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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2장 18절 29절 나눔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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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2장 18절 29절 나눔요약 241101
배도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주는 위로
두아디라는 셀류커스 I(B.C.311-280)세가 딸 두아디라의 이름을 따서 만든 군사요충지이자 자주장사로 알려진 루디아의 출신지로 알려질 만큼 염색과 방직 산업이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상인길드들이 강력하게 존재했는데 길드를 통해 상호부조 뿐 아니라 길드를 후원하는 신들에 대한 제사와 공동식사(파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종교성을 강력하게 띄는 경제체제속에서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묵시적 편지를 통해 강력한 정치 경제적 권력과 배교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할 경계와 위로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두아디라 교회안에 “이세벨”이라고 칭할 만한 (여성) 지도자, 목사, 교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돈 출신으로 바알을 섬기던 아합의 처 이세벨을 생각하면 이 존재가 두아디라 교회에 미친 영향을 짐작하게 됩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나 엘리야와의 갈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바알의 전파자, 이방인으로 이스라엘의 종교 경제 문화 전체를 망가뜨리고 이방의 폭력적 체제를 정착시키고 음란함과 바알과 아세라 종교를 번성시켰던 여인이 이세벨입니다(왕상 16:29-왕하 9장까지). 산업이 발달하고 그 경제를 지탱하는 길드 신전 역시 발달한 두아디라에서의 삶을 긍정하고 합리화하는 가르침을 통해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지도자입니다. 스스로 음행을 본보이는 데(21절), 이것을 24절에서는 “사탄의 깊은 흉계(Satan’s so called deep secrets)”라고 표현합니다. 이 거짓 가르침은 주장하기를 악을 깊이 경험하는 일을 통해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다(NIV study bible)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논리와 그에 따른 행위(5회이상반복)를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구약 이세벨 시절 엘리야가 보인 모습처럼 배교의 시절을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19절의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는 인정과 칭찬은 이런 배교의 시대를 살아가며 스스로 소수라고 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24절의 “너희 남은 사람들”이라는 언급은 이세벨의 살해 위협을 피해 호렙으로 도망가며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왕상19:14)”라고 하던 엘리야에게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던 일과 연결되는 듯 합니다. 엘리야를 사십일 광야길 로뎀 나무 아래에서 먹이시고 위로하셨던 주님음 지금 두아디라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24b,25절).” 한마디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견디기만 하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일하시겠다는 의지를 밝히십니다. 그것이 22절과 23절의 내용입니다. “내가 ..하겠다”의 반복을 통해서 이세벨을 결국 개의 먹이가 되게 하신 것처럼 지금은 권력을 쥐고 대세를 형성하는 듯한 흐름을 “그 눈이 불꽃과 같고(그래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분”) 그 발이 놋쇠와 같으신 분(그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18절)” 직접 일하시겠다 하십니다.
이렇게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으시며 스스로 역사속에서 직접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기는 사람에게 “다스림(3회반복)”에 대한 약속을 26절에서 29절이 말합니다. 메시야 시편 2편 9절과 다니엘서 7:13절이하의 “하나님의 아들(2:18)”,“인자(1:13)가 아버지로부터 얻을 권세와 똑 같은 권세를 주시겠다는 약속이 움추러 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큰 전망을 열어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약속의 크기와 환난의 크기가 비례합니다. 무엇보다 이 약속의 절정은 “나는 그 사람에게 샛별을 주겠다(28절)”입니다. 계시록 22장 16절에 의하면 “나는...빛나는 샛별”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데 샛별은 어두운 밤을 통과하여 가장 어두운 새벽에 뜨는 별이며 어두운 밤을 끝까지 견디는 별이라는 점에서 이 두아디라 상황에 가장 적절한 표현입니다. 샛별 즉 스스로를 주시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일체를 약속하시는 것이며 최상의 복입니다.
강력한 배교적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이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아마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와 같은 상황, 혹은 북한의 성도들의 인내는 물론이고 어쩌면 천민자본주의, 성공주의신화, 크리슨덤(권력과 결탁한 기독교)에 물든 오늘날의 상황속에서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그 시스템의 깊은 비밀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성도들(소수의)이 본문을 통해 얻게 될 위로가 큽니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하시는 말씀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합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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