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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조용한 상태가 아닙니다

작성일 2026-02-06 14:12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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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의 어두운 거실을 상상해 봅니다. 텔레비전은 꺼져 있고, 가족들은 자기 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집은 완벽하게 평화롭습니다. 어떤 싸움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요의 이면에 다른 풍경이 있습니다. 갈등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쌓아올린 마음의 벽과 대화하기를 포기한 사람의 앙다문 입매가 보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상태를 평화라고 착각하며 안도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살아있는 평화가 아닙니다. 적막한 공동묘지의 풍경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 즉 샬롬은 결코 이런 정지된 상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한복음 14:27) 예수님이 이 말씀 하실 때의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제자 중 한 명이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며, 당신은 십자가라는 가장 가혹한 폭력에 희생 되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그 순간에 평화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평화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라고 도전하십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평화는 조건부입니다. 통장에 잔고가 넉넉할 때, 건강 검진 결과가 깨끗하게 나올 때,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지 않을 때 우리는 평화롭다고 말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외부의 압력이 제거된 상태를 평화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춘 뒤에야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수십 개의 악기가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화음을 이루며 격렬하게 공명하는 중에 존재합니다.

이것을 기계에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고장나 멈춘 엔진은 조용합니다. 소음도 진동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닙니다. 건강하게 작동하는 엔진은 뜨겁습니다. 피스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힘찬 소리를 냅니다. 샬롬은 모든 개별 요소가 제 기능을 다 하며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화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 아무 아무 문제도 겪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거친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해를 계속하는 역동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는 사실 평화를 유지한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진실을 외면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갈등이 두려워 적당히 미소 짓고 입을 다뭅니다. 하지만 곪아 터진 상처를 거즈로 덮어놓는다고 해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를 가장한 기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때로 우리를 아프게 찌릅니다. 감추어 두었던 위선을 들추어내고, 억눌러왔던 분노와 직면하게 하시며, 깨어진 관계를 복구하기 위해 먼저 손 내미는 수치스러움을 감수하게 하십니다. 십자가가 평화의 상징이 된 까닭은,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죄가 충돌하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가장 처절한 대가를 치름으로써 진정한 화해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떠드는 이들의 입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떠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람입니다. 떠들며 터져나오는 눈물을 닦아주고, 깨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이어가는 작업은 결코 조용할 수 없습니다. 통곡이 있고, 호소가 있으며, 사과와 용서라는 힘겨운 결단이 수반됩니다. 수술실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메스를 대는 순간 피가 흐르지만, 살을 가르고 뼈를 자르는 과정을 통과해 환자는 다시 일어나는 샬롬을 맛봅니다. 우리가 겪는 소란함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는 거룩한 수술의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자각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선 평화를 맛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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