:9-11).” 그리고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 하나님의 뜻을 성도들이 알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골1:9)” 바울의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 기도에 나오는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마6:10 이상 새번역)”와 정확히 연결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1/3547476248_1769755312.2671.png" alt="3547476248_1769755312.2671.png" /></p>

<p> </p>

<p>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내 인생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창조로부터 새창조로 이어지는 성경의 큰 이야기, 큰 드라마 속에서,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시는(보내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목적, 설계,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이 광대한 하나님의 뜻에 입각하여 보냄받은 개인과 공동체는 각각의 사명(使命)을 지니며, 그 사명을 살아내어야 합니다. 세상으로, 더 구체적으로 매일 매일의 일상의 삶으로 보냄받은 개인과 공동체는 사명(使命)이란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대로 “보냄받은 뜻”을 살아냅니다. 우리 각자 혹은 개 공동체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이야기, 각본에 합당하게 “뜻”을 살아내는 것이 이 거대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 드라마의 일부가 되고 이것이 마지막 피날레를 향하여 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선교와 맞닿아 있다, 혹은 심지어 보냄받은 뜻으로 사는 우리의 일상이 곧 하나님의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601/3547476248_1769755449.4274.png" alt="3547476248_1769755449.4274.png" /></p>

<p>이 하나님의 선교, 보냄받은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교, 미션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성경해석공동체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난 십수년간 우리 연구소는 이를 위해 “엘비스클럽(Everyday Life Bible Study Club)”을 운영해 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중심의 엘비스클럽을 6년간 진행하다가 올 3월부터 다시금 연구소에서 오프라인으로 엘비스클럽을 새로운 포맷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엘비스클럽이 온다!” <a href="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calendar&amp;wr_id=361" rel="nofollow">“연구소사연”</a>에서 광고를 확인하시고 망설이지 마시고 동참의 의사를 구글문서를 통해 바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새로운 엘비스클럽, 미션얼 성경해석공동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일상을 보냄받은 뜻으로 제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p>

<p> </p>

<p>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p>

<p> </p>

<p> </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Fri, 30 Jan 2026 15:42:41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6년 1월 여는 사연  |  2026년 캐치프레이즈, 그 의도</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9</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2/2009482475_1767078978.8408.jpg" alt="2009482475_1767078978.8408.jpg" /></p>

<p><b>2026년 1월 여는 사연</b></p>

<p> </p>

<p><b>2026년 캐치프레이즈, 그 의도</b></p>

<p> </p>

<p>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도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며 동행하는 매일 매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연구소는 2026년 캐치프레이즈를 &lt;미시오데이; 일상, 보냄받은 뜻으로 살다&gt;로 정하고 2025년의 &lt;이마고데이&gt;(하나님의 형상)에 이어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일상생활의 영성과 신학, 사역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p>

<p> </p>

<p>미시오데이(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라는 용어는 지난 세기말까지만 해도 신학적으로 소위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레슬리 뉴비긴이나 데이빗 보쉬와 같은 분들의 영향으로 촉발된 missional church 운동을 거치면서 포스트 에큐메니컬이나 포스트 복음주의가 함께 하나님의 선교를 성경과 신학의 중심적 주제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6년과 2010년(한국번역은 2010년과 2012년)에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쓴 &lt;하나님의 선교, IVP&gt;와 &lt;하나님의 백성의 선교, IVP&gt;를 통해서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를 찾는 전통적인 시각을 넘어 성경의 선교적 근거로 “하나님의 선교”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이제는 기본적인 상식이 되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2/b11e74d1d2c1f730b4ad34b49886e4f8_1766758331_7253.jpg" title="b11e74d1d2c1f730b4ad34b49886e4f8_1766758331_7253.jpg" alt="b11e74d1d2c1f730b4ad34b49886e4f8_1766758331_7253.jpg" /><br style="clear:both;" />
 </p>

<p> </p>

<p>“선교”라는 용어가 주로 “해외선교”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그 강조점에 있어서도 “복음전도”를 강조한다는 선입관이 있기 때문에, missional church 운동에서 이 용어를 좀 더 근원적으로 혹은 성경적으로 바꾸어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우리 연구소도 최근까지 선교라는 단어의 어원이 “보냄(missio)”이기 때문에 특히 요한복음 17장 18절과 20장 21절(“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에 근거하여 ‘보냄받음’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보냄받음의 강조가 가지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송”이라는 의미가 주는 기존의 정서를 강화한다는 점(크리스토퍼 라이트의 관점), 혹은 “보냄받음”을 신구약 전체에서 일관되게 찾기가 힘든다는 점(Liberating Scripture의 저자들인 존 프랑키와 마이클 바람)을 들어 현대 용법처럼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과 같은 용례에서 사용되는 것과 유사하게 “목적”이나 “의도”로 바꿔서 이해하자는 제안에 대해서 최근 저희 연구소에서 ‘미션얼성경해석학’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많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미시오데이 하나님의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가지신 의도나 목적을 의미하는 “뜻”이라는 개념과 그 의도나 목적이 수행되기 위해 보내고 보냄받는 역동와 과정을 결합하여 “선교”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결론을 내리고 이번 캐치프레이즈에 “보냄받은”과 “뜻”을 함께 두었습니다. “사명(使命)”이란 단어가 보낼 시, 시킬 사 부릴 사 자에 표적 명 목표 명으로 구성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 단어도 좋겠습니다만 이미 이 단어가 일상적이라기 보다 종교적인 의미를 다분히 많이 지닌터라 직접 사용하기 보다 이렇게 풀어 사용하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2/b11e74d1d2c1f730b4ad34b49886e4f8_1766758356_9736.jpg" title="b11e74d1d2c1f730b4ad34b49886e4f8_1766758356_9736.jpg" alt="b11e74d1d2c1f730b4ad34b49886e4f8_1766758356_9736.jpg" /><br style="clear:both;" />
 </p>

<p> </p>

<p>어떻게 &lt;미시오데이: 일상, 보냄받은 뜻으로 살다&gt;를 구체적인 사역의 과정으로 풀어낼지 1월 6일부터 3박 4일간 &lt;연구소 겨울 리트릿&gt;을 통해 세부적인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울산대학교 근처 비어 있는 한 교회의 아파트를 빌려 리트릿을 가질 예정입니다. 아무쪼록 “미시오데이”를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낼 수 있는 정체성, 삶의 방식, 교회의 구조로 구현하려면 연구소가 어떤 일을 해야할 것인지를 궁구하려고 합니다. 리트릿을 마치고 바로 주일부터 월요일까지(1.11-12) &lt;미션얼동행&gt;모임이 오랜만에 부산 AG405에서 열립니다. 김종일 목사님께서 우간다 선교사로 나가시면서 20여명의 미션얼동지들이 뭉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을 통해서도 &lt;미시오데이: 일상, 보냄받은 뜻으로 살다&gt;라는 우리의 구호가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겨울 리트릿과 미션얼동행을 위해서 필요한 재정이 공급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공궤하는 일에 참여하실 분은 저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p>

<p> </p>

<p>아무쪼록 새해가 우리의 보냄받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살아가는 나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p>

<p> </p>

<p>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p>

<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6 Dec 2025 23:12:52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12월 여는 사연 | 하나님의 케노시스와 미래의 목표로서의 이마고데이</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8</link>
<description><![CDATA[<p> </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1/2950093268_1764432265.2809.png" alt="2950093268_1764432265.2809.png" /></p>

<p>2025년 12월 여는 사연</p>

<p> </p>

<p>하나님의 케노시스와 미래의 목표로서의 이마고데이</p>

<p> </p>

<p>待臨(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모습, 인간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형상(골1:15)이신 예수의 나심을 기다렸던 과거의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미래에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고후4:4)께서 영광으로 오실 날을 기다리며, 동시에 현재의 삶 속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갈4:19)를 기대하는 기다림과 소망의 시기가 대림절기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Imago Dei) 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롬8:29)으로 따르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1/2950093268_1764432634.065.jpg" alt="2950093268_1764432634.065.jpg" /></p>

<p> </p>

<p>2025년 한해 우리 연구소는 복음(하나님), 문화(세상), 교회(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미션얼 삼각 구도 가운데 복음,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첫 번째 시도로, “이마고데이(Imago Dei)”라는 주제로 일상생활의 신학과 미션얼 상상력을 심화하려고 애썼습니다. 이 주제는 우선 당장에 보기에는 인간론에 대한 언급이지만 하나님과 관련 속에서 인간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결국 복음, 그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결부됩니다. 당연히 그릇된 하나님 이해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이마고데이로서 인간이해가 왜곡됩니다. “이ᄆᆞ고데이”라는 캘리그라피의 의도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1/2950093268_1764432668.1893.jpg" alt="2950093268_1764432668.1893.jpg" /></p>

<p> </p>

<p> </p>

<p>그러나 자칫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에 대한 강조가 자칫 인간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 혹은 완벽한 인간, 문제가 없는 건강한 인간에 대한 환상을 불어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 상처와 아픔에 상관하지 않고 무관심하신 신으로 이해하던, 그리스 사고에 영향을 받은 신학때문입니다. 실상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 구조 안에 이미 심겨져 있는 어떤 것, 지성과 의지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상실하지 않았다고 믿었던 구조적인 관점만 가지게 될 때 빠지기 쉬운 현상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조각품과 같이 새겨진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 거울에 비춰진 모습과 같이 현재 누구를 드러내고 비추는가 즉 하나님과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 과거의 유산, 그리고 현재 우리가 무엇을 비추고 있는 지, 현재 상태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우리가 앞으로 되어가야 할 미래의 목표, 즉 운명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가 여기서 필요하게 됩니다. 2세기 이레니우스로부터 이미 이야기된 이 생각은 하나님의 형상이 출발점이라기보다 우리의 목표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성장과 성숙을 향하여 가는 여정에 씨앗으로서 형상을 심으시고 그 씨앗이 그 연약함과 부족함, 상처와 고난의 여정가운데 점점 자라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캐노시스)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상황에 무관심하시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전능을 포기하고 권력을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분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다른 말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성경적 관점을 다시 회복한 신학을 가지게 될 때 비록 상처를 가졌으나 관계가 회복된,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운명, 목표를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를 강조하는 것은 정상성이나 건강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성육신과 십자가의 신학을 통하여 캐노시스와 연약함의 신학으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빌2장), 자기를 낮추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성육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 우리가 기대하는 최종 목표로서의 우리의 인간됨에 대해 더 깊숙이 묵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1/2950093268_1764432679.322.png" alt="2950093268_1764432679.322.png" /></p>

<p> </p>

<p> </p>

<p>마지막으로 한 해 동안 저희 연구소 사역을 물질로 기도로 마음으로 후원하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12월 19일 금요일 저녁에 송년회를 겸한 캘린더파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계신 분들은 시간을 내셔서 오셔서 교회력의 시작, 연말의 정리와 함께 저희 연구소의 이름이 들어간 캘린더를 받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미리 참석여부를 알려 주시면 저희들이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 <a href="https://1391korea.net/s/66" rel="nofollow">https://1391korea.net/s/66</a> )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따로 주소지로 캘린더를 배송할 예정입니다. 혹 주소지가 변경되셨다면 저희에게 12월 19일 이전까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된 성탄, 복된 새해를 기원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1/2950093268_1764432918.8514.png" alt="2950093268_1764432918.8514.png" /></p>

<p> </p>

<p>평화를 전합니다!</p>

<p>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p>

<p> </p>

<p> </p>

<p> </p>

<p> </p>

<p> </p>

<p> </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30 Nov 2025 01:15:45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11월 여는사연 | 이마고데이 이ᄆᆞ고데이</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7</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0/3697059421_1761751262.2445.png" alt="3697059421_1761751262.2445.png" /></p>

<p><strong>2025년 11월 여는사연</strong></p>

<p><strong>이마고데이 이ᄆᆞ고데이</strong></p>

<p> </p>

<p>2022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삼년동안은 미션얼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 해당하는 하나님(복음), 세상(문화), 공동체(교회)중에서“세상(문화)”에 대한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일상생활사역에 대한 묵상과 강조를 했습니다. 그에 이어, 2025년을 맞으면서 향후 3년동안은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강조를 하겠다는 사역의 방향을 잡고, 첫해인 2025년에는 세상에서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의 반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일그러진 하나님 상(像)을 기초로 가지게 될 때 그 위에 일어나는 세상 속 사역과 일상생활사역이 불성립하거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어떤 하나님 상(像 image)를 가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가 7세기 전에 말했듯이, 종종 "우리는 스스로 이해한 자신의 모습에 따라 신에게 이름을 붙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인간의 이미지를 반영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추구하게 되고 맙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0/3697059421_1761751353.1099.jpg" alt="3697059421_1761751353.1099.jpg" /></p>

<p>이런 취지로, (1) 하나님 이미지, 하나님 형상(image of God)으로서의 인간을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선교와 일상생활사역의 기초로 제시하는 동시에, (2) 그릇된 신, 만들어진 신, 스스로 이해한 자신의 모습으로 이름하는 신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인 “이마고 데이(Imago Dei)”를 조금 변형하여 “이ᄆᆞ고데이:”라는 캘리그라피를 통해 진정성있는 하나님의 형상 추구라는 방향과 그릇된 하나님의 형상 만들기를 비판하는 의도를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 콜론의 사용의도는 앞 문구의 설명을 덧붙이거나 관심을 집중시키어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이 부호를 통하여 당신이 생각하거나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는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0/3697059421_1761751339.7805.jpg" alt="3697059421_1761751339.7805.jpg" /></p>

<p>종교개혁기념주일을 중심으로 &lt;일상생활사역주간&gt;을 매년 선포하고 21세기 교회의 개혁 과제를 새로운 언어로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마고데이”가 주는 통찰을 통해 오늘날의 교회가 새롭게 되어야 할 지점이 어딘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중세 카톨릭교회의 공로주의를 극복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개혁운동을 진행하였던 첫 번째 종교개혁은 오늘 21세기에서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로서의 자기 존재 이유를 어쩌면 반대편에서 찾아야 할 지 모릅니다. 첫번째 종교개혁의 극단적인 자기 부정의 위험을 극복하고 초대 교부 이레니우스가 남긴 위대한 통찰인 “하나님의 영광은 온전히 살아있는 한 인간이다(Gloria Dei est vivens homo. The glory of God is a human being fully alive)”라는 정신을 다시 돌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종교개혁자인 칼빈과 같은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통해 전적 타락속에서도 이 형상이 어떻게 되었으며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이마고데이의 참된 회복이야말로 하나님의 목적인 미시오데이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의 과제인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상상력을 이 주제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0/3697059421_1761751464.54.jpg" alt="3697059421_1761751464.54.jpg" /></p>

<p>“교회고민”과 “이마고데이”의 상상력을 “미션얼순례(Missional Journeys)”를 하면서 연결시켜 보려고 지난 9월부터 서울, 광주,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lt;일상생활사역주간&gt;에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순례해 보자는 취지로. 첫 주인 10월 29일은 과거를 순례하기 위해 “복병산에 서서, 부산 장로교의 처음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제목으로 맘테스트의 김상윤 교수님을 모시고 초기 선교 유적지를 순례했습니다. 현재와 미래를 순례할 목적으로 11월 5일은 대학 캠퍼스에서 젊은이들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10월 27일 &lt;청년, 함께&gt;가 동역했던 “교회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집담회 역시 일종의 교회 고민의 일환이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10/3697059421_1761751568.9696.png" alt="3697059421_1761751568.9696.png" /></p>

<p> </p>

<p>11월 8일 토요일 연구소는 기도로 관심으로 동역하시는 분들을 초청하여 함께 순례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lt;일상생활사역주간2025&gt;의 마지막 날 마무리를 “걷고 예배하다 (Walk &amp; Worship)”라 이름으로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전망대를 출발하여 동삼중리 소재 &lt;일상으로교회&gt;까지 걷거나 달리고, 함께 모여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로, “일상으로” 보내신 분, 삼위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것은 그동안의 “교회고민”에 대한 우리의 화답이 될 것입니다. 함께 할 식탁교제를 위해 아래의 링크를 이용하셔서 참여의사를 표해 주시면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매년 연구소 식구들이 함께 모이는 단 한 번의 모임입니다. 가족, 지인들과 함께 많이 오셔도 좋겠습니다.</p>

<p><a href="http://1391korea.net/s/64" rel="nofollow">미션얼순례:일상으로 참가신청</a> (왼쪽 글자에 커서를 두고 클릭하시면 아래 주소로 바로 연결됩니다.  https://1391korea.net/s/64)</p>

<p> </p>

<p> </p>

<p>평화를 전하며</p>

<p>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hu, 30 Oct 2025 00:29:32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10월 여는사연 | Mobile Imago Dei, 미션얼순례, 일상생활사역주간2025</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6</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9/2949134662_1759160207.8198.png" alt="2949134662_1759160207.8198.png" /></p>

<p><strong>2025년 10월 여는사연</strong></p>

<p> </p>

<p><strong>Mobile<em> Imago Dei</em>, 미션얼순례, 일상생활사역주간2025</strong></p>

<p> </p>

<p>9월과 10월은 아이러니하게도 9월의 개신교 교단들의 총회와 10월의 종교개혁기념주일의 부정적 연결을 생각하게 합니다. 개신교회를 있게 했던 종교개혁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잔치가 교단의 총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상을 어긋나지 않고 경계사고(boundary mindset)에 갇힌 극우 보수화된 교회 기득권 세력들의 시각을 여실하게 보여준 고신, 합동, 통합등의 총회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야말로 500년이 넘은 개신교에 새로운 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 연구소는 그 출발 시점부터 21세기 종교개혁의 새로운 과제로서 생활(生活)신앙의 재발견, 이원론과 이분법의 극복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이것 때문에 종교개혁기념주일을 중심에 두고 10월 마지막 주와 11월에 걸쳐 2주간을 &lt;일상생활사역주간&gt;으로 정하고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 왔습니다. 2025년도 역시 10월 26일 종교개혁기념주일부터 11월 8일 토요일까지를 &lt;일상생활사역주간2025&gt;으로 선포하고 매일 “일상기도”를 통해서 함께 캠페인에 참여하며, 특히 하반기에 지속하고 있는 “찾아가는 연구소 프로젝트”인 미션얼순례(Missional Journeys)를 통해서 교회고민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21세기 종교개혁의 아젠다로서 세상과 일상생활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미션얼을 찾아 경축하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9/2949134662_1759160286.021.png" alt="2949134662_1759160286.021.png" /></p>

<p> </p>

<p>움직이는 순례를 선택하게 된 것은 우리가 믿는 삼위 하나님이 움직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성전을 짓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정주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할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대전신학대학교에서 오랜 기간 조직신학을 가르친 허호익 교수의 신간 『야웨 하나님은 다르다: 성서적 신론의 새로운 모색』에서 허호익교수는 야웨는 특정 성전에 갇힌 신이 아니라 백성과 동행하는 ‘이동신(移動神)’이었다고 갈파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교회가 정주를 선택하고 안정을 추구할 때,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종교체제가 되어 버리고 그 영적 활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삼위 하나님이 움직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역시 움직이는 하나님의 형상(mobile image of God)입니다.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 계명에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국의 왕들이 식민지에 세워 둔 형상들은 움직이지 않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남녀를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피조세계에 움직이는 하나님을 닮은 움직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두시고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정주와 안정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날 뿐 아니라 가짜 진실인 우상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 움직이는 이마고데이, 움직이는 하나님의 백성, 움직이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유념하는 데 미션얼순례(Missional Journeys)가 가장 적합한 상상력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9/2949134662_1759160326.8307.png" alt="2949134662_1759160326.8307.png" /></p>

<p> </p>

<p>지난 9월 17일 광주 미션얼순례는 &lt;동네책방 숨&gt;에서 “숨쉼아카데미 목회자 네트워크”에 계신 목회자 분들 10여명과 함께 긴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10월 15일에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구를 방문하여 교회 너머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들어 보려고 합니다. &lt;일상생활사역주간2025&gt;중에는 두 주간의 수요일에 각각 부산에서 초기 기독교를 형성하였던 유적지를 순례하는 일과 캠퍼스 혹은 캠퍼스 사역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교회고민들을 들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lt;일상생활사역주간2025&gt; 마지막 날인 11월 8일 토요일은 실제로 함께 걷거나 뛰어서 영도 바닷가를 순례한 후 동삼동 소재 &lt;일상으로 교회&gt;에 모여 함께 교제하고 예배와 기도로 마무리하는 Walk &amp; Worship 으로 미션얼순례(Missional Journeys)를 할 예정입니다. 이 이벤트는 우리 연구소 후원자와 마음을 함께 하는 동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더욱 의미가 깊어질 것입니다. 아래의 “연구소사연”을 참고하시고 참여하실 분들의 식음료 준비를 위해 구글독스를 통한 참여신청을 미리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9/2949134662_1759160365.7387.jpg" alt="2949134662_1759160365.7387.jpg" /></p>

<p>긴 연휴와 추석 명절이 시작되는 시월의 초순, 뜨겁게 달려온 지난 여름의 호흡을 한 번 여유롭게 고르고, 새로운 힘과 용기로 움직이는 이마고데이(mobile<em>Imago Dei</em>)의 삶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p>

<p> </p>

<p>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Sep 2025 00:39:32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9월 여는사연 | 이마고데이와 교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5</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8/3697059418_1756565244.0577.png" alt="3697059418_1756565244.0577.png" /></p>

<p><strong>2025년 9월 여는사연</strong></p>

<p><strong>이마고데이와 교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strong></p>

<p> </p>

<p>늦여름 더위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교회고민'이라는 주제로 찾아가는 연구소 서울 방문을 잘 마쳤습니다. 다양한 층위에서 한국교회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한편으로 깊이 공감을 하기도 하고 다른 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상처가 깊은 만큼 즉각적인 치유 방안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섣부른 진단이나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 혹은 완전한 개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는 대증(對症) 처방이 아닌 근원의 문제를 살필 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연구소가 올 한 해 화두로 품고 묵상하고 있는 &lt;이마고데이&gt;가 주는 새로운 상상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8/3697059418_1756565321.4867.jpg" alt="3697059418_1756565321.4867.jpg" /></p>

<p> </p>

<p>이 와중에 이마고데이를 주제로 한 두 가지 자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페이스북의 담벼락 글 중 김태훈 목사님의 '하나님의 우상으로'라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조만간 성서유니온에서 번역되어 나올 Carmen Joy Imes의 『Being God’s Image』라는 책입니다. 두 글이 만나는 지점은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가 인간의 존재 이유, 사명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의미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들(롬 8:19),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 교회의 존재 이유, 사명을 이해하는 근원적인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8/3697059418_1756565606.7828.png" alt="3697059418_1756565606.7828.png" /></p>

<p>교회에 대한 이해(교회론)는 복음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고, 역으로 복음에 대한 이해가 교회에 대한 이해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이 복음은 우리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인간론) 나아가 이 지구의 미래가 어떤 궤적을 그릴지를 규정합니다(종말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왕이신 하나님과 그리고 왕의 가족인 동료 인간들과 교제하는 존재이며 모든 피조세계를 번성케하는 자원의 청지기로 세상을 섬김으로 돌보는 자입니다. 이 인간의 지위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닌 자기 방식으로 누리기 원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예수의 인격 안에서 스스로 인간이 되시므로 창조의 목적의 실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인간 예수와 연합한 새로운 인류는 세상속에서 대사들(ambassadors),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로 다시금 회복되어 존재하며, 피조 세계 속에서 완성된 지복의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도래할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목적, 사명은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를 복음의 내러티브 속에서 이해할 때 분명해 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마고데이는 미시오데이와 연결되며 미시오데이의 궤적속에서 이마고데이를 이해하게 될 때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도 제대로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8/3697059418_1756565476.5291.png" alt="3697059418_1756565476.5291.png" /></p>

<p>결국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에 입각한 복음 이해에 깊이 천착하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반영하는 인간과 공동체 이해에 도달하게 되며, 전 피조 세계를 풍성하게 하고 모든 세상을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다시금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교회를 성찰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즉답이 아닙니다. 품고 발효시키고 내면화하고 시행착오를 서슴지 않을 때 조금씩 성령을 통해 주시는 통찰과 지혜가 임하리라 믿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하나님은 경계를 넘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상상력이 열린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동참하며 경축하게 될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8/3697059418_1756565998.0034.jpg" alt="3697059418_1756565998.0034.jpg" /></p>

<p>10월 &lt;일상생활사역주간&gt;까지 '이마고데이'를 주제로 한 ‘교회고민’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입니다. 관심 가져 주시고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월, 하반기 사역의 새로운 출발 소식은 &lt;연구소사연&gt;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전합니다.</p>

<p> </p>

<p>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p>

<p> </p>

<p> </p>

<p></p>

<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at, 30 Aug 2025 23:55:54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8월 여는사연  |  이마고데이와 "교회고민"의 방향</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4</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7/2039601658_1753889993.386.png" alt="2039601658_1753889993.386.png" /></p>

<p> </p>

<p><strong>2025년 8월 여는사연</strong></p>

<p><strong>이마고데이와 "교회고민"의 방향</strong></p>

<p> </p>

<p>“10.27과 12.3 이후의 한국개신교회에 무슨 소망이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미 21세기 들면서 하락세로 접어든 개신교회가 코로나 시기를 겨우 넘기는 것 같았지만 이번 사태들을 통해 결정적으로 세력 과시, 영향력 과시를 통해 극우의 전위를 담당했던 것이 어쩌면 개신교 대몰락의 임계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과연 “교회”에 대한 소망은 시대 착오적인 것인가? 교회로 인해 입은 상처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가진 개별 존재,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교회고민”을 해야 하는가?</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7/2949134610_1753913366.9415.jpg" alt="2949134610_1753913366.9415.jpg" /></p>

<p> </p>

<p>이런 고민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최근 연구소 내부 학습공동체인 ETT모임을 통해 함께 읽고 있는 Stanley Grenz 의 책 <em>The Social God and The Relational Self</em> (사회적 하나님과 관계적 자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개인주의적인 근대적 자아의 상실이라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전에 대한 신학적 응답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인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즉 이마고데이(<em>Imago Dei</em>)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공동체 속에서의 관계적 자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성찰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중세교회에 대한 고민 속에서 개인의 신앙을 강조하는 종교개혁과 이에 이은 근대적 자아 개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근대적 절대적 자아의 이상은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되고 혼란한 자아로 귀결되게 됩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던의 자아는 한편으로 분산되고 유동적이며 매우 불안정하다 못해 마침내 자아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다른 편으로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안정성의 탐구, 즉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아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는 일종의 역사적인 반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에 대한 고민이 개인에 대한 강조에 이르나 개인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다시금 공동체 혹은 사회적 개인을 소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보면 문제는 개인인가, 공동체인가가 아니라 어떤 개인, 어떤 공동체인가입니다. 물론 스탠리 그렌쯔는 자신의 책을 통해 우리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리고 그 관계가 인간 본성의 능력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인 이마고데이가 창조 시점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미완의 가능성이며, 참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계시되고, 성령을 통해 새로운 인류(교회) 안에서 점진적으로 실현될 종말론적 목표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개인, 어떤 공동체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7/2949134610_1753913019.6853.jpg" alt="2949134610_1753913019.6853.jpg" /></p>

<p> </p>

<p>이런 맥락에서 다시금 현재 우리의 “교회고민”과 그 해답으로서 “개인”이라는 선택에 대해 다시금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 어떤 인간을 우리는 이야기하고 꿈꾸고 있는지 다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유대교가 강요하던 인간상과 공동체 인식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 예수복음 공동체인 초대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새로운 인간,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 시대에 도전했습니다. 중세교회의 인간상, 교회에 대한 생각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한국개신교회의 인간상, 교회에 대한 생각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인간,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고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교회고민”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7/2039601658_1753947069.5148.jpg" alt="2039601658_1753947069.5148.jpg" /></p>

<p>연구소는 지난 7월 8일부터 11일까지 여름 리트릿을 기장에서 가지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하반기 사역의 방향을 나누었습니다. 장소를 빌려주시고 식사등을 대접해 주신 후원의 손길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10월과 11월에 있을 &lt;종교개혁기념 일상생활사역주간&gt;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사역의 방향을 방금 말씀드린 “교회고민”과 이마고데이에 대한 신학적성찰에 입각하여 진행하려고 합니다. “찾아가는 연구소 프로젝트”를 통해 일종의 Missional Journeys (미션얼유랑)를 상시 진행하면서 담론들을 확산하려 합니다. 그 첫 출발이 이번 8월에 있습니다. 8월 21일 변방의 북소리가 진주 경상대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에서 “교회고민”을 나누는 모임들을 가지려 합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가까이 계신 분들은 함께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구소사연"에 실린 광고를 참고해 주십시오).</p>

<p> </p>

<p>우리를 보내신 주님 앞에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수 같은 믿음직한 심부름꾼(잠25:13)으로 살아가는 8월이 되길 염원해 봅니다. 평화!</p>

<p> </p>

<p>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hu, 31 Jul 2025 00:41:43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7월 여는 사연 | 충만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3</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1245544.2662.png" alt="3547476281_1751245544.2662.png" /></p>

<p><strong>2025년 7월 여는 사연</strong></p>

<p><strong>충만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strong></p>

<p>어떤 모임에서 칼빈의 불관용에 대해 비판하여 관용을 주장했던 카스텔리옹을 통해 오늘 우리 시대 교회의 관용과 비관용의 문제를 다루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토론하는 시간에 신학을 가르치는 두 목회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관용이라는 태도가 낳게 될 비진리 가능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좌중을 소위 칼빈주의에 다시 집중하게 하려고 애를 썼고, 강의를 한 발제자가 문학적인 관점에서 관용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 것이라고 애둘러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 동시대 보통의 목회자들의 안타까운 의식구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참석한 한 교수님은 신앙인으로서도 기독교인들이 역사속에서 보였던 부끄러운 선택들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직시하는 것에 대해 적실성이 있는 강의였다고 평가하셨고, 한 장로님은 일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지금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 관용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게 다가온다고 논평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두 분의 평신도들은 모두 이 주제의 중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논평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소위 신학을 좀 했다고 하는 목회자들의 시각의 차이가 크게 생기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목소리를 주도하는 이들이 목회자들이기 때문에 일반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 우격다짐 식의 확신을 강요하는 논리를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는 내내 피터 엔즈의 <strong>&lt;확신의 죄&gt;</strong>라는 제목의 책이 생각났습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 공동체인 교회를 지키려는 열망만 강조하면서 세상과 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목회자들의 의견이 오히려 성도들과 교회를, 그리고 복음을 막다른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한 시대를 견인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콘스탄틴적 힘의 논리, 개인적 인격적인 배경의 한계, 동시대 정신에의 함몰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면 신구약 성경의 계시의 빛에서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1245596.022.jpg" alt="3547476281_1751245596.022.jpg" /></p>

<p>비노스 라마찬드라는 풀러에서 행한 2023년 Missiology Lecture 에서 변중과 전도를 다루면서 교황 베네딕트16세를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증 두 가지는 교회가 길러낸 성도들(the saints produced by the church)과 그 안에서 개발된 예술(the art that developed within it)" 이라고 했습니다. 명제적 진리 주장이나 교리 체계가 변증의 강력한 수단이 되기 보다 오히려 <strong>인간성과 그 인간됨의 반영, 이미지로서의 예술이 복음을 변증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strong>는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바꾸어 말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키워내는 인간상이 단순히 부정적인 교회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인간상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여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형상이 반영하고 만들어내는 이미지로서의 예술일 때 세상에 무언가를 건넬 수 있을 것입니다. 톰라이트는 기독교가 세상에 무언가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때문이라고 &lt;톰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gt;에서 말했습니다. 왜 정의가 필요한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영성을 추구하는가? 우리는 왜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는가? 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가? 이 정의(진리), 영성, 관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의 문제(1부 한 목소리의 메아리들)는 결국 삼위 하나님(2부 태양을 응시하기)의 형상, 이마고데이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3부 그 분의 형상대로)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 톰 라이트의 결론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하나님의 형상 <strong>이마고데이를 반영하는 교회 공동체가 길러낸 인간이 세상을 향한 증거, 변증이 될 수 있다</strong>는 것입니다. 연구소가 수년전 “충만한 일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각색한 이레니우스의 말, “온전(충만)하게 살아가는 인간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금언이야 말로 이런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하고 견인할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1245661.3742.jpg" alt="3547476281_1751245661.3742.jpg" /></p>

<p>초두에 언급한 관용과 불관용의 문제 역시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최악의 빌런조차도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임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삼위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를 반영하는 공동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관용 혹은 관대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관용하시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9:22), 그를 닮은 우리들도 관용해야 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5).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나 비진리냐의 "확신의 죄"(피터 엔즈의 책 제목)를 넘어서 <strong>관용의 태도를 세상에 나타낼 때</strong> 오늘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1245811.2766.jpg" alt="3547476281_1751245811.2766.jpg" /></p>

<p> </p>

<p>한국교회의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 연구소는 지난 6월 한달간 “미션얼성경해석학 튜터링북클럽 2기”를 꾸렸습니다. 목회자와 해외선교사 4분이 함께 하면서 매우 유익한 관점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7월 연구소는 3박 4일간의 퇴수회(retreat)를 가질 예정입니다. 숙소를 제공해 주신 후원자 덕분에 좋은 장소에서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나누는 리트릿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십시일반 후원도 부탁드립니다.</p>

<p> </p>

<p>평화를 전하며</p>

<p> </p>

<p>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30 Jun 2025 10:11:58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6월 여는사연 | 성령강림, 이마고데이, 미션얼 삶(missional life)</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2</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5/2950093302_1748590080.8432.png" alt="2950093302_1748590080.8432.png" /></p>

<p><strong>2025년 6월 여는사연</strong></p>

<p> </p>

<p><strong>성령강림, 이마고데이, 미션얼 삶(missional life)</strong></p>

<p> </p>

<p>대통령 선거가 6월의 초두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6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의 미래가 좀 더 민주적이며 사랑과 정의에 기초하여 살만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교회력으로는 6월 8일 주일이 부활절 이후 50일이 지난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부가 보내시고 성자를 영광되게 하실 약속된 보혜사 성령께서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예수를 따라 이 땅을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도우시며 격려해 주십니다. 성령충만, 성령에 잠겨 살아가는 일상의 삶(ordinary time)을 6월 이후 기존 교회력에서는 강조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5/2950093302_1748590106.5383.png" alt="2950093302_1748590106.5383.png" /></p>

<p> </p>

<p>“성령충만, 일상이 되다”라는 2013년의 연구소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리면서 이런 일상의 삶을 다르게 표현한 문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정통 기독교가 제시하는 천국의 그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며 사는 생기 있고 적극적인 인간의 삶(p.53)”이라고 톰 라이트가 그의 책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새 창조가 이미 시작되었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 그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성도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 여기서 이미 천국을 살아가는 셈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식민도시에 자신이 직접 방문하여 나타나기까지 주권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형상을 세우거나, 형상을 새긴 화폐를 사용하게 했던 고대의 왕처럼, 이 땅에 믿는 이들을 자신의 형상, 이마고데이의 사명을 주셔서 자신의 나라, 주권을 드러내게 하시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땅과 하늘이 다시 만나는 재림의 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일상의 삶(ordinary time)을 살아가는 우리의 소명이요 사명(mission)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5/2950093302_1748590127.6446.png" alt="2950093302_1748590127.6446.png" /></p>

<p> </p>

<p>저는 미션얼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최근까지 “보냄받음”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고 많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여전히 요한복음 17장 18절과 20장 21절에 근거하여 이런 이해가 중요하지만, “보냄받음”에는 반드시 사명 혹은 목적이 있다는 사실에 최근 이해의 폭이 확장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연구소 ETT에서 함께 읽고 번역작업을 한 Liberating Scripture(『해방하(되)는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이 책은 현재 매주 화요일 &lt;미션얼성경해석학 튜터링 북클럽 2기&gt;모임에서 살피고 있는 책입니다. “만약 선교의 의미를 좁게 라틴어에서 나온 “보내다”라는 이미지로 제한하지 않고, 목적과 목적성에 대한 일반적인 영어 함의를 강조한다면, 우리는 정경의 어느 한 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낫다는 편견을 갖지 않고 성경 정경 전체에 적절하고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제안은 이미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그의 책 『하나님의 선교』 에서 유사하게 한 바 있지만 저는 충분히 설득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으로 보기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missio Dei)과 그 목적 안에서 인간이 참여하는 과정으로 Mission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의 주제어인 “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은 이런 하나님의 목적 안에 참여하는 인간의 사명을 표현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5/2950093302_1748590145.8815.jpg" alt="2950093302_1748590145.8815.jpg" /></p>

<p>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성령충만한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가 세상에서 삼위 하나님의 주권과 목적을 반영하는 모습이 선교적 삶, 미션얼 삶(missional life)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소 식구들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이런 일상, 삶을 살아가는 6월 되시길 기원합니다.</p>

<p> </p>

<p>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Fri, 30 May 2025 16:29:13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5월 여는 사연 | 탈진실, 국가폭력, 미션얼로서의 이마고데이</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4/2041543709_1745640649.9316.png" alt="2041543709_1745640649.9316.png" /></p>

<p><strong>2025년 5월 여는 사연</strong></p>

<p><strong>탈진실, 국가폭력, 미션얼로서의 이마고데이</strong></p>

<p> </p>

<p>4월 말 홍콩선교대회로 인해 일생사연 발간이 하루 늦춰진 점 해량바랍니다. 국내 정세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Post-Truth (탈진실)정치로 몸살을 경험하고 있는 데, 이 몸살이 극복과 성숙을 가져다 줄 것인지 아니면 함몰과 한없는 추락을 가져다 줄지 지켜 볼 일입니다. “탈진실”이란 “객관적 사실이 공중의 의견을 형성하는데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을 덜 끼치는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옥스퍼드 사전위원회가 2019년 정의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4/2041543709_1745640691.1583.jpg" alt="2041543709_1745640691.1583.jpg" /></p>

<p><strong>Post-Truth 탈진실과 이마고데이</strong></p>

<p>탈진실 시대의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여러 방면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과 감정이 객관적 사실이나 공동체의 대화나 숙의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모더니즘의 개인에서 포스트모던 개인으로의 함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권력의지가 자신의 이익, 개인의 취향과 감정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공공의 선을 위해 그리고 인간 타자에 대한 본질적인 신뢰와 공동체 안에서 대화와 협력을 지향할 때 탈진실은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은 누구인가? 하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실상 독립적인 개인 혹은 부유하는 개인이라기 보다는 관계를 맺고 있는 인격임을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상호 사랑의 관계로 존재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형상(이마고데이 Imago Dei)으로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서의 논의가 큰 도움이 됩니다. 인간이 관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관계 공동체 속에서 대화와 협력, 다른 말로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이런 대화와 협력, 공동체 안의 사랑이 가능하려면 서로가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깨어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던의 개인은 이마고데이의 회복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p>

<p> </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4/2041543709_1745640727.5338.jpg" alt="2041543709_1745640727.5338.jpg" /></p>

<p><strong>국가폭력과 이마고데이</strong></p>

<p>4월과 5월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기념일들이 있습니다. 국가폭력의 문제는 동료 시민들을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함부로 대하고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데서 시작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라고 여긴다면 도저히 감행할 수 없는 폭력적 행위와 잔인한 처벌, 살인, 방화등은 가인 이후 제노사이드(종족말살)의 전통에 서 있는 죄악의 행태입니다. “기억은 힘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존귀한 이마고데이이기 때문에 이러한 제노사이드가 있어서는 안되는 중대한 범죄, 하나님의 형상을 해하는 죄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p>

<p> </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4/2041543709_1745640753.8611.jpg" alt="2041543709_1745640753.8611.jpg" /></p>

<p><strong>미션얼로서의 이마고데이</strong></p>

<p>아픈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 현재 경험하고 있는 탈진실의 현실에 대한 숙고를 위해 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논의가 계속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이마고데이 인류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세상을 새롭게 하고 온전케 하는 일종의 사명, 운명, 목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삼위 하나님의 선교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 미션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역사와 현실속에서 이 사명, 이 운명, 이 목적, 이마고데이를 유념하며 분투하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마고데이는 하나님의 선교, 미션얼의 다른 이름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4/2041543709_1745640784.9955.png" alt="2041543709_1745640784.9955.png" /></p>

<p>그동안 연구소 ETT는 폴 스티븐스의 Working Blessedly Forever 초벌번역과 윤독을 마치고, 이마고데이 인간론을 다루는 Stanley Grenz 의 The Social God and The Relational Self를 5월부터 함께 읽습니다. 5월 27일부터 매주 화요일 밤에 줌 모임으로 진행되는 &lt;미션얼 성경해석학 튜토링 북클럽 2기&gt; 참가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엘비스클럽은 요한계시록을 나누고 있으며 현재 13장까지 진행했습니다. 기타 리좀단위의 정기모임들은 리좀 사역을 보고하는 “미션얼사연”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4/2041543709_1745640957.6958.jpg" alt="2041543709_1745640957.6958.jpg" /></p>

<p>타자를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로 존중하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사명을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반영하고 삼위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미션얼, 이마고데이의 회복을 재확인하는 귀한 5월의 일상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p>

<p> </p>

<p>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at, 26 Apr 2025 13:16:07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4월 여는사연 | 애가, 이마고데이, 형성</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70</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3/991317226_1743414600.1042.png" alt="991317226_1743414600.1042.png" /></p>

<p><strong>2025년 4월 여는사연</strong></p>

<p> </p>

<p><strong>애가, 이마고데이, 형성</strong></p>

<p> </p>

<p><strong>애가(Lamentation)가 필요한 시기</strong></p>

<p>기분 탓인지 봄이 매우 느즈막하게 오는 것 같더니 며칠 사이 갑작스럽게 꽃들의 개화를 보게 되었는데, 산이 불타고 있는 안타까운 날들을 며칠 보내고 있습니다. 봄이 무르익어 가는 계절인 4월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의 기억들이 많습니다. 특히 4.3 제주 사건이나 4.16 세월호 참사의 기억은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적 상흔을 품고 있습니다. 2025년 부활절이 4월 20일입니다. 부활절에 이르기까지 사순절에 이은 고난주간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경험하고 있는 이런 슬픔과 아픔, 상흔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품고 함께 애가를 부르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의 현현으로 존재해야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는 지금의 교회의 형편을 생각하며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과거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야 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주 애가를 불러야 했습니다. 제국의 황제의 형상에 절하고 섬기도록 강요되고, 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존엄함은 무시당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수금을 걸어놓고 불렀던 노래가 애가였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1).” 그렇지만 이 애가가 새로운 창조, 새로운 출애굽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3/991317226_1743346107.4773.jpg" alt="991317226_1743346107.4773.jpg" /></p>

<p> </p>

<p><strong>애가와 이마고데이</strong></p>

<p>예수께서도 공생애 동안 인간들이 죄의 결과로 인한 죽음, 사망에 의해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여 할 때 그것을 보시고 비통과 괴로움으로 우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이후 그를 살리시기 전에 그러셨습니다(요11장). 이렇게 예수께서 사망과 슬픔, 애통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형상이시라는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의 유한성과 취약성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간의 존귀함이 인간 자신의 본질적인 능력이나 윤리적인 능력, 혹은 인간이 지닌 생산성과 기능성에 근거하지 않아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로 혹은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폭정에 견디기 힘들어 부르짖는 애가를 들으시고 출애굽을 약속하신 것처럼 새로운 출애굽 역시 우리의 유한성과 취약함 가운데, 애가 속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합리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알 수 없는 절망과 고통으로 인해 슬픔의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을 때 오히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창조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일그러진 이마고데이였던 이방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u>창조하신 분의 형상</u>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골3:9b-10).” 또한 새창조를 경험한 갈라디아인들을 향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u>그리스도의 형상</u>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라고 형성(formation)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3/991317226_1743345969.1246.png" alt="991317226_1743345969.1246.png" /></p>

<p> </p>

<p><strong>애가와 형성(formation)</strong></p>

<p>일상생활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세계의 기쁨, 즐거움, 행복, 찬가에 주목하기가 쉬운 존재들입니다만 실상 피하고 싶은 슬픔, 괴로움, 불행, 애가를 통해 때때로 인생의 더 중요한 교훈과 열매를 경험하게 됩니다. 특별히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를 통해 오히려 이 부정적인 일상, 생활세계의 경험을 통하여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의 새로워짐, 새창조를 경험하게 되고,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형성되기까지 매진하게 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3/991317226_1743346149.0959.jpg" alt="991317226_1743346149.0959.jpg" /></p>

<p>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형성에 힘쓰는 4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적인 아픔들, 정치적 현실과 재난속에서 애가를 부르면서도 새로운 창조, 새로운 소망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p>

<p> </p>

<p><strong>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strong></p>

<p></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30 Mar 2025 23:49:14 +0900</dc:date>
</item>


<item>
<title>2025년 3월 여는 사연 | 일그러진 “이ᄆᆞ고데이” 와 사순절(Lent)</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1391&amp;amp;wr_id=269</link>
<description><![CDATA[<p> </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2/2041558649_1740714641.3122.png" alt="2041558649_1740714641.3122.png" /></p>

<p>2025년 3월 여는 사연</p>

<p> </p>

<p>일그러진 “이ᄆᆞ고데이” 와 사순절(Le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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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번째 &lt;변방의 북소리&gt;는 2025년 연구소의 캐치프레이즈인 “이ᄆᆞ고데이(Imago Dei)”를 적극적으로 다루었습니다. 2008년부터 4번에 걸쳐 진행했던 &lt;일상세미나&gt;를 포함하면 31번째 “젊은” 제학문 연구자들의 모임이었던 &lt;변방의 북소리&gt;는 이제는 제법 중후한 중견 연구자들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의 주제의식은 인간을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하는 인간론의 관점에서 이런 의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들, 즉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거나 압제하거나 적극적으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어떻게 보야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여기에 최근 AI의 등장으로 인한 고민, 인공지능을 인간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고민도 다루었습니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시론적인 대화로 마무리 해야 했지만 그 자체로 매우 의미심장한 함의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2/2041558649_1740714666.5739.jpg" alt="2041558649_1740714666.5739.jpg"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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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번영하게 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며 이유이지만,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적극적인 사명을 결국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창3장). 하나님의 형상은 일그러진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다양한 죄의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이중적입니다. 단호하게 죄에 대해 반응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죄의 값을 치루게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징벌은 다른 편에서 일그러진 형상을 되돌려 놓으시려는 교정의 의도, 회복의 의도를 품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다루시기 위해 징벌로 바벨론유수 경험을 하게 하시지만 동시에 이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고 배우는 계기가 되도록 하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려는 의도 속에서 단호하게 징벌하시는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성서 이야기가 전해주는 하나님입니다.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 온전한 이마고데이를 인류는 경험하고 보게 됩니다(골1:15-17).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온전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 문제는 온전한 이마고데이를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2/2041558649_1740714686.5692.png" alt="2041558649_1740714686.5692.png" /></p>

<p>우리는 “히틀러도 이마고데이인가?”“윤석열도 이마고데이인가?”“적대의 시대에 적대적 극단주의자들도 이마고데이인가?”라는 크고 역사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작고 일상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전세 사기범도 이마고데이인가?”“주차문제로 층간소음문제로 자주 부딪히는 이웃도 이마고데이인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죄로 인해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다루시는 사랑과 정의라는 하나님의 방식을 숙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법과 정의는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는 잠재적 이마고데이의 관점을 배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과 정의의 절차를 통하여 우리는 빌런들의 일그러진 형상을 정당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 하나님의 의도, 모든 죄악된 인간을 징벌하시지만 치유하시고 사랑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시각을 최후 일각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원수 갚으시고 모든 의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신뢰하여야 할 것입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2/2041558649_1740714751.0744.jpg" alt="2041558649_1740714751.0744.jpg" /></p>

<p>새학기가 시작되고 봄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 3월의 시작입니다. 교회력으로는 3월 5일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불의한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적인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갈망하며 치유와 회복을 갈망하며 애가(Lament)를 부르는 시기입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고, 정치에 있어서도 새로운 회복을 갈망하는 시점에 맞는 사순절 시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운 겨울의 한파를 견디고 마침내 피어나는 새싹과 봄꽃처럼 우리의 일상도 회복을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2/2041558649_1740714796.9023.jpg" alt="2041558649_1740714796.9023.jpg" /></p>

<p>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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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Fri, 28 Feb 2025 12:53:2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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