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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일상생활사역연구소 &amp;gt; ETT 3191 &amp;gt; ETT 3191 자료실</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7장 영성 8장 교회</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46</link>
<description><![CDATA[<p><strong>홍은경 목사</strong></p>

<p>7.영성</p>

<p>비록 성령이 인도해주시는대로 사는 삶이 모호해보일지라도,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 믿음은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사랑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 믿음의 여정은 마치 장거리 달리기와 같습니다. 믿음안에서 삼위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삶은 특정한 공식을 대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열매를 위해 시간을 들이는 일과 같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를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합니다. p.150</p>

<p>8.교회</p>

<p>교회 공동체는 세례와 성찬, 교회력을 따라 복음의 핵심 이야기에 근거해서 자기 자신을 살피고, 자기 짐을 집니다. 공동체를 살피고 서로 남의 짐을 지는 훈련과 결단을 합니다. 교회력과 성례를 통해 선물로 주신 자기 생명을 회고합니다. 선물로 받은 물질로 공동체에서 선한 일을 하는 훈련을 합니다. p174</p>

<p> </p>

<p><strong>서동국 선교사</strong></p>

<p>7장 (영성) <br />
167 / 비록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사는 삶이 모호해 보일지라도,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 믿음은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사랑으로 드러나야 합니다(5:13-14). 이 믿음의 여정은 마치 장거리 달리기와 같습니다. 믿음 안에서 삼위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삶은 특정한 공식을 대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일과 같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필요합니다(5:5-6).</p>

<p>8장. (교회)<br />
191 / 이야기, 표준, 진리는 지식으로 알기보다 실천해서 행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표준, 핵심 내러티브 안에 들어가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 시간과 공간으로서 공동체, 교회가 필요합니다. “교회란 하나님 이야기에 충실한 존재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공간인 셈이다.”(21쪽)<br />
교회 공동체에서 하는 신앙생활은 이 복음의 핵심 이야기에 충실한 존재가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일입니다. 이 시간과 공간, 구체적 공동체, 교회 안에서 우리는 거대한 이야기에 합당한 성품과 덕성을 얻을 것입니다.</p>

<p> </p>

<p><strong>김종수 목사</strong></p>

<p>7장 영성</p>

<p>비록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사는 삶이 모호해 보일지라도,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 믿음은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사랑으로 드러나야 합니다(5:13-14). 이 믿음의 여정은 마치 장거리 달리기와 같습니다. 믿음 안에서 삼위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삶은 특정한 공식을 대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일과 같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필요합니다(5:5-6). 150쪽 </p>

<p>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종교적 삶뿐만 아니라, 경계 밖 세상 가운데서도, 보냄을 받은 일상 생활의 구체적 현장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열매를 맺는 참된 영성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55쪽 </p>

<p><br />
8장 교회 </p>

<p>하우어워스는 《교회됨》에서 말합니다.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대안 사회의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기꺼이 그 이야기를 따르려 하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다. 비판가들이 기독교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성숙이 드러나지 못했다고 반박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의 실천이다."(290쪽) 또한,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성품의 계발은 우리가 지닌 내러티브 안에 들어가 살기'를 배워갈 때 가능하다." (291쪽) 이야기, 표준, 진리는 지식으로 알기보다 실천해서 행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172쪽 </p>

<p> </p>

<p><strong>이상준 목사</strong></p>

<p>7. 영성</p>

<p>&lt;p.153&gt; 영성 훈련도 성령의 인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칫하면 영성 훈련도 율법주의나 금욕주의, 쾌락주의나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영성 훈련도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해 나가야 합니다. </p>

<p>&lt;p.154&gt; 영적 생활에서 제3의 길, 영성의 올바른 길은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영성 훈련과 일상적 삶을 포함한 모든 신앙의 여정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나는 언제나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의식하고 있는가?</p>

<p><br />
8. 교회</p>

<p>&lt;p.166&gt; 우리 삶이 공로가 아닌 선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수시로 확인하는 성품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공동체 내에서 연약하고 실패한 어둠을 징벌적 정의가 아닌 회복적 태도로 대할 수 있습니다. 죄에 빠진 이를 바로잡아 주는 회복적 정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p>

<p>&lt;p.172&gt;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또한 거기서 죽고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는 표준, 핵심 이야기로서 복음 "안에 들어가 살기"를 배워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하는 신앙생활은 이 복음의 핵심 이야기에 충실한 존재가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일입니다. 이 시간과 공간, 구체적 공동체, 교회 안에서 우리는 거대한 이야기에 합당한 성품과 덕성을 얻을 것입니다.  </p>

<p> </p>

<p><strong>문현민 선교사</strong></p>

<p>7. 영성 (151p)<br />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성령을 따라 사는 일이 밋밋하거나 모호하다고 느낍니다. 구체적인 실천 목록을 제시하여 삶을 구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듯한 율법 아래로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이 율법은 참된 영성으로 인도하는 수단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율법이 매개로서 성령이 이끄는 삶으로 인도하지 못하면 사람들을 죽이고 맙니다. </p>

<p>“나는 결코 너희에게 무겁거나 너희에게 맞지 않는 것을 짐 지우지 않겠다. 언제나 나와 함께 다니면 너희는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p>

<p>이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다면, 강제하지 않는 은혜의 리듬을 배우고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사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p>

<p>8. 교회 (160p)<br />
교회는 과연 기독교적 확신이라는 핵심 내러티브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공동체와 정치는 과연 어떤 사람들을 육성했는지에 의해 이해되고 판단되어야 한다. 가장 바른 정치는 덕을 함양하는 정치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정치야말로 인간 공동체를 위한 가장 참된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p>

<p>172p<br />
진리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의 실천이다. 성품의 계발은 우리가 지닌 내러티브 안에 들어가 살기를 배워갈 때 가능하다.<br />
173p<br />
교회 공동체에서 하는 신앙생활은 이 복음의 핵심 이야기에 충실한 존재가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일입니다. 이 시간과 공간, 구체적인 공동체, 교회 안에서 우리는 거대한 이야기에 합당한 성품과 덕성을 얻을 것입니다.</p>

<p>..</p>

<p>영성(훈련)<br />
"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는 전혀 다른 모습 같지만, 육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잇습니다...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 모두의 공통 뿌리인 육체는 성령과 대조됩니다." 149<br />
"바울이 두 가지 그릇된 삶의 양태, 즉 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를 비판하면서 공통되게 제안하는 내용은 분명합니다.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성령의 내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이후에도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150<br />
"영성훈련도 성령의 인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칫하면 영성 훈련도 율법주의나 금욕주의, 쾌락주의나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영성 훈련도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해나가야 합니다." 153</p>

<p>교회<br />
"성령의 열매로 표현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삶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문제 가운데 드러납니다. 공동체적 삶과 구체적 문제 상황이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삶의 전시장이자 훈련장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162<br />
"바울은 공동체 내 두 가지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공동체에서 "죄에 빠진" 형제를 대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하나는 공동체에서 물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상황입니다." 162<br />
"우리 삶이 공로가 아닌 선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수시로 확인하는 성품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공동체 네에서 연약하고 실패한 이들을 징벌적 정의가 아닌 회복적 태도로 대할 수 있습니다. 죄에 빠진 이를 바로잡아 주는 회복적 정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166<br />
"죄 용서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 죄에 빠진 이들에게 보이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물질을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열매를 맺고, 다른 덕성을 보입니다.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6:8)."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입니다." 168 </p>

<p>에필로그<br />
"갈라디아서가 오늘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시대가 "포스트"가 붙는 시대, 탈종교, 탈교회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박스 내부에서 한 우물만 열심히 파는 것으로는 이 시대를 견인하지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교회 바깥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177<br />
"이런 격변기, 전환기, 경계 시기에 복음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상생활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또, 교회는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 할까요? 갈라디아서는 이 물음들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너머의 복음, 너머의 교회'입니다." 177<br />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Jun 2025 19:59:29 +0900</dc:date>
</item>


<item>
<title>미션얼해석학 튜터링 북클럽 제2기 수료증 (2025.6.24)</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45</link>
<description><![CDATA[<p>수료증 모음</p>

<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0666857.0775.jpg" alt="3547476281_1750666857.0775.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0666875.9195.jpg" alt="3547476281_1750666875.9195.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0666881.4641.jpg" alt="3547476281_1750666881.4641.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0666886.1249.jpg" alt="3547476281_1750666886.1249.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506/3547476281_1750666890.3888.jpg" alt="3547476281_1750666890.3888.jpg"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Jun 2025 17:21:35 +0900</dc:date>
</item>


<item>
<title>5장 미션얼성서읽기II 6장 제자훈련</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44</link>
<description><![CDATA[<p><strong>김종수 목사</strong></p>

<p>5. 미션얼 성경읽기II</p>

<p>성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읽어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형성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라는 내러티브, 구원과 복음의 큰 그림을 가지면 시대착오에 빠지지 않습니다. 수단과 목적, 매개와 목표를 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114. </p>

<p>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모든 프로그램, 프랙티스(행동/활동), 프로세스는 쓰임을 받는 도구이자 수단, 매개일 뿐입니다.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프로그램, 프랙티스, 프로세스는 하나님 의 선교라는 대의와, 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관점에서 재고되어야 합니다. 116</p>

<p><br />
6. 제자훈련 </p>

<p>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형성으로서 제자 훈련'은, 자유로우신 그리스도처럼 진리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온갖 종류의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그 위에 굳게 서는 것이 제자 훈련입니다. 129. </p>

<p>우리는 우리 아이들, 우리 지체들이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고 신앙을 키운다고 했을 때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육, 훈련, 양육을 통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을 옥죄거나, 사람들에게 멍에를 지 우고 있습니까? 우리는 교육, 훈련, 양육을 통해 사람들을 관대한 인 격을 지닌 평화의 사람으로 형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과 다르 고 약한 이들을 멸시하고 외면하고 정죄하고 적대하는 인격으로 형성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자랑하고 사람을 따르게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형성, formation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까? 134_135</p>

<p> </p>

<p><strong>홍은경 목사</strong></p>

<p>5. 미션얼성경읽기 2</p>

<p>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매개이자 수단인 모세와 율법에 현혹되거나 얽매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세와 율법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구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에 주목하도록 합니다. 구원과 복음의 전체 내러티브 속에서 모세와 율법을 볼 수 있게끔 애를 씁니다. 삼위 하나님의 원대한 이야기, 새로운 출애굽 관점에서 기존 출애굽과 모세라는 존재, 율법에 갖는 의미를 이야기 합니다. p.113</p>

<p>6. 제자훈련</p>

<p>자유롭게 만드는 복음을 콘스탄티누스적 힘의 논리, 억압의 논리, 배제의 논리로 끊임없이 왜곡시키려는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왜곡하여 우리를 종의 자녀, 종으로 살게 하는 이런 가르침들을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얼마나 열정을 쏟는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p.134</p>

<p> </p>

<p><strong>서동국 선교사</strong></p>

<p>5. 미셔널성경읽기 2</p>

<p>128 / 이런 보내심, 보냄 받음을 선교(mission)라 합니다. mission이라는 단어는 ‘보내다’를 뜻하는 라틴어 mitto의 명사형 missio로부터 왔습니다. 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가 우리의 사명이며,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모든 프로그램, 프랙티스(행동/활동), 프로세스는 쓰임을 받는 도구이자 수단, 매개일 뿐입니다.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프로그램, 프랙티스, 프로세스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대의와, 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관점에서 재고되어야 합니다.</p>

<p>6. 제자훈련</p>

<p>147 / “오랫동안 성서를 억압과 차별, 배제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해석해 온 전통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억압받은 사람, 차별당한 사람, 배제된 사람을 위로하고 그들이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갖도록 성서를 다시 해석했습니다. 그는 전통에서 이탈한 전복적 성서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정통의 해석을 훈련받은 바울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유대 중심적 협소한 세계를 벗어나, 선교적 상황에 처한 바울이 예수께서 온 민족에게 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교적 상황에서 얻은 관점, 그 새로운 관점, 미션얼 관점이 열쇠가 아닐까요?”</p>

<p> </p>

<p><strong>이상준 목사</strong></p>

<p>5. 미션얼성경읽기 2 <br />
교회는 분명 하나님 나라의 수단이자 매개로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지닌 가치나 효용성에 한계가 없다고 이해하면 큰 오산입니다. 교회가 "생명을 줄 수 있는 것"(3:21)처럼 생각한다거나 주장하면, 본문에서 보듯이 유대교적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매개의 변증법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매개자이자 중개자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칫 교회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목적이 되려 하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p.115.  </p>

<p>6. 제자훈련 <br />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형성으로서 제자 훈련'은 자유로우신 그리스도처럼 진리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온갖 종류의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그 위에 굳게 서는 것이 제자훈련입니다. p.129. </p>

<p> </p>

<p><strong>문현민 선교사</strong></p>

<p>5. 미션얼 성경읽기2 <br />
114p 성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읽어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형성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라는 내러티브, 구원과 복음의 큰 그림을 가지면 시대착오에 빠지지 않습니다. 수단과 목적, 매개와 목표를 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p>

<p>116p 삼위 하나님은 지금도 새로운 시대를 여시면서 경계를 넘어 새로운 출애굽을 끊임없이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우리 자신과 교회 공동체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p>

<p>6. 제자 훈련</p>

<p>127p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들에게 종속된 채 복종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가 아닌 "규칙과 법규들"을 따르도록 몰아세웁니다. </p>

<p>129p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형성으로서 제자 훈련'은, 자유로우신 그리스도처럼 진리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p>

<p> </p>

<p><strong>,,</strong></p>

<p>미션얼성서읽기 II<br />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라는 내러티브, 구원과 복음의 큰 그림을 가지면 시대착오에 빠지지 않습니다. 수단과 목적, 매개와 목표를 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114<br />
"교회는 분명 하나님 나라의 수단이자 매개로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지닌 가치나 효용성에 한계가 없다고 이해하면 큰 오산입니다...교회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매개자이자 중재자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칫 교회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목적이 되려 하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115<br />
"하나님의 보내심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가 우리의 사명이며,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모든 프로그램, 프랙티스, 프로세스는 쓰임을 받는 도구이자 수단, 매개일 뿐입니다.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프로그램, 프랙티스, 프로세스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대의와, 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관점에서 재고되어야 합니다." 116<br />
"삼위 하나님은 지금도 새로운 시대를 여시면서 경계를 넘어 새로운 출애굽을 끊임없이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우리 자신과 교회 공동체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116</p>

<p>제자훈련(형성)<br />
"제자 훈련을 그렇게나 강조한 이른바 강남 기독교가 보여 주는 현실을 보면,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제자 훈련을 통해 교회는 부흥했을지 몰라도,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는 진짜배기 제자들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내부나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괜챦고 근사한 사람들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교회라는 박스를 넘어 세상 가운데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타인에게 배타적이고 운리적으로 천박하다고 평가받는 상황입니다." 121<br />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형성으로서 제자 훈련'은, 자유로우신 그리스도처럼 진리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온갖 종류의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그 위에 굳게 서는 것이 제자훈련입니다." 129<br />
"자유롭게 만드는 복음을 콘스탄티누스적 힘의 논리, 억압의 논리, 배제의 논리로 끊임없이 왜곡시키려는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왜곡하여 우리를 종의 자녀, 종으로 살게 하는 이런 가르침을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얼마나 열정을 쏟는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136</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Jun 2025 17:17:23 +0900</dc:date>
</item>


<item>
<title>3장 칭의 4장 미션얼성서읽기I</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43</link>
<description><![CDATA[<p><strong>서동국선교사</strong></p>

<p>나인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나누어지고 분열되는지를 돌아보며 교회론 차원에서 이야기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경계를 넘어 진행되는 하나님의 선교 차원, 즉 선교론의 차원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롭게 되는 것, ‘이신칭의’라는 주제는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가 맺는 관계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 속 하나님의 일하심’, 즉 미션얼 차원(missional dimension)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67</p>

<p>미션얼 성서읽기 1<br />
“우리는 성경의 거대한 서사를 이해하고, 특히 이 서사를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근거하여 박스 너머, 경계 너머에 있는 이방 사람을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복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기쁜 소식,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91</p>

<p> </p>

<p><strong> 홍은경목사</strong></p>

<p> </p>

<p>3. 칭의<br />
“칭의를 개인 구원차원에 한정 짓는 사고방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교회 내의 관계가운데, 세상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p>

<p>”의로움은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계를 바르게 맺기 위해 힘쓰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형제 자매와의 관계 가운데 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p.78</p>

<p>4. 미션얼성경읽기1<br />
“우리는 성경의 거대한 서사를 이해하고, 특히 이 서사를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근거하여 박스 너머, 경계 너머에 있는 이방 사람을 의롭디고 여겨 주시는 복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기쁜 소식,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성경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p.97<br />
 </p>

<p><strong>문현민 선교사</strong></p>

<p>3. 칭의, 76P<br />
유대교적 경계의 담을 다시 세우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경계를 넘어 이방인과 수평적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이 과거 유대교 입장에서는 죄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 자유의 복음의 시각에서 보면, 헐어버린 것을 다시 세워 형제들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경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춤거리게 하는 죄입니다. </p>

<p>4. 미션얼성경읽기, 96p<br />
자신의 세계관 혹은 시대적 문화적 박스 안의 사고를 뒷받침하기 위한 비뚤어진 성경 해석은 사람들을 그릇된 호기심이나 열등감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강조하고 따르도록 만듭니다. </p>

<p> </p>

<p><strong>김종수 목사</strong></p>

<p>칭의를 개인 구원 차원에 한정 짓는 사고방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교회 내의 관계 가운데, 세상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 21세기 포스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유롭게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과 삶으로 세상에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 다. 의로움은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계를 바르게 맺기 위해 힘쓰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가운데 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78p </p>

<p><br />
우리는 성경의 거대한 서사를 이해하고, 특히 이 서사를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근거하여 박스 너머, 경계 너머에 있는 이방 사람을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복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기쁜 소식,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97p. </p>

<p> </p>

<p><strong>이상준 목사</strong></p>

<p>3. 칭의 (구원론을 넘어 교회론, 선교론으로) </p>

<p>"의롭게 되는 것, '이신칭의'라는 주제는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가 맺는 관계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 속 하나님의 일하심', 즉 미션얼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p.70.</p>

<p>"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로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살게 되었다면 구체적으로 공동체적 삶, 이웃과의 삶에서도 의로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드러나야 합니다." P.75. </p>

<p>"결국 의롭게 되는 것(칭의)은 한 사람이 구원받아 윤리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습니다.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참여해서 하나님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세상 속에서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의입니다." PP.76-77. </p>

<p>4. 미션얼 성서 읽기 I (복이 되기 위해 복 받은 자) </p>

<p>"12:3까지 이어서 보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 복은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되는 방편이자 수단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유대인은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려고 복을 받았습니다. '복이 되기 위해 복을 받은 자', 이것이 이 부르심에 담긴 진정한 의도였습니다. P.92. </p>

<p>"예수님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나무에 달려 저주받으셨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저주는 복으로 바뀌었습니다." P.94. </p>

<p>"우리는 성경의 거대한 서사를 이해하고, 특히 이 서사를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근거하여 박스 너머, 경계 너머에 있는 이방 사람을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복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기쁜 소식,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P.97.</p>

<p>"우리에게 복음, 성령의 은혜와 선물로 표현되는 복을 주신 이유는,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라는 뜻입니다. 경계를 넘어 세상 속에서, 이웃 가운데, 모즌 민족에게 복이 되고, 복을 끼치고, 복을 구하고, 복을 전달하는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복을 끼치는 사람으로서 복을 받ㅇ든 자입니다." P.99.  </p>

<p> </p>

<p> </p>

<p>칭의<br />
"의롭게 되는 것, '이신칭의'라는 주제는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가 맺는 관계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 속 하나님의 일하심', 즉 미션얼 차원(missional dimension)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70<br />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참여해서 하나님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세상 속에서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의입니다." 78</p>

<p>미션얼성서읽기 I<br />
"자신의 세계관 혹은 시대적, 문화적 박스 안의 사고를 뒷받침 하기 위한 비뚤어진 성경 해석은 사람들을 그릇된 호기심이나 열등감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강조하고 따르도록 만듭니다. 이단이나 다른 가르침이 한결같이 성경 공부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96-97 <br />
"우리는 성경의 거대한 서사를 이해하고, 특히 이 서사를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근거하여 박스 너머, 경계 너머에 있는 이방 사람을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복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기쁜 소식,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97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Jun 2025 17:11:24 +0900</dc:date>
</item>


<item>
<title>1장 복음 2장 이야기</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42</link>
<description><![CDATA[<p>복음<br />
"옛 사고방식과 새로운 사고방식이 중첩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을 무엇일까요?"</p>

<p>"갈라디아서의 다른 복음 이야기는 단순히 진리와 거짓을 판별하는 요즘의 교리적 이단 논의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옛 시대와 새 시대가 중첩된 가운데 복음 안에서 자유롭게 새 시대를 살아갈 이방인 중심 갈라디아 교회들을 옛 시대에 주저앉히려는 움직임과 관련됩니다."36</p>

<p>"신학과 성경 해석, 여기에 바탕을 둔 교회 모습이 복음의 자유보다 신학과 전통의 속박, 종교적 두려움을 조장했습니다. 은혜와 평화를 강조하기보다 교회 밖 타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를 부추겼습니다. 이것은 결국 억압과 폭력, 전쟁을 원하는 기독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맙니다. 21세기, 우리 교회가 처한 현실입니다." 37</p>

<p> </p>

<p>이야기<br />
"바울이 자전적 서술을 통해 이야기 초반에 말하려고 한 사실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바울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 일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이 경계를 넘어서 확장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야말로 하나님의 선교, 미션얼의 길입니다." 58</p>

<p><br />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롭게 하는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과는 다른, 혐오와 배제의 정신을 새 시대의 공동체인 교회에 심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프레임, 경게 짓기, 박스 만들기를 거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너머에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59<br />
"하나님은 이미 세상 가운데서 우리와 상관없이 성령 안에서 선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저 사람은 이래서 안돼' '이 사람은 저래서 안돼' 규정짓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의 삶 가운데 지금 일하십니다. 교회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회,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오고 있습니다." 60<br />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Jun 2025 17:04:24 +0900</dc:date>
</item>


<item>
<title>서문</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41</link>
<description><![CDATA[<p>"담론 확산이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최근 여기저기서 선교적 교회 담론의 확산에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 운동이 그 정신과 태도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탈종교 현상을 비롯해 범람하는 위기 상황에서 이 운동도 교회의 현상 유지 혹은 성장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여겨, 결국 새로운 유행에 따라 지나가는 포르그램이나 이벤트처럼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합니다." '선교적 교회'를 향한 두 시선: 감사와 우려 12p</p>

<p><br />
"무엇보다 선교적 교회가 단순히 목회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관심을 받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더 깊은 차원의 성서 읽기와 하나님의 선교 관점을 제공하는 성서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같은 성서 해석에 바탕을 둔 강론과 풀뿌리 성경 공부 운동으로 연결되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p.14<br />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Jun 2025 17:03:34 +0900</dc:date>
</item>


<item>
<title>수료증모음:미션얼 성경읽기 튜터링 과정 1기-선교적 성경 해석학</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40</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407/1982297825_1719990358.8236.jpg" alt="1982297825_1719990358.8236.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407/1982297825_1719990358.9574.jpg" alt="1982297825_1719990358.9574.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407/1982297825_1719990359.3431.jpg" alt="1982297825_1719990359.3431.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407/1982297825_1719990359.7473.jpg" alt="1982297825_1719990359.7473.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407/1982297825_1719990359.2105.jpg" alt="1982297825_1719990359.2105.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407/1982297825_1719990359.0838.jpg" alt="1982297825_1719990359.0838.jpg" /><img src="https://1391korea.net/data/editor/2407/1982297825_1719990359.5253.jpg" alt="1982297825_1719990359.5253.jpg"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3 Jul 2024 16:07:12 +0900</dc:date>
</item>


<item>
<title>14장 신학 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 - 대럴 구더</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9</link>
<description><![CDATA[<p><strong>5부 선교적 성경 읽기와 신학 교육</strong></p>

<p><strong>14장 신학 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 / 대럴 구더</strong></p>

<p> </p>

<p>선교적 해석학의 신학과 실천은 본문 해석이 회중 공동체의 형성을 도움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상에 보내질 수 있도록 성경을 엄밀하고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에 초점을 둔다. (411면)</p>

<p> </p>

<p><strong>(1) [핵심 질문] (그렇다면) 선교적 성경 해석학은 신학 교육에 어떤 함의를 갖는가?</strong></p>

<p>선교적 해석학의 함의에 대한 토론은 성경을 통해 회중을 형성하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그러한 초점은 회중을 섬기는 지도자들을 신학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의 모든 측면에서 함의를 가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성경론과 성경을 통한 형성의 수행이 지역 공동체에서 단일한 형성 과정으로서 기능하는 통합된 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412면)</p>

<p>선교적 해석학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준비된 공동체의 신실한 삶과 증언을 위해 그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우리의 합의는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에의 헌신을 확증한다. (413면) /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이 회중의 삶의 방향을 성경을 통한 형성으로 향하게 만들도록 이끈 것은 바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태어난다는 확신이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태어난다는 기본적 주장은 사실상 종교개혁에서 회중을 성경으로 형성하는 일의 우선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분명 이것은 오늘날 선교적 해석학을 위한 자원의 위대한 유산으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서구 기독교 세계의 쇠락을 보여 주는 아주 명백한 표지 가운데 하나는 바로 회중을 선교적으로 형성하는 것에 대한 초점 상실과 그에 상응하는 성경 문해력의 저하였다. (414-415면)</p>

<p> </p>

<p><strong>(2) 선교적 해석학에 입각한 신학 교육의 방향 전환</strong></p>

<p>오늘날 신학 교육은 성서학에 교육 과정의 강조점을 둠으로써 종교개혁의 전통을 계승한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 프로젝트의 강조점들과 선교적 해석학에 대한 일치된 의견이 교육 과정 설계를 이끄는 신념이라면, 우리는 현재 신학 교육 모델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는 방식으로 이 일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를 훈련하는 기초 학문으로서 성경 언어, 석의, 성경 역사, 성경신학을 포함한 성서학에 대한 전통적 강조를 옹호한다. 우리는 회중들을 목양하고 시무할 지도자가 될 전문가들을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보냄받은 공동체의 선교적 책임은 이 문제에서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롬 12:2). (415면)</p>

<p>특히 새로워질 필요가 있는 것은 특정 장소에 위치한 증인 공동체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실천이다. 사도들의 선교가 지향하던 목적은 전문 사도나 안수받은 목회자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선포가 지향하던 목적 역시 단순히 영혼 구원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선교는 일차적으로 그들을 존재하게 한 구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을 계속해서 증언하도록 모이고 보냄받은 공동체들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416면)</p>

<p> </p>

<p><strong>(3) 선교적 해석학에 입각한 신학 교육의 목표</strong></p>

<p>교육적 노력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교단 기관을 관리하는 전문가로 상정되는 직업적 목회자가 아닌, 성도들을 성경으로 준비시키는 사람을 형성하는 일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졸업생들이 직업적 목회자가 아니라, 목사와 교사와 멘토로서 섬길 공동체에 학습 목표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417면)</p>

<p>선교적 해석학으로 세워지고 형성된 선교적 신학 교육의 올바른 결과는 특정 상황 안에 있는 준비된 증인들의 공동체가 하나님이 그들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시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다. 이러한 보냄받은 이들의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는 선교적으로 해석된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계속 형성되고 준비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는 선교적 회중, 즉 선교적 책임에 반응하고자 애쓰는 공동체의 최우선 사항이 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신학 교육의 최우선 사항 역시 성도를 준비시킬 사람을 성경으로 준비시키는 것이다. (417면)</p>

<p>[형성의 목적을 정의하기 위해 바울 서신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형성과 관련된 주제를 언급할 수 있다. (417면) 또한 성경과 치열하게 씨름함으로써 얻은 다양한 형성의 예가 존재한다(예: 교부 시대의 교리 문답 전통, 켈트 선교 운동, 수도회의 선교 이야기 등). (418면)]</p>

<p>여기서 다시, 우리의 졸업생들이 섬길 회중의 선교적 사명이 우리의 교육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의도하는 교육 과정 설계를 인도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 형성의 기본 핵심은 우리의 역사적 탐구 역시 관통해야 한다. 사도적 교회가 본질적으로 지니는 선교적 성격의 관점으로 서구 기독교 세계의 역사에 접근할 때, 우리는 서구 기독교 세계의 교회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 선교가 신학의 주제에서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선교 신학을 상실한 이유 중 하나는 콘스탄티누스 아래 이루어진 유럽의 소위 기독교화였다. (419면)</p>

<p>15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의 특권과 지배력을 가졌던 서구 기독교 세계는 급속하게 쇠락하는 반면, 남반구에서는 기독교 운동이 번성하고 있다. (419면)</p>

<p>이제 우리는 우리의 기독교 회중을 떠나 바로 앞의 선교 현장, 즉 우리가 사는 동네로 들어갈 때 우리가 보냄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신학 교육의 임무는 서구의 저항적이며 심지어 적대적인 정황에서 그들 스스로가 선교사인 동시에 선교사를 준비시키는 사람으로서 미래의 섬기는 지도자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420면)</p>

<p> </p>

<p><strong>(3) 서구 신학 교육의 제도적 역사와 선교의 부재에 대한 반성</strong></p>

<p>서구 신학 교육의 제도적 역사는 전적으로 서구 기독교 세계 안에 위치해 있으며, 그것에 의해 형성되었던 지적‧제도적 역사다. 기독교 세계가 제공한 서구 교육의 요람은 교회가 권력, 부, 자산, 사회적 특권과 맺은 동반 관계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았다. 주된 강조점은 전통과 그 제도를 보존하는 것이었고, 그 목표는 선교적 섬김보다는 더 큰 장악력이었다. 자격을 갖춘 학자들이 가르치는 여러 학문 분야의 집합체로서 신학의 역사적 발전은 교회론에 대한 성찰에서 선교가 빠진 채 이루어졌다. 신학 교육의 암묵적 임무는 대리자인 로마 주교를 통해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기독교 사회를 지속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421-422면) / 종교개혁의 결과로 나온 모든 중요한 신학적 경로 수정에서, 본질적으로 선교적인 교회의 성격과 목적을 다시 주장하는 일은 빠져 있었다. (422면) / 이야기가 근대성을 향해 움직일 때도, 선교의 부재는 계속해서 영향력을 끼쳐 왔다. 선교적 해석학의 부재는 서구 기독교의 다양한 흐름이 성경적 복음의 축소와 왜곡을 합리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신학의 틀을 만들어 낸다. (423면)</p>

<p>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우리의 사명과 실천에 대한 이해를 흐리는 기독교 세계의 렌즈를 제거하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선교적 해석학이 교회의 삶과 실천 전반에 그러하듯, 신학 교육에도 파급력을 끼칠 때, 그것은 회개와 회심을 요구할 것이다. (423면)</p>

<p> </p>

<p><strong>(4) 신학 연구 전반에 대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strong></p>

<p>그렇다면 우리는 신학 연구 전반에 대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p>

<p>교의학 분과와 선교적 성경 해석학 사이의 비평적이고 건설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는 무엇일까? (423면) / 바르트가 어떻게 선교를 그의 교회론의 중심으로 회복하는지를 살펴볼 때, 우리는 그가 사실 교회의 정체성, 사명, 실천에 대한 그의 해석의 길잡이가 되는 선교적 해석학과 함께 일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바르트는 ‘미시오 데이’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에게 있는 ‘삼위일체적 선교 중심성’(Trinitarian missiocentricity)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정으로 선교적이고 신학적인 제안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사실 그것은 회중 공동체의 삶과 실천으로써 분명히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424면)</p>

<p>기독교 세계가 쇠락함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의 긴급성은 우리의 신학 연구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유를 위해, 다른 결과물을 향해 이루어지도록 압력을 가한다. 기본적인 도전은 신학 일반과 실천신학 사이의 분리를 무효화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425면)</p>

<p>선교적 공동체의 실천은 선교적으로 해석된 성경 말씀을 세상 안에서 그들의 존재와 행함과 말로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증인 공동체는 선교적 해석학에 의해 형성된, 그렇기에 성경에 충실한 교의학이라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이러한 신학적 길잡이는 공동체가 세상으로 보냄받을 때 불가피하게 제기될 질문들과 씨름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준비시킬 것이다. (425면)</p>

<p>우리는 더 이상 교회에 관한 추상적인 신학을 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하는 신학적 주장을 행동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 선교적 해석학은 (교회론 연구와 실천신학 사이의) 잘못된 이분법을 해결하도록 요구할 것인데, 이는 다양한 학문 분과가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바꾸어 증인으로서의 섬김을 위한 전인적 형성에 헌신할 때 가능하다. 선교적 해석학이 이를 위한 우리의 주된 자원인 것은 정확하게 그것이 증인에게 능력을 공급하는 증언이라는 성경의 목적 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426면)</p>

<p> </p>

<p><strong>(5) 신학 교육의 선교 중심적 통합 추구</strong></p>

<p>신학 교육에서 고전적 관심사 중 하나는 중심이 되는 비전과 목적에 신학 교육을 통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갖는 선교적 비전이야말로 중심이자 통합의 길잡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지적 훈련과 개인의 영성 형성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는 신학계 안에는 긴장이 존재한다. 만약 회중 공동체가 사도적 선교의 기본 도구라면, 공동체를 이끌도록 준비되는 이들의 공동 생활은 신학교 교과 과정의 분과들만큼 관심을 받아야 한다. 최근 학습 집단 실험은 밝은 전망을 보여 준다. 학생들이 학문적 훈련과 영적 성장을 위한 집단적 실천을 통합한, 의도적으로 계획된 공동체 안에서 신학 교육을 수행했을 때, 진정으로 성도를 준비시키는 사람들로서 섬기는 사역을 위한 그들의 역량이 크게 향상되었다. 우리는 그러한 신학 교육의 선교 중심적 통합을 활발하게 추구해야 한다. (427-428면)</p>

<p> </p>

<p><strong>(6) 요약 및 결론</strong></p>

<p>선교적 성경 해석과 읽기가 신학 교육을 재형성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성도들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을 통해 준비될 수 있어야 한다. 신학 교육은 이러한 회중 공동체를 섬기도록 복음의 선생과 멘토를 준비시킴으로써 그 목적에 이바지한다. 따라서 신학 교육에 기울이는 우리의 수고와 결실은 자격을 갖춘 전문 졸업생이 아니라, 순종하는 증인들의 회중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는 우리의 졸업생들이 ‘성도를 준비시키는 사람들’로서 그들을 섬김으로 그들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428면)</p>

<p> </p>

<p>요약 : 정한신 (2024년 7월 3일) / 위 글의 모든 소제목은 요약자가 작성한 것임</p>]]></description>
<dc:creator>정한신</dc:creator>
<dc:date>Wed, 03 Jul 2024 08:16:48 +0900</dc:date>
</item>


<item>
<title>15장. 신학 교육과 교과 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 읽기 - 마이클 고힌</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8</link>
<description><![CDATA[<p><strong>15장. 신학 교육과 교과 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 읽기 - 마이클 고힌</strong></p>

<p><strong>신학교육과 선교의 위기</strong><br />
오늘날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신학 교육의 주요 문제들</p>

<p>  1) 목회 사역을 위한 준비<br />
  신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매우 이론적이고 현장과 동떨어진 신학적 고찰에 치중되어 있어, 학생들이 목회적 소명을 위해 적절히 준비되지 못하게 한다.<br />
  2) 영성과 도덕성 형성<br />
  신학교는 주로 지적 훈련과 정보 습득에 중점을 두고 있어, 학생들의 영적 성장과 도덕성 함양을 돕고 살피고 가늠하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br />
  3) 지역 회중과의 연결성<br />
  신학교는 그들이 섬기는 지역 회중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학문기관이다.<br />
  4) 교수진의 자격 요건<br />
  교수진은 학문적 성과를 기준으로 선발되며, 이로 인해 목회 경험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교수들이 많다.<br />
  5) 목회의 전문화<br />
  학문적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목회 모델은 실제 목회 경험보다는 학문적 자격 요건을 중시하여 경험 없는 젊은이들을 회중의 지도자로 삼게 한다.<br />
  6) 기숙 생활의 요구<br />
  학생들은 수년 동안 교회와 떨어져 학문 기관에서 거주하도록 요구된다.<br />
  7) 비용<br />
  많은 학생들이 학위 취득을 위해 엄청난 빚을 지고 졸업 후에는 낮은 연봉으로 목회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br />
  8) 교육법<br />
  강의와 정보 전달이 주요 교육 방식이며, 기말시험이나 연구 보고서가 주된 평가 방식이며, 학생들이 실제로 과목에서 배운 정보를 숙달했는지 평가하기 어렵다.<br />
  9) 교과 과정<br />
  교과 과정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뒤에서 다룰 것이다.</p>

<p><strong>문화적 전환과 신학 교육</strong><br />
  1) 계몽주의 세계관에 맞서는 문화적 전환<br />
  서구에서 수 세기 동안 공적 영역과 문화를 형성해 온 계몽주의 세계관에 대한 의심과 비판이 증가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던 풍조는 계몽주의의전제와 더불어 신학 교육의 전제를 향해 문제를 제기한다.<br />
  2) 새로운 이교적 분위기<br />
  서구 사회에서 새로운 이교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며, 이는 목회자들이 기존의 ‘관리자 모드’로는 충분하지 않은 선교적 환경 가운데 있음을 느끼게 한다.<br />
  3) 선교 지도자들과 남반구 교회가 제기하는 비판<br />
  최소 40-50년 동안, 제3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150년간 서구의 신학을 지배했던 가정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서구 바깥으로 나갔던 선교사들의 교차 문화적 경험과 급성장하는 비서구 교회를 위해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분투는 새로운 신학 교육 모델을 탐색하게 했다. <br />
  4) 성경 이야기에서 선교의 중심성 회복<br />
20세기 중반의 선교 지도자들은 성경 이야기에서 선교의 중심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이들이 선교라는 중심 주제가 성경 읽기, 신학의 성격과 임무, 신학 교육 시행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분명하게 진술하기 위한 초기 노력에 참여했다.</p>

<p>1952년 독일 빌링겐에서 열린 국제 선교 협의회는 선교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틀을 제안하였으며, 이는 신학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회의는 선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새로운 신학적 비전을 제시하였고,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강조하였습니다. 선언문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선교 운동의 근원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 안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선교의 중심이 하나님의 선교임을 분명히 했습니다.</p>

<p><strong>‘미시오 데이’와 교회의 선교적 본질</strong><br />
  1) 빌링겐 국제 선교 협의회(1952년)<br />
   (1) 선교를 위한 새로운 신학적 틀 제안.<br />
   (2) 비서구권 교회의 성장, 선교 운동의 비판, 서구의 '기독교적' 성격 상실, 식민주의의 종말 등 당시의 변화를 반영함.<br />
   (3) "교회의 선교적 소명" 선언문은 선교의 근원이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br />
   (4)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먼저, 이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 본질.<br />
   (5) 선교의 개념이 지리적 한계나 특정 활동에서 벗어나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으로 확장.<br />
   (6) 이러한 변화는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성경신학이 주도권을 가짐과 동시에 일어남.<br />
   (7) 성경신학 운동의 주요 요소(브레바드 차일즈)<br />
     ① 신학적(성경의 주인공,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br />
     ② 내러티브 통일성(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 펼쳐지는 이야기)    <br />
     ③ 역사(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강력한 행동으로 드러남)<br />
   (8) 빌링겐 선언문의 중요성 <br />
     ① 선교에 대한 급진적이고 새로운 이해<br />
     ② 성경 이야기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 만물을 화해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와 그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백성<br />
     ③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을 제시.</p>

<p><strong>성경적 해석학, 신학. 신학 교육을 위한 함의들</strong><br />
빌링겐 대회는 선교적 해석학, 선교적 신학, 그리고 선교적 신학 교육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함의를 남겼다. <br />
  1) 선교적 해석학<br />
    하나님의 선교와 그 선교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 해석 방법. <br />
    성경의 전체 이야기를 선교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br />
  2) 선교적 신학<br />
    선교가 성경 이야기의 지배적 모티브라면, 교회의 중심 정체성이 선교적이라면, 교회를 그 사명을 위해 어떻게 준비시킬 것인가. 하나님의 선교와 그 선교에 교회가 어떻게 참여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신학에 가져오는 결과.<br />
  3) 선교적 신학 교육<br />
    교회가 근본적으로 선교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신학 교육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p>

<p><strong>선교와 신학</strong><br />
  1) 선교 운동의 초기 개척자들은 타문화 선교의 실제적 문제에 주로 관심을 가졌고, 서구 선교 운동의 자신감 속에서 선교에 대한 신학적 고찰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선교의 위기는 선교의 성격, 목표, 타당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했으며 이는 선교신학의 성장을 가져왔다.<br />
  2) ‘선교적’은 성경에 충실한 모든 신학적 고찰의 기본적 구성 요소를 규정한다. 이는 단순한 해방신학이나 여성주의 신학과 같은 신학적 지류가 아닌, 모든 신학의 중심을 선교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br />
  “선교를 위한 교회의 형성은 모든 다양하고 고유한 신학 연구의 형태를 결정하고 그것에 힘을 공급하는 추동력이 되어야 한다.” - 대럴 구더<br />
  3) 제3세계 교회의 선교적 신학은 서구 신학에 도전을 제기하며, 선교의 불길 안에서 태어난 신학으로서 서구 신학의 갱신을 위한 추동력이 될 수 있다(데이빗 보쉬).<br />
  4) 선교적 신학<br />
    선교적 신학이란 교회가 ‘미시오 데이’에 참여함에 있어서 그 선교적 사명의 여러 함의를 탐구하는 신학적 과업.<br />
    (1)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 갖는 함의<br />
      ① 어떻게 회중의 삶에, 교회의 돌봄 사역과 증언을 위한 사명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영향을 끼치는가?<br />
      ② 성경이야기에서 선교라는 주요 모티브는 신학의 다양한 분과의 내용 면에서, 이론적 신학과 실천신학 간의 교과 과정 구분이라는 측면에서, 신학의 목적과 목표, 통일성, 방법론 면에서 신학 분야를 어떻게 형성하는가?<br />
    (2) 선교적 신학은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유효한, 구원 신학/ 무시간적 신학’의 개념을 거부하고, 특정한 역사적 · 문화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모든 신학에 주의를 기울임.<br />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고도로 상황적이며, 특정한 지역과 시대에 속한 교회는 성경 이야기와 문화 이야기의 교차로에서 신실하게 살아 내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br />
   5)  상황화된 고찰이라는 신학적 본질이 요구하는 두 가지<br />
      ① 다른 문화, 시대, 신앙 전통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 나누는 삼중의 대화가 필요<br />
      ② 신학의 선교적 사명을 다시 일깨우는 비평적 목소리 제공<br />
   6) 신학의 목표와 목적은 교회를 그 선교적 소명을 위해 형성하는 것.</p>

<p><strong>선교. 신학 교육, 교과 과정</strong><br />
선교와 신학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신학 교육의 목적, 교수법, 구조, 학계와 교회의 관계, 교수진의 자격 요건, 그 밖의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침.</p>

<p>신학 교과 과정을 위한 이론적 모델: 미셔널 트레이닝 센터(애리조나 피닉스), 전통적 교과 과정에 대한 비판과 선교 지도자가 나아갈 길을 위한 제안을 반영(하비 콘, 레슬리 뉴비긴, 데이비드 보쉬).</p>

<p>  1) 선교의 포괄적 비전<br />
    (1) 선교의 재정의: 선교는 단순히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의도적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교회는 공적이고 사적인 삶 전체를 통해 복음을 체현하는 선교의 비전으로 부름 받음.<br />
    (2)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 교회는 우상숭배적인 문화와 대조를 이루며, 복음을 중심으로 공적 영역에서 다양한 사명을 수행해야 함. 전도와 교회 개척은 이 과정의 일부일 뿐, 선교의 핵심은 세상을 위해 복음에 의해 형성되는 것임.<br />
    (3) 신학 교육의 역할: 신학 교육은 목회자가 제도적 교회 내에서만 일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세속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데 중점을 둠.<br />
  2) 하나로 묶어 주고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br />
    선교적 교육 과정의 첫 번째 임무: 다양한 학문 분과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중심을 규정하는 것(p.443, 도표1)<br />
    (1) 복음: 신학 연구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복음으로, 이는 성경 이야기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해석적 중심.<br />
    (2) 성경 이야기: 복음은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 안에 위치하며, 이 내러티브는 창조와 새 창조 사이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중심 주제로 함. <br />
    (3) 선교: 성경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선교로, 신학 교육을 형성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함.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체현하고 알리도록 부름 받음.<br />
    (4)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 하나님의 목적을 체현하는 일은 언제나 특정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일어날 것. </p>

<p><strong>모든 분과의 선교적 내용과 목적 </strong><br />
다양한 신학 분과의 위치, 역할, 내용은 이러한 중심으로부터 파생될 것.<br />
선교적 교과 과정은 그 안에 있는 다양한 과목의 내용과 목적이 선교가 교회를 규정한다고 보는 핵심에 의해 형성될 것.</p>

<p>- 선교적 교과 과정의 목적: 단순히 선교 관련 과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려는 목적에 따라 신학의 모든 분과를 재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춤.<br />
- 선교적 차원과 의도: 기독교 공동체의 삶에서 모든 부분은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새롭게 하는 복음의 능력을 증언. 모든 신학 과목은 선교적 차원을 가져야 하며, 선교가 기독교 신앙의 중심 요소로 간주될 때,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다른 접근법을 고안함.<br />
- 신학의 목표와 내용 간의 구별: 신학은 선교적 소명을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 내용 역시 선교라는 중심 주제에 의해 형성되어야 함.</p>

<p>  1) 성서학<br />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그 성격과 목적을 반드시 이해해야 함.<br />
    (1) 성경은 하나님의 선교를 기록한 문서로,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통일성 있는 내러티브이며,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됨. <br />
    (2) 성경의 목적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하며, 우리가 이 이야기 안에서 자리를 찾고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것.<br />
    (3) 신학적 해석학은 본문의 신학적 혹은 선포적 메시지에 관심을 둠. 이를 위해서 정경적 위치와 문학적 맥락과 역사적 배경 등을 고려해야 함.<br />
  2) 조직 신학<br />
    (1) 성경의 다양성 가운데서 하나님, 인간, 구원, 창조 등에 대해 통일성을 전제로 한 주제 중심의 학문 분과.<br />
    (2) 조직신학은 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며, 문화적 우상숭배에 의해 성경의 가르침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인식할 때 팰요성이 대두된다.<br />
    (3) 조직신학은 교회를 선교적 사명에 신실하게 준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선교라는 중심 주제에 의해 그 내용을 형성해야 함.</p>

<p>조직신학은 교회를 선교적 사명에 맞게 준비시키고, 문화적 도전 속에서 신앙의 진리를 새롭게 조명하며, 성경의 중심 주제인 선교에 따라 그 내용을 형성해야 한다.<br />
  3) 교회사<br />
    (1) 교회사의 새로운 접근<br />
       ① 전통적 접근: 전통적인 교회사 연구는 제도적 교회와 교리적 갈등에 집중함.<br />
       ② 선교적 접근: 복음이 다양한 문화와 어떻게 만나면서 이룬 선교적 진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br />
    (2)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만남<br />
       ① 상황화 문제: 복음이 그리스 문화로 번역되면서 문화적 맥락에서 벌어진 상황화의 문제였음.<br />
       ② 종교개혁: 중세 후기의 새로운 인문주의 정신이 서구 문화를 장악하면서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성경 주제들이 재발견됨.<br />
       ③ 문화적 이해: 복음이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변화해왔는지 이해해야 함.<br />
       ④ 창조와 우상숭배: 복음과 문화의 만남에서 창조적 통찰과 우상숭배적 왜곡을 드러내야 함.</p>

<p>교회사는 단순히 제도적 교회의 역사나 교리적 갈등을 다루는 것을 넘어, 복음이 다양한 문화와 어떻게 만났고 변화해왔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이를 통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이해하고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p>

<p>  4) 회중신학<br />
    회중신학은 신학 교육이 지역 회중 안의 목회자의 소명을 되돌아보고, 그 회중이 신실한 선교적 교회가 되도록 목회자가 그들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 묻는 영역이 될 것. (p.462)</p>

<p>   교회는 다양한 사역이 이루어지는 기관이며, 그 모든 사역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복음으로 그 구성원들을 섬기는 것. (p.462)</p>

<p>회중신학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신학 교육의 방향과 교과 과정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br />
  <br /><strong>이론-실천 이분법에 도전하기</strong><br />
전통적 신학 교육의 핵심에는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이 존재한다.(P.464)</p>

<p>신학적 고찰은 맥락으로부터 이론적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최상의 범주에 비추어 그러한 특정 상황을 고찰하고 평가하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이성적 실천이다. (중략) 따라서 이론적 고찰은 구체적인 사역 활동과 함께 가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신학 교육은 우리가 헌신하고 깊이 개입한 선교적 상황을 성경에 비추어 고찰하는 과정이다. (p.465)</p>

<p>두 가지 추가 과목: 문화 연구와 영성 형성<br />
복음은 언제나 특정 문화적 맥락 안에서 체현되고 표현된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에 신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화에서나 작용하고 있는 창조적 흐름과 우상숭배적 흐름 둘 다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화 연구는 (중략)... 복음에 신실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p.467-68)</p>

<p>영성과 도덕성의 형성 역시 중요하다. (중략) 전통적으로 신학교에서 강조해 온 지성의 형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교회와 신학교의 단절을 해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p.468)</p>

<p>이 두 가지 과목은 신학 교육에서 학생들이 문화적 통찰력과 영적 성숙을 동시에 갖추도록 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선교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p>

<p><strong>결론</strong><br />
교회의 건강, 신학의 신실함, 신학 교육의 갱신은 어느 정도, 우리의 성경 읽기에서 선교의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p.469)</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3 Jul 2024 04:45:32 +0900</dc:date>
</item>


<item>
<title>5부 선교적 성경 읽기와 신학 교육 Thesis 모음</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7</link>
<description><![CDATA[<p><strong>지성근</strong></p>

<p>14장 신학 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      대럴 구더</p>

<p>선교적 해석학의 함의에 대한 토론은 성경을 통해 회중을 형성하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그러한 초점은 회중을 섬기는 지도자들을 신학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의 모든 측면에서 함의를 가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성경론과 성경을 통한 형성의 수행이 지역 공동체에서 단일한 형성 과정으로서 기능하는 통합된 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412</p>

<p>선교적 해석학으로 세워지고 형성된 선교적 신학 교육의 올바른 결과는 특정 상황 안에 있는 준비된 증인들의 공동체가 하나님이 그들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시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다. 이러한 보냄받은 이들의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는 선교적으로 해석된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계속 형성되고 준비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417</p>

<p>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우리의 사명과 실천에 대한 이해를 흐리는 기독교 세계의 렌즈를 제거하는 것이다..진정성 있는 선교적 해석학이 교회의 삶과 실천 전반에 그러하듯,신학 교육에도 파급력을 끼칠 때, 그것은 회개와 회심을 요구할 것이다. 423</p>

<p>우리는 그러한 신학 교육의 선교 중심적 통합을 활발하게 추구해야 하며, 특히 서구의 탈기독교 세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선교적 성경 해석과 읽기가 신학 교육을 재형성해야 하며, 그렇믕로써 성도들의 공동체는 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을 통해 준비될 수 있어야 한다. 428</p>

<p> </p>

<p>15장 신학 교육과 교과 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 읽기    마이클 고힌</p>

<p>선교적 신학은 교회가 '미시오 데이'에 참여함에 있어서 그 선교적 사명의 여러 함의를 탐구하는 신학적 과업이다. 437</p>

<p>신학의 다양한 분과(성서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교회사, 윤리학, 에큐메니컬 연구, 회중신학)의 내용 면에서, 이론적 신학(성서학, 조직신학, 교회사)과 실천신학 간의 교과 과정 구분이라는 측면에서, 신학의 목적과 목표, 통일성, 방법론 면에서 신학 분야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438</p>

<p>신학의 목표와 목적은 교회를 그 선교적 소명을 위해 형성하는 것이다. 439</p>

<p>신학과 신학 교육의 "근본적 헌신과 책무는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에 대한 것이지 교육 기관과 학문의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440</p>

<p>선교적 정체성의 핵심은 한 백성이 세상을 위해 복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442</p>

<p>너무 오랫동안, 성서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교회사, 목회학은 '복음을 체현하는' 것을 주로 다루고, "세상을 위해"라는 부분은 소홀히 했다. 칼바르트는 이러한 신학을 "경건하고 거룩한 자기중심성"이라고 비판했다. 450</p>

<p>선교적 교육 과정을 하나로 묶어 주고 그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이, 하나의 노끈 안에 함께 엮여 들어가 있는 네 가닥, 즉 복음, 성경 이야기, 선교,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이라고 제안하다. 444</p>

<p>신학의 재구성-신학적 대화에 "열방 가운데"라는 말로 환기</p>

<p>교회의 건강, 신학의 신실함, 신학 교육의 갱신은 어느 정도, 우리의 성경 읽기에서 선교의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469</p>

<p> </p>

<p><strong>박태선</strong></p>

<p>14장 신학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br />
선교적 해석학이 신학 교육에 어떤 함의를 갖느냐?<br />
선교적 성경 해석과 읽기가 신학 교육을 재형성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성도들의 공동체는   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을 통해 준비될 수 있어야 한다.</p>

<p>15장 신학 교육과 교과 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읽기<br />
여러가지 이유로 신학 교육의 위기를 말하는 시기에 선교적 성경읽기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선교사들로서 서구 바깥으로 나갔던 이들의 교차 문화적 경험과 급성장하는 비서구 교회르 ㄹ위해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분투는 신학 교육을 형성해 왔던 서구의 지배적 문화 이야기의 가정들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라는 선물을 그들에게 주었다.<br />
그들은 성경 이야기에서 선교의 중심성을 회복했다. 사실 많은 이가 선교라는 중심 주제가 성경 읽기에, 신학의 성격과 임무에, 또한 신학 교육 시행에 어떻게 영향을끼치는지를 분명하게 진술하기 위한 초기의 노력에 참여했다. 오늘날 선교의 중심성에 눈을 뜨고 있는 많은 목회자는 신학 교육에서의 선교의 중심성과 씨름했던 이러한 풍부한 전통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p>

<p> </p>

<p> </p>

<p><strong>김종수</strong></p>

<p>14장 신학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 </p>

<p>선교적 해석학의 신학과 실천은 본문 해석이 회중 공동체(gathered communities)의 형성을 도움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상에 보내질 수 있도록 성경을 엄밀하고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에 초점을 둔다. <br />
(411)</p>

<p><br />
사도들의 선교는 일차적으로 그들을 존재하게 한 구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을 계속해서 증 언하도록 모이고 보냄받은 공동체들을 형성하는 것이었다.(416)</p>

<p>선교적 공동체의 실천은 선교적으로 해석된 성경 말씀을 세상 안에서 그들의 존재와 행함과 말로 표현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증인 공동체는 선교적 해석학에 의해 형성된, 그렇기에 성경에 충실한 교의학이라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이러한 신학적 길잡이는 공동체가 세상으로 보냄받을 때 불가피하게 제기될 질문들과 씨름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준비시킬 것이다. </p>

<p>우리의 소명에 합당한 행실은 무엇인가? <br />
회중 공동체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이웃을 어떻게 돌보는가? <br />
그 공동체는 인생살이의 어려운 도전을 어떻게 다루는가? <br />
하나님의 포용적 사랑을 환대 안에서 어떻게 드러내는가?<br />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논쟁하고 일치를 위해 분투하는가? <br />
공동체의 자원은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재산은 어떻게 관리하는가? <br />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무슬림, 불교 신자, 힌두교 신자인 이웃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이러한 실천의 문제들은 사실 섬김으로 표현된 신학이다.(425) </p>

<p>15장 신학 교육과 교과 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 읽기</p>

<p><br />
 브레바드 차일즈는 성경신학 운동에서 합의된 의견 중 세 가지 주요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br />
(1) 신학적: 성경의 주인공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 하나님이시다.<br />
(2) 내러티브 통일성: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른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펼쳐지는 하나의 이야기이며, 모든 성경과 그 속의 사건은 이러 한 내러티브 맥락 안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br />
(3) 역사: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그의 강력한 행동들에 의해 드러난다.(433-434)</p>

<p>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언제나 성경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우리가 던지는 그 질문이 우리가 얻는 답을 통제할 것이다." 우리의 방향성을 성경의 본질과 목적에 신실하게 맞추는 기본 질문은 이것이다."이 본문은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선교적 증언을 위해 어떻게 준비시키고 형성했으며, 오늘날 우리를 어떻게 형성하는가?"(451) </p>

<p>뉴비긴은 조직신학의 임무가 "각 세대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진술하고, 신앙을 해치는 오류들을 드러내어 격퇴하며, 신앙을 왜곡시키는 교리를 교회의 몸에서 몰아내고, 각 지체를 온전하고 선명한 신앙의 이해로 이끄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여기서 신학은 적극적 임무와 소극적 임무를 모두 갖는다. 교회를 살아 있고 역동적인 신앙으로 이끌도록 디자인된 새롭고 적실성 있는 신앙의 진술을 내놓는 것, 그리고 진리를 왜곡하고 교회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는 문화적 우상숭배로부터 성경의 가르침을 보호하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사안을 다루고 밝혀 주는 신학만이 교회를 그 선교적 소명을 위해 준비시킬 수 있다.<br />
(456-457)</p>

<p> </p>

<p><strong>정천호</strong></p>

<p>14장 신학 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 - 대럴 구더 </p>

<p> </p>

<p>"선교적 해석학으로 세워지고 형성된 선교적 신학 교육의 올바른 결과는 특정 상황 안에 있는 준비된 증인들의 공동체가 하나님이 그들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시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다. 이러한 보냄받은 이들의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는 선교적으로 해석된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계속 형성되고 준비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는 선교적 회중, 즉 선교적 책임에 반응하고자 애쓰는 공동체의 최우선 사항이 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신학 교육의 최우선 사항 역시 이것이 되어야 한다. 바로 성도를 준비시킬 사람을 성경으로 준비시키는 것이다. " p.417 </p>

<p>15장 신학 교육과 교과 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 읽기 - 마이클 고힌 </p>

<p> </p>

<p>"선교적 신학이란 무엇인가? 선교적 신학은 교회가 '미시오 데이'에 참여함에 있어서 그 선교적 사명의 여러 함의를 탐구하는 신학적 과업이다." p.437 <br />
 <br />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 갖는 함의들은 적어도 두 영역에서 정리될 필요가 있다. 교회 회중의 삶과 신학 교과 과정이 그것이다. 첫째, 교회의 선교적 본질은 어떻게 회중의 삶에, 교회의 돌봄 사역과 증언을 위한 사명에, 그러한 돌봄과 증언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영향을 끼치는가? 둘째, 성경 이야기에서 선교라는 주요 모티브는 신학의 다양한 분과의 내용 면에서, 이론적 신학과 실천신학 간의 교과 과정 구분이라는 측면에서, 신학의 목적과 목표, 통일성, 방법론 면에서 신학 분야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P.438 <br />
 </p>

<p><strong>홍은경</strong></p>

<p>14장 신학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 </p>

<p>우리는 더이상 교회에 관한 추상적인 신학을 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하는 신학적 주장을 행동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 우리를 지켜보는 세상 앞에서 우리가 증언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복음이 무엇을 의미라는지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p.426 </p>

<p>15장 신학교육과 교과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읽기 선교적 교과과정의 요청은 전통적 교과과정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신학 분과를 선교학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로 만듦으로써 새로운 신학적 제국주의를 강요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 요청은 선교는 "단순히 또 다른 과목이 아닌, 총체적 신학의 한 차원"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교과과정에 이식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적 질문들이 다양한 신학 분과 연구에 영향을 끼치게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이며,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신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재구성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p.450 </p>

<p>교회의 건강, 신학의 신실함,신학교육의 갱신은 어느정도, 우리의 성경읽기에서 선교의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p.469 </p>

<p> </p>

<p><strong>정한신</strong></p>

<p>14장 신학 교육을 위한 선교적 해석학의 함의 / 대럴 구더</p>

<p>선교적 성경 해석과 읽기가 신학 교육을 재형성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성도들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을 통해 준비될 수 있어야 한다. 신학 교육은 이러한 회중 공동체를 섬기도록 복음의 선생과 멘토를 준비시킴으로써 그 목적에 이바지한다. (428면)</p>

<p>15장 신학 교육과 교과 과정을 위한 선교적 성경 읽기</p>

<p>나는 선교적 교육 과정을 하나로 묶어 주고 그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이, 하나의 노끈 안에 함께 엮여 들어가 있는 네 가닥, 즉 복음, 성경 이야기, 선교,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이라고 제안한다. (444면)</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1 Jul 2024 16:35:28 +0900</dc:date>
</item>


<item>
<title>선교적 성경 해석학 12장 선교적 성경읽기와 설교</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6</link>
<description><![CDATA[<p>선교적 성경 해석학  <br />
12장 선교적 성경읽기와 설교 _ 마이클 고힌  | 김종수 요약 </p>

<p>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교의 기록이자 도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선교적 사명을 위해 형성하고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임을 인식하는 것이 설교의 임무에 필수적이다. <br />
성경은 "하나님의 숨으로 된 것 (존재론적)인 동시에 "하나님의 숨이 뿜어져 나는 것“(도구적)이다._헤르만 바빙크<br />
성경은 하나님의 사역이 열매 맺게 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백성을 사용하시고, 성경은 이 백성을 그들의 임무를 위해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선교'로 부터 뻗어 나오는 “가지'"다. </p>

<p>구약성경은 선교 공동체, 즉 민족들의 빛으로 부름받은 백성에 의해 그리고 그 백성을 위해 형성되었고, 신약성경도 하나님 백성의 선교의 선교라는 상황 안에서 출연한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에서 절정에 이른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이야기가 초기 교회를 세상에서의 선교적 소명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하고 준비하는 데 영향을 끼치게 한다. <br />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목적을 성취하신다. <br />
예수님은 성경이 이루고자 했던 일을 절정의 순간에 결정적으로 행하신다. 즉,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의 질서를 가져다주고, 그리하여 세상에 그것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선교적 백성을 형성하고자 한 성경의 의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된다.<br />
예) 출애굽기 설교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생각해 보자. 출애굽기의 첫 부분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이집트의 우상숭배로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구속의 행동을 들려준다(출1-18강). 이 강력한 행동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진정한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질보다 강력한 구속의 행동을 내다본다. 출애굽기 설교는 구속, 언약, 임재를 통해 선교적 백성을 형성하는 목적을 성취하시는 그리스도를 언제나 가리킬 것이다. 절정에 이른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선교적 공동체로 형성하려는 구약성경의 목표는 결정적으로 성취된다.<br />
예수님은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 안에 강력하게 현존하신다 <br />
하나님의 신약 백성은 세상에서의 선교를 위해 형성된다. 신약성경은 이러한 선포를 '사도들의 가르침' 복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이야기(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이야기의 절정으로 선포되었으며, 그러므로 그 이야기는 세상의 참된 이야기이자 교회의 선교를 위한 토대와 원동력이다. 서신서들은 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중요성을 신생 교회의 모든 특정한 상황들 속에서 펼쳐 냄으로써 교회를 세운다. 사도들의 복음이 선포되고 가르쳐질 때, 그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으로서 선교적 공동체를 생겨나게 하고, 그 공동체가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여 다른 이들을 신앙 으로 이끌게 하였다.<br />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강력한 현존을 가져온다. <br />
사도들의 입을 통한 선포, 증언, 가르침은 신약 정경 안에서 문학적 형태를 취한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성황의 감동을 의식하면서, 선교를 위해 교회를 형성할 수 있는 책들을 기록했다.</p>

<p>세상을 위해 구별된 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그리스도 전하기<br />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한다. <br />
구약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참조. 요 5:39-40; 눅24:27, 44-46).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자, 선포이고 가르침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고하면서 이를 본문의 토대로 삼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특별 계시 전체의 중심이자 내용으로서, 에덴동산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에서 완성된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신실하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 속에서 그 동일한 목적을 위해 현존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말씀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다.<br />
우리는 구별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한다.<br />
하위드 패스킷과 비노스 라마찬드라는 선교는 본래 어디로 가는 것이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존재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민족들 사이에서 구별된 종류의 백성, 대항 문화적 공동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p>

<p>선교적 설교는 단지 믿음 안에서 자라고자 하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결속된 개인들에게 구원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그 역할을 감당하는 구별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br />
1)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문화적 우상숭배의 속박에서 해방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한다.<br />
특정 환경 속에서 다양한 위험에 직면한 교회들에게 쓴 바울 서신들은 고도로 상황화된 목회 서신이다. 이 서신들은 특정 공동체를 위해 그리스도 사건이 갖는 의를 놓고 씨름함으로써 그들이 세상을 위해 복음을 보다 신실하게 체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목회서신을 통해 죄와 우상숭배가 구조적 형태를 띠고 있으며, 성경에서 구원은 성경 이야기의 우주-공동체-개인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br />
예) 골로새서는 로마 세계와 동떨어진, 추상적인 신학적• 윤리적 논문이 아니다. 이 서신은 매우 상황적이며 선교적이다. 바울은 복음에서 드러난 예수님을 둘러싼 사건들이 골로새 교회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외부인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바울이 말하는 우상숭배를 통해 일하는 사탄의 권세에 대해 </p>

<p>"인간 개인에 의해 자행되는 어떤 악보다, 그것의 집단적, 구조적, 혹은 제도적 영향력 안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_ 앤터니 티슬턴(Anthony Thiselton). <br />
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둠의 지배에서 해방시키셨고,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으며, 우리를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시키신다. 우리의 설교는 바울의 패턴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 문화에서 우상숭배적 권세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쩌다 그것의 노예가 되었는가? 이러한 권세들이 어떤 해를 끼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권세들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전할 수 있는가? <br />
2)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의 참된 이야기로 초대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한다. <br />
우리는 의도치 않게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을 우리의 문화적 우상숭배에 맞추어 개인적 구원자로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화해를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한 우주적 이야기 한중간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바울은 세속 문화의 이야기가 잡아당기는 힘을 이해하며, 그들이 대안적이고 구별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대안적 이야기 안에서 교회를 형성해야 할 필요를 잘 이해한다. 바울만이 문화의 지배적인 우상숭배 내러티브에 맞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 내러티브를 설교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br />
“나는 우리가 성경을 정경적으로 온전한 전체로서, 또한 사적이고 공적인 우리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참된 맥락을 제공하는 이야기로 인식하는 것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문화에 주어지는 말씀으로서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직 성경의 포괄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에 의해 변화될 때만,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는 것에 저항할 수 있다. _ 뉴비긴 <br />
설교는 소식을 전하는 것, 즉 내러티브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 자신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회에서, 설교는 단호하고 당당하게 진짜 이야기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br />
기독교 신앙과 관련 없는 한 사회학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서구 기독교의 쇠퇴는 쉽게 설명된다. 기독교 교회들은 그들의 중심 과제, 곧 그들의 근본 이야기를 그 시대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재서술하는 것에 종합적으로 실패했다. 그의 사회학적 분석이 갖는 두 측면에 주목하라. 그리스도인들은 그 구성원을 근본적 이야기로 양육하는 것에 실패했고, 그들은 그 이야기가 그 시대에 들려질 수 있게 하지 않았다. 우리의 회중을 성경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복음으로 형성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바울의 예를 따라 성경의 우주적• 공동체적 차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br />
3)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포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한다.<br />
우리는 우리를 문화적 우상숭배의 힘에서 해방시키고, 성경 이야기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전한다. 골로새 성도들은 로마 제국을 형성하던 종교적 권세들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더욱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br />
모든 설교자에게 필수적인 출발점은 "복음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를 새롭게 할 것이라는 뿌리 깊은 확신"이다. 설교의 실질적 법칙은 삶 속에서 복음이 행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만큼 얻는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그것을 믿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능력이며, 이 진리는 설교자의 정신적 영적 준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br />
4) 우리는 세상의 유익을 목적으로 구별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한다.<br />
우리가 구별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이러한 백성의 형성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우리는 성경 이야기의 선교적 맥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을 위해 구별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과 구원의 통로가 되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 이야기 안에서 그의 백성을 부르신 역할과 사명을 저버리게 된다. 우리는 복이 되기 위해 복을 받는다. 즉, 하나님은 가장 먼저 그의 백성 안에서, 그러나 그러고 나서 그의 백성을 통해 일하신다. 선교적 설교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복과 유익을 건너뛰지 않는다. 다만, 모든 복이 그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목적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p>

<p>결론 :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념하기 <br />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하나님과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으로 제시되며, 따라서 세상에 대한 참된 이야기이자 교회의 선교를 위한 토대와 동력을 제공하는 예수님의(특별히 그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다." </p>

<p>우리의 설교는 사도들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특별히 그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그 복음을 구약성경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으로 선포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 백성의 선교적 지향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설교를 듣는 그 백성은 세상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새 생명 안에서 양분을 공급받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다. <br />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향하도록 하는 것 양쪽 모두를 위한 잠재력을 갖는다. <br />
선교적 설교는 하나님의 백성을 문화적 우상숭배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의 참된 이야기로 초대하며, 우리를 문화적 우상숭배의 힘에서 해방시켜서, 성경의 이야기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예수님을 전함으로 세상을 위해 구별된 백성을 형성한다. 363</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26 Jun 2024 13:04:30 +0900</dc:date>
</item>


<item>
<title>선교적 성경해석학 13장 - 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무엇이 다른가?</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5</link>
<description><![CDATA[<p>선교적 성경해석학 13장</p>

<p> </p>

<p>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p>

<p>– 무엇이 다른가?</p>

<p> </p>

<p>티머시 셰리든</p>

<p> </p>

<p> </p>

<p> </p>

<p>▶문제제기</p>

<p>그리스도는 복음 메시지의 중심에 있고, 복음은 설교 과업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선교, 교회의 선교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p>

<p> </p>

<p>▶핵심질문</p>

<p>- 선교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p>

<p>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모델과 티머시 켈러(Timothy Keller)의 ‘복음 중심적’ 설교 모델을 선교적 성경 읽기과 연결 지어 살펴볼 것이다.</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1rem;"><strong>1. 선교적 성경 읽기</strong></span></p>

<p> </p>

<p>선교적 성경 읽기는 오늘날 <u>성경</u>과 <u>교회의 선교</u>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한다. 선교적 성경 읽기는 선교를 그 중심 관심사와 목표로 놓고 성경 전체를 읽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교회의 선교를 이해하고, 지역 교회의 선교적 실천을 가르치고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p>

<p> </p>

<p>“선교적 해석학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의 세상과 씨름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보여 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p>

<p> </p>

<p>선교적 성경 읽기에서 핵심적 함의 – 구속의 이야기</p>

<p>하나님의 선교, 즉 하나님의 장기적 목적과 목표는 창조 세계와 인간 삶 전체를 죄로부터 회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고 모으고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선교를 실행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 초점은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승천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것에 있다.</p>

<p> </p>

<p>이러한 선교적 읽기는 설교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1rem;"><strong>2.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strong></span></p>

<ul><li>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모델</li>
</ul><p>- 개혁주의의 구속사적 성경 해석학 전통에 토대를 둔다.</p>

<p>- 하나님 중심적 (theocentric) 모델과 유사하면서도 구별됨.</p>

<p> </p>

<ul><li> 하나님 중심적 설교</li>
</ul><p>- 설교 본문이 성경의 총체적 이야기 안에서, 즉 구속사가 펼쳐지는 이야기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계시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p>

<p>- 설교자는 정경 전체의 맥락과 구속사의 포괄성 안에서 설교 본문의 목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p>

<p>우리의 설교는 총체적 성경 이야기가 갖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 목적을 반영해야 함.</p>

<p> </p>

<ul><li>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의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li>
</ul><p>‘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기독교 전통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는다.</p>

<p>그리스도가 창조 세계의 탄생을 가져온 영원한 로고스이실 뿐만 아니라, 신양성경에 계시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p>

<p>그리스도를 전하는 신약 성경의 폭넓은 예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 냄</p>

<p>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주이심을 전하는 것이고, 모든 창조 세계에 대한 그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갖는 엄청난 함의를 설교 안에서 고려하는 것이다.</p>

<p>- <u>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u><u>, </u><u>사역</u><u>, </u><u>가르침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과 본문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통합하는 설교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u><u>.</u></p>

<p> </p>

<ul><li>성경의 본문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절정의 계시에 이르게 하는 7가지 경로</li>
</ul><p><u>1) </u><u>구속사의 진전</u>: 본문의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예수님의 초림 혹은 재림에 이르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따라가는 것.</p>

<p><u>2) </u><u>약속의 성</u>취: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약속이 어떻게 예수님의 초림에서 성취되는지 보여 주는 것.</p>

<p><u>3) </u><u>모형론</u>: 예수님 안에 있는 대형(antitype)을 예시(prefigure)하거나 예기(anticipate)하는 모형이 되는 구약성경의 사건, 사람, 제도로부터 이동 하는 것.</p>

<p><u>4) </u><u>유비</u>: 본문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의 유사성을 부각시키거나 혹은 적어도 저자의 목적을 예수님의 가르침 중 하나의 목적과 유비하여 묘사하는 것</p>

<p><u>5) </u><u>통시적 주제</u>: 어떤 구약 본문의 성경신학적 주제를 예수님의 인격, 사역, 가르침을 통한 발전에 이르기까지 포괄하여 추적하는 것.</p>

<p><u>6) </u><u>신약의 구약 인용</u>: 구약성경 본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신약성경에서의 인용 또는 인유 혹은 유사 주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동하는 것.</p>

<p><u>7) </u><u>대조</u>: 구약성경의 본문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인격, 사역, 가르침과 이루는 대조를 보여 주는 것.</p>

<p> </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1rem;"><strong>3. 복음 중심적 설교</strong></span></p>

<p> </p>

<ul><li>티머시 켈러의 ‘복음 중심적’ 설교 모델</li>
</ul><p>1) 설교의 과녁 – 마음</p>

<p>켈러는 우리가 설교할 때마다, 단지 듣는 이들의 정신, 의지, 감정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p>

<p>2) ‘마음’의 정의</p>

<p>켈러에게 마음이란 인간 본성의 뿌리이며,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에 동기를 부여하는 구조를 본다.</p>

<p> </p>

<ul><li>마음의 중심적 역할 – 인간의 ‘애정’의 역할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르침을 전유함으로써 형성되었다.</li>
</ul><p>에드워즈에 따르면, 애정은 영혼의 이끌림이다. 우리 마음이 애정을 갖는 대상, 우리 마음이 예배하는 대상, 우리 마음이 아름다움을 찾는 대상,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하는 일의 동기와 이유를 형성할 것이다.</p>

<p> </p>

<ul><li>마음과 설교의 깊은 관계</li>
</ul><p>설교의 주된 목표는 동기를 부여하는 이러한 마음의 구조를 뒤따라가면서, 복음이 그것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되돌리고 재형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설교자가 진리를 그저 명확하게 전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u>생생한 실재</u>가 되게 할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p>

<p> </p>

<ul><li>복음의 진리를 <u>생생한 실재</u>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li>
</ul><p>- 논리적 명료함과 상상력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는 기술</p>

<p>- 복음을 상황화하는 기술</p>

<p> </p>

<ul><li>복음을 상황화한 설교를 위해 필수적인 6가지 원칙</li>
</ul><p>1) 이해 가능한 어휘 사용</p>

<p>2) 문화적으로 존중받는 권위들에 호소</p>

<p>3) 의심과 반대에 대한 이해를 보여 주는 능력</p>

<p>4) 기준이 되는 문화의 내러티브를 긍정하고 도전하는 일 둘 다의 필요</p>

<p>5) 문화의 급소를 찌르는 복음 제시</p>

<p>6) 복음에 근거한 순종으로의 동기부여와 요청</p>

<p> </p>

<ul><li>복음의 진리를 생생한 실재로 전하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설교자가 사용해야 할 두 가지 핵심 열쇠</li>
</ul><p><u>1) </u><u>인간의 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해야 한다</u><u>.</u></p>

<p>- 설교자는 언제나 죄 밑에 깔려 있는 죄를 식별할 필요가 있다.</p>

<p>- 설교자가 ‘표면적 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러한 죄를 부추기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마음의 구조는 여전히 복음에 의해 변화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p>

<p>-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설교자는 표면적 죄 아래 자주 깔려 있는 사람의 마음속 우상숭배에 도전해야 한다.</p>

<p> </p>

<p><u>2) </u><u>그리스도가 완성하신 일</u><u>, </u><u>즉 대리적 삶과 죽음</u><u>, </u><u>부활</u><u>, </u><u>승천을 사람의 마음에 적용해야 한다</u><u>.</u></p>

<p>- “죄 밑에 깔려 있는 죄”가 드러날 때,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일의 어떤 측면이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 마음의 동기와 구조가 변화되어야 한다.</p>

<p>- 마음을 고치는 유일한 길은 어떤 특정한 죄를 다루든 그곳에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마음의 애정이 우상으로부터 예수님에게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p>

<p> </p>

<ul><li>켈러가 말하는 설교의 내러티브 흐름</li>
</ul><p><u>1) </u><u>원저자의 의도</u> - 본문에서 시작해서 원저자가 원래 독자에게 전하고자 의도한 것을 자세히 설명</p>

<p><u>2) </u><u>본문의 적용 문제</u> – 본문이 요청하는 우리가 살아야 할 모습 제시</p>

<p><u>3) </u><u>죄 밑에 깔려있는 죄 드러내기</u> – 본문이 우리에게 요청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 마음의 우상들을 드러냄</p>

<p><u>4) </u><u>그리스도께 이동</u> – 적용문제의 해결책이자, 본문에서 제기된 주제에 대한 해석학적 해답으로 그리스도를 제시</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1rem;"><strong>4. 설교의 두 모델과 선교적 성경 읽기 사이의 대화</strong></span></p>

<p> </p>

<p>Q. 선교적 성경 읽기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을 설교하는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p>

<p>-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 낼 6가지 논제</p>

<p> </p>

<p><u>1) </u><u>구속사에서 간과되어 온 선교를 되찾아야 한다</u><u>.</u></p>

<p>- 누가복음 24:45-47말씀을 토대로, 그리스도는 자신의 삶, 죽음, 부활을 둘러싼 사건들과 그러한 사건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 둘 다를 성경의 초점이자 성취로 제시하고 계신다.</p>

<p>-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법은 메시아적이고 또한 선교적인 시각에서 읽는 것이다.</p>

<p> </p>

<p><u>2) </u><u>선교적 성경 읽기는 우리를 하나님 백성의 더 큰 이야기로 데려간다</u><u>.</u></p>

<p>- 선교적 읽기는 본문의 원래 메시지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라는 더 큰 이야기 안에 들어가 있음을 보도록 우리를 계속 일깨울 것이다. 더 큰 내러티브 맥락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 안에 우리를 위치시킨다.</p>

<p>- 마이클 고힌, 이스라엘이 “세 방향을 동시에 바라보는” 공동체였다고 말함</p>

<p>: 뒤를 향해 창조를 바라보고, 앞을 향해 완성을 바라보고, 밖을 향해 열방을 바라보도록 부름받았다.</p>

<p> </p>

<p><u>3) </u><u>선교적 읽기는 교회에 선교적 실천을 요구할 것이다</u><u>.</u></p>

<p>- 선교적 성경 읽기는 본문에서 흘러나오는 선교적 실천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할 것이다. 여기서 ‘실천’이란 단순한 교회의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상황에서 선교적 역할과 사명에 참여하는 지역 회중의 존재와 행위의 습관적 리듬 전부를 말한다.</p>

<p>- 선교적 성경 읽기는 본문의 윤리적 방향성이 갖는 공동체적이고 선교적인 차원으로, 혹은 설교의 ‘적용’문제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우리를 이끈다. 선교적 읽기는 성경 이야기 안에서 공동체의 역할과 정체성에 비추어 삶의 방식을 형성하고자 애쓰며, 이 삶의 방식은 우리의 습관적인 선교적 실천을 통해 궁극적으로 체현된다.</p>

<p> </p>

<p><u>4) </u><u>선교적 읽기는 교회의 선교가 지닌 총체적 범위를 보여 준다</u><u>.</u></p>

<p>- 선교적 성경 읽기는 우리 자신의 기독교 공동체의 선교 토대를 성경 이야기 안에서 펼쳐져 온 구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교의 우주적 범위 안에 둘 것이다.</p>

<p>- 하나님의 선교 범위가 창조 세계 전체만큼 넓다면, 교회의 선교 역시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양한 사명으로 부름받은 환경들이 바로 교회의 선교적 역할과 정체성이 드러나는 곳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웃 및 세상의 삶과 번영을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해 갈 때 선교적 참여가 일어난다.</p>

<p> </p>

<p><u>5) </u><u>우리는 설교가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준비시키고 힘을 공급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u><u>.</u></p>

<p>- 마이클 고힌은 N.T.라이트의 연구에 기초하여,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 <u>기록</u>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 <u>도구</u>이기도 한지를 보여주는 몇 가지 유익한 방법을 제공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양쪽의 다양한 책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양한 선교적 상황에서 그들의 선교적 소명을 감당하도록 돕기 위해 주어졌다.</p>

<p>- 성경의 다양한 장르를 설교하고, 그 장르들이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키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때, 켈러가 경고하듯 우리는 ‘선교적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선교를 얼마나 넓게 인식하든, <u>마음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u>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 선교를 수행할 수 없다.</p>

<p> </p>

<p><u>6) </u><u>복음에 대한 양극단적인 시각을 뛰어넘어야 한다</u><u>.</u></p>

<p>- 켈러의 우려; “구원, 선교,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갖는 개인적 측면과 공동체적 측면은 자주 서로 대결 구도에 놓이고, 개인적 측면은 거의 제거된다.”</p>

<p>- 마이클 고힌이 묘사하는 “우주적-공동체적-개인적” 논리</p>

<p>- 하나님의 목표는 창조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u>우주적</u> 갱신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미래를 체현하는 <u>공동체</u>를 선택하신다. 그리고 <u>개인</u>들은 이 공동체로 들어와 더 큰 이야기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받는다.</p>

<p>- 우리는 오직 구속의 우주적이고 공동체적인 맥락을 볼 수 있을 때만 개인이 들어갈 합당한 자리를 이해하게 된다.</p>

<p> </p>]]></description>
<dc:creator>누르벡</dc:creator>
<dc:date>Tue, 25 Jun 2024 13:13:19 +0900</dc:date>
</item>


<item>
<title>4부 선교적 성경 읽기와 설교 Thesis 모음</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4</link>
<description><![CDATA[<p><strong>지성근</strong></p>

<p>12장 선교적 성경 읽기와 설교   마이클 고힌</p>

<p>신실한 설교는 선교적 성경 읽기와 분리될 수 없(다)..351</p>

<p>성경은 "하나님의 숨으로 된것"(존재론적)인 동시에 "하나님의 숨이 뿜어져 나오352는 것(도구적이다.</p>

<p>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그것이 선교적 목적을 가진 백성을 형성하는 강력한 도구로 성령의 손에 의해 기능한다는 것을 깊이 확신해야한다. 353</p>

<p>이것이 설교가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 문화의 지배적인 우상숭배에 맞서, 설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도록 청중을 초대한다. 371</p>

<p>선교적 설교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복과 유익을 건너뛰지 않는다. 다만, 모든 복이 그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목적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379</p>

<p>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향하도록 하는 것 양쪽 모두를 위한 잠재력을 갖는다. 우리가 전자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받은 사명을 반쪽짜리로 만드는 것이자, 그것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380</p>

<p> </p>

<p>13장 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무엇이 다른가? 티머시 셰리든</p>

<p>선교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 이 질문을 살펴 보기 위해,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모데롸 티머시 켈러의 '복음 중심적' 설교 모델을 선교적 성경 읽기와 연결 지어 살펴볼 것이다. 382</p>

<p> </p>

<p>켈러에게 마음을 고치는 유일한 길은 어떤 특정한 죄를 다루든 그곳에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394 마음의 애정이 우상으로부터 예수님에게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 395</p>

<p>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법은 메시아적이고 또한 선교적인 시각에서 읽는 것이다. 398</p>

<p>우리는 오직 구속의 우주적이고 공동체적인 맥락을 볼 수 있을 때만 개인이 들어갈 합당한 자리를 이해하게 된다. 406</p>

<p> </p>

<p><strong>정천호</strong></p>

<p>12장 선교적 성경 읽기과 설교 - 마이클 고힌 <br />
 <br />
"그러나 이번 장에서 우리의 목적을 위해,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교의 기록이자 도구라는 요약문과 함께 시작할 수 있다." p.352 </p>

<p> <br />
"이러한 성경의 모델은 나로 하여금 설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게 한다. 우리는 세상을 위해/ 구별된 공동체의 형성을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다." p.360  </p>

<p> </p>

<p>"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향하도록 하는 것 양쪽 모두를 위한 잠재력을 갖는다. 우리가 전자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받은 사명을 반쪽짜리로 만드는 것이자, 그것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p.380   </p>

<p> </p>

<p>13장 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 - 무엇이 다른가? - 티머시 셰리든</p>

<p>"선교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 이 질문을 살펴보기 위해,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그리스도 중심적'설교 모델과 티머시 켈러의 '복음 중심적'설교 모델을 선교적 성경읽기와 연결 지어 살펴볼 것이다." P.382. </p>

<p>Q. 선교적 성경 읽기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을 설교하는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br />
1) 구속사에서 간과되어 온 선교를 되찾아야 한다. <br />
2) 선교적 성경 읽기는 우리를 하나님 백성의 더 큰 이야기로 데려간다.<br />
3) 선교적 읽기는 교회에 선교적 실천을 요구할 것이다.<br />
4) 선교적 읽기는 교회의 선교가 지닌 총체적 범위를 보여 준다.<br />
5) 우리는 설교가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준비시키고 힘을 공급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br />
6) 복음에 대한 양극단적인 시각을 뛰어넘어야 한다.  pp.397-407</p>

<p> </p>

<p><b>홍은경</b></p>

<p>12장 선교적 성경읽기와 선교</p>

<p>“예언자적 설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대안적 내러티브에 토대를 두기”때문에, 이 설교는 “설교자가 야웨 내러티브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을때만 행해질 수 있다.” p.369</p>

<p>13장 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무엇이 다른가?</p>

<p>누가는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마음을 얼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말한다. 혹은 그들의 해석학적 방향성과 의제를 재조정하셨다고 말할수도 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법은 메시아적이고 또한 선교적인 시각에서 읽는 것이다. p.398</p>

<p> </p>

<p><strong>차재상</strong></p>

<p><em><strong>12장. 선교적 성경 읽기와 선교 / 마이클 고힌</strong></em></p>

<p>성경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단순히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신뢰할 만한 주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역이 열매 맺게 하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백성을 사용하시고, 성경은 이 백성을 그들의 임무를 위해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선교”로부터 뻗어 나오는 “가지“다. (p.354)</p>

<p>우리는 사도들의 사역을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가 행하신 일의 중요성을 가르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도들의 복음이 선포되고 가르쳐질 때, 그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으로서 선교적 공동체를 생겨나게 하고, 그 공동체가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여 다른 이들을 신앙으로 이끌게 하였다. (p.359)</p>

<p>그러나 설교는 단지 믿음 안에서 자라고자 하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결속된 개인들에게 구원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그 역할을 감당하는 구별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p,362-363)</p>

<p>레슬리 뉴비긴은 “설교 사역은 듣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서 그가 정말로 누구이신지 알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p.367)</p>

<p>오직 성경의 포괄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에 의해 변화될 때만,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는 것에 저항할 수 있다. (p.370)</p>

<p>우리 문화의 지배적인 우상숭배에 맞서, 설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 세상의 이야기틀 들려주고, 그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도록 청중을 초대한다. (p.371)</p>

<p>우리는 성경 이야기의 선교적 맥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을 위해 구별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p.375)</p>

<p>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향하도록 하는 것 양쪽모두를 위한 잠재력을 갖는다. (p.380)</p>

<p><br /><em><strong>13장. 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 - 무엇이 다른가?  / 티머시 셰리든 </strong></em></p>

<p>성경을 선교적으로 읽는 것은 세상에서 교회의 선교를 이해하고, 지역 교회의 선교적 실천을 가르치고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댜 이러한 선교적 실천은 세상에 관한 참된 이야기인 성경 이야기 안에 자리 잡아 가게 된다. (p.382)</p>

<p>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주이심을 전하는 것이고, 모든 창조 세계에 대한 그의 롱치와 다스리심이 갖는 엄청난 함의를 그 설교 안에서 고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그의 인격, 사역, 가르침의 어떤 측면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이 보다 온전히 그를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그에게 순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387)</p>

<p>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사역, 가르침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과 본문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통합하는 설교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p.387)</p>

<p>설교의 주된 목표는 동기를 부여하는 이러한 마음의 구조를 뒤따라가면서, 복음이 그것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되돌리고 재형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390)</p>

<p>켈러에게 바로 이것이 설교의 목표다. 초점은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녹이는 것이다. 애정에 영향을 주는 설교를 하고 그 마음이 정말로 예배하고 있는 것을 겨냥함으로써 이기심의 죄 밑에 깔려 있는 우상들을 쪼그라들게 하고 그리스도는 더욱 존귀하고 아름다워지게 하는 것이다. 켈러에게 마음을 고치는 유일한 길은 어떤 특정한 죄를 다루든 그곳에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마음의 애정이 우상으로부터 예수님에게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 (p.394-395)</p>

<p>선교적 성경 읽기에서부터 나오는 설교는 그들이 선교적으로 참여해야 할 다양한 소명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힘을 공급하고 그들을 준비시킨다. (p.403)</p>

<p>우리의 설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모든 것에 대한 많은 이미지와 포괄적 함의의 풍성함을 탐구하고자 애써야 한다. 이러한 설교는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의 세상과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형성되어 가는 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p.407)</p>

<p> </p>

<p><strong>박태선</strong></p>

<p>12장 세상을 위해 구별된 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그리스도 전하기..<br />
13장 우리의 설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모든 것에 대한 많은 이미지와 포괄적 함의의 풍성함을 탐구하고자 애써야 한다. 이러한 설교는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의 세상과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형성되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p>

<p> </p>

<p> </p>

<p><strong>정한신</strong></p>

<p>12장 선교적 성경 읽기와 설교 - 마이클 고힌</p>

<p>설교 : 세상을 위해 구별된 공동체의 형성을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360면 참고)</p>

<p>13장 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 - 무엇이 다른가? - 티머시 세리든</p>

<p>우리의 설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모든 것에 대한 많은 이미지와 포괄적 함의의 풍성함을 탐구하고자 애써야 한다. 이러한 설교는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의 세상과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형성되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407면)</p>

<p> </p>

<p><strong>김종수</strong></p>

<p>12장 선교적 성경읽기와 설교</p>

<p>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교의 기록이자 도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선교적 사명을 위해 형성하고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임을 인식하는 것이 설교의 임무에 필수적이다.352</p>

<p>선교적 설교는 단지 믿음 안에서 자라고자 하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결속된 개인들에게 구원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그 역할을 감당하는 구별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362 </p>

<p>선교적 설교는 하나님의 백성을 문화적 우상숭배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의 참된 이야기로 초대하며, 우리를 문화적 우상숭배의 힘에서 해방시켜서, 성경의 이야기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예수님을 전함으로 세상을 위해 구별된 백성을 형성한다. 363</p>

<p><br />
13장 선교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복음 중심적 설교-무엇이 다른가? </p>

<p><br />
선교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 382</p>

<p><br />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의 세상과 씨름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보여 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383</p>

<p>선교적 성경 읽기의 해석학적 틀은 "모든 지형을 '보는 방법, 그것을 통과하는 길을 찾아내는 방법, 가장 중요한 것을 관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선교적 읽기의 지도는 하나님의 선교에 맞춰진 성경 이야기의 근본적 방향성을 볼 수 있게 하고, 그 이야기의 주요 특징이 분명하게 두드러지도록 하며, 다른 많은 특징과 그러한 주요 줄거리 사이의 유익하고 놀라운 연관성을 볼 수 있게 한다. 398</p>

<p><br />
우리의 설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모든 것에 대한 많은 이미지와 포괄적 함의의 풍성함을 탐구하고자 애써야 한다. 이러한 설교는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의 세상과 씨름하면서 하나 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형성되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407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at, 22 Jun 2024 23:10:18 +0900</dc:date>
</item>


<item>
<title>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 읽기(N. T. 라이트)</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3</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br /><span style="font-size:1.25rem;"><strong>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 읽기(N. T. 라이트)</strong></span></p>

<p style="text-align:center;">* Goheen, M. W. (ed.)(2016), 선교적 성경 해석학, 백지윤 역(2023), 서울: IVP, pp. 255-83.</p>

<p>신약성경의 목적은 초기 교회의 선교적 삶을 지탱하고 안내하기 위해 쓰여졌다. 초기 교회는 유대교 유일신 신앙에서 말하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가 세상에 마음껏 흘러가게 하는 백성이 되는 것을 의식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초기 교회가 그런 백성이 되기를 원했다. 신약성경의 글들은 초기 교회를 안내하고 지탱하고 지도하고 힘을 주도록, 즉 초기 교회를 형성하고, 그들이 갈지도 모를 잘못된 길에 대해 경고하도록 의도되었다.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신약성경이 쓰인 목적은 초기 교회의 모든 선교적 의제로부터 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성경 읽기는 때로는 ‘묵시적’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교회’라는 이름으로 저항에 부딪혀 왔다.<br />
최근 10여년간 영국에서는 선교로 형성되는(mission-shaped)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다. 선교를 교회의 부수적 활동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선교를 위해 그리고 선교에 의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교에 대한 고정 관념을 고치는 것이다. 영국에서 선교는 크게 두 방식으로 오해된다. 첫째,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사람을 데려오는 것, 둘째, 주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 두 관점은 모두 후기 계몽주의의 유산이며 신약성경의 시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br />
신약성경은 세상을 위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것이며, 그 초점은 물론 예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 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예수님의 부활이 그 출발점이고,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 그 수단이다. 우리는 새 창조의 개시과 그 궁극적 완성 사이에 살고 있다. 지금은 선교를 위한 시간, 교회의 성령 충만한 삶과 증언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치유와 소망을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다. 나(라이트)는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례로 사도행전, 요한복음, 바울서신 세 곳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p>

<p style="text-align:center;"><strong>사도행전의 선교적 신학</strong></p>

<p>사도행전은 선교적 신학을 찾기 위한 대표적 본문으로 활용되는 책이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선교에 대한 전형적인 관점 외에도, 선교를 위한 정교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것은 성전과 교회의 선교다.<br />
구약성경의 성전은 단순히 제의를 수행하는 종교적 장소가 아니었다. 성전은 하늘과 땅이 실제로 만나는 교두보였다. 성전의 의미가 설명되고 확대되는 것을 창세기와 출애굽기, 열왕기상과, 에스겔 등을 거치며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 아크를 따라 성경 읽기를 배울 때, 그 내러티브는 끝나지 않았으며,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또한 마찬가지다.<br />
예수님은 승천하셨다. 승천은 예수님 안에서 하늘과 땅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성령강림)은 땅에서 하늘의 숨결을 지니고 살아가는 새로운 질서를 보여준다. 성전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을 때, 연결된 하늘과 땅이라는 새로운 실재가 만들어내는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교두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br />
이외에도 사도행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의 모든 지점에는 성전이 관련되어 있다: 제자들은 성전에서 기도하고 예배; 스데반은 성전이 심판 아래에 있음을 설교함. 후반부 바울의 선교에서도 갈등은 성전이나 예배와 관련되어 있음: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생각하고 제사하려 함; 파르테논 신전이 내려다보이는 아레오바고의 연설에서 유일신 신앙의 비전을 제시함; 에베소의 신전에서 아르테미스 신앙과 정면 충돌함 등.<br />
우리에게 사도행전만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그 내러티브 속에서 완전한 선교적 신학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읽는 1세기 혹은 오늘날의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도록 도전받는다. 만약 선교가 이런 것이라면, 우리 사회에 있는 신전들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 설교, 생각, 주장을 통해 우리는 그것들을 능가하고 있는가? 그 결과로서 야기되는 위험들에 직면하는 법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p>

<p style="text-align:center;"><strong>요한복음의 선교적 신학</strong></p>

<p>우리는 요한복음의 시작에서도 성전신학을 발견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1:14). 즉 그분은 “우리 가운데 성막을 치셨으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바라본다. 기독론적 성전신학은 요한복음 2장에서 다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br />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에 도착한다. 이 지점에서 큰 충돌이 예상된다. 예수님인가, 성전인가? 양쪽이 맞붙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나 예상된 드라마 대신 요한은 13-17장에 걸쳐 우리를 다락방으로 데려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한은 이 내러티브를 통해 예수님이 참 성전임을 보여준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잘 왔어요. 이리로 들어오세요. 예수님과 함께 머무세요. 그분은 당신이 성전 백성이 되도록 그분의 성령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고별 담화는 세상에서 물러나 안락한 사적공간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닌, 세상으로 나아가는 선교를 위한 준비다.<br />
고별 담화의 중심에서 우리는 이상한 구절을 발견한다.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못 볼 것이기 때문이요, 심판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16:8-11, 새번역) 성령이 오실 때 성령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이러한 일을 하실 것이다. 성령께서 이 일을 하시는 동안 우리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br />
미디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사실 그것이 교회의 임무인 것을 요한복음에서 목격한다. 계몽주의 이래, 우리가 교회의 선교 임무를 개인의 경건과 구원의 차원으로 축소해 온 것은 성령이 오실 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신다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렸음을 의미한다. 성령은 예수님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를 통해 이 일을 하실 것이다.</p>

<p style="text-align:center;"><strong>바울의 선교적 신학</strong></p>

<p>에베소서 전반부를 빠르고 신나게 훑어 보려면 1:10, 2:10, 3:10을 중심으로 보라.  1:10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그 안에서 통일시키는 것이라는 요약문을 발견한다. 그러나 서구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일부 사람들을 땅에서 벗어나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구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가짜 신학에 근거해 살아왔다.<br />
2:8-10에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예술품, 즉 그의 ‘포이에마’ 인 교회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poem)다.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권세의 리듬을 보고 노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에베소서 2장의 ‘선한 일’이란 교회의 총체적인 선교다. 이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다른 방식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초기 교회는 밖으로 흘러가는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었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병든 이들을 치유하고 소외된 이들을 환영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다.<br />
3:10에서 우리는 선교의 명령을 받는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다면적이고 다채로운 지혜가 하늘의 통치자와 권세자에게 알려질 것이다. 바로 여기에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노예와 자유인, 부자와 가난한 자, 젊은이와 노인으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의 존재 자체에 목적을 부여하는 선교적 말씀이 있다. 카이사르는 권력과 폭력, 금력으로 그런 통치를 알렸지만,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를 통해 성령으로, 각양각색이 이루는 일치 안에서 세상의 권세자에게 예수님이 주이심을 드러내는 표지로 한 백성을 창조하셨다. 에베소서 4장에서 일치에 대한 강력한 호소가, 5장에서 거룩함에 대한 강력한 호소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6장에서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처음 세 장에서 말하던 선교사 백성이 되기 위해 일치와 거룩함을 추구할 때 교회가 싸우게 될 영적 전쟁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나온다.<br />
바울의 선교 사역 전체는 복음을 통해 새로운 폴리스/공동체, 새로운 사회적 실재가 될 공동체가 태어나게 하고 성숙시켜 가는 것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고대의 일반적 종교적 실천(성전, 제사, 제사장, 신탁 등) 대신 예수님 안에서 알게 된 하나님과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실천들(세례, 성찬식, 기도, 성경공부)을 행했다. 그러한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고대 로마 단어 렐리가레(religare)가 담고 있는 온전한 의미다. 그들은 주변의 어떤 종교와도 비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종교(religion)를 가졌다. 그들은 선교적 신학에 기초해 세상 안으로 나아가는 특별하고 새로운 공동체였다.<br />
서구 교회는 로마서가 위대한 선교 문서임을 바르게 보았지만, 자주 이 서신의 선교적 함의를 소위 ‘로마서의 길’(구원과 관련된 로마서 구절들을 순서대로 모아 놓은 일종의 전도용 구원 설명서-옮긴이)로 축소했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성령에 의해,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새 창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언약을 뒤쫓아간다.<br />
로마서 6-8장은 하나님의 선교 내러티브를 들려준다. 6장은 우리가 물을 통과하여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는 출애굽 이야기를, 7장은 토라를 받는 시내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8장에서 우리는 토라로부터 해방된다. 대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성령은 우리가 받을 유업(상속)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사실상 로마서는 우리에게 거대한 출애굽 내러티브를 제시한다. 로마서는 성령이 이끄시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유일하신 하나님께 위임받은 대리인으로서 그의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분명하게 설명한다.<br />
결론적으로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공공 선교적 신학이라 묘사할 수 있는 것이 탄생했다. 신학은 성스러운 소수를 위한 사적 공간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해석학적 공간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이 공간은 우리와 주님을 하나로 묶어주는 새로운 렐리기오(religio)를 가지고 예배와 친교 안에서 다 함께 살아가고, 새로운 ‘폴리스’로서 다 함께 기능할 때 나타난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단지 그것의 수혜자가 아니라 대리자로 부름받는다. 이 창조의 대리자가 될 때, 우리는 오늘날 다른 많은 사회와 문화가 열망하는 사회적/문화적/종교적/윤리적/정치적 실재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안전한 사적 공간으로 물러남으로써가 아니라, 옛것의 한 가운데서 새 창조를 살아냄으로써 이 일을 한다.</p>

<p>세계 각 곳의 사람들, 특히 중동의 사람들은 기독교와 서구를 동의어로 본다. 그들은 기독교가 경제적 착취와 폭력적 통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기독교가 희화화 된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지 모른다. 따라 오늘날 중동의 일부 선교사들은 ‘선교사’나 ‘기독교’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그들은 다만 예수님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는 많은 면에서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기독교는 바벨탑을 쌓는 서구의 오만함과 혼동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 모든 혼란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요한복음 16장, 에베소서 1-3장, 빌립보서, 그리고 특히 로마서 8장과 함께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바울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메시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으로의 길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땅에서 잡아채 저 먼 곳의 빛나는 천국으로 데려다주는 영광이 아닌, 시편 8편에서 말한 영광, 즉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인간의 권세다. 바울과 요한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이것이 십자가에서 드러난 영광임을 알게 된다. 교회가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있을 때만 선교는 설득력이 있고 효과적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의 위대한 결론, 적어도 그 결론의 일부분이다. 즉, 그가 의롭다고 하신자들을 그가 또한 영광스럽게 하신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방법이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경을 읽으며 세상을 향한 그분의 선교에 참여하는 방법이다.</p>

<p><strong>* 함께 읽으면 좋은 글</strong><br />
강아람(2016). 비일(G. K. Beale)의 ‘성전신학’으로 보는 선교적 해석학, 선교신학 44, pp. 15-50.</p>]]></description>
<dc:creator>상선약수</dc:creator>
<dc:date>Wed, 19 Jun 2024 13:45:1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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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딘 플레밍</title>
<link>https://1391korea.net/bbs/board.php?bo_table=main_ett_001&amp;amp;wr_id=132</link>
<description><![CDATA[<p>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딘 플레밍</p>

<p>저자는 이 장의 방향을 “골로새서를 첫째, 하나님의 선교와 그 선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한 증언으로, 둘째는 미시오 데이의 도구로 읽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바울이 특정한 환경에 처한 그의 1세기 독자들을 위해 복음을 상황화하는 방식을 선교적 읽기가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314)로 잡는다. 이를 위해 네 개의 주제를 다룬다. 1) 골로새의 선교적 상황 2)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골로새서 3)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로서의 골로새서 4) 선교적 공동체로서 골로새서 읽기.<br />
1) 골로새의 선교적 상황<br />
골로새에 들끓던 거짓 가르침이라는 강한 역풍이 그리스도 중심적 복음을 대체하려는 유해물들을 제공함으로써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을 사로잡을 위험이 있었다. (315)  그 가르침은 아마도 기독교 메시지를 골로새의 문화적 세계를 채우고 있던 관습, 신앙, 세계관의 측면들과 혼합하는 것이었다. 골로새의 초신자들에게는 이러한 혼합주의 칵테일이 매력적으로 보였으리라.</p>

<p>2)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골로새서<br />
하나님의 선교와 창조 : 골로새서를 기독론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또한 선교적으로도 읽어야 한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내러티브를 우주적 화폭 위에 거대한 붓질로 그려 낸다.<br />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최종적 재창조를 향해 나아간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만물의 으뜸이신 그리스도다. 골로새서 1장 15-20절을 중심으로 창조세계,세상, 권세들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br />
하나님의 선교와 구속 : 골로새서가 창조세계 전체를 되찾으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널리 알린다고 할 때, 그 일의 초점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곧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그리스도안에서 하고 계신 일과 관련된다. 그것을 위해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현재적 의미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을 가져오는데, 상당수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십자가의 죽음은 권세를 이기셨다는 의미이며, 화해의 언어를 교회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 부활은 소망을 붙들수 있게 한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의 현재적 의미가 하나님의 선교와 연결된다.<br />
복음, 사도, 하나님의 선교 :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선교는 복음, 곧 복음의 선포및 하나님의 백성안에서의 복음의 체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음은 골로새 성도들의 삶에서 그리고 온 천하에서도 자라서 열매 맺는 살아 있고 역동적인 능력이다. 복음은 비밀인데, 이 비밀은 자신의 구원계획에 이방인을 포함시키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이며, 그 목적의 중심에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 계신다. 사도인 바울은 세상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선교 드라마의 배우가 된다.</p>

<p>3)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도구로서의 골로새서<br />
이 서신은 바울이 골로새 지역에서 선교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br />
선교와 그리스도인의 형성 : 골로새서와 관련해 바울의 선교가 갖는 목표는 신자들이 믿음 안에서 안정적이고 굳건히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을 형성하는 것은 바울의 선교적 사명에 필수적 요소다. <br />
체현되어야 할 정체성 : 바울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형성하여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살아 내도록 하고자 한다. 따라서 바울은 독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임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골로새서에서 이런한 놀라운 주장은 “그들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붙들고 계시며, 구속하실 분과 연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메시아 예수를 통해 세상을 구속하고 화해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바울은 자신의 독자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상상해 보게 함으로써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만유적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교회는 우주 전체와 화해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의 표지이자 선취로 존재한다. 더 나아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교회에 양분을 공급하시며 “하나님의 자라게 하시는 대로” 그것을 자라게 하신다.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한 방법으로 바울은 그들이 전 세계적이고 다국적인 공동체의 일부임을 상기시킨다.<br />
실천해야 할 생활 방식 :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선교와 그리스도안에 있는 교회의 정체성 양쪽 모두에 닻을 내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주권이 강조됨. 우주와 교회의 주이신 그리스도는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일상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새로운 삶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가 권세들을 이겼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사회의 기초적 인간 관계들 안에서 아내와 남편으로서, 자녀와 부모로서, 종과 주인으로서 어떻게 살아 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골로새서는 기도와 감사의 선교적 역할 역시 강조한다. <br />
선포해야 할 메시지 : 골로새서 4장 5-6절에서 몇가지 선교적 함의를 말한다. 첫째, 바울은 말로 하는 증언과 삶으로 하는 증언 사이에 중요한 연결고리를 구축한다. 둘째, 여기서 바울은 회중의 증언을 명시적인 선포보다는 일상적 대화에서 외부인에게 대답하는 것과 관련해 제시한다. 셋째, 이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삶을 살 때, 말로 증언할 기회도 따라온다는 것을 가정한다.넷째, 바울은 공동체의 초점을 밖으로, 즉 그들의 사회적 세상 안에서 말과 삶으로 은혜롭게 증언하는 것을 향해 돌린다.</p>

<p>4) 선교적 공동체로서 골로새서 읽기<br />
오늘날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계속해서 준비시킬 수 있는가?<br />
하나님의 선교라는 드라만에서 우리의 위치 이해하기 (하나님의 선교와 그 안에서의 교회의 역할 이해) : 하나님에 의해 어둠의 지배에서 해방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생명의 충만함을 증언하며, 만물을 자신과 화해시키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에 감사함으로 참여한다.<br />
건실한 선교의 실천 : 정체성에 합당한 말과 삶, 메시지와 태도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선교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 세계 전체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분명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측면이 된다. <br />
복음을 상황화하기: 우리는 성령의 안내를 받아 사람들을 그들의 삶의 환경 안에서 신실하고 적절하게 만날 수 있는, 복음을 말하고 체현하는 방법들을 발견하고자 애써야 한다.<br />
우리의 신학적 상상력 재형성하기 : 골로새서는 공동체의 신학적 상상력과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참여를 재형성하는 힘이 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우리는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아시아 = 어떤 악한 영이나 초자연적 세력 / 서구 = 납작한 비신화화 아니면 파괴적인 패턴 안에 있는 권세들. <br />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9 Jun 2024 13:21:0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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