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ETT 요한복음 7장 14절-30절 2009,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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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중간쯤이 되어서야 예수님은 종교체제의 본산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마치 각오한 사람처럼 가르치기를 시작하십니다. 누구 말처럼 티격태격대는 대화속에서 예수님은 분명한 자기인식속에서 자신을 보여 주기 원하십니다.
본문의 반복에 주목하면 14절에서 18절까지는 “교훈”“가르침”“배움”과 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어디서 배웠는 지를 묻는 사람들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에서 24절까지에서는 “모세”“율법”“안식일”“할례”등과 같은 말이 반복되는 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정통해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25절에서 30절에서는 “어디서 온 것”과 “알다”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데 이는 결국 19절에서 24절의 예수님께서 논증하시는 장면에서 스스로 밝히신 5장의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신 일로 생겼던 소동과 그 때부터 살해의 위협을 받으셨던 것을 기억하게 하심으로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출신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근거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예수님은 이에 대해 반응하시고 계십니다. 이 본문의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말은 “어디서 이 사람이 왔는가?”라는 말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서 “나(이 교훈)는 하나님께로 왔다.”“나를 보내신 분이 계시고 나는 보냄을 받았다”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체제종교로서의 유대교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보냄받은 Identity"를 가지신 예수님 자신의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지만 유대인들은 스스로 말하고 자기 영광을 구합니다(18절). 예수님은 공의로 판단하지만 유대인들은 외모(출신학파? 출신지)로 판단합니다.(24절) 예수님은 치유하고 건전하게 하시지만 (23절) 유대인들은 죽이려하고 잡으려 합니다 (19, 20, 25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삼위일체신앙과 이 세상의 체제종교적인 단일신적 군주신론적 신앙의 차이는 지금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셨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Agenda를 갖고 있다고 여기느냐 아니면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자신의 Agenda를 찾아 사느냐? 이것은 개인적으로 삼위일체신앙안에서 삼위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여호와의 횡)를 경험하느냐 아니냐와 깊이 연관될 것입니다. 빨리 유명해지고 빨리 결과물을 얻으려는 삶,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삶과 비록 죽음의 위협이 있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담대하고 과단성있게 메시지를 외치는 삶의 차이는 자신의 identity에 대한 바른 인식의 차이일것입니다. “보냄받은”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삶은 이 세상의 정신, 시대정신, 종교정신과는 분명 다른 삶의 태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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