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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8장 22절 33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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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2-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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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8장 22절 33절 요약 221216

 

사람의 일, 하나님의 일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바리새파 사람들을 떠나 벳새다로 가는 배안에서 예수님의 “누룩”이야기를 오해하여 빵이 한 개밖에 없음을 탓하는 줄로 생각하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현실이 이런 저런 모습으로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벳새다에서 예수님이 만나 고쳐준 눈먼 사람의 모습(22-26절) 속에서 독자들은 제자들의 모습이 대비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는 도중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답했던 베드로의 대답과 그 이후 행동(27-33절)에서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눈먼 사람 에피소드는 7장 31-37절에 나오는 귀먹고 말더듬는 사람 고치시는 에피소드와 여러 가지로 유사합니다. 사람들이 데리고 와서 안수를 요청한 점, 예수께서 따로 데리고 가신 점, 침을 뱉어 사용하신 점, 치유 후에 굳이 “말하지 말라”고 명하신 점이 그것입니다. 다른 점은 여기서 예수님이 단 번에 가 아니라 두 번에 걸쳐 손을 얹어 치유하셨다는 것인데 여기에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누군가는 여기서 예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애정이 느껴진다고 했는 데 만일 이 맹목의 사람을 대하시는 것이 맹목의 제자들 혹은 맹목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하시는 것과 연결시킨다면 위안이 되는 지점이 될 것입니다. 눈먼 사람의 경우, 일 차 “쳐다보고(24)”에서 이 차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26)”라고 묘사되어 있다는 점을 보면 나름 예수님의 애쓰심만큼이나 수혜자의 입장에서도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만일 마가가 이 맹인의 치유사건을 기본적으로 “아직도 깨닫지 못하(21)”는 제자들의 맹목과 연결하려고 하고 있다면, 제자들의 맹목은 점진적으로 다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복선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맹목의 핵심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Who do you say I am)?(27,29)”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대답이나 특히 베드로의 대답은 그 맹목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일견 정답 같은 대답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시기를, 자기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반응이 일차적으로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오해를 드러냅니다. 사실 바로 앞에서 맹인이 치유되자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대부분의 지금까지의 치유 사건에서 발설금지를 명하신 이유가 때가 이르기 전에 잘못된 이해, 즉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낳을까봐 그러신 것입니다. 이렇게 발설금지를 명하신 후 바로 31절에서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베드로의 “그리스도”를 다니엘서 7장 12-13절에 근거한 “인자”기독론으로 대체 혹은 보완하는 데, 특히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훌 후에 살아나야 한다” 라는 원래 그림에 없는 특이한 내용을 가미합니다. 노골적인(“드러내 놓고”32절) 예수님의 가르침에 베드로의 반응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의 정답같아 보이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자신의 욕망의 투영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라는 묘사가 재미있는 것은 NIV에서는 예수님을 따로 데리고 가서 그를 꾸짖기 시작했다(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라고 되어 있는 지점입니다. 한글 성경으로 보기에는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리는 장면이 연상이 됩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대적자” “사탄아”라고 강하게 하시는 말씀은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사탄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베드로의 정답 같은 고백마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에피소드가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직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맹목은 해결되지 않은 셈입니다.

 

한편으로 절망스럽지만 다른 한 편 희망이 있는 것은 이런 제자들의 맹목을 예수님께서 다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43:8) 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의 소통하지 못하는 귀와 보지 못하는 맹목을 마침내 고쳐 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대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열심은 계속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후에야 제자들과 그 공동체는 이 경험에 근거한 제대로 된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가의 독자 공동체를 비롯하여 모든 시대의 기독 공동체는 여전히 이 질문에 직면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느냐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입니까?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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