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 시작된 날] I. 서론 01.~03.장까지 내용 정리 및 ETT 참가자 소감 및 토론(20200205) > ETT 3191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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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시작된 날] I. 서론 01.~03.장까지 내용 정리 및 ETT 참가자 소감 및 토론(20200205) > ETT 3191 자료실

혁명이 시작된 날 [혁명이 시작된 날] I. 서론 01.~03.장까지 내용 정리 및 ETT 참가자 소감 및 토론(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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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4,336 회
작성일 20-02-10 20:49

본문

일상생활사역연구소 ETT 신학과정

 

톰 라이트의 <혁명이 시작된 날>

 

책 정보 : 톰 라이트, 혁명이 시작된 날, 비아토르, 2019

 

정리 : 정한신(일상생활사역연구소 기획연구위원)

 

‘*’ 표시는 정리자가 내용 정리와 이해를 위해 임의로 붙인 소제목을 의미함.

 

202025() 첫 모임 : 01~03장까지 합독.

 

1. 책의 주요 내용 정리

 

I. 서론

 

01. 아주 중요한 스캔들 : 왜 십자가인가?

 

* 십자가 사건, 혁명이 시작된 날

 

예수의 첫 제자들은 십자가형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십자가 사건을 인류 역사는 물론, 하나님과 이 세상의 이야기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본 것이다. 이들은 십자가 사건으로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 세상을 구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갑작스럽고도 극적으로 실행에 옮기셨다고 믿었다. 첫 제자들은 그날을 혁명이 시작된 날이라고 보았다. 부활은 혁명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눈에 보이는 첫 번째 표지였다. (14면 참고)

 

* 십자가 사건의 의미에 대한 질문들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시간과 장소와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감동과 위로와 도전을 주는 힘이 있다면, 이런 힘을 지닌 이야기, 특히 그 십자가 사건은 도대체 무엇인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메시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로 요약했을 때 그들이 뜻한 바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간단히 말해, 예수님은 왜 죽으셨는가? 왜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혁명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33면 참고)

 

02. 십자가의 의미 찾기, 그 과거와 현재

 

* 십자가를 이해하려는 이유

 

십자가를 더 잘 이해하려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여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약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세상에 역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은 십자가를 통해 바로잡힌 우리가 세상을 바로잡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혁명은 바로 그렇게 역사한다. (41면 참고)

 

* 속죄론과 종말론의 밀접한 관계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48)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적이 구속받은 백성의 부활체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죄와 죽음을 넘어서서 그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도 재고해야 마땅하다. 속죄(인류가 자신의 역경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의 목적 가운데 의도된 자리로 회복되는 방법)는 종말론(하나님이 세상과 인류에 궁극적으로 의도하시는 바)과 들어맞아야 한다. 십자가는 무언가가 발생한 순간인데, 그 결과로 하나님의 미래 계획이 시행되면서 세상이 뒤바뀌었다. 바로 그때 거기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그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첫 번째 표지였다. (56)

 

서구식 경건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천상에서의(즉 세상과 관련 없는) 내 구원과 내 구주에만 집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특정한 질문을 제시한다. 십자가의 성취에 대한 현대의 많은 사상이 죄인이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19세기 관점과 관계가 있다면, 복음이 온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초기 관점에서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었겠는가? (57)

 

18세기에 나타난 또 다른 문제는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8세기 다수의 유럽 문화에서 이신론과 에피쿠로스주의를 수용하고 있을 때, 개인의 죄(사람들이 천국에 가지 못하는 이유)와 세상의 악의 문제(인간의 부정행위, 폭력, 전쟁 등은 물론, 지진과 해일 같은 자연적 악도 포함되는)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속죄 신학이 전자(어떻게 죄를 용서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가?)를 다룬 반면, ‘악의 문제로 불린 후자는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된 철학 논쟁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부여한 의미와는 별도로 다루어졌다. 이 둘은 철저히 분리되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질문들은 후자보다는 전자와만 관련되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 곧 십자가가 사회적·정치적 악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암묵적 전제를 낳았다. (57-58)

 

잘못된 이유로, 가증스러운 십자가?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 혼란이 있다. 특히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처벌하신 수단이고, 인류의 죄에 대해 진노하신 하나님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실 때 예수님이 개입해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는 메시지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컨대 일부 전통적 속죄 이론들은 폭력의 문제(예수님께 폭력을 사용하신 하나님 등)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중요한 일이 벌어졌고 그 결과 세상이 달라졌다고 책마다 주장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의미에 사로잡힐 때 이 변화의 일부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첫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생각한 내용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날 혁명이 시작되었다.

특히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단순히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문제보다 더 큰 이야기 속에서 해석한 듯하다. 사실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문제는 신약성경의 관심사가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에 중심을 둔 신약성경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임하는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가 십자가 상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십자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혁명의 출발점이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할 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다. (62-63면 참고)

 

우리가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은 삼위일체와 성육신 논쟁, 곧 하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고, 예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셨으며 어떤 분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74)

 

* 종말론에서 시작하는 십자가 탐구를 위한 질문들

 

우리가 구원받은 영혼이 천국에 간다는 궁극적 관점 대신에, 하늘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메시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그분의 계획이 나타난 에베소서 110절의 종말론에서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육신이 빠져 버린 천국대신에, 예수님 안에서, 그분을 통해 피조된 두 영역이 결합하고 새로워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성경의 비전에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 신약성경에 나온 것처럼 뚜렷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영단번의 사건이 지닌 십자가의 지속적 영향력을 충분히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관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다시 말해, 십자가는 새 창조라는 성경의 더 큰 서사에 어떻게 들어맞을까? (75면 참고)

 

03. 1세기 배경에서 본 십자가

 

예수님의 십자가형에 대해서 1세기 배경과 그 사건을 둘러싼 통찰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 본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77)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로마 세계는 분노와 무기의 세계였다. 분노와 무기의 세계는 사람이 똑같은 사람을 그토록 잔인한 방식으로 처형하기 원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79면 참고)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은 십자가형이 자신들의 절대 권력을 주장하고 희생자의 절대 비하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하고 끔찍한 방식이기에 십자가형을 택했다. (82면 참고)

 

십자가형은 고문으로 서서히 사람을 죽이면서 수치심을 주고 대중에게 경고할 뿐 아니라, 거만한 반역자들의 야망을 풍자했다. (87면 참고)

 

우리는 십자가를 정확히 포착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십자가가 우리를 사로잡음을 뜻한다. 우리가 십자가를 너무 손쉽게 우리 것으로 만든다면, 모든 것을 너무나 깔끔하게 설명해 주는 이론과 해설에 십자가를 끼워 맞춘다면 우리가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는 크기로 십자가를 축소하게 될 것이다. (89)

 

그리스도인의 소망(‘천국에 가는 것’)이라는 흔한 관점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성경적 관점으로 대체하면 우리가 인간의 문제와 하나님의 해결책을 이해하는 방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이 확실해 보인다. 이 흔한 모델에서 우리가 천국에 가지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죄인데, 십자가에서 이 죄가 해결된다. 성경적 모델에서 우리가 진정한 인간이 되지(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왕 같은 제사장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죄뿐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우상숭배다. 우상은 권세, 곧 인간이 하나님의 세상에서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세를 잡았다. 우상을 숭배하는 인간들이 우상에 권세를 넘겨준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과 그 안에서 새로워진 인류를 위해서는 이 우상들이 깨져야 한다. 우상숭배의 결과인 죄가 인류를 세상의 신이 아닌 것들의 노예로 삼았기에, 죄를 다루는 것은 단순히 인류를 해방하여 천국에 보내는 것보다 더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죄에서 벗어난 인류는 우상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형상대로 새로워질 수 있다. (98면 참고)

 

성경에서 죄를 처리하고 우상의 권세를 깨뜨려 새로운 창조세계를 불러오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 그 초점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메시아로 좁혀진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창조세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이것이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하려는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한 내용이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이야기 말이다. (98-99면 참고)

 

2. 모임 참석자들의 소감과 토론

 

익히 들어서 안다고 생각했던 십자가형에 대한 상세하고 새로운 역사적 정보들이 신선했다. 톰 라이트가 문제를 제기하는 속죄론의 전형적인 시각들이 여전히 자신 안에서나 교회 안에서 있음을 확인하면서 좀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십자가가 죄에 대한 형벌의 차원에서 논의될 때 하나님의 진노와 폭력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검토할 수 있었다.”

 

톰 라이트는 십자가의 의미를 탐구하도록 촉구하면서 계속해서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무수한 질문들을 펼쳐 놓은 서론의 문제 제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기대된다. 또한 그는 죄와 형벌에 입각한 축소된 십자가 개념이 과연 복음, 곧 좋은 소식인지 질문한다. 이 또한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다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십자가를 개인 구원의 차원에서만 생각하고 고백하는 속죄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초대하는 책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과 소위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춘 칭의와 성화의 복음간의 조화를 생각해 본다. 이러한 조화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톰 라이트는 칭의를 부정하고 경시하는 것으로 흔히 오해되는 경우가 있는데, 구원을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경향에 대해 지적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구원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개인이 없으면 그 공동체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톰 라이트의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 목회 현장에서 구원과 성경의 이야기를 제대로 고민하고 해석하는 목회자들이 줄어드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톰 라이트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시각을 견지하는데 이는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 로마서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기존 입장에 비해 성경 전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57-58면에서 톰 라이트는 18세기 이후 개인의 죄 문제와 세상의 악의 문제를 철저히 분리시킨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74페이지에서 톰 라이트는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이 삼위일체와 성육신 논쟁, 곧 하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고, 예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셨으며 어떤 분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삼위일체 신학과정인 ETT의 취지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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