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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3장 1절 6절 나눔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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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3장 1절 6절 나눔요약 241115
허명(虛名)과 자격(資格)
다른 여섯 교회에 비해 조금은 심심하고 평범해 보이는 것은 사데 교회에 대한 자세한 배경설명을 통해 얻는 결과물이 적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도시였지만 주전 546년 고레스 군대의 기습공격으로 정복당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도시인 사데(Sardis)는 계시록 당대에는 무역이 활발하며 상당한 부가 축적되어 황금의 도시, 소아시아의 강남(?)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이라는 점에서 전 문맥의 버가모와는 지리 지형적으로, 두아디라와는 사회 경제적으로 흡사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는 “행위(2회)”를 통해 “살아 있다는 이름”을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었으나 그 이름은 허명(虛名)에 불과하다고 “실상은 죽은 것”이라고 빈사(瀕死)상태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2절에서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3절이 더 깊이 설명합니다. 그것은 받고 들은 “그 가르침을 되새기고 굳게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를 촉구받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2절부터 51절까지 “인자의 임함”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이야기가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에서 11절에도 유사한 이야기를 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안정감을 누리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면 “인자의 임하심”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이름만의(nominal) 상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나라! Wake up! 마치 물에 빠진 자가 스르르 잠이 들려 할 때 깨워야 살아남는 것처럼 깨워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가는 자(것)들을 굳건하게 하여(2절)”야 합니다.
대다수는 허명을 좇아 실상을 망각하고 죽어가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 “몇이” 남아 있습니다.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은 위의 대다수와 대척점에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름, 허명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앞에서 완전하려고, 그 가르침을 되새기고 굳게 지키며 깨어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시록에서 일관되게 “흰옷”을 입은 자(3:18;4:4;7:9,13,14;19:14)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긴 흰옷을 입은 보좌 앞의 존재들과 함께 하는 “그럴 자격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4절). 이런 “흰옷을 입을” 자격은 동시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 남아(지워 버리지 않아) 호명되고 시인되는 특전과 연결됩니다. 아마도 부유한 도시 사데에서는 자격을 갖추어 이름이 기록되면 사람들의 호명과 시인을 획득할 수 있는 사회 정치 경제적 시스템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속에서 자격을 갖춘 이들은 사실 4절에서 이야기하는 소수의 몇사람이기보다는 “살아 있다는 이름”을 떨치는 대다수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계시록은 전복적으로 자격을 갖추고 시인과 호명을 받을 사람은 대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소수의 몇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를 닮아 있는 현대의 교회를 떠올리게 됩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북적거리고 무언가 끊임없이 행위(work,deed)를 추구하며 종교적인 열심을 내는 우리 주변의 교회의 모습 속에서 사데교회의 그림자를 봅니다. 물질적 부요속에서 빈사상태의 자신을 보지 못하고 말씀을 되새기고 그것대로 행하여 순종하는 것보다 허명에 만족하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대다수의 죽은, 혹은 죽어가는 교회를 향한 안타까운 wake up call 임과 동시에 이런 가운데서 소수의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을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자격부여(empowering)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6절).”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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