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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사역의 기초- 삼위일체 신앙과 균형(均衡)

작성일 2018-03-30 22:52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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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사역의 기초- 삼위일체 신앙: 균형(均衡) 

성령 충만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해야 할 영적 실재(reality)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 받는 데(물에 잠기어 충만한 상태)서 시작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계속되는 여정 역시 끊임없이 처음 받았던 세례를 기억하며 삼위하나님의 실재 안에 잠겨(예레미야의 표현대로 하면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거하여 충만을 경험하는 삶은 ‘관계’속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의(義)’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지난 번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삶과 삼위일체 신앙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럴 존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삼위일체에 뿌리를 두고 형성된다는 점에서 다리가 세 개인 의자와 같습니다. 다리 하나를 빼 내면 의자는 흔들리다가 곧 넘어지게 됩니다. 다리 둘을 빼내면 곧바로 의자는 넘어집니다.(「삼위 하나님과의 사귐」,ivp. p.54)"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위로 존재하시는 한분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는 양태론적 하나님이나 혹은 성부하나님에게 예속되는 성자나 성령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지므로 균형을 잃어버립니다. 혹은 세분의 신이 각각 따로 일하시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각각 다른 신을 구하고 강조하는 삼신론적 경향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부를 강조하거나 성자를 강조하거나 혹은 성령을 강조하다가 인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계추 경향(pendulum tendency)으로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될 때 균형을 잃은 신앙의 모습을 띄게 됩니다. 최근 한국교회가 한 가지 방향으로 달려가는 징후를 보는 데 그것은 성령에 대한 강조입니다. 막혀있는 답답한 개인과 교회의 이런 저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만약 성령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신앙의 균형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미 이야기한 대로 신앙의 출발부터 신앙의 지속되는 여정 모두에서 성 삼위 하나님이 늘 춤추듯이 하나로 함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 없는 성령의 사역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부와 성령 없는 성자의 사역이 없으며 성자와 성령이 없는 성부만의 사역 역시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생각하는 균형은 산술적인 균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 안의 관계적 역학구도(교회의 역사는 성부는 성자를 나시고 begotten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 proceed)를 알고 인정하는 역동적인 균형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지난 세기 후반부 우리들은 소위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에 대해 심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각각 강조하던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강조를 많이 받았습니다. 실제로 1984년과 1989년에 있었던 로잔회의는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역설한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마치 평균대 위를 걷는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늘 배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이라는 것이 늘 이런 한계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삼위일체를 우리 신앙의 균형의 중심부에 두는 것은 둘 사이의 균형을 구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된 균형을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평균대는 역동성의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지만 삼발이는 역동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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