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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15장 1절 41절 나눔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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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15장 1절 41절 나눔 요약 251205
예배와 거룩, 미션얼(Missio Dei-하나님의 뜻)
바로 앞 문맥인 13장과 14장이 설화체이고 뒷문맥인 16장 역시 설화체인데 15장은 강화체(중간의 32-36절은 설화체)중심인 점, 그리고 앞 문맥이 가나안 탐지 이후 원망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실패이고 후 문맥이 고라등의 반역사건인데 그 사이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바칠 제물과 헌납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 본문이 이곳에 있는 이유와 의도가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절과 2절의 내용이 17절과 18절에서 거의 같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줄 땅, 곧 너희가 살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18절은 “내가 너희를 데리고 갈 그 땅에 너희가 들어가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원망으로 인해 40년을 광야로 우회하는 시점이지만 하나님은 의지를 내 보이십니다. “가나안을 너희에게 주겠다. 내가 너희를 데리고 그 땅으로 가겠다.” 마치 부모가 잘못한 아이를 야단치고 벌을 주지만 훈육하고 형성(formation)하려는 분명한 미래지향적인 목적을 가진 것처럼 지금 여기서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뜻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지와 뜻이 무엇입니까? 3절에서 16절까지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릴 때 정착지에 가게 될 때 짐승제물에다가 정착한 땅의 곡물로 곡식제물을 그 땅의 포도로 만든 포도주로 부어드리는 제물을 합하여 “주를 기쁘게 하는 제사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3,7,10,13,14절). 짐승의 크기에 따라 함께 바치는 소제(곡식제물)와 전제(포도주)의 양이 정해지며 정착지인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사람이든 외국인(사실은 대개는 선주민)이든 같은 법과 같은 규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미래지향적 의지와 뜻(the mission of God)입니다. 원래 출애굽의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니(출3:18, 8:1,8,27, 9:1,13,10:3,7-8,11,24)”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시는 이스라엘을 내 보내야 하는 이유였고 그것의 온전한 성취의 모습이 일종의 제사의 법과 규례로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얻게 될 곡식에서 난 헌(납)물의 규례로 여기 제시되고 있습니다.
22절부터 31절까지는 이런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반영하는 명령을 실천하지 못하는 두가지 다른 경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9절까지는 “실수로(unintentionally)” 실천하지 못하는 것인 반면 30절부터 31절은 “일부러(defiantly)” 주를 모독하고 주의 말을 경멸하여 명령을 어기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용서의 가능성을 속제제물을 규례대로 바치는 방식으로 열어 놓으나, 후자는 용서받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바로 앞장 14장에서 광야를 떠돌다가 죽게 된 운명의 사람들이 이런 케이스인데, 32절부터 36절의 설화체 에피소드는 어떤 의미에서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광야에서는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지만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지 못하거나 어기는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내지게 되고, 이런 사례를 통해서 공동체가 용서의 가능성 혹은 속죄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cf.밀양 영화이야기)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단호함을 드러내는 것(cf.사도행전의 아나니아 삽비라의 경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명령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소극적 방식이 실수로 실천하지 못할 경우의 속죄시스템이라면 적극적인 것은 38절에서 40절이 이야기하는 “옷자락 끝에 술을 만들”고 “술에는 청색 끈을 달아” 일종의 복식문화를 통한 기억매체(기억하고 실천,39,40절)를 두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마음내키는 대로 따라가거나, 눈에 좋은 대로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색욕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39절),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는 것(40절)이 그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예배(제사)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됨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41절) 낸 목적이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이스라엘의 사명입니다. 여기서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중요한 강조점은 이 예배와 거룩함의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동시대의 외국인(7회 반복)을 포함하는 것을 통해, 그리고 대대손손 혹은 오고오는 세대에 대대로 전달되는 것을 통해 확장되고 야훼신앙을 공유하고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뜻을 함께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이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종 우리가 경험하는 한계상황, 큰 문제들은 어쩌면 하나님의 큰 은혜, 한계를 넘어서는 변함없는 사랑의 계기입니다. 때로 훈육이 아프리만큼 강력하지만 그만큼 훈육하시는 분의 형성하려는 교육적 의도와 의지가 드러날 때 현재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향할 수 있게 됩니다(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온전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것처럼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온전한 예배와 거룩함이라는 정체성을 위하여 우리가 옛것을 떠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지향적(대대로)이며, 외부지향적(외국인도)인 하나님의 뜻과 의도, 하나님의 선교, 미션얼 비전을 기억하게 하는 오늘날의 기억매체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해 보게 됩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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